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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행복 추구는 그 자체로 목적적인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며, 성공이란 행복의 실현을 의미한다. 하지만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eudaimonia)’이 곧 최고선이라고 말한다.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이란 '덕(arete)’이 최대한 발현된 것을 의미한다. 이때 덕(arete)이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이성의 탁월한 활동, 즉 인간이 가진 '기능(techne)’이 적절하게 잘 수행됨을 뜻한다. 그리고 이 기능의 훌륭한 수행은 '중용’, 즉 그 기능을 타고난 능력치에 맞게, 올바른 방식으로 실현시킴을 의미한다. 한편, 전통적인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행복은 하나의 목적이며 그렇기에 바람직한(desirable) 유일한 것’이 된다. '어떤 대상이 가시적이라는 것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본다는 것이고, 어떤 소리가 들린다는 것의 증거는 실제로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처럼 무엇이 바람직한가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역시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얻기를 갈망한다는 사실 이외에는 없다. 그렇기에 각자가 행복을 획득 가능하다고 믿고 행복을 갈망한다는 사실 외에는 행복이 왜 바람직한지를 설명할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논리이다. 이 두 입장을 통해 현실을 반성해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양극화와 분배, 그리고 복지 수준에 대한 극단적인 담론들이 진영논리의 창과 방패가 된 요즘의 상황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듯하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차근히 스스로를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공리주의의 입장을 하나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행복은 바람직한 유일한 목적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을 옳은 일이다. 그렇기에 실천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느냐’이며, 이는 내가 가진 능력을 효율적이면서도 정당한 방식으로 실현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추구해 나가느냐’라는 것은 '정의’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빼놓고는 정의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평등만이 정의이고, 정의가 곧 평등이라는 사고에 빠져 있는 듯하다. 즉, 정의를 공평한 분배라는 매우 협소한 의미로만 축소시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매우 편리하다. 왜냐하면 이는 매우 자명한 명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자명하지도 않으며 또한 옳지도 않다. 사실 이것이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깊은 반성적 사고를 하지 않아도 '현재 내가 욕구하지만 채워지지는 않는 이기심을 정당하게 채워줄 수 있을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즉,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해 왜곡된 자기본위적 행복추구의 본능이 윤리적 반성의 결핍을 불러일으키고 진리를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의 유명한 지적대로 '정의는 편의와 구별되어야만 한다.’ 사실 이기심 혹은 자기본위적 태도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쾌락을 추구할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며, 이 행복감은 가장 능동적인 에너지이다. 인간이 행복을 갈망한다는 사실이 곧 행복이 바람직한 이유라는 공리주의의 주장은 인간의 자기본위적 경향 자체는 옳은 것이며, 좋은 것(善, good)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가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이자 목적인 이 본성적 경향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이다. 이것의 실천 방향에 따라 그것은 사회 정의에 기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정의를 가장한 이기적 편의에 일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이기심이 어떻게 정당한 덕이 되어가는 지를 알려준다. 나의 합리적인 이기심이 올바른 방식에 따라 적절히 발휘될 수 있을 때 그것은 내 개인의 행복과 사회 전체의 최고선, 즉 정의를 위한 탁월한 테크네(techne)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하기 위한 사회적 조건은 무엇일까? 하이에크가 지적한대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를 어떤 인위적 가치에 따라 구성하려는 만용을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논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신처럼 전지(全知)해야 하지만 인간은 인식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유한성의 한계 안에 갇힌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은 평등에 대한 유토피아적 환상이 실은 환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인 가공의 '절차적 정의’가 아닌,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의 범위 내에서 원칙을 지켜야만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은 우리의 본성에 위배되지 않을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한 원칙이 바로 자유주의 그것, 즉 '보이지 않는 손’이다. 노직(Nozick, Robert)이 지적한대로 이 원칙은 설명되어야 하는 현상들을 구성하는 개념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 즉, 지식에 대한 과신이 최대한 배제된, 가장 실제적이고 간명한 논리이다. 그 결과 이 원칙은 인위적으로 의도되고 계획된 구성적 계몽주의보다 더 많은 현상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 원칙은 인간의 바람직한 본성(이성과 합리적인 이기심)에 위배되지 않는 가장 자연스러운 윤리기제이다. 이 원칙 하에서는 인간이 자기본성과 능력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그에 따라 테크네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마련된다. 즉, 무목적인 자율(automatic)기제를 통해 개인의 목적이 실현되고, 그 결과 최고선이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무관심적인 방식을 통한 정의의 실현은, 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주의자의 오만한 이상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최선이 아니면, 차라리 본성에 가까운 것이 더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도킨스가 설명하는 이기적 유전자들의 자기실현을 위한 진화의 과정 속에 담긴 윤리적 직관은 부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은 부정할 수 있어도 인간의 이기적 경향성까지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본성이 그들의 구성주의적 논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평한 분배와 실질적인 평등의 추구 역시 인간의 자기본위적 이기심에 기반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 본성의 효과는 자유주의의 경우와는 정반대일 수 있다. 자유주의 하에서는 이기적 본성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개척과 창조로 이어질 수 있지만, 평등의 기조가 헤게모니를 잡은 사회에서는 이것이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는 비양심적인 무사안일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역설적인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역차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인간이 자신의 덕성과 능력을 발휘할 만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잃은 생활은 결코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것을 추구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선’일 것이다. 목적에 관한 질문은 언제나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물음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좋음’은 자연스러울수록 바람직한 것이다.
김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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