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이사회 멤버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세 차례 연기 끝에 가까스로 공영방송 KBS와 MBC의 이사 선임이 완료된 후 나온 반응이다. 방송계 안팎에서는 친박·극우 성향의 이번 이사 구성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한 정권의 ‘준비작업’이라는 지적과 함께 공영방송 정상화는 요원해졌다는 우려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13일 오후 비공개로 전체회의를 열어 공영방송 KBS이사 11인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이사 9인에 대한 선임을 완료했다. 향후 3년, 그러니까 오는 2018년까지 이들 이사회는 각 공영방송의 최고의결기관으로 활동할 것이다. 특히 이번 이사들은 임기동안 올해와 내년 KBS와 MBC 사장 선임하는 것은 물론 총선(2016년)과 대선(2017년) 까지도 거친다. 공영방송이 이들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KBS 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 7인에는 △이인호 현 KBS이사장 △강규형 명지대 교수 △김경민 한양대 교수 △변석찬 전 KBS 라디오센터장 △이원일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차기환 전 방문진 이사 △조우석 문화평론가, 야당 추천 이사 4인에는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장주영 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전영일 민주언론시민연합 부이사장 △권태선 전 <한겨레> 편집인 등 총 11인이 선임됐다.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 6인에는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이인철 인권위원회 인권위원 △고영주 전 방문진 감사 △김원배 전 방문진 이사 △김광동 전 방문진 이사, 야당 추천 이사 3인에는 △최강욱 전 방문진 이사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유기철 전 대전MBC 사장 등 총 9인이 선임됐다. 감사로는 한균태 전 한국언론학회 회장이 선임됐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방송사의 공적 책임에 관한 사항을 다루고 방송의 운영계획, 예산·자금 계획 등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역할은 물론 외부의 부당한 압력 등을 막고 방송사가 공적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KBS이사회와 방문진의 경우 방송사 사장을 임명·추천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도 이사회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뉴라이트·친박(親朴)·공안검사 출신 등 부적격 논란 인사 다수 연임·3연임
그러나 이번 이사 가운데 차기환(3연임), 이인호(연임), 고영주(감사 연임 포함 3연임), 김원배(연임), 김광동(3연임) 이사 등 방송계 안팎에서 “공영방송 파괴자” 등으로 불리는 등 ‘부적격’ 인물로 지목된 인물이 다수 포함돼 있어 과연 공영방송의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큰 상황이다.
자유주의연대 출신으로 뉴라이트 계열 인사인 차기환 이사는 지난 6년 동안 방문진 이사로 재임하며 김재철 전 사장 해임안 부결에 앞장서는 등 MBC를 망가뜨린 장본인 중 하나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차 이사는 세월호 유가족 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고, ‘박원순 저격수’를 자처하며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박 시장을 비하하는 ‘일간베스트 저장소’(극우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물을 옮기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역시 3연임을 달성한 김광동 방문진 이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추천으로 방문진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진 뉴라이트계 극우 인사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논란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을 적극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공안검사 출신이자 영화 <변호인>의 바탕이 된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 출신으로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고영주 이사는 지난 6년간 방문진 감사를 맡았다. 고 이사는 지난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MBC가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낸 것을 끝까지 두둔했으며, 그해 6월 방문진 이사회에서는 “해경이 79명을 구조했는데 (MBC 보도에선)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고 하나. (세월호 참사 책임에) 왜 정부를 끌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임에 성공한 김원배 방문진 이사는 정수장학회 출신으로 친박계 인사로 분류된다. 김 이사(목원대학교 총장)는 지난 2014년 반값등록금국민본부, 교수노조, 목원대비상대책위원회 등 5개 단체로부터 1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업무상 횡령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당한 바 있다. 김 이사의 업무상 배임 혐의 사건은 지난 2013년 대전지방경찰청 경제1팀이 사실 관계를 수사한 결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검찰은 같은 해 12월 김 이사의 혐의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 출신의 이인호 현 KBS이사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이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친일·독재 미화 논란의 ‘대안교과서’의 감수를 맡았으며, 이후 국민원로회의 위원을,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이 이사장은 지난 6월 24일 KBS의 메인뉴스 <뉴스9>의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설 보도를 비판하며 보도 경위 파악을 목적으로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보도 독립성 침해라는 비판이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됐으며, 앞서 <광복70주년 특집-뿌리깊은 미래 1편>(이하 뿌리깊은 미래)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제작한 제작진에 대해 ‘우매하다’라고 표현하는 등 거듭 방송 개입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는 13일 상임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차기 이사회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인호 KBS 이사장(연임)과 차기환 방문진 이사(차기 KBS 이사·3연임), 김원배 방문진 이사(연임) ⓒ뉴스1, TV조선 화면캡쳐(차기환 이사) |
새로운 인물들도 극우 성향 인물 다수 포진
새롭게 이사로 선임된 인물 가운데도 극우 성향의 인물이 다수 포함되며 방송사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이인철 변호사는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행변) 회장으로, 행변은 3연임에 성공한 차기환 변호사를 비롯해 김기수 변호사, 강래형 변호사 등이 모여 지난 2014년에 결성한 보수 성향의 변호사 모임이다. 행변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과 기소권 보장하라고 요구는 위법하다고 하는가 하면 세월호 유가족과 대리기사 간 불거진 폭행사건에서 대리기사 측 변호를 맡고 있다.
이 변호사는 행변 칼럼을 통해 국회법 개정안 문제와 관련해 “소관 상임위원회의 권한 확대의 시도에 의해서 전체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개정 국회법의 시도는 국회에 의한 참사의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권오훈, 이하 KBS본부)가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거론한 새롭게 선임된 강규형, 조우석, 변석찬 이사 등도 “친박, 극우로 대표되는 부적격 인사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변석찬 전 KBS라디오센터장은 KBS 내부에서 “KBS를 망친 인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지난 2013년 봄 개편을 앞두고 KBS가 친박 성향의 고성국 정치평론가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의원의 처남 최양오씨를 라디오 MC로 기용하려는 시도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당시 20년차 이상 라디오 PD들은 변석찬 라디오센터장에 대한 보직해임을 촉구한 바 있다.
또한 KBS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9일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0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주례 연설을 강행한 바 있는데, 당시 라디오센터장을 맡았던 사람이 바로 변석찬 이사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모임인 ‘역사왜곡과 학문탄압을 걱정하는 지식인 모임’ 회원으로 책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의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학자, 언론인 등 7명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 ‘교과서 분석팀’은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일었던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가장 안전한 교과서”라고 한 바 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 조우석은 뉴라이트 계열 언론인이라고 평가받는 인물로, 지난 2013년 11월 14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탄신 96주년 기념 강연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지도자들을 나쁘게 평가하는 것을 주도하는 세력은 ‘좌파’다. 좌파 세력은 크게 문제가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좌파정서에 물든 대표적 인물로는 안철수 의원과 조국 서울대 교수, 진중권 평론가, 공지영 소설가, 김제동, 김미화 등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8일째인 지난 2013년 3월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뉴스1 |
“2016년 4월 총선·2017년 12월 대선 위한 정권 차원 준비작업”
방송계 안팎에서는 이번 공영방송 이사회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과 함께 이번 이사 선임은 2016년 4월 총선과 2017년 12월 대선을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는 여론싸움이고 여론싸움의 핵심은 언론, 그 중에서도 방송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같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바로 여론을 장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KBS가 수년간 다수의 평가에서 영향력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매체라는 것을 봐도 정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할지 짐작할 수 있다.
당장 KBS는 오는 11월 조대현 사장의 임기가 완료되면서 신임 사장을 임명해야 한다. 몇 달 뒤인 2016년 3월에는 안광한 MBC 사장의 임기가 끝나게 된다. 이들의 뒤를 잇는 신임 사장들은 2017년 대선까지 방송사를 이끌어 나갈 텐데, 이들을 선임하는 것은 바로 이사회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대야소로 꾸려진, 특히나 ‘공영방송 망가뜨리기’에 앞장섰다고 비판받는 인물들을 다수 연임 및 3연임 시킨 상황에서 방송사 안팎에서는 이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공영방송사의 상황은 더욱 암울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위원장은 “청와대 낙점 인사들을 통해 방송을 완전히, 편하게 틀어쥐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인다. 도대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며 “결국 이번 이사들이 할 일은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사장을 뽑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집 중. |
“정권의 방송 장악 더욱 노골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8일째인 지난 2013년 3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후 첫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방송 장악은 그것을 할 의도도 전혀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 문제는 이 자리에서 국민 앞에서 약속드릴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약속은 물론 대선 후보 당시 대선 공약으로 내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약속 역시 '공약(空約)’이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번 이사 선임이며, 방송계 안팎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정권의 방송장악이 보다 더 구체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이사회는 역사상 최악의 멤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방문진 이사로서 MBC를 실질적으로 파탄을 낸 차기환 이사를 KBS로 보냈다는 것은 보도를 중심으로 방송을 적극 통제하고, KBS를 이념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사장이 누가 되든 사실상 이사회의 통제를 받게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지만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더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MBC의 경우 노조의 지난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해고자와 부당징계를 받은 구성원 등이 여전한 문제로 남아 있어 MBC의 안정화가 필요한 상황이나, MBC 정상화는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게 방송계 안팎의 중론이다.
실제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는 최근 <시사인>(411호)을 통해 2012년 MBC노조의 170일 파업 당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MBC 파업 사태를 해결하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이를 외면하고 있다고 증언하며 “(지금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은 당선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선 출마’라는 정치적 명분을 위해 MBC 정상화를 약속했고 이후 대선 공약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집권 후에는 방송장악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권을 거쳐 박근혜 정권에서도 공영방송의 공공성과 공영성을 바로 세우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이사 선임은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방송 정상화 약속을 사실상 ‘파기’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연임, 3연임 된 이사들은 그동안 공영방송 파괴에 가장 앞장섰던 최악의 부적격 인사고, 이들을 다시 기용했다는 것은 언론장악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에서도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