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뉴저지선 9살짜리가 투자자 유치 나서는데 … 한국은 창업교육 0

자유경제원 / 2015-02-13 / 조회: 2,115       중앙일보

뉴저지선 9살짜리가 투자자 유치 나서는데 … 한국은 창업교육 0

[중앙일보] 입력 2015.02.12 00:53 / 수정 2015.02.12 01:58

다시 기업가 정신 <상> 창업하는 보통 사람들
피터 드러커가 기업가 정신 1등으로 꼽은 한국 
지금은 경제 규모 95위인 라트비아보다도 낮다

#1. 젠센 버그먼은 아홉 살이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 유치를 걱정한다. “투자자가 ‘노(No)’라고 하면 아주 속상할 것 같다.” 젠슨이 구상한 사업은 금요일 밤 어린이들이 모여서 놀 수 있는 ‘타이거 키즈 클럽’이다. 젠슨을 비롯한 15명의 어린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이 사업에 대한 투자 설명회도 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한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의 어린이 창업학교 ‘8앤드업’의 풍경이다. 6주 과정에 350달러를 받지만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8앤드업은 충전기가 달린 헬멧(30달러) 같은 어린이가 직접 만든 제품을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도 한다. 샌안토니오에서 여자 어린이를 위한 창업학교 ‘걸스타업 101’을 운영하는 크리스털 글랑차이는 “상상력과 모험 정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어린 나이에 기업가 정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일보다 기업가 정신 부족” 86% 


 #2. 독일 남부의 소도시 암베르크에 있는 지멘스 공장은 불량률이 제로에 가깝다. 생산성은 매년 9%씩 오른다. 많은 한국 기업이 이 회사의 자동화 시스템을 배우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곳이 세계 최고의 공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자동화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직원의 기업가 정신에 있다. 지난해 말엔 펌프 교체로 작업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원들이 교체할 필요가 없는 펌프를 개발하기도 했다. 지멘스의 카를 하인츠 뷔트너 부사장은 “아무도 그에게 그 일을 시키지 않았다”며 “해마다 직원 제안 1만2000여 개가 생산공정에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세계가 기업가 정신으로 재무장하고 뛰고 있다. 반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은 틈)에 빠졌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성장한 한국은 한때 기업가 정신의 표상이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가 “기업가 정신 1등의 나라”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그러나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기업가정신지수(GEDI)에서 한국은 120개국 중 32위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가 세계 95위인 동유럽의 라트비아(27위)보다 낮다. 본지가 지난 6~7일 17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기업가 정신의 크레바스는 확인된다. 과거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약해졌다는 응답은 53.2%에 달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응답도 85.9%에 달했다. 중국보다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38.1%로, 한국이 아직은 우위라는 응답(24.8%)을 앞질렀다. 기업가 정신의 크레바스가 생긴 이유로는 ▶잘못된 평가·보상 시스템(34.9%, 복수 응답) ▶각종 규제(34.4%) ▶교육 시스템(32.4%) ▶반기업 정서(24.7%) 등이 꼽혔다.

자식이 의사·공무원 되길 바라는 한국

 기업가 정신이 후퇴한 것은 “중요하다”고 말만 할 뿐 제대로 가르치고 북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효고(兵庫)현에는 모노쓰쿠리(ものづくり·장인)대학이 있다. 장인 정신을 새로운 시대의 기업가 정신으로 육성해가기 위해서다. 이 지역 중학생은 반드시 모노쓰쿠리 체험관에서 실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삼성그룹의 사내 방송에 출연한 요덴 다이조 모노쓰쿠리대 총장은 “요즘 청소년은 컴퓨터에만 관심이 있어서 뭔가를 만드는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실습을 통해 장인이나 연구자가 되는 길을 체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부모는 위험해도 자기 사업 권해

 그러나 한국의 초등학교 교과과정에는 기업가 정신이나 창업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10개 과목 중에서 기업가 정신 등을 다루는 ‘경제’를 선택한 학생 비율은 2.9%다. 

 중학생 때 사업을 시작한 위자드웍스의 표철민(30) 대표는 “어려서부터 종이 접기든, 모형 비행기 만들기든 새로운 걸 만드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부모는 자식이 의사·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하지만 중국 부모는 위험이 따르더라도 자기 사업을 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제2의 알리바바를 꿈꾸는 중국 창업 열풍의 근간에 창업을 장려하는 가정교육이 있다는 얘기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도전이 우대받고 기업가 정신이 칭찬받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돼야 저성장의 크레바스를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뉴욕·런던=이상렬·고정애 특파원, 김영훈·함종선·손해용·김현예·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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