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인구가 많은 나라도, 영토가 넓은 나라도 아니다. 이런 조건들은 생존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21세기 국가의 생존은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전적으로 그 나라의 민도(民度)에 달려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민주주의로 번역되고 있는 'democracy’는 그리스적 어원을 살펴보면, 한 지역의 모든 '시민(demos)’의 '지배(kratos)’를 의미하므로 '민주정(民主政)’으로 부르는 것이 원래 옳다. 그런데 유가(儒家)의 성인통치체제의 취약점이 통치의 주체인 군주가 성군(聖君)이 아니라 폭군(暴君)이나 우군(愚君)일 가능성에 있듯이,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통치의 주체인 국민이 공민(公民)이 아니라 폭민(暴民)이거나 우민(愚民)일 가능성에 있다.
보편민주주의 자체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범위(보편)와 방식(다수결)을 규정할 뿐이므로, 히틀러와 같은 선동가의 회유와 협박에 의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도 바꿀 수 없는 헌법의 가치를 명문화하였다. 그것이 바로 통진당 해산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이다. 즉 민주주의는 시민적 자유의 핵심인 자유주의와 결합되어야 하며, 이 결합은 다수의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우중이나 폭민의, 한 마디로 천민민주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을 하자마자 보편민주주의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군주정이었던 조선이 망하고 일제의 식민통치가 끝나고 곧바로 도입된 보편민주주의는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해 그 온전한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특히 건국 2년째에 일어난 6・25전쟁은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대략 자유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인프라를 요구한다: 다른 한편 이승만 전 대통령이 토지개혁을 통해 자영농의 기초를 마련하고, 부족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교육투자는 자유민주주의의 인프라 구축에 기여한 그의 공적이다. 4・19 학생혁명의 주체는 이승만의 교육투자로 인해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배운 신세대였다. 당시 권위주의 통치가 가능했던 배경은 남북 간에 계속되었던 체제경쟁과 함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던 통치자와 국민의 의지’가 시대의 아젠다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그가 육성했던 중산층의 저항이었던 부마(釜馬)사태의 후과로 시해(弑害)됨으로써 권력으로부터 물러나게 되었다. 늦어도 1980년대 초에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잘 먹고 사는 것과 함께 자유롭게 말하며 살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꽃이 피기를 기원하고 노력하고 희생한 세력의 공헌이 컸음을 인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압축적 발전 역사는 그 이중성에 대한 직시(直視) 없이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가 된 이후 한국에서 권력도 민주화 되었다. 경찰, 군민정보기관이 시민적 자유를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는 사실상 사라졌다. 몇몇 철딱서니 없는 검사와 판사의 막말이 언론에 오르내리지만, 그것은 대부분 개인의 부족한 자질이 그들의 권한과 결부되어 일어나는 일탈이다. 차라리 취한이 경찰 지구대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시위대가 죽창과 새총으로 무장하여 경찰기동대를 공격하는 것이 더 일반화된 상황이다. 권력기관 내의 일사불란한 네트워크와 상명하복도 합리화되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경우처럼 사실을 날조하여 상관의 옷을 벗기고 야당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럴 경우 여론과 언론의 집중적 질타를 받게 되어 이들의 정치적・사회적 생존은 크게 훼손된다. 여성 아나운서를 모욕하였다고 하여, 나중에 무죄로 판단되었지만, 국회의원직을 물러나야만 했던 강용석 전의원의 경우와, 대리기사에게 폭언을 하고 세월호 유가족의 폭행을 방조한 김현 의원의 경우가 이점을 말해준다. 즉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정당, 매스미디어와 광고회사에 의한 세뇌 대상으로서 객체이기도 하지만, 1인1표를 통한 권력창출의 주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민도가 충분히 높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세뇌와 조작대상으로서 정치・경제의 주체라는 이중적 존재일 가능성이 극히 높다. 과거 권력층은 개인으로서 권력을 남용하였지만, 이제 대중들은 집중과 집단화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대중은 권력을 지향하는 개인과 기관의 조작과 선동의 대상이다. 그 결과는 선동과 괴담, 음모론과 거짓의 난무이며, 대중은 집단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권력을 일부 '특권층’, '권력층’이 갖고 있다고 착각한다. 특히 대중을 '권력으로부터 탄압받고 착취 받는 약자집단’이라고 가정하는 한국의 좌파는 각종 괴담과 거짓을 마구 뿌려대고 있다. 혹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시절의 각종 북풍을 예를 들면서 우파 역시 거짓을 여론조작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전국적인 규모에서 괴담비지니스를 줄기차게 시도해 온 것은 명백하게 한국의 좌파였다. 김대업, 천안함, 광우병, 의료민영화, 희망버스 등등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중이 이런 선동 스토리를 믿고 궐기하는 것을 이른바 '집단지성’의 발로라고 부추긴다. 실제로 이 선동의 대상인 대중은 개별적으로는 권력이나 돈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동자들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히틀러의 나치당의 의미가 '민족사회주의당’이고 히틀러가 집권 후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회주의 보다는 독일민족주의와 전쟁에 몰두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파보다 좌파가 대중을 권력창출의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대중사회에서 대중이 권력창출의 소스이자 동시에 조작의 대상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상황은 매우 흡사하다. 한국의 좌파는 정권을 잡거나 사회의 분위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몇몇 공격목표를 선정한다. 이후 대중이 바로 이 공격목표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면서 선동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마치 대통령이 이 참사의 직접적 책임자인 것처럼 여론을 몰고 갔다. 그리고 언론과 자칭 전문가들은 수많은 거짓을 유포하였다. 다이빙 벨 보도가 그 대표적인 예이며, 현재 툭하면 성행하는 괴담비지니스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선동이 모두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로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사상의 자유에는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에, 형식적으로 이런 괴담을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하는 데에 반론을 제기할 방법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들은 사상의 자유가 원래 평등한 대화상황이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즉 괴담과 거짓, 선동과 왜곡에 의해 피해 받는 자가 언론의 횡포에 대항할 길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 즉 현대사회에서 언론과 시민 간의 관계가 결코 대등하지 않다는 점을 보려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언론들과 정부 간의 관계도 대등하지 않다. 언론이 훨씬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남용하는 자들은 이런 자유를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당연시 한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만 되면 나오는 대형건설공약은 사실상 세금으로 표를 사는 매표(買票)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돈을 주거나 밥을 사는 것이 엄격히 통제되지만, 이처럼 대통령・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뿌리는 대형건설공약과 복지공약은 훨씬 후유증이 심한 뇌물임에도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2013년 5월에 이 사건이 일어나자 한국의 전 언론은 확인된 사실이건 확인되지 않았건 어마어마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윤 전 대변인의 집 문에 고성능 마이크를 장착하여 집안 내부의 소리를 녹음하는 일까지도 일어났다. 그러나 사건 발생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검찰은 아직도 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았으며,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 언론의 행태는 점점 더 과격해져 갔다.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을 YTN의 한 사진기자가 캡션조작으로 해고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문창극 전 총리후보에 대하여 KBS는 영상발췌와 캡션을 이용하여 친일파 뒤집어씌우기를 했다. 세월호 참사에 이르러는 언론의 보도 태도와 내용은 그 자체가 폭력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른바 청와대 십상시(十常侍) 의혹 보도에서는 드디어 언론이 '사실과 거짓’의 대결에서 공개적으로 거짓의 편을 들기 시작하였다. 즉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것이 주류언론의 보도태도였다. 그 결과 현재 한국에서 언론은 '언론의 자유’라는 깃발을 달고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권력기관이나 다름없다. 언론의 이런 행태에 깔린 정서 역시 도덕적 위세이다: 정의로운 사실 왜곡과 선동! 이런 현상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거짓과 정치(독일 쥐트도이췌차이퉁 3.14일 기사제목)’의 결합, 음모론과 괴담의 난무와 일치하지만, 한국의 경우 그 정도가 극히 심해졌다. 독일에서는 이런 언론을 '거짓말언론(Lügenpresse)’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그런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른다. 진정한 민주화의 길은 정치의 주체인 국민의 수준에 달려있으며, 이 길은 아직 전인미답(前人未踏)이다. /홍성기 아주대 기초교육대학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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