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25> 정부개입정책 성공신화의 진실
정부, 한국 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 위해 잘못된 경제정책 빠르게 수정
수출·경영환경 끊임없이 개선시켜
1980년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시장개방·민간주도 성장이 만든 결과
1987년 이후 '경제민주화' 본격화…1990년대부터 성장률 계속 떨어져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그의 죽음에 대해 영국 타임스(The Times)는 이렇게 썼다. ‘아주 위대한 영국인/…/ 천재적인 인간으로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사고에 엄청난 영향을 준 정치경제학자다./…/ 그와 견줄 정도의 영향을 준 사람을 고른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애덤 스미스 정도가 될 것이다.’ 어떤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어떤 식의 시험을 치르더라도 그는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또 20세기가 배출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사상가로서의 지위를 차지한다”고 그를 평가했다. 이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메이나드 케인스다. 케인스가 1936년 저술한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은 경제학 이론은 물론이고 실제 경제정책 면에서 ‘세상을 바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케인스 이론의 대강은 이렇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을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해 메움으로써 불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지출을 늘리면 최초 정부지출의 몇 배로 국민소득이 증가한다는 이른바 ‘승수이론’(본지 8월1일자 A20면 참조)이 그것이다. 이 이론은 거시경제학 교과서를 장악했고, 실제 거시경제 정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부진을 타개한다는 명분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조기집행의 이유도 이 이론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케인스가 끼친 영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더 크고 광범위한 영향은 시장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경제를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정부개입주의 정책’의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유망주를 개발하고 지원, 육성해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정부의 역할이 경제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자원을 배분하는 금융시장의 역할을 무시하고 금융기관을 정부가 장악해 자원배분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개입주의 정책이 성공한 예로는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험, 특히 한국의 경험을 주로 꼽고 있다. 과연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 비결은 국가개입주의 정책에 있었을까.
잘 알고 있듯이 ‘한강의 기적’은 수출주도형 경제정책 덕분이었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에서는 정부 통제의 체제가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점이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정부가 시장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제어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국내의 재화와 요소시장을 효율을 중시하는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자원배분이 가격메커니즘에 의해 이뤄지도록 한다. 또 국제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거나 최소한 유지시키기 위해 수출과 기업환경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안 되며, 잘못된 경제정책을 재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한다. 즉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한국 기업들을 강력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킴으로써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반(反)시장적 정책들이 시도되지 못하도록 하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기능을 활성화한 반면, 정부의 개입정책으로 인한 비효율을 최소화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것이다.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정부가 자의적이고 반시장적인 정책을 펴는 것을 상당 부분 억제했다.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재화를 발굴하고, 또 해외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내가 아닌 국제적인 수요, 기술 발전, 비교우위나 비교열위가 있는 재화나 서비스 등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으며, 이와 관련된 데이터의 변화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다시 말해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경제정책을 입안하거나 정책을 시행할 때 시장적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가능한 한 시장친화적인 해법을 찾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국가 개입보다는 시장이 우위에 서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수출주도 전략 및 시장우위 정책은 1970년대 초·중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시행하면서 다소 무너진다. 정부가 중점 육성 산업분야를 선정하고 대대적인 육성정책에 들어가면서 내자(內資)와 외자(外資)의 규모와 조건, 투자 종류와 규모, 생산된 제품의 가격 등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까지도 정부의 결정에 종속시킬 정도로 정부 개입의 강도가 강화된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과잉투자와 왜곡된 자원배분을 초래했고, 결국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기업이 정부의 도움 없이는 존속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국면에 처했다. 물가는 해마다 두 자리 숫자로 치솟고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 개입보다 시장우위 정책이 복원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이때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물가는 희생한다’는 케인스식의 정책 패러다임을 ‘물가안정이 우선이다’는 방향으로 대전환했고, 성장정책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시켰으며, 국내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한 보호무역정책을 개방화로 바꿨다. 시장우위 정책의 복원으로 1980년대 중·후반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한편 1987년 9차 개정헌법에서 도입된 ‘경제민주화’는 다시금 정부개입 강화 방향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개입, 기업 경영의 자율성 축소, 복지 특혜 요구를 비롯한 포퓰리즘 정책의 논리 제공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결과 1980년대까지 10% 수준을 유지하던 투자 증가율은 1990년대가 되면 절반 이하(4.4%)로 떨어지고, 2003년부터 10년간 다시 절반 이하(1.7%)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1970년대 10.3%, 1980년대 8.8%였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에 6.2%로 하락했고, 2003년 이후 10년간은 4.4%로 낮아졌다. 그마저도 최근 몇 년간은 2%대로 추락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성장 비결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가 한국 경제의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루게 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싱어의 ‘의회효과’
美 의회 열리면 주가 하락, 폐회땐 주가 오르는 경향
입법 규제가 경제활력 저해 시장경제체제에서 정부의 역할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치안을 유지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헌법에 명시된 대로 나라를 안정시키는 역할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다. 그러나 이 범위를 넘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순간 경제는 활력을 잃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에서 의회가 개회할 때 주식시장은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의 포트폴리오 관리자인 에릭 싱어는 이 현상을 추적해 ‘의회효과(congressional effect)’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그가 1965년부터 2008년까지 주식시장 동향을 살폈더니 S&P 평균치로 계산했을 경우 의회가 폐회했을 때는 평균 16% 상승한 반면 의회 개회 시에는 겨우 0.31%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싱어는 이를 바탕으로 뮤추얼펀드인 ‘의회효과펀드’를 개설해 8월 휴가철과 10월 말 등 의회가 문을 닫을 때 주식에 투자했다가 의회가 개회할 때 투자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시장에서 나와 버렸다.
그에 따르면 유독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지만, 의회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한다. 예외적인 경우 중 하나가 1997년인데, 이때는 의회가 개회했을 때도 주가수익률이 연평균으로 계산했을 때 거의 60%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유는 바로 감세였다. 의회에서 자본이득세를 포함해 세금을 낮췄던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도 시장경제에 대한 개입과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를 꾀하는 법안이 부지기수로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 주장은 수많은 규제를 불러오는 입법의 원천이다. 한국 경제가 기적처럼 성장 발전한 배경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였다. 하지만 정부주도의 경제 패러다임, 기업과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의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들,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는 포퓰리즘 정책들과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각종 특혜 정책이 한국 경제를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뜨리고 경제주체들의 활력을 앗아가고 있다.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에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