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_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지난 13일 KBS, MBC 두 공영방송의 새 이사회 인선을 마무리했다. 극우 성향의 부적격 인사들이 후보로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시민사회는 반대 및 철회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방통위는 인선 기준과 원칙에 대한 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정파 갈라먹기’ 아래 공영방송 이사진을 결정했다. 내년 총선, 내후년 대선 등 굵직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적 인물들을 대거 앉힌 이번 인선은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디어스는 KBS와 MBC를 관리 감독하는 ‘이사회’에 내려온 인물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이사 5인의 행적을 돌아보았다. |
오늘(2일) 첫 회의로 공식 활동을 시작하는 KBS이사회는 전임인 9기에 비해 ‘뉴라이트’의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지난해 이길영 이사장의 갑작스런 사퇴 이후 등장해 KBS 내부 구성원들과 언론시민사회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 직면했던 뉴라이트 사학자 이인호 이사가 연임함은 물론이고,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검증 보도를 특히 문제 삼으며 KBS를 범죄 집단이라고 비난한 조우석 이사가 새로 입성했다.
2009년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에 여당 추천 이사로 들어와 연임을 거친 후, 이번에 KBS로 자리를 옮겨 온 차기환 이사 또한 대표적인 ‘극우 스피커’ 중 한 명이다. 다양한 활동을 왕성하게 하며 자신의 ‘소신’을 적극적으로 밝혀 온 인물이니만큼, 언론시민사회에서는 초유의 ‘공영방송 이사 3연임’을 시도했던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몹시 높았다. KBS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역시 한 목소리로 ‘차기환 반대’를 외쳤다. 그러나 공영방송 이사 선임권한을 가진 방통위의 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법적 하자가 없다’며 그를 결국 KBS로 내려보냈다.
차기환 이사는 수원지법 판사,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지내고 현재 우정합동법률사무소 공동대표를 맡은 법조계 인사다. 박원순 시장 아들인 주신씨의 병역 회피 의혹을 제기한 인사, 세월호 유가족과 폭행 시비가 일었던 대리기사의 변론을 맡았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통합진보당 전체를 검찰에 고발한 ‘통합진보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한 기소권과 수사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헌법 질서가 흔들린다”고 비판한 그는 새누리당 추천을 받아 지난해 말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에 선임됐다.
차기환 이사는 특히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의 글을 자신의 SNS에 퍼날라 유명인사가 됐다. 미디어오늘은 지난해 5월 <MBC방문진 이사, 박원순 비방 ‘일베’ 글 퍼날랐다> 기사를 통해 차기환 이사가 일베, 수컷닷컴, 뉴데일리 등에 게시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글을 지속적으로 퍼날랐다고 보도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주로 트윗, 리트윗했다.
또한 “어젯밤(17일) 촛불폭도들이 경찰을 납치해서 집단폭행하는 장면입니다”라는 글(@maisana2002)을 리트윗하며 “이런 폭도들을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지금 친노종북이들이 거짓난동 밀어붙이는 이 순간에도 20대 지지율에서 안철수 새민련이 새누리보다 더 낮다. 고용시장에 진입해야할 20대들이 점차, 친노종북이들의 귀족노조만 배불리는 경제구조로는 살 길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는 것이다”라는 변희재 씨의 글을 리트윗했다. 이밖에도 세월호 특별법 반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을 벌이던 김영오 씨를 비난하는 내용 등의 글을 퍼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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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환 이사의 트윗 일부. 7월 16일 트윗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대한변협 등이 공동으로 발의한 특별법에 나와 있지 않은 허위사실을 가지고 유가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비판했고, 8월 21일 트윗에서는 수사권 및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요구를 지적했다. |
통합진보당, 전교조, 박원순, 세월호 유족 저격… 왕성한 활동력
차기환 이사는 2005년 생겨난 뉴라이트 단체의 연합 모임 ‘뉴라이트 네트워크’의 간사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을 지냈다. 2012년 총선 당시에는 보수우파 진영의 범시민사회단체연합에 참여해 △정치 변화 기대 △전문성 △시민운동발전 기여 △참신성 등을 감안해 김갑중, 김부경, 김종훈, 박세일, 손수조, 송영선, 이용선, 이정현, 하태경, 홍사덕 후보를 ‘좋은 후보’로 선정했다.
같은 해 “한미FTA를 반대하는 정치지도자들에 대해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며 “그동안의 수비적 자세에서 탈피, 공격적인 방향으로 한미FTA 사수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힌 한미FTA지키기범국민운동본부에 이름을 올려 한미FTA지키기 1,000만 서명운동 및 반대후보 낙선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일본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등의 왜곡된 역사관이 드러난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에게 ‘청문회를 거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던 각계 원로 중진 인사 482명에도 차기환 이사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특히 KBS의 문창극 전 후보자 검증보도를 문제 삼았다. 이들은 “KBS라는 공영방송의 왜곡보도에 입각해 우리 사회가 중요한 사안을 잘못 결정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며, KBS의 왜곡보도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청문회도 없이 문창극씨가 사퇴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청문회도 열리지 않고 낙마한다면 이는 왜곡보도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해 7월 자유경제원이 연 <조전혁, 전교조를 말하다> 토론회에 참가한 차기환 이사는 “전교조의 잘못된 행보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최근 전교조의 법외노조화 확정에 따른 전교조가 받은 국가 지원금 시기 및 반환 의무 등을 면밀히 살펴 회수 조치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환 변호사는 18대 국회에서 교원단체 가입 교사의 명단을 공개해 전교조와의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조전혁 전 명지대 교수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자문단’의 멤버이기도 하다.
차기환 이사는 여러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는데, 그 중에서도 ‘통합진보당 저격’은 꾸준히 지속돼 왔다. 2013년 9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연 <합법을 가장한 이적단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토론회에서는 “민혁당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현재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은 통진당의 리더로 보이는데다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 관련자들이 통진당 주요 당직이나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통진당 해산을 주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차기환 이사는 자유민주연구원이 주최한 <종북세력의 올바른 이해와 척결,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이정희 통진당 대표, 심재환 변호사(이정희 대표의 남편)에게 ‘종북’, ‘주사파’는 표현을 쓴 항소심 판결을 비판했다. 차기환 이사는 “이정희-심재환 부부가 ‘종북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번 판결은) 종북이란 표현을 형사고소할 수 있을 정도의 굉장한 취재가 되지 않으면 쓰지 말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 대상이 종북이 맞다면 국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그들의 활동 범위를 더 넓혀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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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부터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연임한 후, 최근 KBS이사가 된 차기환 이사 |
또,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기 9일 전인 지난해 12월 10일에는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최한 <헌재, 왜 통진당 해산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다. 지난해 12월 19일, 헌재가 8:1로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차기환 이사는 유일하게 ‘반대’해 소수의견을 냈던 김이수 재판관을 공공연히 비난했다. 차기환 이사는 “87년 이후 북한이 대남전략이 정당활동을 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며 “민혁당 등 당 건설이 안 되니 기존 당에 침투해서 이를 뒤집는 것으로 민노당이 그렇다. 그런데 김이수 재판관이 기록 자체를 꼼꼼히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재철의 ‘3년 전횡’ 눈 감아 준 방문진 출신… KBS에선?
차기환 이사는 2009년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문진에 들어설 때도 내부 구성원들의 격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당시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생각이 다르고 뜻이 다를 지라도 MBC를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방송으로 만드는 생각은 하나일 것이다. 초심을 잃지 말고 (MBC가) 사랑받는 방송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차기환 이사는 여당 추천 이사로 MBC의 경영뿐 아니라 보도와 프로그램에까지 관여하면서 MBC의 ‘체질 변화’에 앞장섰다.
방문진 이사 임기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은 2009년 8월 31일, 차기환 이사는 엄기영 체제 아래 MBC의 1년 6개월 경영행태를 돌아봐야 한다며 MBC 민영화도 논의에서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본부)에 대해서는 “공영방송인 문화방송에 경영권이나 인사권에 대해서 노조가 간섭 하려한다”며 “노조는 기본적으로는 이익 집단이고 전 국민을 대표하는 대표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2010년 3월 이후 김재철 사장이 편파 보도, 무리한 지역MBC 통폐합, 시사보도 약화 방향으로의 개편 등을 강행해 사사건건 노조와 대립해, 2012년 170일 파업을 불러왔는데도 방문진은 무려 3번의 해임안은 부결시켰다. MBC가 이미 쑥대밭이 된 2013년 3월이 되어서야 4번째 해임안을 처리해 김재철 사장을 돌려보냈을 뿐이었다. 차기환 이사는 또한 파업 이후 가속화된 ‘노조 솎아내기’ 움직임에도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다.
<예능국 이야기>라는 웹툰을 올렸다는 이유로 권성민 PD가 올해 1월 해고돼, 방문진 내부에서조차 문제제기가 나오자 “개별적인 인사 하나하나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옳은 감독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차기환 이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6년 9월 문화일보 칼럼에서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방송위원회가 공정성과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지상파 방송이 편파적인 방송을 한다면 대선 관련방송에 관한 논의와 규제가 실익이 없게 될 우려가 크다”며 “많은 국민이 방송위원회, KBS 등 주요 방송계 인사에 관심을 두고 건전한 비판과 감시를 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더욱 아쉬운 것은 정치 이슈에 매몰돼 코드인사, 갈라먹기 인사를 하느라고 정작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점을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세계가 정보통신 혁명 시대에 접어들어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새로운 미디어 시대를 맞고 있어 한국방송산업도 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합당한 지적이다. 다만, 이 같은 ‘비판’이 2015년 현재 상황에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꼭 들어맞는다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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