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이승훈 칼럼 > 공짜점심보다 경제교육

자유경제원 / 2015-05-04 / 조회: 3,200       업코리아
   
 

대한민국에 살면서 한글을 모르는 철수와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모르는 찰스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그나마 부모 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놀고, 먹고, 자고, 배울 때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껏 자라 온 울타리를 벗어나 더 큰 사회로 한 발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눈앞이 깜깜하다. 한글을 모르는 철수와 영어를 모르는 찰스의 미래는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에는 한글이 있고, 미국에는 영어가 있듯, 자본주의 시장경제에도 언어와 룰이 있다. 시장경제 시스템의 규칙을 알지 못한 채로 사회로 나가는 일은 마치 연어가 헤엄치는 방법도 모르는 채로 거친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시장경제라는 자유로운 바다로 경제의 ‘경’자도 배우지 못하고 무작정 ‘내보내지는’ 불쌍한 연어들의 이야기는 남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고등학생 후배들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는 올해 초부터 ‘꿈틀학교’라는 대안학교에서 탈(脫)일반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경제를 가르치고 있다. 1학기에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쳤고, 2학기에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경제와 접목시켜 교육하고 있다. 일상의 사례를 다루다보면, 아무래도 시장경제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번 학기 들어서는 시장경제와 관련해 다룰 수 있는 다양한 사례들이 많았다. 그리스 발 재정위기와 세계경제 이야기부터, 무상급식과 복지, 저축은행과 위험, FTA와 교환 등 다양한 이슈들을 경제학의 이론에 녹여 가르치는 일을 통해 필자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자원교사들 모두 매우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어떤 주제보다 우리 아이들이 관심 있게 지켜 본 내용은 저축은행 사태였다. 시장경제에서 사익을 추구하려는 자유로운 선택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꿈틀학교 학생들 역시 혈기왕성한 청소년들답게, 자유와 정의, 그리고 ‘돈’에 대해 관심이 많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저축은행과 시중 일반은행의 예금 금리를 보여주었고, 돈이 있다면 어디에 맡기겠는지 선택하게 했다. 결과는 뻔했다. 눈치 빠른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저축은행을 선택했다. 곧이어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진 저축은행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할머니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들. ‘그러면 제 돈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거죠?’, ‘나라가 다 뺏어가는 건가요?’, ‘저축은행은 무조건 위험한가요?’

끊임없는 질문들을 하나씩 해결해 주자 주어진 수업시간이 끝나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 마치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저축은행 앞에서 길게 줄 서있던 사람들의 모습,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많은 것들을 모르는 꿈틀학교 학생들, 그리고 앞으로는 탐구교과로 선택하지 않는 한 경제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어지게 된다는 고등학생들이 동시에 머리에 스쳐가면서, ‘대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것인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의 사회는 문밖을 나가자마자 가격, 선택, 소비 등을 생각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 살고 있다. 정보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심지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우리 안방으로도 스며들어오고 있다. ‘문 밖이 위험하면 안 나가면 된다.’거나, ‘시장경제는 그러니 문제다, 공산주의면 된다.’는 식의 의견은 상식적인 선에서 차치하도록 한다면, 교차로는 초록 불에 건너야 하고, 소변은 화장실에서 봐야 하는 것처럼, 시장경제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경제의 룰을 가르치는 일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우리의 후배들이 이른바 ‘High return, high risk(또는 그 반대)’와 ‘There is no free lunch.’라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마저 배우지 않은 채로 성인이 되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제이, 제삼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나올 것은 분명하고,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격차 확대가 새로운 형태의 착취와 사회 혼란을 야기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또, 경제적 상식이 매몰된 무책임하고 실현 불가능한 무상복지의 ‘생떼쓰기’가 공론화되고, TV에서 보고 있는 그리스의 모습이 우리 앞마당에서 벌어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아는 자’와‘모르는 자’, ‘가진 자’와 ‘없는 자’가 모두 궤멸할 공산이 크다. 시스템의 붕괴다. 

혹자는 지나친 비약이며 억지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과거 전반적인 교육 수준 자체가 부실했던 때에도 시장은 잘 운영되어 왔으며, 따라서 과한 걱정은 금물이라고 냉소를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정부주도 경제발전 시대에 비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더욱 존중받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이 고착화되었고, 개인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 시장경제는 이제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세계 시장의 개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 또한 진행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도 경제교육 축소 혹은 폐지는 어불성설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헌법에서도 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본 원칙이다. E(x), σ(x)는 알지만 수익과 위험은 모르고, ‘economy’는 알지만 경제는 배우지 않는 교육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지금 이 순간, 바다로 뛰어드는 대한민국 연어들에게 공짜 점심보다 중요한 것은, 공짜 점심free lunch의 위험을 가르쳐주는 일이다. 

  

이승훈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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