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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고르지 못한 정치 지도자 김대중
근년에 지도력(leadership)이란 개념은 사회과학에선 가치를 많이 잃었다. 20세기 중엽까지도 지도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지만, 요즈음은 주로 정치학과 경영학에서 연구가 이루어질 뿐이다. 지도력에 관한 연구가 그렇게 시들해진 사정의 가장 큰 원인은 지도력이라는 개념이 과학적 연구에 필요한 수준으로 깔끔하게 정의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집단에서든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서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지만, 그 모습은 무척 복잡하고 다양하다. 따라서 그렇게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은 어쩔 수 없이 변별력과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지도력이라는 말은 일반적 담론들에서 여전히 많이 쓰인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그러하니, 정치 지도자들이 보이는 지도력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주요 후보들의 정책들보다는 그들이 보이는 지도력에 오히려 시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대 국가들의 정치 구조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 하나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세기 중엽 많은 국가들에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점점 커지고 빨라지기 시작했고, 그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적 지도자(executive leader)'들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래서 의회 지도자들보다는 대통령이나 수상이 사회의 변혁과 통합을 주도하게 되었고, 이제 행정부의 수반은 정부의 한 부분의 수장이 아니라 정치 체계의 중심적 존재다. 흔히 들리는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ersidency)'이란 말은 이런 변화를 잘 가리킨다. '제왕적 대통령은' 1970년대에 미국 역사학자 아서 마이어 슐레징어 2세(Arthur Meier Schlesinger Jr)가 처음 썼지만, 그 말이 가리키는 현상은 이미 1950년대에 뚜렷이 나타났다. 그 무렵에 프랑스에선 제4공화국의 의회 중심적 체제가 제5공화국의 대통령제로 바뀌어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인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이 통치했고, 서독에선 콘라트 아데나우어(Konrad Adenauer)수상이 오랫동안 권력 구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정치를 주도했으며, 영국에선 수상이 '동료들 가운데 으뜸(primus inter pares)'으로 여겨진 '내각 정부(cabinet government)'에서 수상의 각료들에 대한 권한이 크게 강화된 '수상 정부(prime-ministerial government)’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국에선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을 치르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어,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집단이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지도력은 종교적 분파 과정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났다. 많은 종교적 운동들은 예언자의 풍모를 지닌 인물들로부터 감화를 받고 그를 따른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고 자랐다. 자라투쉬트라(Zarathushtra), 석가, 모세, 예수, 마호메트, 츠빙글리(Huldreich Zwingli), 칼뱅(Jean Calvin), 존 웨슬리(John Wesley) 그리고 최제우(崔濟愚)와 같은 사람들은 그런 예언자적 인물들을 잘 대표한다. 그러나 현대에선 위에서 살핀 '행정적 지도자’들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도자들이 되었다. 기업 활동을 주도하는 '경영적 지도자’들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도자들이다. 일반적으로, 지도력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어떤 집단에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아울러 지도력은 그런 영향 가운데 집단의 목표들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발휘한 것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지도력은 '어떤 집단에서 한 개인이 그 집단의 목표들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다른 구성원들에게 미친 영향’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지도력의 기본적 특질들은 사람들만 아니라 동물들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근년에 동물학자들은 동물들의, 특히 사람과 가까운 유인원들의, 행동 양식들을 관찰하여 지도력에 관한 중요한 통찰들을 얻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지도력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해선, 지도력의 크고 작음만이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지도력의 방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 대통령의 지도력을 평가하려면, 먼저 그가 보인 지도력을 적절한 척도로 측정해야한다. 일반적으로 지도력을 측정하는 데는 두 가지 척도가 쓰인다. 하나는 지도자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에 미친 영향의 크기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끈 집단이 이룬 성과다. 이 두 가지 척도로 재보면, 김 대통령의 지도력은 분명히 낮다. 김 대통령의 지도력을 거부한 시민들이 너무 많고 그런 거부의 정도도 아주 심하다. 그리고 김 대통령의 통치 아래서 우리 사회는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크게 바뀐 환경에 맞춰 진화한 것도 아니다. 언론의 자유나 사회 통합과 같은 중요한 지표들은 오히려 나빠졌다. 씁쓸하게도, 이 사실은 무척 반어적(反語的)이니, 야당 지도자 시절 김대중 총재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결 원숙하게 만들고 지역감정을 누그러뜨릴 지도자로 꼽혔었다. 김 대통령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 지도력을 보인 까닭은 무엇인가? 지도력에 관련해서 아주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사실 하나는 지도자(Leader)만이 아니라 추종자들(Followers)도 적극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두 공동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서로 적극적으로 작용한다. 가장 적극적인 구성원들은 집단을 이끌기도 한다. 그리고 지도자와 추종자들은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자연히, 지도자가 어떤 추종자들이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정책이나 방안을 내놓으면, 그들은 지도자에게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는 “만일 지도자가 집단에서 통용되는 허용된 행동의 범위를 너무 멀리 벗어나면, 그도 집단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다.(The leader is not immune from group sanctions if he deviates too far from the bounds of acceptable behavior prevailing in the group)"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모든 지도자들은 또한 이끌린다. 수많은 경우들에서 주인은 그의 노예들의 노예다.”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사정은 김 대통령이 보인 낮은 지도력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를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허용된 행동의 범위를 너무 멀리 벗어났고” 그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제대를 받았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호남 편중 인사’라고 불리는 김 대통령의 정실주의(nepotism)가 그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여긴다.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정실주의에 빠진다.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보상해주는 길은 실질적으로 그 길뿐이다. 그래서 우리 시민들은 대통령의 정실주의적 인사를 어느 정도 용인한다. 그리고 그동안 호남에 대한 차별이 컸으므로, 이번엔 그런 정실주의가 다른 때보다 좀 짙게 나와도 용인할 마음이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김 대통령의 정실주의적 인사는 그런 범위를 너무 멀리 벗어났다. 북한에 대한 '햇볕 정책’도 그렇다. 비록 현실주의자들로부터 비현실적 유화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햇볕 정책’은 처음엔 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었다. 그러나 그것의 유화적 성격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 되자, 시민들은 그것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북한 퍼주기”라는 말로 불만을 드러냈다. 지도력과 관련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지도력은 근본적으로 특정 상황에서 발휘된다는 것이다. 어떤 지도자는 그가 지닌 성격이나 능력에 따라 선험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이 맞은 상황에서 필요한 성격과 능력을 그가 지녔기 때문에 지도자가 된 것이다. 즉 지도력은 상황에 의존한다. 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또렷이 인식하는 듯하다. 어느 사회에나 지도력은 상황에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한 우화들이나 일화들이 많다. 우리 사회의 경우, 오성군(鰲城君) 이항복(李恒福)과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두 정승들 사이의 일화는 대표적이다. 임진왜란 시절 임금이 북쪽으로 피난했을 때, 임금이 드실 음식이 나왔는데, 안전한 음식인가 확인하기 위해 신하가 먼저 맛보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당시 상황으로는 도승지를 지내서 임금을 가까이서 모셨던 오성군이 맛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오성군은 그 음식을 한음에게 내밀었고, 한음은“이렇게 위급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 필요하다. 오성군은 임기응변에는 나보다 훨씬 뛰어나므로, 자연히, 오성군은 지금은 나보다 자기가 나라와 임금께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했고, 나도 그 판단에 동의했다. 그래서 오성군은 음식을 나보고 점검하라고 내민 것이고, 나는 그의 뜻을 알았으므로 선뜻 받아서 시식 한 것이다.”라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든, 후대에 꾸며진 이야기든, 이 일화는 우리 선인들이 지도력은 상황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잘 깨달았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집단들에 속해서 삶을 꾸려간다. 그런 집단들이 문제들에 부딪히면 그 문제들에 관해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집단의 대응을 주도한다.어떤 친목 단체가 등산을 하게 되면, 등산 경험이 많은 사람이 의사 결정을 주도하고, 평상시에 그 친목 단체를 이끄는 사람들은 잠정적으로 그의 판단을 추종한다. 만일 등산하는 과정에서 누가 다치거나 아프게 되면, 의사나 의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이 이내 지도자로 떠오른다. 그런 지도자들은 '일시적 문제 해결자(momentary problem solver)' 또는 '기술적 지도자(Technical leader)'라 불린다. 이런 사정은 지도력이 특정 상황이라는 맥락 속에서 발휘된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준다. 지도자들의 유형을 나누는 기준들은 여럿이 있다. 비교적 널리 쓰이는 분류는 지도자들을 권위적 지도자(authoritarian leader), 방임적 지도자(Laissez-faire leader) 그리고 민주적 지도자(democratic leader)의 세 유형으로 나누는 방식이다. 지도력이 상황에 의존하므로, 이 세 유형들은 선험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어떤 지도자가 만난 상황에 따라 그의 지도력의 효율이 달라진다. 현대 민주 사회들에선 여론이 점점 중요해지고 직접민주제의 특질이 짙어지므로, 합의 정치(Consensus politics)를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대체로 효율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렇다. 아쉽게도, 김 대통령은 성품과 행동에서 권위적 지도자다. 그래서 합의 정치를 추구하지 않았다. 평판이 나쁜 사람들을 계속 써서 '오기 인사’라고 불린 인사 정책에서 그의 권위적 성품이 잘 드러난다. 게다가 거의 좁은 정치적 기반은 그런 권위적 지도력이 안은 문제들을 크게 증폭시켰다. 특히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그의 국정 운영을 아주 어렵게 만들었고 그의 지도력이 발휘될 여지를 크게 줄였다. 김 대통령의 경험은 미국 조시 부시(George W. Bush)대통령의 경험과 괴로운 대조를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주지사로 자신의 정치 경력을 쌓았다. 린든 존슨(Lyndon Baines Johnson)대통령이 텍사스 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원래 텍사스 주는 민주당의 아성이었다. 부시가 주지사였을 때도 주 의회는 민주당이 줄곧 장악했었다. 그러나 공화당 출신 주지사인 부시는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잘 협력해서 실적을 쌓았고, 그 실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Al Gore)후보는 성품, 자질, 능력 그리고 경력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뛰어났고, 지지도도 아주 비슷했으며, 실제로 선거 결과도 그러했다. 두 후보들이 서로 다른 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부시가 앨 고어보다 훨씬 합의 정치에서 뛰어나다는 점이었고, 바로 그 점을 들어서 적잖은 사람들이 부시를 지지했었다. 그런 사실이 잘 보여주듯, 현재 민주 국가에선 화합 정치를 추구하는 민주적 지도자가 다른 유형의 지도자들보다 적합하다. 우리 사회처럼 모든 부문들에서 크고 깊은 변화들이 일어나는 사회에선, 의견들이 거세게 대립하고 이해들이 혼란스럽게 얽혀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 김 대통령이 권위적 지도자였다는 사실은 김 대통령 자신에게나 우리 사회에나 불운이었다. 지도력은 집단 속에서 발휘되므로, 지도자는 자신이 이끄는 집단의 욕구들(needs)에 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집단들이 지닌 주요 욕구들은 둘이니, 하나는 목표들의 달성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의 유지다. 집단의 그런 욕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족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는 지도자들은 추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거나 몰려난다. 불행하게도, 김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그런 주요 욕구들에 대해서 관심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선 90%가 넘는 시민들이 남북한의 통일을 바란다. 그러나80%나 되는 시민들은 통일에 드는 큰 비용을 세금으로 부담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통념과는 달리,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우리 시민들이 가장 열망하는 것은, 그래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김 대통령이 남북한의 통일을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자신의 지도력을 모두 그 목표의 달성에 쏟은 것은 근본적 실책이었음이 드러난다. 김 대통령은 '집단의 유지’에서도 실패했다.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약화를 불렀다. 부산에서열린 '아시아 경기’에서 태극기를 홀대하고 '반도기’라는 법적 근거가 없는 깃발을 장려한 것은 그런 실패를 상징한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종전의 지역적 갈등과 이념적 갈등이 부쩍 심각해졌다. 자연히,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일체성이 상당히 훼손되었다고 느끼며, 김 대통령이 '집단의 유지’라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소홀히 했다고 여긴다. 김 대통령이 그렇게 우리 사회의 집단적 욕구를 잘못 이해하고 그것들에 관심을 제대로 쏟지 않은 터에, 어떻게 그의 지도력이 효과적이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그러면 다음 대통령은 어떤 지도력을 보여야 하는가? 위에서 설명한 집단의 두 가지 주요 욕구들 가운데, 집단의 유지는 목표들의 달성보다 앞선다. 어떤 집단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목표의 달성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연히, 어떤 집단이 위기를 맞았다고 구성원들이 판단하면, 그들은 당연히 목표들의 달성보다는 집단의 유지에 마음을 쏟는 지도자를 고른다. 지금 대부분의 시민들은 우리 사회가 위기를 맞았다고, 그래서 대한민국 체제를 유지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긴다. 안으로는 보다 원숙한 사회로의 진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맞았는데, 이념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분열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밖으로는 세계화에 따른 적응이 필요하고, 한반도의 국제적 환경을 보다 좋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북한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은 대한민국 체제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이 '국민 통합’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쓰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무척 어렵다. 지금 주요 대통령 후보들은 시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인데, 김대중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누리는 지지도는 40%를 넘은 적이 없다. 그렇게 약한 지지 기반은 대한민국의 체제를 강화하는 작업을 무척 어렵게 만든다. 이런 과제를 원활하게 이루려면, 화합 정치가 필수적이다. 대통령의 지도력과 같은 '행정적 지도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그것이 '원격적 지도력(Leadership at a distance)'이라는 점이다. 즉 지도자와 추종자들이 서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도자와 추종자들 사이의 관계는 그 둘의 매개를 기능적으로 수행하는 대중 매체들, 조직된 집단들 및 개인들과 같은 매개자들을 통해 맺어지고 유지된다. 현대 국가와 같은 거대한 집단의 경우엔 그런 특질이 두드러진다. 자연히, 대통령이나 수상과 같은 지도자들은 지도력의 발휘 과정에서 그런 매개자들에게 크게 의존한다. 그런 매개자들 가운데 흔히 잊혀지지만 지도자에게 무척 유용할 수 있는 매개자는 반대 정치 세력의 지도자들이다. 모든 정치 지도자들에겐 필연적으로 적들이 생긴다. 그런 적들을 되도록 줄이고, 어쩔 수 없이 나온 적들은 덜 적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성공적 지도력의 요체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선, 반대 세력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이 좋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들의 이런 기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누르거나 그들의 지지 기반을 없애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총풍', '새풍' 그리고 '병풍'이라 불린 공세를 통해 압박했다. 그리고 '의원 빼가기’를 통해 다수파의 지위를 구축하려 했다. 그런 시도는 당연히 이 총재와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을 불렀고,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실책들과 겹쳐서, 지도력의 상실을 불렀다. 이렇게 보면, 다음 대통령이 발휘해야 할 지도력의 모습은 또렷해진다. 그는 대한민국 체제 유지에 무엇보다도 큰 관심을 쏟아야 하고, 그 일엔 화합 정치가 필요하며, 화합 정치의 요체는 '적'을 잘 고르고 그에게 지도력의 매개 기능을 맡겨서 자신의 반대 세력에게도 자신의 지도력이 미치도록 해야 한다.거듭 강조하지만, 정치 지도자에겐 적을 잘 고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물다.
복거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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