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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요일 오후, 장보러 간 어머니가 빈손으로 돌아오셨다. “어휴. 가는 날이 장날이네. 오늘도 마트 문 닫는 날이었어.” 대형마트 영업휴무일을 깜빡하고 또 마트에 가신 것이다. 직장을 다니는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번 대형마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한꺼번에 구비해 놓으시는 편이다. 그런데 장보러 가는 일요일의 2번에 1번은 영업휴무일이라 깜빡 잊고 헛걸음을 하시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자꾸 까먹어서 답답하다고 하소연 하시는 어머니께 나는 핸드폰에 ‘마트 쉬는 날’ 앱을 깔아드렸다. 마트가 쉬는 날을 알람으로 알려주는 기능을 하는 어플이다. 마트 영업일을 알려주는 어플까지 생겨난 건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SuperMarket)’ 규제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SSM규제는 2010년 11월 전통 시장과 동네 영세슈퍼의 보호를 목적으로 처음 탄생했다. 정부는 전통시장 반경1Km이내에 대형 기업형 슈퍼마켓 진출을 규제하기 위해 영업시간과, 휴무일을 정했다. SSM규제를 시행한지 4년이 다 돼가고 있는 지금, 이 규제가 가져다주고 있는 영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형마트의 주된 소비층을 보면, 주로 전업 주부가 아닌 맞벌이 부부나 회사원들이 많다. 이들은 재료가 떨어질 때 바로 시장에 갈 수 있는 전업주부와는 달리, 마트 영업종료 전에 장을 보러 가기 어렵다. 주말을 이용해 마트에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겐 일요일 2번 중 1번 휴무는 결코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SSM규제가 실질적으로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형마트 휴무일에 사람들은 재래시장으로 발길을 바로 돌리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보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정보를 원하고 있는데,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원산지, 유통기한, 위생환경을 제공해주는 건 대형마트이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그 방법을 대형마트를 죽이는 것에서 찾은 게 문제다. 대형 마트를 죽이고, 무조건 재래시장을 보호만 한다고 해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각각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니즈(Needs)가 다른데, SSM을 누른다고 재래시장이 부푸는 풍선효과는 나타날 수가 없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SSM을 막는 것은 연탄업자를 살리겠다고 한 달에 두 번씩 가스를 끊는 것과 같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선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재래시장이나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는 상인들과의 오랜 관계를 통한 신뢰, 정겨운 분위기,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품 등 다양하다. 앞으로 이러한 재래시장의 장점을 특화시키고 단점은 보완해 더욱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와 경쟁에서 매번 져온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형마트를 못 가게 한다면 재래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미지는 ‘보호가 필요한 약자’에 그치고 만다. 소비자들이 시장에 가는 이유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사러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재래시장을 찾는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를 가려다가 어쩔 수 없이 가는 ‘차선책’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쟁은 발견적 절차이다’라고 했다. 산업이건 사회 제도이건 우열이 가려지는 치열한 경쟁 과정이 없이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재래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소비자들을 대형마트를 못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만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영세 상인들은 물론 대형마트와 소비자까지 웃을 수 있는 1석3조의 길이다.
박준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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