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영조 경희대 교수 |
정치적 결정 범위의 무분별한 확대와 위협받는 사적 자율 서론 국가와 시장이 경제에서 어떤 정도와 성격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는 근대 국가 및 자본주의의 발달 이래 이론면에서도 실천면에서도 핵심적인 쟁점의 하나가 되어 왔다. 국가의 역할을 공공재의 공급에 국한해야 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입장과 실천이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로 국가가 생산과 분배 등 경제활동 전반을 조직하려는 사회주의의 주장과 실험도 있었다. 2차 대전 후에는 서방 여러 나라에서도 이른바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론이 득세하면서 국가의 역할이 크게 증가했다. 복지국가가 근로의욕 저하와 노동공급 경직화 그리고 재정위기 등 여러 난제에 봉착하면서 시장 기능의 회복과 확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와 정책이 잠시 득세하는 듯 보였으나 21세기에 들어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다시금 팽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가의 역습’이 일어나고 있다. 구미의 경우, '사회통합’(social cohesion)의 미명 하에 다시 국가의 재정지출과 역할이 팽창하기 시작하던 차에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크게 늘어났다. 1980년대 초 이래 외채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강요당한 중남미의 경우 거의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남(=신자유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반시장적인 좌파 정권이 잇달아 등장했다. 중남미 학계도 일찌감치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신구조주의 모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 하에서 잠시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는 개혁들이 시도되었지만 1997~98년의 외환위기를 분수령으로 해서 재정지출과 국가의 시장 개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른바 '자유주의 개혁의 역설’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이후에도 국가의 재정규모와 역할 그리고 시장 개입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수사와 정책은 그 단적이 예이다. | | | ▲ 이영조 경희대 교수가 21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사적 영역, 정치의 위협에서 어떻게 지킬까>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어느 경제에서나 공공부문 규모의 지나친 증가는 사부문의 투자를 구축할 (crowding out)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문제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공공부문의 확대 그리고 국가의 간섭이 질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미명 하에서 사적 영역의 자율에 맡겨졌던 그리고 맡겨야 마땅한 사안에 대해서도 행정부와 입법부의 통제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국가의 직접적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 자율의 영역은 줄어들게 되고 사부문은 활력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파국적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결정의 범위에 제한을 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다. 국가의 팽창과 개입: 양적 측면 국가 역습의 증거는 일차적으로 예산과 규제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부재정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림1]. GDP에 대비해서 비율이 줄어드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환율 하락으로 인해 달러로 표시된 GDP가 증가한 데 기인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재정규모만 보면 공공부문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고 보일 수 있지만, 여기에 지방정부의 예산, 공적 보험, 정부 관리 하의 각종 연기금을 포함하면 이미 엄청난 규모이다. 예컨대, 연기금의 운용예산은 중앙정부의 예산을 압도하는 규모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공부문의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규제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림2]. 뿐만 아니라 규제의 강도를 감안한 규제지수를 보아도 정부의 규제는 2011년 잠시 낮아진 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림3]. | | | 그림 3: 규제강도 감안한 규제지수 증가 추이 출처: 현대경제연구원 |
정부의 규제는 크게 경제적 규제, 사회적 규제, 행정적 규제로 나뉘는데 각기 전체 규제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아래의 그림 4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 경제적 규제도 전체적인 규제와 비슷하게 점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 | 그림 4: 분야별 규제 증가 추이 출처: 규제정보포털(www.better.go.kr) |
경제적 규제의 건수가 점증하는 가운데 규제의 규제강도별 비중에는 큰 변화가 없다. 아래의 그림 5에서 보듯이 가장 강력한 사전승인과 강한 기준 두 항목을 합치면 최근 수년간 60% 선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 | | 그림 5: 경제적 규제의 규제 강도별 비중 출처: 규제정보포털 (www.better.go.kr) |
국가개입의 질적 변화 국가의 비대화와 개입 증가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이 국가의 시장 개입을 당연시하는 정책기조가 행정부 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는 이른바 '경제민주화’로 대표되는 경제의 정치화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분배를 확대하는 한편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후자(순환출자 금지, 금산 분리, 중소기업 적합 업종 등) 경제적 합리성 보다는 정치적 합리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투자나 성장 측면에서 이들 정책의 부작용은 단순히 추론이나 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드러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대기업을 강제로 퇴출시키거나 신규 진입을 막은 많은 업종에서 국내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 중소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원한다는 명분을 들어 경제활동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사법의 공법화’이다. 사적 계약으로 처리될 수 있는 사안들조차 공적 통제와 규제 하에 두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행정부만이 아니다. 입법부 또한 사적 영역에 대한 공세에 행정부와 가세하거나 혹은 독자적으로 나서고 있다. 16대 국회부터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는 국회가 발의하여 통과시키는 법안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 그림 7 참조) | | | 그림 7: 급증하는 의원 입법: 발의건수 출처: 의안정보시스템 |
이러한 의원입법은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법안의 비중은 정부발의법안에 비해 적은 반면 기존 규제를 강화하거나 신설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그림 8 참조). 의원입법의 17%가 규제를 강화하거나 신설하고 있다. | | | 그림 8: 급증하는 의원입법: 가결건수 출처: 의안정보시스템 |
| | | 그림 9: 의원입법의 규제 강화 및 신설 경향 출처: 의안정보시스템 |
국회와 관련하여 더욱 우려스러운 질적 변화는 국회가 고유의 입법 기능과 행정부 견제 기능을 넘어서 사부문, 특히 대기업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뚜렷한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기업인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이다. 최근 이러한 출석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 2011년에는 국회가 출석을 요구한 전체 증인 171명 중 61명이 기업인이었지만 (35.7%), 2011년에는 347명 중 145명 (41.8%), 2013년에는 400여명 중 256명 (약 60%)에 이르렀다. 절대적인 숫자도 비율도 급증하고 있다.
| | | ▲ 이영조교수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이러한 출석 요구가 선별적이라는 점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산업위원회는 당시 민주당과 상생기구 설치에 합의한 롯데 신동민 회장은 당초의 증인 리스트에서 제외시켜주는 반면 그렇지 않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그대로 출석시켰다. 이 같은 선별적 출석요구는 기업인 길들이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의 팽창과 사부문 공격의 원인 좋은 성과지표의 부재 내부효과 (internalities) 예산극대화 비용 부담자와 편익 수혜자의 불일치(different incidence of costs and benefits) 포획 선거경쟁의 격화 Race to the People 단기적 지지 극대화 > 장기적 성장 Regulatory entrepreneurs 6. 대책 (What is to be done?) 재정 규모에 대한 한도. 균형예산 국가부채 총량 규제 (GDP의 x%) 법안 제출 시 실행 가능한 구체적 재원 조달 방법 명시 (현재보다 강화) 선거공약의 경우도 재원 조달 방법 명시 하지만 앞의 원인 분석에 비추어 어느 관료, 어느 정치인이 이런 대책을 마련할까? 거의 무망하다. '작은 정부, 큰 시장’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는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y) 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새로운 정치인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영조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22일 정치실패 쟁점 연속토론회 <사적 영역, 정치의 위협에서 어떻게 지킬까>라는 정책세미나에서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주제발표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