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9일자 《조선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클래식 전문 출판사 창고에서, 1897년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상연됐던 '코레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라는 발레의 악보가 발견되었다는 보도였다. 일본 배경의 오페라 '나비부인’(1904)이나 중국 소재 '투란도트’(1926)보다 앞서
한국을 소재로 한 발레가 음악의 중심지 비인에서 상연되었다는 것은 정말 이채로운 얘기였다. 기사는 악보와 함께 발견된 발레의 줄거리
텍스트(15쪽 분량)도 소개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조선의 왕자가
나라를 구하려고 전쟁터로 나간다? 헐~~~.’ 발레의 대본을 쓴 작가로서는 외적(外敵)의 침략을 받은 나라의 왕자가 전쟁터로 나간다는
설정은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실제 유럽의 왕족, 귀족들은 그랬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조선에는 그런 전통이 없었다. 왕족, 귀족들이 전쟁터로
달려가는 전통은 삼국통일 당시의 화랑을 끝으로 사라졌다. 일가가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회영과 그 형제들, 구한말(舊韓末)
대신(大臣)을 지냈다가 3·1운동 후 상해임시정부에 몸담은 김가진 같은 분이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나는 이 나라 '가진 자’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들이 응당 지녀야 할
'귀족성’이 결여가 그러한 천민민주주의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대중이 우중(愚衆)으로 전락하고, 그들이 아무리 천박하고
미개(우리나라에서 이 단어 잘못 쓰면 큰일 난다)하게 굴더라도 '귀족’들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그 사회는 건재할 수 있다.
귀족이라니! 민주주의 사회에서 귀족이라니! 하지만 오해는 말기 바란다. 내가 말하는
귀족이란 시몽 드 몽포르니, 말버러 공작이니, 오토 폰 비스마르크니 하는 세습귀족은 아니니까. 내가 말하는 '귀족’은 교양, 상식, 소신,
애국심, 책임감, 비전, 배려 등 '천민성’과 대조되는 가치(價値)들을 체화(體化)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엘리트를 말한다. 그들은 정치인일 수도,
관료일 수도, 군인일 수도, 기업인일 수도, 학자일 수도 있다.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사회의 균형추가 되고 있다. 선진국 대중민주주의가
표류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귀족성’이라는 든든한 닻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귀족성’은 대중민주주의가 부패하지 않게 해 주는
소금이다. 어디 기업인들뿐이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많이 누리고, 많이 배운 지식인 중에서도
좌고우면(左顧右眄)하거나 아예 호적을 파서 왼쪽 동네로 옮겨간 자들이 적지 않다. 은수저 물고 태어나서 선거구까지 물려받아 쉽게 정치하면서
'진보코스프레’를 하는 자들도 하나 둘이 아니다.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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