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증세하건 안 하건 복지만 외치면 경제 무너진다"

자유경제원 / 2015-04-06 / 조회: 2,410       문화일보

재정학 권위자 하야시 마사히사 日 와세다大 명예교수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합니까(Who pay for that)?”

그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 말을 열 번쯤 반복했다. 복지 확대와 증세 논란, 인구 고령화사회에 대한 대비 등에 관한 질문마다 이렇게 반문했다. 얻어지는 편익(benefit)이 있으면 지불해야 할 비용(cost)도 있다는 의미다. 그 대꾸만 들어봐도 원로 경제학자의 원칙적인 인식이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하야시 마사히사(林正壽·73·재정학)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명예교수다.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고, 논평마다 직선적이다. 한·일 양국의 경제 진단이나 법인세 인상처럼 논란과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현안에 대해 ‘팩트(사실)’에 근거한 평가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국민경제 자원의 최적배분을 추구하는 재정학(財政學·public finance) 분야의 권위자로, 일본 내 ‘1세대 재정학자’라는 명성이 묻어났다.

그는 증세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3월 5일 내한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자유경제원에서 열린 ‘일본 법인세 정책의 동향-한국에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 “법인세 인하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는데, 그런 이유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토론회가 끝난 뒤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공부한 그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우선 일본 원로 경제학자의 일본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변의 우려 제기에도 불구하고 ‘엔저’(엔화가치 하락)를 앞세운 경제정책 드라이브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고, 이는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파장을 낳고 있지 않는가.

―최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가 주식시장을 살렸다는 평가가 많은데, 어떻게 보는가.

“일본은 지난 20여 년간 지독한 스태그네이션(stagnation·불황)을 겪었다.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켜 과거의 발전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 엔저 정책을 결정했다. 그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이고, 금융·산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많이 지지하는 편이다. 모두 장기불황에 큰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한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뒀고, 일본 경제는 뒤처졌다. 아베노믹스는 계속될 것이다.”

―엔저 정책이 당분간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것인가.

“엔저가 지속되면 수입품을 사야 하는 소비자들로서는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게 걱정일 수 있다. 하지만 얻는 것도 있다고 균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 덕분에 수출제품의 가격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되고, 더 많은 제품을 해외에 팔 수 있다. 그로 인해 외국 기업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실 그건 일본 기업들이 지난 20년간 엔고로 인해 겪었던 고통이다. 엔화가치가 너무 높아 일본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게 아베 내각이 엔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아베노믹스를 지지하는 편인 것 같다.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 대해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막대한 재정적자 위험이 들어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엔저만이 일본 경제가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그게 중요한 시점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4월 1일로 2015년 회계연도가 시작되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주요 언론들은 지난해 4월 소비세율 인상이 경제에 미친 타격이 컸지만 유가 하락과 대기업 임금 인상,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에 힘입어 경기여건이 호전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가계소비 부진이 기업 생산활동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출범 2년이 넘은 아베노믹스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경제 전망을 놓고 안팎의 시각차가 큰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이 엔화가치를 더 떨어뜨릴 경우 하반기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시작됐다. 엔저로 인해 수입제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일부에서는 통화량을 걱정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경기 과열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경기가 너무 식었기 때문이다. 투자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아베 내각이 추진 중인 구조개혁도 잘될 것이라고 보는가.

“긍정적으로 본다.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성장하면 고용이 늘 것이다. 아베 내각이 들어선 이후 최근 장기임금률(wage rate·일정 시간이나 양의 노동에 대해 지급된 임금)이 올라갔다. 지난 20년간 없었던 일이다. 대기업들이 흑자로 돌아서면 근로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는 낙수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그게 일본 정부의 구조개혁 방향이고, 장기적으로 성공할 것으로 본다. 그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기업은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그게 누군가에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겠지만, 국가 경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다.”

―아베노믹스의 리스크(위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에 신중을 기한다. 초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바람에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는 중앙은행이 정부 재정이 적자가 되는 수준까지 화폐를 찍어내면 안 된다는 점을 일러주는 강력한 교훈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일본 중앙은행은 너무 많이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 신규 화폐 발행이 많은 것이다. 세수를 늘리기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더 의존하고 있다. 현재 물가 상승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위험스러운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통제력이다. 그게 리스크 중 하나다.”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재정차입에 크게 의존해 왔다. 빚을 내서 예산을 지출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의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00%가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 그리스도 그 정도는 아니다. 이자율은 매우 낮지만, 재정의 대부분을 이자를 갚는 데 써버려 다른 부문에 돈을 쓸 여력이 없다. 이게 또 하나의 리스크다. 균형재정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 부채를 줄이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들여야 한다. 아베 내각은 법인세 인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무엇으로 법인세 인하로 인한 세수 부족을 보충할 것이냐, 소비세를 포함한 다른 세금의 세율을 얼마나 더 올려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많은 사람이 소비세(2014년 4월 8%로 인상)의 추가 인상에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누구나 똑같이 무엇을 사든 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균형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 경제에는 상대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호기였다. 일본 경제학자도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의 성장을 인정할까.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장기침체 시기에 성장했다. 일본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어버렸고,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경쟁력을 키워 시장지배력을 강화했다.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한국의 TV업체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주가를 올리면서 소니와 같은 일본 기업들은 완전히 무너졌다.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에 기술적인 면에서 추격당한 측면이 있고, 엔화가치가 너무 높아 일본 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린 측면도 있다. 한때 1달러가 70엔대였던 시절이 있었다. 아베 정부가 엔저 정책을 펴면서 지금은 1달러에 120엔대까지 간다. 그 덕분에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에 대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됐다. 물론 엔화가 싸지는 것이 한국 기업들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 경제는 앞으로 더욱 일본 경제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가 그렇게 성장했지만 최근에는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일본 국민들은 그러한 장기침체가 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물가가 떨어지고, 기업들은 제품을 생산하려 하지 않고, 소비가 위축되는 경기침체가 지속돼 아베 내각이 과감한 통화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통화 공급을 늘려 시중에 막대한 자금을 푼 것이다. 엔화가치가 떨어지고, 해외로 수출되는 일본 제품들의 가격이 한국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졌다. 그러한 정책 덕분에 일본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 침체가 일본 국민들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인구 고령화 문제도 일본이 먼저 겪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일본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결혼한 사람들도 아이를 낳아 키우려 하지 않는다. 기대수명은 1960∼1970년대 70대였으나 지금은 85∼86세로 높아졌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은 연금과 정부보조금 등으로 살아간다.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다. 현재는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3∼24% 정도인데, 앞으로 20년 내에 40%나 될 것이다. 1960년대에는 5%에 불과했다. 마치 핵폭탄이 터져 버섯구름이 피어나듯이 불어난 것이다. 그게 여러 가지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많은 고령자가 65세를 넘어 70대 중반까지 일해야 한다. 모자란 인력을 채우기 위해 해외 인력도 들여와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 아이를 낳게 하는 캠페인도 벌여야 할 것이다.”

―고령화사회의 젊은 층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홀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가 자신들의 미래 삶을 보장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유명한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생각난다. 지금 일본에서는 추운 겨울에 한여름 동안 빈둥거렸던 베짱이(젊은 층)가 배고파서 개미의 집 앞에서 도와달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베짱이들이 개미들에게 ‘여름 동안 저장해 놓은 곡식은 내 거야’라고 외치고 있다. 일하려 하지 않고 생활보호대상자 신청을 해 보조금을 받아 살고 있는 젊은 세대, 한여름 동안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런데도 부끄러움 없이 보조금을 달라는 그들을 도와줘야 하는가. 모럴해저드가 일본 사회의 핫 이슈가 되고 있다. 나는 우화 속 개미처럼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여력이 없다. 장기불황을 겪으며 단기 임시직이 늘어나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워킹푸어(working poor)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적인 전제인데, 일본의 재정 상태는 매우 취약하다. 재정 예산의 50%가 세수가 아닌 부채다. 차입된 돈은 미래에 갚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도 경험하게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복지 확대는 늘 재정 문제, 증세논쟁을 수반한다.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소득세 인상과 법인세 인하 문제를 놓고 사회적 공방이 치열했다.

―일본 정부는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세수 부족을 메우고 복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하려는 이유는 이를 통해 기업들은 더 성장해 더 많은 이득을 내고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낼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근로자들의 소득이 올라가고, 세금도 더 많이 내면서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게 법인세 인하의 논리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법인세를 내려준 만큼 국내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은 법인세 인하로 세수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더 많은 일자리와 투자로 법인세 인하 효과가 플러스로 나타날 것이다.”

1980년과 2013년 세계 각국의 법인세율 변화를 보면 일본은 43.3%에서 25.5%로 내렸다. 미국(46%→33%), 프랑스(50%→33.3%), 중국(33%→25%), 영국(52%→23%), 싱가포르(25.5%→17%), 독일(56%→15%) 등도 기업 조세 부담을 줄이는 추세다. 하야시 교수는 “일본에서도 야당 등이 법인세를 인하한 결과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늘었을 뿐 복지 향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며 “그러나 법인세 인하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법인세 인상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하는 데 대해 대기업들에 특혜를 준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체 조세 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15%로 일본(12%)보다 높다”면서 “GDP 대비 조세 부담 비중도 2012년 기준 일본이 29%, 한국이 25% 수준으로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치인 33%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을 비롯해 일각에서는 한국의 복지 수준이 OECD 평균에 못 미치기 때문에 복지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에서는 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이 크게 증가했다.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비싼 비용이 들어간다. 더 많은 복지를 위해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그게 문제다. 한국 국민들도 복지 확대를 원한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의 재정적자가 늘어날 뿐이다. 그 이자 상환의 부담은 고스란히 조세 부담 압박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가계 소득을 높이는 방편으로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은 투자를 위한 자본이다. 일본 기업들은 국내가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에 투자하고 있다. 반면 영국에서는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매우 활발하고 높다. 일본은 거의 없다. 한국은 다소 나은 편이다. 사내유보금이 많아도 국내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해외에 투자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국내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한 배경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평소 “복지만 외치다가는 경제가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해 왔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과 복지를 위해 정부가 견지해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단순히 복지 확대를 원한다고 해서 경제를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강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만이 복지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누구나 복지 혜택이 확대되고 지속 가능하기를 바랄 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하느냐다. 누가 돈을 내야 하느냐, 더 많은 복지를 원한다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세금을 올리는 것은 통상적으로 경제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균형적인 생각을 갖고 선택해야 한다. 1970년대에 미국 뉴욕시가 너무 많은 복지예산 때문에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금을 올렸는데, 부유층과 기업들이 다른 주로 떠나 버렸다. 그게 자유시장경제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세금을 걷지 않고 복지 혜택을 늘리는 데 들어간 돈은 우리가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이다. 편익과 비용이 서로 맞아야 한다. 경제 발전과 복지 확대는 함께 가야 하는 문제다. 경제 발전이 이뤄져야 복지가 유지될 수 있다. 복지만 증대된다면 경제는 취약해지고 악화될 것이다. 그건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경제가 일정 수준 성장하고, 그 추세 내에서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가 선순환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 경제는 이중 구조로 돼 있다. 대기업들은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하다. 오래전 일본 기업들도 똑같은 이중 구조였다. 단단한 경쟁력을 가진 재벌이 있는 반면, 매우 작은 규모의 영세한 중소기업이 많았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이후 점령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일본의 재벌들을 해체해 버렸다. 귀족과 황족에 대한 특권을 모조리 박탈했다. 한국이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의 개혁이 진행됐다. 거의 혁명과 같았다. 일본에도 현재 미쓰비시(三菱)처럼 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이 존재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이 벌어지는 한국의 재벌과는 경영방식이나 기업문화가 상당히 다르다. 재벌이 무조건 해체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경쟁력 있는 기업집단이라면 환영한다. 그러나 독점적 사업 운영을 하면서 중소기업들을 억누르고 있는 대기업은 국가 전체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국가 경제 전체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인터뷰 = 오승훈 부장대우(경제산업부) osh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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