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박정희 `한강의 기적` 기초 다진 이승만 대통령

자유경제원 / 2015-03-25 / 조회: 2,437       미디어펜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이승만 대통령이 경제에 무지했다는 오해

(1) 우남 이승만이야말로 경제대통령이었다

지금 2015년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 박정희 대통령이 우남 이승만 보다 널리 알려진 유일한 이유를 꼽자면, 경제발전 리더십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우남 이승만이 경제에 무지했다는 오해와도 연결된다. 그렇다면 우남은 진짜로 경제에 무지했을까?

아래는 1953년 12월 10일, 이승만 대통령이 덜레스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대목이다.

“브라운슨 씨는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5억1천5백만 달러가 배정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 도쿄, 서울에 수많은 직원을 고용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돈이 듭니다. 하지만 가장 긴요한 비료, 시멘트, 발전소 등 공장은 하나도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프로젝트 중 일부라도 완성되어 한국 경제를 도왔다면 경제 상황이 이렇게 나쁘진 않을 것입니다. 일본 등지에서 비료를 수입하기 위해 매년 2천만 달러 이상의 돈이 한국에서 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일본이나 다른 비료 수출국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한국 경제를 재건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됩니까?”

“이제까지 미국이 준 기금은 의도된 목적을 위해 전혀 쓰이지 않고 낭비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돈은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비재 구입을 위해 지불되어 한국의 산업 재건이 아닌 일본 경제 재건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경제에 필수적인 공장은 하나도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미국경제협력국과 운크라 인건비는 때로는 지출의 16%에 달하고 때로는 9%에 달합니다.”

미국은 한국에 투입한 원조자금으로 한국이 국내에서 필요한 소비재를 수입하도록 몰고 갔다. 일본을 생산기지로 삼고, 한국을 수입 소비기지로 삼는다가 미국의 동북아 경제부흥 복안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국내에 생산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으로부터 비료를 수입하는 데 들어가는 달러도 아까워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보유 달러를 들여 철강 공장을 짓고, 이어 비료공장 유리공장 시멘트 공장을 건설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연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석탄을 채굴했고, 채굴한 석탄 수송을 위해 강원도를 잇는 함백선, 영월선 열차를 개통했다. 원자력 개발을 시작한 것도 이승만 시절의 얘기다.

  
▲ 1899년 대역죄(大逆罪)로 한성감옥에 수감된 이승만은 1904년 '독립정신'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집필했다. 110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외교전략과 국가정신이라는 면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는 당시 얼마나 못 살았을까. 1941년은 일제 강점기 중 가장 경제가 좋았던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따져서 1941년의 수준으로 회복된 것은 26년이 지난 1968년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35달러. 1940년대 후반의 남한은 지구상 최빈국 중의 하나였다. 우남 이승만은 최빈국 나라를 이끌던 지도자였다.

이승만 시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시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뛰어넘는 비전을 지니고, 감당하기 버거웠던 부국강병의 기초를 놓았다. 이 토대를 발판으로 박정희 정부는 가열 차게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할 수 있었다.


(2) 무역대국을 꿈꾸었던 우남 이승만

1957년 9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어록이다.

“현재 국산품을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의 번영은 이러한 수출품을 증대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 노력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든 3년간의 동족상잔 6.25 전쟁이 끝난 지 4년 만에, 우리나라는 다시금 수출을 시작했다. 자원빈국이며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던 시절의 얘기다.

  
▲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건물 짓기에 수고한 목수들이었다. 

아래는 1958년 5월 31일, 이승만 대통령의 담화 중 일부다.

“상공업을 발전시켜서 우리 물산을 가지고 살며 또 그것을 외국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이 다 잘 살도록 만들어야 될 것이니, 그러한 결심을 가지고하면 영광스러운 역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우남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남을 언급하면서 항상 꺼내는 말이 있다. 외교는 잘했지만 경제는 무능했다는 비판 말이다. 하지만 세간의 오해와 달리 우남은 상업과 공업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수출을 독려하면서 무역입국의 중요성 또한 강조했다. 아래 글은 우남 이승만이 아이젠하워 정부 시절, 미 의회에서 연설했던 영어 연설문 중 일부다.

우리 한국은 특히 인구 증가율이 높기 때문에(연평균 증가율이 1.5%~2%) 우리 국민소득은 틀림없이 이에 비례하여 증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토지의 비율이 불변인 상황에서는 노동요소를 더 높인다 해도 총생산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설사 우리가 기계화된 농기구, 비료 및 농업용 살충제 또는 배수로, 관개수로, 농업용 도로 및 기타 사회간접자본시설 등의 고정자본시설을 통한 혁명적인 기술변화 등과 같은 광범위한 <직접자본투입방식>을 채용한다 해도 부족한 토지에 풍부한 노동력의 완전한 대체는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화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데, 이는 자본기금이 엄청나게 필요한 부분입니다. 만약 적절한 속도로 산업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한국의 인구는 장래에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국의 개발계획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자본의 부족입니다.

- 아이젠하워 정부 시절,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관계 등에 관하여 남긴 영어 연설’ 중 -

영어 연설의 요지는, “미국의 원조기금이 축소되면서 경제의 생산부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본이 줄어들어 산업화의 발전 속도가 주춤해졌다”는 말이다. 우남은 해당 영어 연설을 통해, 아이젠하워 정부가 한미관계를 고려하여 미 의회에 증액 요청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하고 있다. 어떻게든 자본을 끌어와 경제개발을 하려 했던 경제대통령 이승만의 고뇌가 느껴진다.


(3) 예언자 이승만

김용식 전 외무장관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1955년 진해 휴양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나눴던 대화 한 토막을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자네, 내가 무엇을 기도하는 줄 아는가? 나는 늘 하나님께 우리 민족도 다른 민족들 못지않게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올 때에, 나로 하여금 알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네.”

“각하, 언제쯤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겠습니까?”

“한 30년 걸릴 걸세. 그 때까지는 지금처럼 바쁘게 지내야 할 걸세.”

김용식 전 외무장관은 진해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나누었던 말을 1988년 올림픽 개막식을 관람하며 떠올렸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진해 휴양지에서 이승만이 우리나라의 발전상에 대해 예언을 한지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8대 무역대국이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초대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제헌헌법에서 서구식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명문화하고, 재산권보호 등 시장경제발전의 토대를 쌓았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 공업화에 투자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는 데 밑거름역할을 했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3월 26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주최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탄신 140주년 기념 청년토론회 <청년, 이승만과 함께 자유주의의 날개를 달다>에서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가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 자격으로 발표한 발제문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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