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화 이후 의회정치
한국 의회정치의 선진화를 논하려면 그 원산지인 서구에 비해 그 역사가 매우 짧다는 현실 인정이 필요할 것 같다. 더구나 의회정치가 도입된 것은 70년에 이르지만, 권위주의 시대와 그 후 김대중 정부까지의 과도기를 포함하면 주류 정당 모두 정상적인 발전의 길을 걷지 못했으며, 국회 또한 명실상부한 역할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주류 양당은 2000년대에 들어와 1인의 정치지도자에 의존하는 정당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 왔는데, 당 대표와 사무총장의 권한 축소, 미국식 원내정당화, 공직선거에 경선 도입 확대 등 대체로 분권화와 정당내의 민주주의 강화에 초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10년 이상의 실험 결과를 평가해보면 과연 발전된 요소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 양당에 의해 철저히 장악된 국회의 모습 또한 개선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매번 이른바 물갈이가 되어 대거 초선이 국회에 새로 진입하지만 특히 19대 국회의 경우 의원 자질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점은 오히려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받던 체제에서 그들이 대권에 접근하기 위해 기존 의원들의 기득권을 제압하고 인재들을 널리 발탁했던 시절보다 더 나빠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일부 정치학자들은 대안에 있어 개인적 편차는 있으나 원내대표만 남기고 당대표 등 정당 중앙기구 폐지, 당론의 강제화 근절 등의 분권화를 더욱 강화하고, 공직선거의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등 미국식 정당과 의회를 발전모델로 삼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런 개혁을 하면 여야의 정쟁도 줄어들고 국회의 선진화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주류양당이 1인의 제왕 대신 몇 사람의 계파 수장의 과두제로 변질되었다고 볼만한 현상이 있고, 이 또한 정당 민주화나 민주적 리더십 형성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 할 수는 있지만, 정당의 구심력이나 일체감이 약화되면 오히려 300명의 사공에 의해 국회라는 배가 움직여야 하는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리더십과 일체감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특히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영업자 네트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좀 심하게 말하면 당은 선거 때 간판으로만 이용하는 수준으로 전락되었다. 그럼에도 정당이나 국회가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정당의 구속 때문이라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렵게 된다.
서구처럼 오랜 전통이나 풀뿌리 당원기반을 갖추지 못한 주류 양당이 의원 개개인의 선택과 행보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되면, 결국 목소리 크고 집요한 몇몇 의원들이 활개를 치게 될 것이 뻔하고 이들은 대체로 유연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아 국회는 더 자주 정쟁의 늪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당론에 강제된 의원들의 투표가 문제라지만 이념을 같이하고 집권을 공동의 목표로 삼는 정치결사인 정당이 내부 의사를 수렴하여 당론을 집약하고 그에 따른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국회법 제114조 제2항(자유 투표)에 “의원들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 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기명 투표의 경우 당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의원은 그만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여론이나 선거에 의해 평가받으면 된다.
정당과 국회가 온갖 비난과 국민들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국회의원의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인 직업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이익을 굳이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국회의원은 국회가 비판을 받거나 심지어 소속정당이 여론의 질타를 받아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불특정 다수 국민의 여론보다도 자신의 직업연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당내의 실력자와 영향력이 큰 당원, 자기 지역 유권자의 평판 관리에만 집중한다. | | | ▲ 4자방 국정조사, 공무원연금 등의 논의를 위한 여야 대표·원내대표 회동이 열린 12월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여야 지도부가 악수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왼쪽부터) 원내대표,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 우윤근 원내대표. /사진=뉴시스 |
2. 여야의 정쟁
민주주의 사회에서 야당은 대여 관계에 있어서 '일면 투쟁, 일면 협력’의 견지가 지극히 정상적이다. 서로 이념의 차이가 있지만 목표하는 사회체제가 다를 만큼은 아니며, 집권 기회가 열려있어 여야의 교체가 가능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우정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한국의 야당은 여전히 대여 투쟁 일변도를 선호한다. 이 점에서는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 뿐 아니라 새누리당도 지난 10년 야당시절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화이후에도 상당기간은 대통령 탄핵과 같이 '지나침이 화를 부른’ 극히 예외적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여 투쟁 일변도 정책은 야당에게 지방선거, 총선 등의 승리라는 큰 이익을 주었고, 아마도 이런 성공의 경험은 매우 강렬해서 멈추기 힘든 관성이 생긴 것 같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선명 야당’에 대한 국민기대가 높아 '여가 동(東)으로 가면 야는 서(西)로 간다’가 통할 정도로 국회는 늘 여야가 싸우는 곳이고 물리력 행사도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 야당의 대여 협력의 빈곤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연정의 기회가 열려있는 내각제와는 달리 현실적으로 대통령제 하에서 야당이 견제를 넘어 부분적으로라도 국정에 참여 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원칙적으로 야당은 대선에서 패했으니 역할 축소를 인정하고 여당과의 선택적인 협력도 아끼지 않아야 하지만, 별 역할도 없는 마당에 대통령의 인기하락을 집요하게 추구해 이익을 얻자는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좌우 대립 분위기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야당이 부분적이나마 국정의 파트너로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여야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로는 주류정당의 이념성 강화를 들 수 있다. 본래 지역당 성향이 강했던 두 당이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이념성이 강화되었고 그 결과 각종 공직선거에서 이념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는가 하면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경우 지역성 보다도 이념과 세대 간에 뚜렷하게 편이 갈리는 양상을 보여 주었다. 90년대에 들어와 소련·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한국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탈이념화 경향이 나타났지만, 386 이념세대들이 사회각계에 진출하고 노무현 탄핵사태를 계기로 운동권출신들의 국회진출이 대거 늘어나면서 민주당(잦은 당명의 변경과 분당과 합당이 있었지만 편의상 민주당으로 통칭)의 이념화가 촉진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우파가 결집되면서 새누리당의 이념화도 강화되었으며 미국발 경제위기와 북한의 천안함 및 연평도 도발과 통진당 사태는 각각 좌우 이념화를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정당의 이념성이 강화되는 상황은 정당 내부의 통일성을 강화할 수도 있고 정책의 일관성이 보장되어 유권자의 합리적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등 그 자체로는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념과 거의 무관해 보이는 문제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여 건전한 정책 토론과 경쟁을 어렵게 하여 여야간 소모적 정쟁을 격화시켜 사회발전과 정치발전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그 지지기반이 좌파와 중도 심지어 온건 우파도 섞여 있는데, 당의 이념성이 강화되면서 그 중 상대적 소수인 좌파 지지자들은 조직력과 선전력이 뛰어나고 시민단체나 노동단체들과 친화력이 높기 때문에 민주당의 노선 선택과 각종 선거의 당내 경선에서 높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지지기반을 확장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통적 지지기반 내에서도 다수를 외면하게 되어 균형잡힌 스탠스를 취하기 어렵게 되었다. 나아가 이런 현상은 새누리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민주당의 경직성을 강화시켜 응당한 협력도 기피하거나 주저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념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강제와 폭력이 아닌 다수의 지지를 얻어 이념과 정책을 실현시키는 원리를 택하고 있다. 즉 '배제나 척결’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표나 여론을 얻어서 뜻을 이루라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절제가 없는 여야의 정쟁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 | ▲ 2015년 첫 본회의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감사원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투표를 하고 있다. |
3.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
여야 관계는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데,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보면 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거나 대통령과 여당이 겉도는 양 극단이 대부분이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모두 초기에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여당에 대한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임기말에는 영향력을 잃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노무현정부 이래로는 대통령이 여당과의 관계에서 겉도는 시기가 훨씬 길어지고 있다.
이를 놓고 이른바 '당청 분리’가 민주화시대에 걸 맞다는 주장이 있지만, 대통령과 여당이 따로 놀게 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대통령이 국회의 비협조로 인해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렵게 된다.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 중 누구를 우선 상대해야 하는지 선택의 혼란에 직면하게 되며 그로 인해 정치권 전반이 합리적 대화의 기회를 놓치고 매사가 꼬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제는 권위주의 시대처럼 대통령이 여당을 지배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더 이상 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일단 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여당에게 정치자금을 주거나 여당의원들의 공천을 보장 해줄 수 없기 때문이며 심지어 대통령이 여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의원들에게 장관 자리를 많이 주는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상황에 맞게 당청이 서로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대통령 자신도 여당을 협력과 소통을 위해 공을 들여 하는 상대로 인정해야 한다.
4. 공천제도
대개의 문제가 사람과 제도 양면에서 발생하는데, 품질 좋은 제도가 없어서 한국 주류정당들이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정당정치의 정상화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어 왔는데, 민주적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양식있는 의원들이 많아져야 한발이라도 진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 각 당의 공천제도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먼저 상향식으로 갔고 한나라당도 이를 따라가는 양상이 전개되었고, 최근에는 양당 모두 오픈프라이머리가 정답이라는 식으로 정당 혁신논의를 끌고 가고 있다. 사실 같은 상향식이라도 당원 외에 일반유권자에게도 개방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는 미국의 일부 주에서나 채택하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사례이다. 한국에서 이런 드문 사례가 혁신으로 간주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와 달리 하향식에 대한 공정성을 의심하는 풍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향식은 현역 프리미엄이 압도적으로 높아 정치신인의 접근이 어려워 개혁과는 거리가 먼 결함이 있다. 나아가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정치에만 몰두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결국 상향식이나 하향식 모두 공정성에 있어 확실한 신뢰를 줄 수 없다. 따라서 지역구의 형편에 따라 공정성을 기준으로 선택적으로 상향식과 하향식을 결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당원이 각 정당의 주인으로 자리잡고 있고 정당내에 정치신인 발굴과 훈련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공천제도의 선택과 운영은 비교적 쉬운 일인데 우리의 경우는 현역 의원들이 당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들의 기득권을 다치는 과감하고 공정한 방법을 택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결국 어느정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자제하면서 공익을 추구하고, 이념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과 적절한 소통과 협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치인의 확대는 매우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 | | ▲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비리 의원들을 감싸고 도는 것을 막기위해선 출당조치와 당원권 정지 등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비리의원 체포동의안 표결시 각당이 당론을 정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철도관련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송광호 의원이 2014년 9월 3일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후 여야의원을 만나 사례하고 있다. |
5. 양당 독점체제
매너리즘에 고착된 양당 주도하의 국회의 난맥상을 타개하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는 소수당의 진출이 활성화되어 양당 독점 체제를 견제하는 것이다. 안정적 양당체제의 장점이 분명하고 군소정당의 난립이 국정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험을 보면 과거에 비해 대통령의 권위가 매우 약화되어 버렸고 양당의 경쟁속의 발전요소가 매우 희박해져 소수정당의 자극과 견제가 일정기간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수정당의 진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도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인데, 현 19대 국회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54명, 지역구 국회의원이 246명으로 비례대표의 수가 지역구의 5분의 1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비례대표의 비중을 더 확대하면 소수당의 진출이 더 활발해 질 수 있겠는데, 최근 헌재가 선거구 획정시 인구비례 편차에 대해 2:1이하로 할 것을 결정하면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지역구를 상실할 위기에 처한 의원들이 인구하한선을 최소한으로 조정하여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데, 이러자면 수도권의 선거구가 늘게 되어 국회의원 총수를 늘리거나 비례의석을 줄이는 조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현실에서 기존의 행태에 비추어 양당이 비례의석을 더 늘리는 기득권 내려놓기를 할 것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려워졌고 적어도 비례의원 수를 기존 수준에서는 유지하라는 요구가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
끝으로 국회의원들이 법을 지키는 문화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경쟁은 그 자체로 '공정’을 전제하게 되고 공정은 일정한 규칙과 이 규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신뢰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주류 양당이 공천제도, 의사 결집 등 그 내부의 운영, 각종 공직선거전, 양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운영 등에서 과연 제대로 법이나 민주적 상식에 근거한 규칙을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면 그 반대의 사례는 책 여러권으로도 부족할 정도이다. 입법기관이 상시적인 규칙 위반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때로는 의원들의 생존이 걸린 정당간의 경쟁에서 규칙을 잘 지킬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정치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었고 정당과 국회가 사회일반의 발전 수준에 크게 못 미치더라도 사회발전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통일이 현실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치권의 후진성을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기가 된 것 같다. 현재의 정치권의 상태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 (이 글은 자유경제원 사이트, <현안해부> 게시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