최근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한국기업들의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무디스의 지적이 눈길을 끈다. 한국 정부의 이번 과세안은 기업의 이용 가능한 현금규모를 줄이고 자본지출과 배당금 규모는 늘릴 것이기 때문에 재무레버리지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경환 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직접 재정을 확대해서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이나 정책금융, 금리 등을 통해 돈을 풀어 단기적으로 내수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현실적으로 시중에 자금을 풀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모두 동원되는 듯하다. 증시는 이미 경기예고지표인 주가지수를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측면에서 우려감도 함께 커지고 있음에 주목하자. LTV, DTI 완화에 따른 과도한 가계부채의 증가, 사내유보금에 대한 징벌적 과세로 인한 투자여력의 저하 가능성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물론 정책의 부정적 효과는 시장에 대한 정책자금의 일방향 흐름이 한차례 있고난 이후에 장기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우려가 된다. 특히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말로 포장되기는 했으나 동일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는 물론이고,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위해 우리 기업들의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희생시키는 조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말하자면, 오늘 저녁밥상의 반찬을 늘이기 위해 알 잘 낳는 닭을 잡는 것과 다름없다. 사내유보금이란 무엇인가? 주주들은 일 년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을 배당으로 가져가지 않고 회사 내에 남겨놓는 돈이다. 사실, 사내유보금 규모 하나만 보아도 대략 그 기업이 우량기업인지 부실기업인지 알 수 있다. 기업에 남겨놓은 만큼의 이익을 내지 못했거나 향후 재투자기회가 없어 번 돈을 모두 배당으로 분배한 기업이라면 적어도 부실하거나 성장가능성이 없는 기업으로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 | |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매오른쪽)가 20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명량에서 경제정책을 배운다>라는 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
다시 말해, 사내유보금을 인건비나 배당 등으로 나누는 일은 미래 투자를 위해 기업이 비축해 놓은 재원을 들어먹는 일이다. 그래서 재투자를 위해 저축을 많이 해놓은 기업들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우리 경제의 성장기반을 약화시키는 조치일 수 있다. 이번 조치가 당장의 소비지출을 유인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실효성도 의문이다.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이 대략 550조에 달한다고는 하지만 그 기업들은 상장회사 가운데 불과 10여개 회사에 불과하고 더구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절반을 차지한다. 결국 우량기업들의 임금을 늘이는 것은 국내 산업계의 인건비, 소득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일이고, 배당을 늘이는 것 역시 90% 이상이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투자자 그리고 고소득층인 대주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배당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이들의 배당소득이 과연 얼마나 소비의 확대로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기업들의 투자촉진은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단골 메뉴였다. 그리고 투자확대는 선거공약으로 늘 등장했던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정부들의 바람대로 대기업들의 투자가 뒤따르지 못한 것은 투자할만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규제혁파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조치는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들조차도 미래의 투자를 막는 새로운 규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고용과 투자를 확대하여 소득과 소비를 늘임으로써 침체한 경기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험적 성격이 강한 기업투자 활성화와 소비촉진 정책은 자칫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현안대로라면 부유층에 유리한 배당소득에 대한 혜택이 될 수 있고, LTV, DTI 등의 금융완화정책은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에 기여하겠지만 동시에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정부의 이번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추가적인 기준금리의 인하 조치, 서비스산업 육성대책에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강력한 정책의지는 당장은 시장에서 낙관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성장기반을 훼손하는 소비진작 중심의 경기부양이 우리 경제에 장기적으로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정책기조로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 충분히 공론화를 거친 정책아젠다 개발의 최종성과물인지도 궁금하다. 해법 찾는 일이 늘 어려운 경제정책. 장기적 안목에서 늘 유연하게 접근하자.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 (이 글은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가 자유경제원이 20일 <명량에서 경제정책을 배운다>라는 주제로 개최한 정책토론회에서 패널로 참석해 발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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