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이수만 (4) - 아이돌 그룹의 시대를 열다.

자유경제원 / 2015-04-08 / 조회: 3,144       업코리아
자유경제원은 한국의 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남정욱 교수가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이수만을 정리하였다.

  

아이돌 그룹의 시대를 열다. 

   
▲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이수만

현진영의 모델이 바비 브라운이었다면 H.O.T의 벤치마킹 대상은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모리스 스타라는 미국 아이돌 그룹의 창시자가 만들어낸 기획 상품이었다. 예쁘장한 백인 소년들이 부르는 흑인 정서의 음악은 순식간에 미국을 점령했다. 1995년 3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이수만에게 확신을 주었다. 부모를 제치고 구매결정권을 행사하는 미국 청소년들이 지불하는 비용이 한 해 무려 96조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수만은 아이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할지, 어느 연령대의 가수가 노래를 불러야 호응이 높을지, 어떻게 소비자들인 아이들에게 다가갈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여론조사기관에 설문을 의뢰해 나온 공식이 '고교생 그룹 + 춤 + 노래 + 새로운 변화’였고 그 결과물이 H.O.T였다. 데뷔할 무렵의 H.O.T 멤버들은 고 1부터 고3 까지 모두 재학생이었다. 

이수만은 이들이 수업을 마친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혹독한 연습을 시켰다. 8개월간의 지옥 훈련이 끝나고 이들은 1996년 9월 데뷔 앨범을 발매한다. 앨범 타이틀은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였고 표지에는 양팔로 머리를 감싼 소년 한 명이 다리 사이에 머리를 묻고 있는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학교 폭력에 도전하는 힙합 전사들의 이미지로 H.O.T는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다.

청소년들은 기꺼이 H.O.T를 서태지를 잇는 그들의 새로운 대변자로 받아들였고 후원군이 되었다. '전사의 후예’에 이어 후속곡인 '캔디’까지 표절 시비에 휘말렸지만 이미 팬덤을 형성한 청소년들은 H.O.T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이수만은 멤버들의 개성을 살려 다섯 명을 각기 다르게 포지셔닝했다. 문희준은 유머humor 가이, 강타는 핸썸handsome 가이, 장우혁은 터프tough 가이, 이재원은 샤이shy 가이, 토니 안은 무드 mood가이로 포장되었다, 폭넓은 성향의 팬들이 취향에 맞춰 골라잡을 수 있도록 다변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이 전략은 시장에서 통했고 나중에 소녀시대의 창설 때에도 그대로 응용된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H.O.T의 멤버들은 차례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이수만은 1997년 2월 H.O.T의 잠정적인 활동중단을 발표하고 고별무대라는 형식을 통해 휴지기에 들어간다. 이는 서태지가 이미 구사했던 전략으로 앨범 출시와 활동 개시 - 휴지기 - 후속 앨범 발매와 활동 재개를 탄력적으로 구사하는 전형적인 순환 마케팅 기법이었다. (활동중지라더니 겨우) 3개월간의 침묵을 깨고 H.O.T는 1997년 6월 2집 앨범 '늑대와 양’을 발매한다. 

이 앨범은 열흘 만에 1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1997년 9월 H.O.T의 팬클럽 1기 창단식이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서 열렸다. 10대 소녀 1만 5천 명이 모인 화려하고 거대한 행사였다. 팬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또 하나의 마케팅 기법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마침 뉴 키즈 온 더 불록의 내한 공연 당시 고교생 한 명이 압사한 공간에서 벌어진 행사라 언론은 내심 사고가 터지기를 기대했지만 1만 5천 명의 소녀들은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진행했다. 이 또한 이수만이 노린 팬 클럽의 새로운 형태였다. H.O.T는 이제 사회 현상이 되었다. 
 

보이 그룹으로 시장을 타진한 이수만의 다음 프로젝트는 걸 그룹 조직이었다. 이전에도 걸 그룹은 있었다. 그러나 눈요깃거리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게 그때까지 등장했던 걸 그룹의 경로였다. 그들은 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는 체력도 준비도 없었다. 

1996년 처음 걸 그룹을 떠올린 이수만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미국의 3인조 걸 그룹 TLC를 찍는다. TLC는 세 멤버 티-보즈T-Boz, 레프트 아이Left Eye, 칠리Chilli의 이니셜을 따 이름을 지은 그룹이었다. 이수만은 형태는 물론이고 이들이 구사했던 음악도 집중해서 연구했다. 보통 뉴 질 스윙New Jill Swing이라고 불리는 흑인 음악 장르였다. H.O.T 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은 프로젝트 시작부터 아시아 시장을 노렸다는 점이다. 한국어 담당 최성희, 영어 담당 김유진, 일본어 담당 유수영은 수천 명의 경쟁자들을 뚫고 선발되었다.
 

이수만은 중국어를 담당할 멤버까지 확보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도중하차하는 바람에 그 꿈은 다음으로 미뤄야했다. 이수만은 H.O.T멤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걸 그룹 멤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다. 최성희는 바다, 유수영은 슈, 김유진은 유진이 되었고 이들의 이니셜을 따서 S.E.S를 팀 명칭으로 정했다. 세 사람은 아침 열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연습을 반복했다.

훈련강도는 높았다. 보컬 트레이너들은 바닥에 누운 세 여고생들의 배 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보컬 훈련을 시켰다. 목이 아닌 배로 부르는 노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S.E.S는 1997년 11월 SBS 음악 프로를 통해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다. 이들의 데뷔 앨범은 1주일 만에 16만 장이 판매된다. IMF로 경제가 한겨울처럼 얼어있던 시기이니 결코 적은 수량이 아니었다. 

이수만이 걸 그룹 결성 때부터 염두에 둔 것은 일본 시장 진출이었다. 1998년 2월, 이수만은 S.E.S와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일찍이 일본의 음악 평론가 교 노부코는 “일본에서 한국가수가 엔카를 부르지 않으면 음반을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 음악 산업계의 상식”이라고 단정 지어 말한 바 있다. 

S.E.S는 당연히 엔카 가수가 아니었고 S.E.S의 일본 시장 노크는 그러니까 상식에 도전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소니의 오디션 담당 프로듀서는 보컬과 힙합이 출중한 S.E.S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소니는 7년을 제시했고 이수만과 S.E.S의 계약 기간은 5년이었다. 대신 이수만이 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스카이플래닝’이었다.
 

조건은 40개월에 2천 5백만 엔. S.E.S의 일본 활동은 활발했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포지셔닝에 문제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신비로운 요정의 이미지였지만 일본에서는 그것을 만들어 내지 못했고 그저 그런 걸 그룹 중 하나로 묻혀버린 것이다. 이수만에게는 좀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BoA(본명 권보아)는 대단히 특이한 한류다. 보아는 'K-팝을 부르는 한국인 가수’도 아니고 'J-팝을 부르는 일본인 가수’도 아니다. 보아는 'J-팝을 부르는 한국인 가수’다. 이수만의 전략이 그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렇다고 100% 완제품 수출 상품도 아니다.

보아는 SM엔터테인먼트가 일본 굴지의 레코드 회사인 에이벡스Avex와 합작하여 생산한 합작품이다. 보아의 벤치마킹 모델은 아무로 나미에였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일본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려면 최소한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즉, 트레이너들에 의해 단련되는 시간 + 3년이다. 후보군을 초등학교 고학년 중에서 골라야 했던 이유다.  
  

보아는 오디션에서 S.E.S의 '완전한 자유’를 불렀고 바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연습생으로 선발된 초등학교 5학년 생 보아는 학교인 경기도 남양주에서 서울 방배동 연습실까지 시외버스, 전철, 택시를 갈아타며 왕복 5시간을 길에 버렸지만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있어야 한다. 

재능과 독기. 보통은 둘 중에 하나이기 쉬운데 보아는 '독한 천재’였다. 집에 돌아간 보아는 거울 앞에서 또 연습을 이어갔다. 머리도 좋았다. 중학교를 수석 입학했지만 이수만의 권유로 외국인 학교로 옮긴다. 영어 같은 외국어 습득에 용이하고 감각도 국내적으로 길러져서는 곤란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연습생으로 뽑아서 외국인 학교까지 진학시킨 이수만이나 그걸 믿고 따라한 보아나 둘 다 만만한 캐릭터가 아니다. 
 

중국에서의 H.O.T의 성공, 일본에서의 보아의 성공부터는 생략한다. 이제까지의 과정만으로 이수만이라는 기획자가 어떤 경로로 한국 음악 산업을 발전시켜 왔는지 이해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그룹 신화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에 관심이 있다면 여기서 논의가 중단된 것이 섭섭할 수도 있겠다. 발굴에서 진출까지 그 경로는 대부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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