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기록한 공전의 히트로 인하여 1960~70년대 파독광부 및 간호사 등 파독
근로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자유경제원은 이에 착안하여 영화에서 밝힌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주목했다. 경제성장을 이끈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책과 이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자유경제원은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유경제원은 첫 번째 발걸음으로
영화 국제시장의 가장 큰 무대인 독일을 방문했다. 파독 근로자의 땀과 눈물의 장소를 방문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파독근로자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일정이었다.
3개월에 걸친 준비 끝에 자유경제원은 4월 19일부터 24일까지 6일간 독일을 방문했다. 이에 미디어펜은 자유경제원의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에 동행하여 현장을 방문하고 독일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수고했던 의미를 되새겼다. 자유경제원은 독일에 이어 향후 베트남파병, 중동건설근로자 등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재조명할 예정이다. 아래 글은 자유경제원의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에 동행했던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의 탐방기 전문이다. [편집자주] |
▲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
[탐방기] 탄광과 병원 그리고 추억
글쎄, 기행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본지가 얼마나 되었던가? 희미하게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은 지금부터 40년 전 대학 1년 여름방학 제주도를 다녀온 감상을 일기 속에 남겼던 일이다. 어쨌든 중간시험 기간을 이용하여 자유경제원이 주최하는 의미 깊은 행사에 참여하여 독일을 다녀왔다. 방독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었던 만큼 이 글 속에서는 우선 이번 방문의 취지와 의의에 대해 재삼 음미해 보기로 한다.
I. 방독의 목적과 의미
금번의 방독은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원을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자유경제원의 의도와는 별도로, 필자는 나름대로 이 방독의 의의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우선,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세미나를 들 수 있는데, 이 세미나는 이번 방독의 가장 핵심이었다. 물론 이런 세미나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개최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 초 지극히 어려운 여건에 처한 대한민국이 광부와 간호사의 파독을 기점으로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회고해 볼 때, 이번 방독에서의 세미나는 특별한 감동과 생동감이 넘치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 자유경제원의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에 동행한 탐방 일행이 프랑크푸르트 병원(파독 간호사 근무지)에서 병원장 및 관계자, 파독 간호사들과 함께한 사진. /사진=미디어펜 |
둘째로, 당시 파독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근무했던 탄광과 병원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그들의 근로환경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방독의 또 다른 의미라고 본다.
그리고 현재 독일에 정착하여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먼 옛날 그들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겪었던 고뇌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점 또한 이번 방독의 의의라고 볼 수 있다.
II. 방독에 관한
소회(所懷)
이제부터 이번 방독을 통해 가지게 된 생각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볼까 한다.
우선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된 세미나에서 느낀 점이다. 부끄러운 고백인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중고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경우에도 이렇게 장시간 청중의 입장에서 타인의 발표와 의견 개진을 경청해 본 기억이 없다. 참석인원도 몇 명 되지 않는 행사에 게다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까지 모신다고 해서 그 전날부터 신경이 많이 쓰였다. 혹시 졸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서 세미나 전날 밤은 그렇게 좋아하는 술까지 절제하며 숙면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정작 세미나 당일 그 노파심이 기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혀 졸리지 않았고 오히려 대부분의 발제와 토론들을 매우 흥미롭게 듣고 있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한 발제도 있었고 별로 재미없는 토론도 있기는 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지만 내 옆에 앉았던 모 교수는 오후가 되자 “오후 일정은 좀 단축했으면 원이 없겠다”라는 취지로 수차례 독백했었다.
▲ 자유경제원은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뒤스부르크 체육관을 방문했다. 뒤스부르크 체육관은 구 함보른 탄광 공회당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장소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가 당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밝혔던 연설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
이제 세미나 얘기를 하려 한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논의해 왔지만, 김승욱 교수의 발표에서처럼 “내 가족을 위하여”라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우리 경제근대화의 한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정말로 참신한 시각이자 발상이라고 사료됨은 물론, 음미할수록 설득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김 교수의 논지와 유사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아마 1966년 런던 월드컵이었으리라. 당시 소련은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막강한 공격력은 물론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고 자자한 칭송을 듣던 '야신’이 최후의 수문장 역할을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준결승과 3,4위전에서 모두 소련이 그토록 경멸하던 '오염되고 타락한 자본주의’ 팀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급기야 화가 치민 소련 감독이 어느 서방 팀 감독에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는 숭고한 공산주의와 국가를 위해 분투하는데 오합지졸로 밖에 안 보이는 당신의 선수들한테서는 어떻게 저런 투지가 나오느냐?” 이에 서방 팀 감독은 “당신 선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념을 위해 싸우지만 우리 선수들은 자신과 가족의 빵을 위해 싸운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풍습도 전혀 다른 이역타향에서 분골쇄신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념이나 국가가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 했던 것이다. 월남의 정글에서 치명적인 풍토병과 베트콩을 상대로 어려운 전투를 치르던 파월장병들도, 그리고 용광로를 방불케 하는 중동의 사막에서 건설공사에 몸을 던진 근로자들도 모두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일 했던 것이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자유주의의 의미를 “나와 가족을 위하여”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음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미나가 진행된 하루 종일 '자유’라는 개념에 대해 숙고의 숙고를 거듭하였다. 필자의 아내(경인교대 김혜숙 교수)가 자유와 책임에 대해 언급할 때, 필자는 아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자유와 자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경제학이나 행정학에서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통해 자유와 자율을 연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철학적 논의에서 자율이라 함은 자유에 대한 내적 규제(inner regulation of freedom)를 의미하며 여기서 내적 규제의 기준은 윤리적 원칙이다. 즉, 자유가 도덕률에 위배될 경우 이를 행위자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자율인 셈이다. 자유에는 책무가 따라야 한다고 보는 견해나 자유에 대한 내적 규제를 중시하는 입장은 공히 자유와 방종(license)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유주의(liberalism)를 방임주의(laissez-faire)로 호도하는 시각은 바로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이기주의(egotism)를 혼동하는 것과 흡사하다. 진정한 자유주의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와 자율을 강조하는 신념이다. 이는 결코 무책임하고 무절제한 방임주의 내지는 이기주의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낀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파독 광부의 경우 원년의 멤버들은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은퇴하신 간호사들 몇 분들은 그야말로 파독의 원조였다. 그 분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과거 그 분들이 감내하고 극복해야 했던 역경을 막연하게나마 상상하면서 새삼 그분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이번 방독에서, 50여 년 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여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과 상봉하는 자리에서 읽었던 연설문을 낭독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 날의 감동적인 장면을 더욱 실감나게 재연하기 위해 평소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착용하던 색안경 'Ray Ban’을 짐 속에 챙겨오기도 했다. 연설문을 낭독하며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마음에 어떤 감회와 상념이 떠오르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새삼 숙연해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통치 말기에 유신(維新)체제를 강행하며 '냉혹한 독재자’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지만, 절대빈곤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우린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 보다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 자유경제원은 ‘경제발전 뿌리 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졸퍼라인(Zeche Zollverein)을 방문했다. 졸퍼라인은 과거 유럽 최대의 탄광시설이었지만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탐방 일행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
끝으로 이번 방독에서 출발할 때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수확이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독일의 연금제도와 의료보험에 관해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조명해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35년을 일을 해야 완전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독일의 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필자도 조만 간에 연금의 혜택을 받을 대상이지만, 사실 20세 좀 넘어서 시작한 직장생활을 20년만 하면 연금이 지급되는 현재의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대학교수의 경우는 일러야 30대 중반부터 경력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그리고 어떤 독일 병원장의 말대로 “정부가 독점하는 모든 것은 질적 저하(mediocre)를 가져 온다”고 본다. 정부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언젠가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과연 필자만의 기우일까?
또 다른 병원에서 만난 그리스(Greece)인 의사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리스(Greece)를 정치인들이 망쳤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Greece)가 유럽문화의 발상지라는 사실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분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덧 붙였다. 소위 보편적인 복지를 내세운 정치인들이 오늘 날의 그리스 사태의 주범들이다. 우리도 이대로 간다면 그리스(Greece)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이번 방독의 원래 취지와는 상관없었으나 필자에게는 매우 의미 있었던 일이 하나 더 있었으니, 다름 아닌 독일 낭만파 음악의 거장
Schumann의 집을 방문했던 것이다. 서양의 고전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필자에게 이 방문은 참으로 뜻 깊었다. 특히 그에게 오랫동안 음악지도를
받았던 Brahms가 같이 살았던 곳이기에 그 의의가 더욱 컸다.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Goethe의 집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아주 오래
전 독문학에 살짝 심취해 있던 시절을 떠 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 것도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III. 결어(結語)
정말 의미 있는 일정이었다. 식당, 음식, 맥주 대체로
좋았다. (양은 엄청 많고 짜기도 했지만) 특히, 오정근 교수, 김승욱 교수, 정승연 교수, 권혁철 박사, 남정욱 교수, 윤서인 작가, 전경련
권 팀장과 미스터 윤(존칭생략) 등등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다.
현진권 원장에 대해 몇 자 적어볼까 한다. 연령대나 직업별로 이질적인 집단을 매우 효율적으로 통솔하며 행사를 훌륭히 이끌었다. 현 원장은 경제학자고 필자는 교육학을 하기에 드물게는 이견이 있기도 하지만, 현원장의 기획력과 관리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이런다고 기행문 원고료 더 나오지 않는다는 것 필자도 안다.) 세미나 하는 날은 사람들이 오후 일정에 지칠까봐 필자가 “너무 강행군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점심시간 한 시간 반 주는데 무슨 강행군이냐”라고 반응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보채는 것을 포기했다.
그 전 날인가 아이케이아인지 뭔지 못 가게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조직을 통솔하려면 현 원장 정도의 강단은 있어야지.”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준 자유경제원과 현 원장께 감사한다.
동참했던 여러분들의 건강과 댁내 평안을 기원합니다!
(그런데 해단식 하는 날이 하필이면 밤 9시 너머까지 야간 대학원 강의 있는 날이람. 몇 시까지 들 드실 건가요?)
▲ 자유경제원 4월 22일 독일 현지 파독광부 기념회관(독일 중부 Essen 소재)에서 개최한 ‘파독근로자 :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 국제 세미나의 전경.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가 자유경제원 국제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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