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센=미디어펜 김규태기자] 지난 19일부터 24일, 미디어펜은 자유경제원과 함께 독일탐방을 다녀왔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독일탐방의 주요 일정은 과거 파독 근로자의 노고와 흔적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파독 근로자라면 광부와 간호사들이다. 이 중 광부가 일했던 광산은 이제 그 역할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곳들이다. 미디어펜이 방문했던 광산 유산은 세 군데였다. 그 중의 압권은 졸퍼라인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졸퍼라인 졸퍼라인(Zollverein)은 독일 에센지역 석탄지대의 요충지로서 1960~1970년대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다. 원래는 1850년대부터 건립이 시작된 곳이다.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한 것은 1884년부터다. 한때 졸퍼라인은 일일 1만2천톤의 석탄을 생산하면서 유럽 최대의 탄광이기도 했다. 졸퍼라인은 산업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졸퍼라인의 석탄산업은 1920~1930년대에 절정에 오른다. 1932년 근대적 설계를 통해 졸퍼라인이 유럽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탄광으로 올라선 것이다. 당시, 규모 생산성 모든 면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탄광이었다. 하지만 올라가면 내려가기 마련이다.
40년간에 걸친 호황기의 끝이었던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졸퍼라인을 포함한 루르지역은 연간 62억 달러의 연매출, 13만 명 고용을 자랑하던 중공업 메카였다. 우리나라의 울산 산업단지 못지않은 유럽의 대표적 중공업단지였다. 하지만 경쟁력을 잃은 석탄과 철강산업의 쇠퇴가 시작되었고 이는 1980년대를 고비로 가속화되었다. 석탄의 사양산업화 이후 결국 졸퍼라인은 폐광되었으며, 이후 이곳은 기피지역이 되었다. 102년간의 채굴은 1986년 그 끝을 맺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졸퍼라인은 배드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졸퍼라인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문화예술공간으로 변모한다.
현재 2015년 졸퍼라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으로 꼽힌다. 지난 2001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입장료는 9천원이며 연간 200만 명이 방문한다. 전시회 및 박물관으로 기능하는 루르무제움과 구내식당 운영 등을 통해 졸퍼라인은 연간 수입 600억 원을 올리고 있다. 가히 창조경제의 아이콘, 변신의 대가라 일컬을 만하다. 졸퍼라인의 비결은 무얼까. 창조경제 아이콘으로 거듭난 졸퍼라인, 민관의 현명한 대처 졸퍼라인이 다른 탄광과 구별되는 점은 미래의 신건축을 모토로 삼았던 바우하우스의 미학이 구현되었다는 것이다. 졸퍼라인에는 마틴 크레머(Martin Kremmer)와 프릿츠(Pritz Schupp)라는 두 건축가의 기능주의 미학이 구현되었다. 석탄이 철광석으로 시시각각 변모하던 각 탄광 라인에는 바우하우스 고유의 절제미와 구조미가 드러난다.
졸퍼라인이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난 것은 탄광이 문을 닫은 이후다. 원래는 재개발될 지역이었지만 독일 주정부가 해당 지역을 보존한다는 정강을 내세웠다. 이윽고 폐광된 지 3년 뒤, 1989년 엠셔강 유역의 17개 도시 시정부와 주정부의 공동출자를 통해 IBA 엠셔파크가 설립된다. IBA 엠셔파크는 산업화에 쓰인 낡은 건물과 도시환경을 재생시킨다는 목적으로 10년간 운영된다. 해당 기간동안 졸퍼라인의 보일러하우스는 노먼 포스터의 설계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보존과 재생을 동시에 고려해서 건물 및 졸퍼라인 단지 전체에 새 기능을 담고자 했다. OMA의 렘 쿨하스가 이를 포함한 졸퍼라인의 마스터플랜을 새웠다.
렘 쿨하스의 마스터플랜을 통해 졸퍼라인에는 경영디자인학교와 OMA가 리노베이션한 석탄세척공장, 이벤트 센터 및 루르무제움(박물관)이 새로이 들어서게 된다. 졸퍼라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시도가 행해진 것이다. 일종의 ‘유산 재활용’이다. 탄광의 낡았던 한 기계설비실은 레스토랑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광석 저장 벙커는 암벽 등반 코스로 변신했고, 과거 물자를 운반했던 공장의 대형 파이프는 아이들의 미끄럼틀로 쓰인다. IBA 엠셔파크 기구의 운영기간이 끝나갈 무렵 1998년, 주정부와 에센시는 졸퍼라인 탄광 일부를 소유회사로부터 사들이기도 했다. 주정부는 이를 통해 졸퍼라인 재단을 설립했고, 직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2001년 졸퍼라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산업화의 아이콘이었던 졸퍼라인이 “과거의 유적에 현재의 모습을 덧입힌” 형태로 미래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되기에 이른다. 세계문화유산 보고서는 졸퍼라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2006년 졸퍼라인에서는 ‘엔트리 2006’이라는 대대적인 디자인전시회가 열린다. 이를 기점으로 졸퍼라인은 가장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탄광이라는 시대의 유산 위에 새로운 가치를 덧붙이게 된다. ‘문화역사 유적’이라는 기존 가치에 ‘디자인 문화 생산지’라는 가치를 더하게 된 것이다. 이제 졸퍼라인은 단순한 일회성 전시회 및 행사만을 선보이는 곳을 넘어섰다. 디자인 관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제공하고, 졸퍼라인 경영디자인학교 등의 교육시설을 통해 이곳을 예술문화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탈바꿈시켰다.
한국에 주는 교훈, 가치의 재발견 졸퍼라인은 단순한 공간 리모델링의 범주로 정의내릴 수 없다. 졸퍼라인은 일종의 ‘진화’를 보여준다. 외형적인 재개발이 아니라, 근본적인 공간구조 변화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낸 것이다. 졸퍼라인은 과거만큼의 고용창출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디자인 창조혁신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이러한 변천은 한국의 석탄산업 철강산업 등에 교훈을 준다. 굳이 강원도에만 적용할 수 있는 사례가 아니다. 졸퍼라인은 현재 세계 굴뚝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울산, 거제, 창원, 광양 등 국내 각지의 중공업단지의 미래에 참고할만한 사례다. 이는 30년, 50년 뒤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단순하게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고 기록하며 축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간구조의 본질적인 진화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든 의료든 교육이든 각 지역의 사정에 합당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졸퍼라인은 이러한 과정에 많은 통찰력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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