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의 1년은 성공적이다. 다양한 담론이 등장하며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결론이 나오고 있지만 이들의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글로벌, 현장, 실익, 선택과 집중, 승부수 등 경영적 필수 조건을 두루 만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이 순항을 넘어 파괴적 혁신의 기치를 추구하려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먼저 비전의 제시다. 대중은 삼성에게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산출된 과실을 독차지했다는 비판을 가하곤 한다. 맞는 말일까. 일견 타당한 분석이지만 전혀 다른 측면의 접근도 가능하다.
▲ 출처=뉴시스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자유경제원 주최 연구토론회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경제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 성장의 실질적 주체는 기업과 기업가임을 간과하고 있다”며 “특히 삼성은 정부 주도 경제성장론이 주장하는 정부의 산업정책에 부응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고 보면 곤란하다. 이는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며 자본 나름의 축적의 전략으로 정부의 산업 정책이 옳다는 판단이면 산업정책에 부응했고, 오히려 삼성이 주도적으로 정부를 설득하여 만들어낸 산업 정책의 결과물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대중의 오래된 믿음과는 역행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을 해결하는 것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몹시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성공적인 비전을 노리기 위한 행보를, 많은 비판과 규제가 횡행하는 시점에서 올바르게 풀어낼 수 있을까? 일반적인 경영 능력과 별개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경영-정치적 판단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나눈 대화를 엮은 <김우중과의 대화>의 저자로 유명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삼성과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는 역으로, 현재의 상황이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래 비전도 필요하다. 모바일 헬스 케어 및 사물인터넷, 금융의 변화 및 다양한 계열사의 선택과 집중으로 실제적인 비전을 찾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B2B2C의 가능성이 주목받는 이유다. 사내 방송을 통해 강조되고 있는 B2B2C는 기업 간 거래를 의미하는 B2B와 기업과 소비자 간 시장을 뜻하는 B2C를 합친 말이다. B2C 중심의 현 체제에서는 성장동력이 없음을 간파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화두를 제시하는 대목이다. B2C의 강점을 품어 B2B에 진출하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삼성전자는 전통적인 B2B 사업인 반도체에서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휴대용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를 출시해 SSD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출처=뉴시스 |
이런 측면에서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연구개발 비용이 꾸준히 상승하는 대목은 고무적이다. 지난 15일 삼성그룹은 분기보고서를 통해 올해 1분기 연구개발비로 3조7957억원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순수 연구개발비는 3조4912억원으로 특허를 비롯한 자산화한 비용도 304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1분기 1867억원 대비 약 1178억원 늘어난 수치다. 삼성전자 매출과 비교하면 연구개발비중은 8.1%까지 늘어났다. 역대최고치다. ‘열공모드’에 빠진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사급 인재도 2년 동안 1000명이 늘었다.
현재 업계에서 이 부회장은 재벌 총수답지 않은 소탈한 행보로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가 프로 야구팀인 삼성 라이온스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을 때 소박하고 친절한 ‘인간 이재용’을 목격했다는 설이 인터넷을 달굴 정도다. 이러한 털털한 분위기가 현장을 중시하는 행보와 만나며 이 부회장의 경쟁력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전용기를 애용하지 않으면서 직접 현장을 찾아 꼼꼼하게 현안을 살피며, 그룹의 의사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며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시장 상황을 분석하며 키워드를 제시한 이건희 회장이 촌철살인의 경영을 보여준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직접 발로 뛰는 현장파 경영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그 단적인 성과물이 프리미엄 스마트폰인 갤럭시 S6다. ‘이재용폰’으로 불리는 갤럭시 S6는 그 자체로 이견의 여지가 없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으로 여겨지며 빠르게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보아오 포럼에서 공언했듯이 모바일 헬스 케어 산업의 일환으로 보청기 산업까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쟁력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는 셈이다. 이에 힘입어 삼성그룹 내외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경영적 성공에 힘입어,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삼성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자유로운 경쟁력 제고에 발목을 잡힐 수 있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지만, 일단은 긍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 출처=삼성전자 |
[미니 인터뷰] 서용구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서용구 교수는 지난 5월 6일 삼성 수요 사장단회의에 강사로 참석해 저성장 시대 기업의 유통전략’을 주제로 강연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삼성이 당장 할 수 있는 방법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할 수 있는 기폭제를 오래된 산업이자 뜨거운 산업인 ‘유통’에서 큰 방향을 끌어냈다.
서용구 교수 출처=숙명여대 |
현재의 삼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변화다. ICT의 발전으로 모든 산업이 급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많은 기회가 등장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삼성도 마찬가지다. 지금 분위기가 좋다고 앞으로 계속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발상의 전환을 노려야 한다.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이 부분을 강조하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인가?
유통채널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삼성을 비롯한 기업의 유통채널은 이제 ICT의 발전으로 전통적인 의미를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당장 삼성만 해도 반도체와 스마트폰 경쟁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고 있지만 신규 성장동력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미스코리아 이야기를 했다. 옛날이면 미스코리아가 미모만으로 활동하며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자신을 알리는 다양한 채널이 필요하고, 정말 다양한 활동이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 옴니채널이다. 당장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고 있는데 단순한 채널을 강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동빈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최근 “백화점의 경쟁자는 야구장이고, 극장이다”라고 했는데,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총체적 변화의 시점이 왔다.
삼성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소비자가 ICT 기술로 편안하게, 손가락으로 상품을 고르는 시대다. 삼성도 옴니채널을 위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화두로 제시한 B2B2C가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 삼성전자의 전국 대리점 숫자는 100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모든 대리점을 하이마트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오프라인 삼성 대리점이 타사의 제품도 판매하고, 제품의 체험과 쇼핑, 구매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최소한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대목인 것은 분명하다.
삼성이 네트워크, 즉 유통사업을 포기했지만 ICT의 발전으로 유통의 가능성이 더욱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러한 기조를 그룹 경영 전반에 퍼지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삼성전자의 대리점이 하이마트로 변신하는 순간, 힘들다면 그에 준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는 순간 삼성의 성장동력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삼성의 화두라면?
혁신적 변화를 내적으로 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삼성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삼성디지털프라자와 삼성닷컴을 연계한 옴니채널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법인(SEA)은 이를 충실히 이행하며 다양한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는 상황이다. 혁신적 변화를 위한 준비는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정교한 타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부적으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겠지만, 삼성은 앞으로 B2B2C와 같은 기상천외한 화두를 제시하며 젊고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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