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과 같이 보편적 무상복지 정책들이 시행초기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침체로 세수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경기회복의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근혜정부가 복지정책을 유지하려면 재정적자를 감수하든지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뒤늦게 보편적 복지의 축소가 쟁점이 되는가 하면,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과 이건희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 구본무 LG회장 등 부유층에 대한 증세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어느 경우에나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표만 얻기에 급급하여 복지확대 정책을 경쟁적으로 밀어붙인 여야의 자업자득이다. 우리사회는 복지의 방식과 범위에 대한 진지한 논의, 시행속도나 재원조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도 않았다. 개인의 복지가 반드시 공적 사회복지 지출에만 의존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보편적이 아닌 선택적 복지에 치중할 수도 있다. 복지의 범위와 수준을 소득수준에 연계시킬 수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논의되는 사회복지는 20세기 전반에 도입된 유럽식 공적,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뜻한다. 독일과 영국의 사회복지 정책은 급진 사회주의의 팽창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도입됐다. 사회보험적 성격의 공공정책이었다. 이런 사회복지는 확대지향적이 되기 쉽고, 되돌리기나 축소하려는 시도는 늘 커다란 저항과 정치적 갈등을 불러왔다. 우리사회에서도 보편적 복지를 더욱 확대해야 하며,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가 불가피하고, 증세는 부유층과 기업에 한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여전히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양극화론, 1대 99% 계층화, 부유세 필요론과 같이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주장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 | | ▲ 장대홍 한림대 명예교수(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해 10월 22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금융분야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사회복지 확대론자들은 우리 사회의 공적 사회비용지출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공적 사회복지가 복지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공동구매 내지 사회적 투자이며,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스웨덴과 같이 사회복지가 잘된 북구 국가들이 높은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화합을 누린다고 강조한다. 복지에 인색한 미국에서 사회적 갈등이 극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모두 피상적 관찰이다. 자의적인 통계 분석에서 나온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이론적으로 분명하지도 않고, 실증적으로 관찰되는 정(正)의 관계도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상관관계를 보일 뿐이다. 역으로 경제성장이 잘된 국가가 사회복지의 비중을 늘릴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점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포함한 유럽의 선진경제가 사회복지의 확대 이전에 이미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사회복지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국가 간 통계분석의 결과도 뚜렷한 인과관계를 보여주지 못할 뿐 아니라, 상관관계도 약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미국의 사회복지 수준이 낮아 사회갈등이 심하다는 주장도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미국은 자립정신을 중시하는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 비해, 공적 사회지출은 작지만 민간부문의 자발적 사회지출은 훨씬 높다.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 정권이 주도하에 급증한 공적 사회복지지출이 민간부문의 비중을 줄였지만, 이 둘을 합하면 미국의 사회복지지출은 스웨덴에 가까운 수준에 이른다. 반면 복지모범국으로 인정되는 스웨덴은 과잉복지에 따른 사회적 침체와 경기후퇴를 겪은 후, 사회 복지지출의 비중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 동질성이 크고, 비교적 작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를 미국이나 중국의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무리다. 이처럼 국가 간의 통계수치를 단순히 비교해서는 사회복지와 사회경제적 상황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 사례는 복지확대의 후유증이나 부작용을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남부유럽국가들, 특히 그리스와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소득수준, 복지수준이 현저히 낮았다. 이 두 나라의 복지지출은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확대되어 5년 뒤에는 OECD 평균수준을 따라잡았다. 남유럽국가들은 모두 스웨덴에 근접하는 높은 수준의 복지지출 비중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에서 본격적인 복지확대가 시작된 90년대에 이 두 국가의 복지수준은 현재의 한국과 비슷했다. 소득수준은 OECD 평균치와 대비할 때 현재의 한국보다 약간 낮은 정도였으나 이후 정체되거나 줄어들고 있다.
남유럽국가들은 취약한 산업기반, 심한 대기업한 규제, 강성노조의 영향 때문에 경기변동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졌다. 대중인기영합적인 사회복지와 공공부문의 확대정책을 추구해왔다. 이 두 가지 사정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회복지의 확대자체가 공공부문의 확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정치적 안정을 구실로 공무원 수를 늘리고 과도한 복지혜택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으로 늘어난 사회적 고정비용이 세금부담과 국가채무의 증대, 지하경제의 번창, 재정적자 악화,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라는 악순환을 만들었고, 향후 경제성장에 큰 걸림돌이다. 국가부도상황에 몰린 이들 국가에게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과 유럽중앙은행의 구제금융이 주어졌지만, 부과된 긴축정책 때문에 경기침체와 실업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과 저항은 엄청난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혼란으로 이어져 절실한 공공부문의 개혁과 복지감축, 경제성장을 이루기가 지극히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이런 사실은 경제적 여력이 약한 사회가 정치적 목적으로 급속한 사회복지의 확대를 추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재앙을 경고해 준다. 복지확대가 사회적 고정비용을 증가시켜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스스로 교정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커다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인종문제이다. 최근 수년간 미국에서 연이어 발생한 흑인 범죄피의자 사망사건들은 해묵은 흑백갈등의 치부를 다시 드러내었고, 폭동으로까지 번졌다. 많은 사람들과 주류 언론매체들은 이 문제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로 인식하였고, 오바마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자들도 이를 60년대의 루터 킹 목사의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s)의 경우와 같은 성격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과잉복지가 빚어낸 비극이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남북전쟁과 노예해방 이후에도 계속되다가, 60년대에 벌어진 민권운동에 힘입어 극적으로 전환되었다. 민권운동은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고, 존슨대통령이 주도한 인종차별 철폐와 빈곤퇴치 정책들로 이어져 인종적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정치적, 제도적, 실질적 장벽들을 차례로 제거하였다. 존슨은 민권법(Civil Rights Act, 1964, 1968), 투표권보장법(Voting Rights Act, 1965)과 같은 보편적인 정치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회복지의 범위와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법안이나 정책들을 도입하였다.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의 기치아래, 고등교육활성화법(Higher Education Act, 1965), 푸드스탬프법(1964), 매디케어와 메디케이드법(1965), 경제적기회보장법(Economic Opportunity Act)과 같은 사회보장성 입법이 이뤄졌다. 지역활성화정책, 미혼모(未婚母) 경제적 지원정책과 같은 빈곤퇴치 정책, 소수인종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Policy)을 통해 대학입학과 공무원 채용에서 소수인종을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덕택으로 흑인의 신분향상 기회, 흑인중산층의 증가가 이루어졌고, 단기적으로 경제활성화, 소득불평등의 완화가 이어졌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거나 강화된 이들 법안과 정책들은 소수인종에 대한 제도적 차별과 정치적 장애를 제거하였고, 특히 흑인들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강화시켜 주었다. 불과 40여년 전에 미미한 수준에 그쳤던 흑인 정치인의 비중은 크게 확대되었다. 이전 기간 전체에 비해 6배가 넘는 흑인정치인 선출, 다수의 상하원의원, 주지사가 선출된 데 이어 정부각료, 연방대법원 판사에 이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흑인계층의 정치적 영향력은 지방정부에서도 크게 증대되었다. 흑인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대도시에서는 막강한 수준이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따른 경제적 지원의 최대 수혜계층도 흑인인데, 인구비중 13%인 흑인 계층이 전체 수혜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불행히도 흑인들의 사회, 경제적 처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애널리스트이자 평론가인 제이슨 라일리(Jason Riley)는 흑인의 빈곤율, 실업률, 범죄율, 고등학교 졸업포기율, 주택미보유 가구비율은 모두 전체 인구, 다른 인종계층, 심지어 신규 흑인이민 계층의 경우에 비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4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흑인 정치지도자들이 이를 인종차별, 흑인에게 불리한 사법제도, 학력평가 방식, 교육비 지원부족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리버럴 성향의 미디어나 일부 여론도 이에 동조한다. 최근 퍼거슨시에서 절도피의자인 흑인청소년이 백인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뉴욕시에서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숨진 흑인 피의자 사건으로 흑인사회에서 터진 항의시위와 폭동, 전국적으로 번진 동조시위는 그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흑인이기도 한 라일리는 이런 인식을 거부한다. 그는 외견상 인종갈등, 정치적 갈등으로 보이는 이런 문제들이 흑인사회에 만연한 빈곤과 실업, 가정파괴라는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 배경에는 지난 40여년간 그들의 문제를 사회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경쟁력을 포기하는 ‘흑인문화’가 형성된 사실이 있다고 했다. 흑인계층에 대한 과잉 정치적 배려, 과잉복지가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그는 70년대 이전에 흑인 양부모(兩父母) 가정의 비중은 백인가정보다 높은 7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미혼모(未婚母)가정의 비율이 70%로 역전되는 가정파괴가 실현되었다고 보도했다. 흑인지역의 공립학교가 쉬운 교과목 채택, 느슨한 학력평가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주목했다. 미국사회는 흑인계층을 일종의 원죄의식과 함께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로 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 사회적 복지확대로 치유하려는 생각은 그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복지비용의 부담으로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사상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오바마 민주당 정권이 주도한 복지지출 증대가 그 중요한 요인이었다. 지방정부들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고, 복지축소와 증세문제가 주요 선거쟁점이자 정치적 갈등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사례에서 우리사회의 복지확대 문제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남유럽국가의 사회혼란과 미국 흑인사회의 피폐가 전적으로 공적 사회복지의 탓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이나 전통이 다른 국가의 경우가 우리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생각도 순진한 발상일 터이다. 급속한 사회복지나 과잉복지가 불러올 수 있는 갈등이나 재앙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명예교수(금융경제학)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