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이 17일 열린 상임위원 전체회의에서 “향후 공영방송 이사 인선에서 구체적인 원칙과 기준을 정해 사용(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방통위가 차기환 KBS 이사와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하 방문진) 이사 등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9년)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밀어붙인 데 대한 비판이 높은 가운데 최 위원장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 원칙과 기준 마련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서 야권 추천의 김재홍‧고삼석 상임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후반기 주요 국정과제에 포함시켜 추진하자는 주장과 함께 △KBS‧MBC‧EBS 이사 통산 3연임 금지 △공영방송 이사 정치활동 금지 △공영방송 이사 평가제도 도입 등을 법에 명문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최 위원장이 사실상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의 이 같은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현실에서 법제화 노력이 이어질지 여부에 관심에 쏠린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6일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
野위원들 “공영방송 이사 묻지마 인선, KBS마저 정치·이념의 싸움터로”
고삼석 상임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안건에 대한 논의에 앞서 지난 13일 방통위가 단행한 KBS‧방문진 이사 인선에 대한 내부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상임위원은 “이번 인사는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도 찾아볼 수 없는 ‘묻지마 인사’로 향후 (방통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KBS도 정치‧이념의 싸움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 상임위원은 이런 우려의 배경에 전례 없는 ‘3연임’이 이번 인선에서 현실화된 것을 꼽았다. 그는 “(KBS이사회와 방문진 출범 이후) 37년 동안 ‘3연임’ 금지를 불문율처럼 지켜왔지만 이번에 초유의 인사가 났고 (심지어) 방문진 이사 출신이 KBS 이사로 갔다”며 “일반의 통념을 무시한 처사인 만큼 (인선을 밀어붙인 여권 상임위원들로부터) 합당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고 상임위원은 “더 큰 문제는 KBS‧방문진에 (그동안) 편성‧제작의 문제(자율성 침해)를 일으킨 인사를 다수 연임시켰다는 부분이며, 이들은 하나같이 이념 논쟁으로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세월호 유가족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못질을 한 (공영방송 이사로서) 적절하지 못한 인사”라고 비판했다.
고 상임위원은 이 같은 인선을 위해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이 ‘합의제’의 원칙 대신 ‘표결’을 밀어붙인 데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이번 선임 과정에서 (여권 추천 위원들은) 다수결의 논리를 앞세워 합의제 원칙을 포기했고, 결국 (특정인 3연임 금지 등) 우리(야권 추천 위원들)가 제시한 원칙들이 수용되지 않아 여야 나눠먹기 인사가 됐다”고 비판했다.
김재홍 상임위원은 “그동안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 인선을 할 때 기본과 원칙을 먼저 정하고 후에 (명단과) 함께 발표했는데, 우리만 그런 인선 기준과 원칙이 없었다”며 “이는 유감스러운 일로, 향후라도 우리가 제안했던 4개의 제도 개선안에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합의제 무시 비판에 與측 “특정인 반대를 원칙으로 포장한 게 아닌가” 발끈
그러나 여권 추천의 이기주 상임위원은 일련의 문제제기와 요청에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이 상임위원은 “간단히 말해 두 위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며 “우리는 방문진과 방송법에서 정한 자격기준에 따라 인선을 했다”고 말했다.
합의제 원칙이 무너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상임위원은 “(무작정 다수결을 밀어붙인 게 아니라) 이번 사안에 대해 충분한 협의를 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며 “결론 도달에 있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이 있을 뿐, 절차적인 문제에 있어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했다”고 말했다.
최성준 위원장도 “인사의 기준과 원칙은 현재 법에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지 나와 있고, 결격사유도 나와 있다”며 원칙과 기준 없는 인사라는 비판에 반박했다.
최 위원장은 야권 추천 위원들이 원칙을 제시했던 공영방송 이사 ‘3연임’ 금지 등에 대해서도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특정인을 지정해 그 사람에 대한 것(반대)을 인선의 기준과 원칙으로 포장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례 없는 공영방송 이사 ‘3연임’에 대한 비판은 비단 야권 추천 상임위원들에서만 나왔던 게 아니다. KBS의 양대 노조(KBS노조, 언론노조 KBS본부)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들, 언론‧시민단체 등에서도 상식 밖이라고 비판했던 부분이다. 최 위원장은 일련의 비판을 의식한 듯 “앞으로 (공영방송 이사) 인선의 기준과 원칙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 사용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방통위는 이날 회의에 앞서 새롭게 선임된 방문진 이사진(9인)과 감사에 대해 임명장을 수여했다. 방통위는 지난 13일 10기 방문진 이사로 △고영주 변호사(법무법인 KCL 대표 변호사‧8~9기 방문진 감사)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세터 소장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8~9기 방문진 이사‧3연임) △김원배 목원대 총장(9기 방문진 이사‧연임)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 △이인철 변호사(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이사 여당 추천) △유기철 전 대전MBC 사장 △이완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전 울산MBC 사장)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9기 방문진 이사‧연임, 이상 야당 추천) 등을 선임했다. 감사에는 한규태 경희대 부총장을 선임했다.
김세옥 기자 kso@pdjour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