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한결 같다.
'어렵다'는 것이다.
세법 이외에 다른 법들도 '조문' 자체만 놓고 보면 금새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유독 세법에 대해서만 어렵다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간단하다.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나라 세법은 너무 자주 바뀌고, 개편항목도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말을 받아친 당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답변은 우리나라 세법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세법을 넘겨보면 최고 학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법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가 지적했던 세법의 문제점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 뜯고 고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세법 = 지난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기업 5개사 중 1개사는 '어려운 세법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조세행정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너무 잦은 세법개정에 기인하고 있다. 전문적인 인력과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매년 세법이 바뀌면 세무신고 등 업무를 하는데 있어 어려움과 많은 비용을 소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도 잦은 세법개정에 피로감을 표출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잦은 세법개정은 국민들의 정부정책 방향에 대한 이해도와 세부담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등 다양한 문제를 양산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도 정부지만 정치권도 잦은 세법개정에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연간 100여건이 넘는 각종 세법 개정을 동반하는 입법안이 국회의원들의 손을 거쳐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세법개정에 따른 비용추계가 부실한 입법안도 상당수인데다가 아예 대놓고 정부의 정책방향과 다른 노선을 탄 내용의 입법안을 내놓아 국회 심의과정에서 정쟁의 요소로 활용하는 등 폐습이 시시각각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5년(2007~2011년) 동안 이루어진 세법개정 건수는 2222건. 연도별로는 2007년 440건, 2008년 492건, 2009년 490건, 2010년 375건, 2011년 425건 등 연평균 444건이 개정됐다.
세법이 자주 고쳐지는 이유는 사실 경제적 거래의 형태가 시시가각 변화하고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열거주의(列擧主義)'를 채택하고 있는 소득세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거래에 과세권을 행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법개정에 소요되는 절차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거래에 신속한 대응도 어렵다. 세법 개정 없이도 효력이 인정되는 '예규'를 통해 보완하고 있지만 예규는 해석상의 논란이 빚어질 개연성이 다분, 법적 안정성이 떨어진다.
조세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법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세법이 자주 고쳐지는 이유는 조세를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인식,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세법개정 트랜드는 전적으로 이 이유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측면이 다분한 것이 사실이다.
수 년 전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는 부자감세, 부자증세 논란은 이같은 정권의 색깔(?)에 기반한 '전략세제' 운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최근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삼아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 환류세제) 또한 마찬가지다.
논란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세법의 기본원칙인 공평성, 예측가능성(국회 통과 여부 등)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아울러 '진영논리'가 강조되면서 마치 세법이 계층을 구분하는, '편가르기'의 매개체처럼 인식되는 등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이에 새로운 경제거래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부분은 제외하되 매년 미시적 관점에서의 세법개정 추진이 아닌 중장기적 관점에서 2~3년 주기로 세법개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게 형성되고 있다.
특히 정권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세제를 운용하려는 태도 또한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조세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시장참여자들의 경제활동은 실제 부담해야 할 세액의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라며 "잦은 세법개정으로 자신의 세부담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은 항구적인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고, 납세자들의 피로감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납세협력비용' 10조원 쓰는 나라 = 이처럼 빈번한 세법개정의 폐해는 기업이든 개인이든 모조리 납세자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제2의 세금'으로 통칭되는 납세협력비용 추계치다. 한 해동안 대한민국 납세자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데 10조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기획재정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국세청 소관 내국세 관련 법령 등이 납세자에 유발한 행정비용(납세협력비용)은 9조8877억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납세협력비용은 2011년 국내총생산(GDP) 1235조2000억원의 0.8%, 총 세수 180조2000억원의 5.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추정치라는 점과 관세와 지방세 분야의 납세협력비용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납세협력비용은 더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자원과 인력이 풍부한 대사업자(법인)에 비해 중소·영세업체들의 부담이 더했다. 조사결과 상시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은 매출액 1만원당 1.1원의 납세협력비용을 지출했지만, 상시종업원이 없는 기업은 70.7원의 납세협력비용을 지출했다.
일반 근로자들도 근로소득세 납부를 위해 1인당 2만원 가량의 납세협력비용(총 3052억원)을 지출했다. 이 밖에도 부동산을 팔 때 양도소득세 납세협력비용으로 평균 32만원, 상속·증여를 할 때 상속세 239만원과 증여세 722만원 등의 납세협력비용을 납세자들이 부담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법집행기관이 세무행정의 선진화 지표 중 하나로 활용하고 있는 징세비는 지난해 기준 징세액 100원당 0.72원이었다. 이처럼 낮은 징세비는 납세자들이 과도한 납세협력비용 지출로 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무행정의 효율성이 높은 것은 납세자들의 희생이 담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은 이와 관련해 "징세 효율성이 높은 것은 국세청 세수의 대부분이 소득세, 법인세, 간접세 등 신고 납세제도로 운용되는 '자납세수'가 대부분인 이유가 클 것"이라며 "낮은 징세비용이 납세자들의 부담인 납세협력비용으로 전가된 때문은 아닌지 다각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최근 납세협력비용의 획기적 감축(2016년까지 15% 감축)을 목표로 정책방향을 설정했지만, 이를 원활하기 달성하기 위해서는 잦은 세법개정 관행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조세불복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점도 세법의 복잡성이 만들어낸 부작용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0년 7200건 수준이었던 조세심판원 접수 심판청구건은 지난해 9700건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에 조세제도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위해 조세제도를 최대한 단순화하고 잦은 세법개정을 지양해 세법에 대한 납세자들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경제 현재 상황에 너무 매몰되어 세제로 무엇을 해 보겠다는 것은 세제의 단순성, 예측가능성, 안정성을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덕진 자유경제원 제도경제실장도 "국민은 자기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감면받는지도 모른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조세제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비과세 감면을 많이 축소하고 있는데, 미국 등 선진국들과 비교해 그에 맞춰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정희 안진회계법인 대표는 최근 열린 조세일보(www.joseilbo) 주최 중장기 조세개혁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의 세법개정이)너무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는 현재의 경제상황과 향후 복지 등 경제사회적 정책수요에 부응하기 곤란하다. 세법개정을 구체적 항목 중심의 미시적 차원이 아닌 거시적 차원에서 중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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