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극우-친박(親朴)’ 조합이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할 ‘붙박이’ 공영방송 이사회의 탄생이다.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이 ‘여야 정파 나눠먹기’로 특정인의 ‘3연임’(9년)을 가능하게 해선 안 된다는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초의 인선을 밀어붙였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표결을 강행한 것이다. 방통위의 전신인 구 방송위원회 시절까지 포함해 방통위가 최소한의 내부 인선 기준도 없이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선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사상 초유의 ‘3연임’ 공영방송 이사들이 등장하게 됐다. 이미 두 차례 방문진 이사를 지낸 차기환 이사는 자리를 옮겨 KBS 이사로 추천됐고 김광동 이사는 방문진에서 3연임을 하게 됐다.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고영주 이사의 경우 이사직은 처음이나 앞서 두 차례 방문진 감사를 지냈고, 야권 측의 최강욱 방문진 이사도 연임됐다. KBS에선 이인호 현 이사장이 연임됐다.
결국 KBS와 방문진 총 20인의 이사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5인(고영주 이사 포함시 6인)의 이사들이 3연임, 연임에 성공한 것으로, 사회 각 분야의 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회에 다양하게 참여하도록 한 방송법 등의 취지는 무색해졌다. 또 추천 정파에 대한 충성은 물론 해당 방송사의 경영진과의 유착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날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제도 개선안을 하반기 국정과제 포함할 것을 제안하는 동시에 △KBS‧방문진‧EBS 통산 공영방송 이사 1회 이상 연임(6년) 금지 △공영방송 이사 정치활동 금지 △공영방송 이사회 평가제도 도입 등의 법제화를 위한 검토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야권 추천 위원들이 앞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원칙으로 제시한 내용들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추후 법제화를 검토, 지금의 현실을 더 이상 재연하지 말자는 요구를 하고 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평가할 수도 있지만, 현실 가능성을 완전히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남는다.
KBS로 자리 옮겨 ‘3연임’ 성공한 차기환…KBS·방문진 이사 4분의 1이 연임
이날 방통위는 비공개로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차기 이사회 구성 관련 안건을 논의했다. 지난 7월 31일과 8월 6일, 7일 세 차례 파행 끝에 가까스로 회의를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제’ 원칙까지 지키진 못했다. 앞서 세 차례의 파행으로 보름 가까운 논의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위원들은 특정인의 ‘3연임’ 반대 등 야권 추천 위원들이 제시한 원칙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고, 결국 이날 회의에서도 기존의 명단을 강행했다.
그 결과 이날 회의에서도 야권 추천 위원 2인의 반대 속 최성준 위원장 등 사실상 여권 추천 위원 3인의 뜻에 따라 차기 KBS‧방문진 이사 명단을 확정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KBS 이사회
△ 강규형 명지대 교수 △김경민 KBS 객원 해설위원 △변석찬 전 KBS 비즈니스 감사 △이원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이인호 현 KBS 이사장(연임) △조우석 전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차기환 전 방문진 이사(3연임, 이상 여당 추천) △권태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대표이사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장주영 변호사(법무법인 상록 대표 변호사,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전영일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이상 야당 추천)
방송문화진흥회
△고영주 변호사(법무법인 KCL, 전 방문진 감사 연임)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김광동 현 방문진 이사(나라정책연구원 원장·3연임) △김원배 현 방문진 이사(목원대 총장·연임)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 △이인철 변호사(이인철 법률사무소, 이상 여당 추천) △유기철 전 대전 MBC 사장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전 울산 MBC 사장)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연임, 이상 야당 추천) / △감사: 한균태 경희대(서울) 부총장
▲ 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차기 이사회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인호 KBS 이사장(연임)과 차기환 방문진 이사(차기 KBS 이사·3연임), 김원배 방문진 이사(연임) ⓒ뉴스1, TV조선 화면캡쳐(차기환 이사) |
이 중 차기 KBS 이사로 추천된 차기환 이사는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의 특정인 ‘3연임’ 반대의 핵심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8기(2009년)와 9기(2012년) 방문진 이사를 지냈는데 이번엔 자리를 바꿔 KBS 이사로 추천된 것이다. 자리를 옮겨 공영방송 이사를 ‘3연임’ 하게 된 차 이사를 두고 두 방송의 구성원들뿐 아니라 정치권, 언론‧시민단체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례로 지난 5일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는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며 MBC를 철저하게 망쳐놓은 인물이 청와대의 강력한지지 아래 KBS 입성을 앞두고 있다”고 지적하며 내년과 내후년 총‧대선을 앞두고 KBS를 통제하기 위한 정권의 노림수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차 이사가 그간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는 동안 보인 극우적 행태와 정치 개입 모습 또한 논란거리다.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차 이사는 당시 현직 서울시장으로 재선을 위해 뛰고 있던 박원순 시장에 향한 ‘일베’의 무상급식 관련 의혹부터 박 시장 부인의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 글들을 퍼다 날랐다. 또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서도 “일부 유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다”며 비판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극단의 이념을 앞세우는 ‘일베’의 논리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와 정적을 공격하는 태도를 보인 인사를 세 차례나, 그것도 총‧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 공영방송의 대표 격인 KBS 이사회로 옮겨 직을 맡기는 게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이유로,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결국 방송 독립과 공공성을 수호하는 공영방송 이사회가 아닌 ‘선거관리 공안이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정권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김광동 이사 역시 차기환 이사와 함께 ‘3연임’의 기록을 세웠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고영주 이사의 경우 방문진 이사직은 처음이나 이미 두 차례 방문진 감사를 맡았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부림사건 담당 검사였던 고 이사는 이번에 연임된 김원배 이사와 함께 차기 방문진 이사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고 이사는 차기환 이사와 함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 조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세월호 유족에 대한 많은 비판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해 6월 열린 방문진 이사회에서 “해경이 79명을 구조했는데 (MBC 보도에선)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보도하냐” 등 정부 두둔과 보도 개입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김원배 이사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냈던 정수장학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일련의 구성에 대해 MBC의 한 관계자는 “이미 두 차례 방문진 이사와 감사를 지내며 공정방송 파업에 나섰던 구성원들을 잇달아 해고‧징계한 MBC 경영진과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는 인물 등이 방문진에 다시 남게 된 것”이라고 현 상황을 요약했다. MBC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을 맡는 방문진이 도리어 MBC 경영진과의 유착 관계를 공고히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이인호 현 KBS 이사장의 연임도 논란거리다. 취임 이후 KBS 보도‧제작에 대한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인호 이사장은 최근에도 KBS 보도 독립성을 침해하는 모습으로 물의를 빚었다. 지난 6월 24일 KBS의 메인뉴스 <뉴스9>의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하며 지난 7월 8일 보도 경위 파악을 목적으로 임시이사회를 일방 소집한 까닭이다. 야당 추천 이사들의 반발로 당시 이사회에 해당 안건은 상정되지 못했으나 이사회가 개별 보도를 대상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 자체가 보도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앞서 새정치연합 소속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위원들도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방패막이가 돼야 할 이사장이 앞장 서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8월 7일 성명)고 이 이사장을 비판한 바 있다.
野 방통위원들 “책무 다하지 못해 송구…미결 과제 입법화 추진”
일련의 인선이 강행된 데 대해 야권 추천의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이날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전례 없는 이사직 3연임과 함께 방송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는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인사도 공영방송 이사로 다시 들어가게 된 점에 대해 송구하다”며 “그동안 시민사회의 강한 요구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책무를 다하지 못해 실망스런 결과가 나오게 된 데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며,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두 상임위원은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 공공성 구현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이사회를 구성함에 있어 지금과 같은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선’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며 “3년 뒤 인선 때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계 법령의 개정과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두 상임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 이번과 같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 △KBS‧방문진‧EBS 통산 공영방송 이사 1회 이상 연임 금지 △공영방송 이사 정치활동 금지 △공영방송 이사회 평가제도 도입 등을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상임위원이 이날 제시한 과제들의 입법화 가능성에 대한 의문에 고삼석 상임위원은 “우리가 제안한 4개의 과제에 대해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위원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대해 추후 내부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검토하자는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만큼,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