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프리덤팩토리 대표
1956년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 박사. 2000년 숭실대 법학 박사.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1997년 자유기업센터 법경제실장. 2004년 자유경제원 원장.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현). 프리덤팩토리 대표(현).
정부가 내년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린다고 한다. 돈을 거둘 목적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위해서란다. 정부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고 증세한다고 하면 찬반 여부를 떠나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다. 복지 지출이 늘어나 실제로 적자가 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민의 건강을 위해 그렇게 많은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국민 각자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 ‘자유론’을 쓴 19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워트 밀은 시민 각자의 자유에 대해 ‘타자 위해의 원칙(Harm principle)’을 제시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원칙적으로 자유라는 것이다. 이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담배에 대해서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상황에서 피우는 담배는 각자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 성인이 된 국민 각자에게 그런 정도의 결정도 맡기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국민 각자의 자유에 맡길 만한 게 없다.
해롭기로 한다면 게으름만 한 것이 없다. 만악의 근원이다. 게으른 자는 스스로를 가난하게 만들고 무가치하게 만들며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게으름을 피우는 게 훨씬 더 해롭다.
비만은 또 어떤가.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된다. 고혈압·당뇨병·관절질환 등 비만과 연관되지 않는 병이 없다. 몸에 해롭다는 이유로 흡연에 개입하는 게 정당화된다면 게으름과 체중에 대해 규제하는 것도 정당하다. 그러면 국민들이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조금 더 날씬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개입이 과연 정당할까.
국가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게으름과 과체중에 대해 개입하는 것은 국가가 공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치다면 흡연에 관여하는 것도 지나친 일이다. 국가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성인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기호 식품을 즐기는 데 그런 국민을 죄인 취급하는가.
담배 규제에 반대한다고 해서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필자가 반대하는 것은 혼자 피우는 담배에 국한된다. 담배로 인해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는 마땅히 규제돼야 한다. 지금도 이미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 술집에서도 웬만하면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기 혼자 있을 때 피우는 담배까지 죄악시하는 것은 지나치다. 국가가 오지랖을 너무 넓히는 일이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인 만큼 그 해로움을 감수하고 피울 것인지 아니면 끊을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에 맡기는 게 옳다.
그러나 필자는 건강을 위해서라는 정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정부의 의도는 제사보다 젯밥에 있다. 정말 국민이 담배 끊기를 원한다면 세금보다 담배 생산량을 규제하는 쪽이 훨씬 쉽고 효과적이다. 정부가 세금을 택하는 이유는 세금이 오르더라도 담배 소비량이 거의 줄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담배나 술 같은 중독성 기호 식품의 속성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돈 쓸 곳이 많은데 수입은 줄었다. 그러니 담배에서라도 세금을 더 거둬야겠으니 흡연자들께서 양해해 달라.’ 이런 식으로 양해를 구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담배 세금에 대해 정직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