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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
민주주의는 사회의 구성원을 동등하게 인정한다. 따라서 형식논리에서 '천민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천민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그 만큼 민주주의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천민 민주주의는 '천박한 민주주의’ 내지 '값싼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民)이 주인’인 정치제제를 의미한다. 사회구성인인 '민’이 동등한 가치를 갖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의 의사결정 원리는 '다수결’ 즉 '다수의 의견’을 쫓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이처럼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다수의 쪽에 서야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할 수 있다. 따라서 숫자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지지한다고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진리)은 아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태생적 약점’이 내재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변용된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결과가 자신의 입맛에 맞으면 '민주적’이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비민주적’이 된다. 최근 헌법재판소 통진당 해산심판에 대한 사회 일각의 '민주주의 사망’ 주장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통진당 해산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당해산 심판은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서 자격을 갖춘 전문인의 영역이지 숫자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
다수결은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그 자체에는 '자원의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결정된 의제(agenda)를 실행하려면 반드시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은 '자원배분의 문제’를 수반한다.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국가에 대한 환상
“투표함이 우리 국부(國富)를 증가시킬 수는 없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어딘가에 있던 것을 뺏어다가 다른 누군가에 주는 것이다.” 프레데릭 바스티아(Bastiat, 1801~1850)가 일찍이 『법』에서 한 말이다.
국가를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무제한의 국고(國庫)와 무오류의 조언’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국가는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를 지원하려면 다른 누구가의 부담을 증가시켜야 한다. 예컨대 공공지출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민간지출을 줄여야 한다. 이 같은 의사결정은 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 투표결과 고용의 내용이 달라질 뿐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조금 때문에 만들어지는 직업들과 그 직업들의 유용함이 그 보조금 때문에 없어지는 직업들과 그것의 유용함에 비해 더 도덕적이며 더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직업이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 가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어야 한다. 투표함이 '시장의 몫’을 대신 해서는 안 된다.
국가신용 옹호자는 “신용약자에게 대출해줌으로써 그들을 생산적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대신한 정부의 대출업무 참여는 '납세자 돈’으로 감행하는 정부의 모험이다. 만약 '신용 증대’가 아니라 '부채 증대’로 이름 붙였으면 빌리는 쪽과 빌려주는 쪽 모두 신중했을 것이다. 정부 대출 종사자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했을 때 “자신(대출종사자)의 잘못이 아니다”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정부 대출은 민간 대출에 비해 자본과 재원을 낭비할 공산이 크다. '빌려준 돈으로 자본을 지니게 된 사람’은 보이지만 '당초 대출 대상자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때 자본을 쥘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미소금융’ 등 각종 서민대출이 그 사례이다.
불법적 약탈 vs 합법적 약찰
지난 14일 손인춘 의원(광명을)은 '이케아’가 의무휴업 적용을 받도록 유통산업발전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손 의원은 “무늬만 가구전문점인 해외기업 때문에 광명지역의 모든 상권이 다 죽어가고 있다”면서 국내 중소상인들의 보호를 위해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주말이면 이케아 광명점 일대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의 교통대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법 발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가정’해 보자.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 가는 명약관화하다.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대표자로 하여금 법을 만들게 하면 모든 사람들은 '입법’을 통해 혜택을 받으려 할 것이다. 법이 보호, 육성, 장려 등의 명분으로 “누군가의 것을 덜어내 다른 누군가에게 준다면” 입법을 요구하지 않을 집단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추가하지 않고서는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한손으로 무엇인가를 빼앗아 다른 손으로 나눠주어야 한다. 나눠주는 손은 자애롭지만 빼앗는 손은 거칠기 짝이 없다. 그렇게 되면 국고(國庫)는 약탈의 대상이 되고 국가는 “만인이 만인을 착취하는 거대한 허구”로 전락하게 된다.
바스티아는 일찍이 법이나 정치의 도움으로 타인의 재산을 빼앗은 것을 '합법적 약탈’로 명명했다. 합법적 약탈은 다양한 형태로 자행된다. 산업보호·장려금·보조금·누진소득세·무상복지·이윤에 대한 권리·임금권·노동권·생존권·무이자 대출 등이 그 수단이다. 투표함에서 국부가 나온다고 여기면 여지없이 '국가 간섭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연권’으로서의 재산권
'사회, 인격, 재산’은 법 이전에 존재했다. 법이 있기 때문에 재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재산이 있기 때문에 법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소유하는 존재’(proprietors)이다. 인간은 생명의 유지를 위해 일정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자신의 노동의 결과를 스스로의 욕구충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인간은 노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 재산권은 노동자가 노동을 이용해 창조한 가치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의미한다. 재산에 대한 권리는 실정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법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자연권이다. 재산권은 인격과 마찬가지로 신이 내린 축복이다.
재산권은 자연권으로 인간의 법은 재산권의 보호를 그 목적으로 해야 한다. 즉 재산으로부터 법이 생겨난 것이지, 법으로부터 재산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은 재산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폭력을 예방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재산이 아니라 법인 것이다. 이상이 자유주의에 따른 재산권의 해석이다.
반면 재산권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재산권은 법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에 불과하다. 루소(Rousseau, 1712~1778)에 따르면, 재산권은 사회적 제도의 산물이며, 입법자의 발명품이고 법의 창조물이다. 따라서 재산과 노동의 관계에 인위적 수정을 가해 균형을 맞추고 균등하게 하며 조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계주의’는 인간과 재산을 합치고 다시 배열하는 것 등이 입법자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이케아’ 의무휴업 입법발의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케아’가 정치인의 판단에 의해 일정부분 의무휴업을 해야 한다면 영업권을 제한받은 것이다. 영업권은 재산권의 일종이다. 국부가 투표함에서 나온다고 여기면 재산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법이 재산권의 내용을 좌지우지하는 체제하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에게 무한대의 활동무대가 제공된다. 하지만 재산권을 제한하는 사회주의 실험은 이미 그 실패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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