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은 나무로 만든 닭 '목계’(木鷄)의 교훈을 소중히 여긴다. 목계는 '장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싸움닭 이야기다. 목계에 그의 경영철학이 담겨져 있다. 나무 닭처럼 권위와 위용을 갖추면 어떤 싸움닭도 범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칼은 들고 있되 휘두르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상책’이라는 손자병법의 '상지상(上之上)’의 교훈을 담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영화 '벤허’ 매니아로 알려졌다. 보는 관점을 달리해 벤허를 여러 차례 봤다고 한다. 영화 '벤허’에서 얻은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그는 전차경기에서 '벤허’와 '메셀라’의 말을 비교한다. 메셀라는 말에 채찍을 휘둘렀지만 벤허는 채찍 없이 말을 달리게 했다. 채찍을 맞은 말은 빨리 달렸지만 끝에 가서는 주인에 순종하지 않는다. 채찍의 고통 없이 자발적으로 달리는 말을 이길 수가 없다. 그는 “인센티브(incentive)란 인간이 만든 위대한 고안 중의 하나며,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기게 한 요인”이라는 점을 사장단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은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그는 경제학자 이상으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 고유의 본성을 꿰뚫어 보고 있다. 인간의 동기와 유인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갖고 있다. 그러한 그의 인생관과 경제관은 '자율경영’으로 귀착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 정통하다. 자기가 자기를 잘 안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의 문제’와도 연결이 돼있다.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자기를 가장 잘 아는 본인 자신이다. 지도자는 그 구성원이 스스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삼성조직 문화의 정수인 신상필벌(信賞必罰)도 자율경영의 또 다른 표현이다.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낸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줌으로써 스스로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율경영이다. 삼성은 또 '업의 본질’을 강조한다. 업의 본질을 알아야 스스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경영도 '업의 본질’을 구성원이 공유할 때, 비로소 자율적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경영 일선에 있으면서도 경영 전면에는 그리 잘 나서지 않는다. 한남동 자택이나 승지원에 머무르면서 사업을 구상하거나 주요 인사를 접견하는 것이 그의 주요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그는 신비에 싸여있지만은 않다. 위기감을 고취시키고 비전을 제시할 때 그는 신들린 사람 같다. 1993년 3월 LA로부터 프랑크푸르트, 오사카, 도쿄, 런던으로 이어지는 장장 4개월에 걸친 1,800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열변과 질타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는 결코 은둔의 경영자는 아니다. 그는 선대로부터의 목계의 교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가(史家)는 역사는 “창조적 소수의 창조적 생각에 의해” 쓰여 진다고 말한다. 이때 역사는 굳이 일국의 역사일 필요는 없다. 개인사, 가정사, 그리고 기업사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기업사는 창조적 소수의 창조적 생각에 의해 쓰여 졌다. 여기에 자율경영에 기초한 구성원의 헌신이 더해져 초일류기업이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면 삼성전자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것은 삼성전자만이 알 수 있다. 미래라는 그릇을 빚는 도공(陶工)은 바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삼성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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