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별칭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다. 이미 형성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선두주자를 따라잡는 방식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왔다. 후발자가 추격할 때, 선두주자는 놀고 있지 않는다. 후발주자의 추격이 그 만큼 쉽지 않은 이유다. 수많은 기업들도 추격에 나섰지만 삼성전자만큼 성공한 회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추격의 비밀은 당연히 '속도’다. 이병철과 이건희 회장은 모두 속도의 광신도들이었다. 속도경영은 삼성의 DNA였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속도경영의 신화는 1983년에 시작됐다.
1. 속도경영의 진수
1983년 어느 날. 이병철 선대회장은 삼성석유화학 한 임원을 호출했다. “자네가 기흥반도체 건설본부장을 맡아주게, 6개월 시간을 줄 테니 반도체 공장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무리한 지시였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는 선진국에서도 1년6개월은 족히 걸린다. 더군다나 삼성은 반도체공장을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무모한 지시를 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83년은 64K D램이 없어서 못 팔 때였다. 이왕 반도체시장에 진출하기로 한 만큼 “호황이 끝나기 전에 진입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무자들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병철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모든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지금의 용어를 빌리면 일종의 '동기화(同期化) 전략’인 것이다. 지금은 스마트 기기의 보급으로 '동기화’란 개념이 쉽게 와 닿지만 당시는 1983년이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었다. 통상적으로 건설공사는 릴레이처럼 진행된다. 한 공정이 끝나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삼성의 선택은 '모든 공정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손발을 맞추면 공사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기공식 직후 전쟁이 시작됐다. 라인과 골조공사가 시작됐다. 전기와 물 공급을 위한 공사도 동시에 들어갔다. 이는 하드웨어 건설과 관련된 공기단축이다. 이병철 회장의 또 다른 승부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엔지니어를 미리 추렸다. 그리고 설비를 담당할 사람을 차출해 이들을 설비 발주처로 파견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설비업체 현장에서 제작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이들은 이미 훌륭한 설비 엔지니어로 변해 있었다. 장비 설치부터 테스트, 응급처치까지 이들에게는 별도의 교육이 필요 없었다. 최소한 수개월은 단축했다. 한편 안정된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기흥공장만을 위한 철탑이 세워졌다. 용수문제는 수원공장의 물을 파이프로 끌어오는 것으로 해결했다.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포장된 도로를 통과할 수 없는 특수장비를 들여오기 위해 하루 만에 4km의 포장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포장된 도로가 빨리 마르도록 거대한 선풍기를 동원했다. 감히 쳐다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본의 거함들을 침몰시킨 삼성 반도체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속도의 승리였다. 지도자는 직관에 기초한 선견지명을 가져야 한다. 선견지명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1997)』의 저자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클레이 크리스텐슨(Clayton Christensen)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불행하게도 신(神)은 데이터를 오로지 과거를 분석하는 데만 유효하게 창조했다. 미래를 보는 데이터는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분석을 끝내고 의사 결정을 내릴 때쯤이면 이미 세상은 변했다. 데이터 없이 의사결정을 하려면 완벽한 직관력을 가진 리더를 가지고 있든지, 미래를 예측하는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최고 경영자는 '데이터 중독’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아무리 분석을 잘해도 그저 과거의 지표일 뿐이다. 직관력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병철 선대회장은 1987년 2월 기흥에 반도체 3라인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임원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임원들이 3라인 건설을 반대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1985년부터 진행된 일본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고 1986년에는 불황까지 닥쳤다. 이 여파로 반도체 시장을 지배해온 미국 업체들의 D램 생산 중단이 속출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제2의 진주만 습격'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1, 2라인 투자 회수는 엄두도 못 냈고 누적 적자는 2000억원에 달했다.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의 모든 이익을 쏟아 부어야 겨우 반도체 손실을 메꿀 수 있었다, 반도체 때문에 삼성그룹이 위험하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선대 회장은 “최고의 기회가 오고 있다”고 재촉했다. 결국 지시를 내린 지 6개월이 지난 8월에야 착공에 들어갔다.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1987년 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반도체 경기가 상승세로 급반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황으로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투자를 중단했고 미국 D램 업체들이 이미 사업에서 손을 떼 공백이 생긴 탓이다. 삼성전자는 1, 2라인을 완전 가동해도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반도체 호황을 보지 못한 채 1987년 12월 별세했다. 그리고 제 3라인은 1988년 10월에 완공됐다. 그렇다면 불황기에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얘기는 1986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어느 날 반도체 3라인 투자를 검토하던 팀과 만나 "돈 걱정 말고 서둘러라. 미국의 보복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아"라고 말했다. 당시 팀원들은 '미국의 보복’이란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이 회장은 3라인 팀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오늘 신문 봤습니까.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일본에 대한 무역제재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보복은 '무역제재’였던 것이다. 선대회장은 미국과 일본의 무역마찰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전략을 세웠던 것이다. 1988년에 예견은 적중됐다. 1987년 2달러에 미치지 못했던 256K D램 가격은 4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을 25% 감축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반도체를 들고 시장을 떠돌던 삼성전자 영업맨들에게 브로커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삼성에 "얼마면 됩니까. 가격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대신 원하는 수량만큼 팔아야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삼성은 1988년 그동안 투자한 비용과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을 처리하고도 32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3라인은 삼성을 도약시켰고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쓰게 했다. 만약 3라인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삼성전자는 누적손실로 재기불능의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삼성전자 부실은 삼성그룹 전체의 부실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계열사 부당 지원이라는 '배임’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제3라인은 삼성그룹 전체의 명운을 가른 기적 같은 경영판단이었던 것이다. 반도체 사업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작품으로 인식된다. 이건희 회장은 선대회장 생존시 조력자였다. 하지만 선대회장 사후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더 속도를 냈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하는 쪽이 이기게 돼있다.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통상적으로 일본 업체들은 경기침체기에 투자를 줄였다. '고용된 사장’이었기에 밀어붙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반대로 움직였다. 경기회복기를 대비해 오히려 공격적 투자에 나섰다. 설비가격이 싸지는 경기 침체기를 투자 확대 기회로 적극 활용한 것이다. 경기회복기에 투자를 늘린 일본 업체들은 제품이 생산될 쯤에는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져 채산성이 악화되었다. '오너(ower)’의 결단이 진수를 발휘한 것이다. 오너는 '직관에 기초한 선경지명’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의 고수익 구조는 이렇게 창출됐다. 삼성이 소니를 압도한 '분기점’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진이 남아 있던 2009년이다. 2009년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4조2300억원)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주요 9개 업체의 같은 기간 영업이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일본기업의 패배는 '기술력’이 아닌 '경영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의 성공은 장치산업의 특성을 꿰뚫은 '기업가정신’의 승리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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