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여!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라
입력 2014-10-16 20:50:45 | 수정 2014-10-17 02:15:45 | 지면정보 2014-10-17 A38면
개인자유 신장이 번영의 비결
권력화된 한국정치, 규제만 양산
정부영역 줄이고 시장 존중해야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jwan@khu.ac.kr >
정말 정치가 중요하다. 어떤 정치제도를 갖추고 그것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와 각국의 역사를 보면 국민을 잘살게 만들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었다.
인류 역사는 자유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인류는 분업과 교환, 기술혁신 등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 성공의 궁극적인 원천은 자유였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고, 혁신의 물결이 넘쳐흐르며 사람들의 삶이 개선됐다. 그 방법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잘살았고, 그렇지 않은 사회에선 가난하게 살았다.
여러 고대 도시국가 중 그리스가 가장 융성했던 까닭도 다른 도시국가에 비해 시민에게 주어진 자유가 상대적으로 많은 데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처음으로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파악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인들이 찬미한 자유란 거주 외국인과 노예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소수에게 제한된 특권이었지만, 자유의 이념이 로마에 전수되고 나중에 근대 유럽과 미국에 전해지면서 점차 확대됐다. 근대 유럽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제일 먼저 실행한 국가가 영국이다. 그 덕에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다.
한국 역사에서도 자유의 중요성은 입증된다. 재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수탈적 구조였던 조선은 정쟁과 세도정치로 쇠퇴하다가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불행한 일이긴 하지만 일본 식민지 시기에 그나마 약간의 재산권과 자유가 보장되면서 사람들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방 후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보다 더 큰 경제적 자유가 주어지자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고 기업 활동을 옥죄는 조치들이 쏟아지면서 성장 동력이 떨어져 경제가 지금 장기침체에 빠져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제적 자유는 뒷걸음치고 있다. 전 세계 자유주의 경제연구소 협의체인 경제자유네트워크(EFN)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의 경제자유 수준은 2005년 수준으로 하락했고, 상대적 순위도 152개국 중 32위에서 33위로 내려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기업 활동 자유도에서도 148개국 가운데 95위다.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고 국가의 번영을 위한 궁극적인 일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제도의 목적과 운영은 정부의 권력을 줄이고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것에 둬야 한다. 통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의 권력 남용을 억제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사회가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정치는 어떤가. 국민의 자유를 신장하고 시장경제가 작동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각종 명분을 동원해 규제를 강화하면서 정부 권력을 키워온 것은 차치하더라도 제19대 국회 활동을 보면 충격적이다. 지난달 말 자유경제원의 권혁철 박사가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 5월30일부터 1년간 본회의에서 가결된 104개 시장 및 기업 관련 법안을 분석·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64%가 반(反)시장적이었다.
뿐만 아니다. 정부의 권력 남용을 견제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권이 스스로 권력화돼 있다.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 현장의 김현 의원의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은 한국 정치권력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7일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기업인들을 불러 놓고 막말, 고성, 호통을 치는 야당 국회의원들에게서도 그 권력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국감은 말 그대로 국정, 즉 행정부와 사법행정에 대한 감시 활동이다. 그런데 민간 활동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을 하늘 공활한 이 좋은 계절, 우리 정치를 생각하면 답답함이 구름처럼 밀려온다. 국민을 정말로 행복하게 할 수는 없나.
안재욱 < 경희대 경제학 교수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