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기독교의 이타적 사랑은 시장경제 부정 아닌 긍정

자유경제원 / 2014-11-12 / 조회: 2,037       미디어펜
기독교의 이타적 사랑은 시장경제 부정 아닌 긍정사익추구를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나눔 실천 강조
김승욱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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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1.11  1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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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주의는 비기독교적인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이타적인 행위를 강조하므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어 있다. 로널드 내쉬는 『기독교와 자본주의』(1986)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수용하는 “이기심, 탐욕, 그리고 경쟁정신” 등은 기독교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부 기독경제학자들은 주류 경제학을 맘몬의 경제학이라고 본다.

이 글에서는 사익을 합리적 경제인이 추구하는 self-interest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 사익 추구를 기독교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오해의 이유

기독교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쁘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첫째, 기독교가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성경이 재물을 신처럼 섬기는 물질주의를 경고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가르쳤다.

바울 사도도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히브리서 13:5)”고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기독교가 사익추구를 부정한다고 오해하는 이유는 성경이 욕망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성경에서 탐욕을 문제시하는 것은 작은 욕심이라도 그것이 자라서 남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은 이웃 사랑을 강조하고, 물질주의와 탐욕을 경계하기 때문에, 중세까지 교회는 이기심에 기초한 자기 사랑과 이익 추구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에 지상의 도성은 ‘자기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고, 하늘의 도성은 ‘하나님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인간은 ‘자기 사랑’과 ‘하나님 사랑’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아우구스티투스는 지상의 도성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기사랑에 기초한 부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인간의 도성은 하나님의 섭리로 대립 가운데에서도 잠시는 조화를 유지할 수 있지만, 결국 마지막은 파멸이라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인간의 혼은 물질에 의해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의 풍요로움은 인간의 혼에 영향을 미치고, 이 타락한 혼은 영적 타락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세 교회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공정한 가격에 거래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산에 투입된 노동량에 비례하는 가격을 정의로운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퀴나스는 가격과 가치가 일치할 때 교환적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이때의 가격을 공정가격이라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영과 일치하면 시장가격이 공정가격과 같게 된다고 보았다. 경제윤리가 준수되면 시장교환은 사랑에 기초하고, 공정가격이 회복되고 정보윤리가 준수되며, 위반과 태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탐욕에 이끌려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할 때 시장가격이 공정가격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는 장치로 공정가격이라는 개념을 활용하였다. 상인이 공정가격 이상을 받으려는 생각이나, 소비자가 정당한 가격을 주지 않고 구입하는 행위는 모두 잘못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잘 반영하는 10세기의 성 제랄드(St. Gerald)의 일화가 있다. 그는 자신이 로마에서 예전에 구입한 사제복이 자신이 지불한 가격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지나던 순회상인으로부터 들었다. 요즈음 사람들 같으면 싸게 샀다고 좋아했을 텐데, 제랄드 신부는 좋아하기는커녕 그 순회상인에게 자신에게 옷을 팔았던 상인에게 차액과 이자를 돌려주라는 부탁을 하였다.

이러한 것을 보면 중세에는 상업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상업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상업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된다고 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이익을 얻는 것은 정의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3. 기독교는 사익추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근대 사회가 도래하기 전에는 수천 년 동안 경제성장이 거의 정체되어 있었다. 맬더스가 <인구론>을 통해서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생산성이 올라가면 인구가 늘어나서 인구 압박으로 인해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흉년이나 전염병이 돌게 되어서 인구가 다시 줄어들었다.

농업에서는 토지와 노동력만으로는 획기적으로 부가가치가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쟁으로 남의 토지와 그 위에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방법 이외에는 남들보다 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시대에 이기심을 충족한다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야만적인 약탈을 낳는 탐욕에 대해서 그토록 강하게 경고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윤추구를 비천(turpitudo)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15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항해 시대를 맞이하면서 무역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면서 농업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제는 힘으로 남을 지배하지 않고도 교환행위를 통해서 평화롭게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윤추구활동에 대한 근본적인 견해가 바뀌기 시작했다.

베버명제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열렸는데, 이로부터 불과 25년 후에 루터가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타올랐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 정신이 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세속적 의무의 이행은 신을 기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모든 직업은 신 앞에서 절대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았다.

또한 예정론을 주장한 칼뱅은 인간이 하나님께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은 “부단한 직업노동이야말로 가장 탁월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금욕주의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개념이 내세를 지향하면서 세속적 생활양식을 합리화했다.

이렇게 베버가 주장한 바와 같이 종교개혁가들에 의해서 인간의 합리적인 이익추구행위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기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은 주위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도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행동을 사익 또는 개인의 이익(self-interest)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할 때 성경은 이런 행동을 금하지 않는다.

청빈론과 청부론

물론 기독교계에서도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 나눠주고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며 적극적 이타주의를 주장하는 교단이나 목회자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주류적 가르침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도 이웃에게 베푸는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오히려 가족이나 친족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을 책망한다. 가족의 필요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자라고 판단하고 있다. 기독교가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탐욕을 경고하고, 그 대신 사랑을 베풀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반면에 사익의 추구가 공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그런 주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가 인간의 합리적인 경제적 동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4. 성경이 강조하는 이타주의는 시장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등장하는 ‘사려깊은 인간관’이나 『국부론』에 나타나는 ‘소박한 사익 추구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이해를 무한히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 절제하는 존재이다. 사회 전체 적으로 이러한 상호 작용 때문에 선한 행동이 촉진되고, 개인주의가 극대화되어 비도덕적인 수준까지 확산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도덕감정이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인간이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이기심을 추구해도 질서가 유지되고, 이기심과 시장이 만날 때 아름다운 이기심을 만들 수 있다. 이기심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시장이다.

그러나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자본주의는 착취와 무질서로 얼룩져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사고파는 것이 용인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착취를 당했고, 잔인한 형법이 가난한 사람들을 옥죄고 있었다. 노예들의 비참함은 이보다 더했다.

이러한 잔인한 노동환경에 대해서 영국인들의 관심을 기울이는데 영국의 웨슬리운동 등 기독교의 이타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감리교 창시자인 영국의 존 웨슬리는 성화란 우리의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청지기 정신과 재산상속반대운동, 베풂을 통한 하늘나라 저축 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세제 개혁, 노예해방, 교도소 개혁, 여성해방, 산업 노동자의 노조운동 등에 직접 참여하여 신앙을 실천하였다.

웨슬리가 속했던 옥스퍼드의 홀리 클럽(Holy Club)은 가난한 사람들과 수감자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리고 19세기 런던의 클라팜 당은 윌리엄 윌버포스를 도와 노예무역이 폐지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윌버포스는 노예무역 폐지운동을 평생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1780년에 하원의원에 출마하여 1787년 노예해방 투쟁을 시작하여 1807에 18년만에 노예무역폐지법을 이끌어내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노예제도가 폐지되는데는 기독교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5. 결론

기독교 내부에서나 외부에서 마치 기독교가 사랑과 이타적인 행동을 강조한 나머지 사익추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오해받는 이유는 사익추구를 나쁘게 보기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인 나눔을 통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강제에 의한 해결보다 바람직하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을 교육과 학습으로 완벽하게 이타적인 존재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보는 인간은 저절로 선한 존재로 변할 수 있을 정도로 낙관적이지도 않고, 반드시 강제에 의해서만 질서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비관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도덕 감정도 있고, 제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이기심을 절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웃사랑에 대한 가르침으로 자발적으로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것으로 다 할 수 있으므로, 정부나 제도의 역할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권위에 순복하라고 한다. 이는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김승욱 중앙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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