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이 현행 국사 교과서 8종에서 '북한에 대한 과도한 서술, 편향된 남북 비교, 부정적 기업인 묘사'라는 공통점이 발견됐다고 19일 지적했다.
자유경제원은 19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학자들이 뽑은 한국사 왜곡 사례' 15선을 공개했다. 분석에는 강규형 명지대 기록전문대학원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정경희 영산대 역사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주체사상을 액면 그대로 기술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 교과서도 있었다"면서 "교과서의 근본을 훼손해 놓고 검정을 피하려고 교묘하게 '한 줄 물타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과도한 주체사상 소개
일부 교과서는 북한이 선전하는 내용을 과도하게 서술해 마치 사실인 듯 오해를 부를 위험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금성출판사 검정본(407쪽)은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서술하면서도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노선을 표방하였다. 자주노선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였다'고 적시했다. 천재교육 검정본(329쪽)은 '자료 읽기' 코너에 '우리당은 현대 수정주의와 교조주의 및 종파주의를 반대하며 맑스-레닌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라는 북한 노동신문 사설을 그대로 실었다. 이어 도움글에 '북한은 위의 논설을 계기로 소련의 수정주의와 중국의 교조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자주노선을 지향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노선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대내 통합을 위한 체제 유지 전략이었다'고 명시했다. 두산동아(273쪽)는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에 나섰다. 8월 25일에는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하였다'며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1948년 9월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하였다'고 서술했다. 북한이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열어 사실상 정부를 수립한 것은 서술하지 않고, 한국에 뒤이어 정부를 수립한 것처럼 묘사했다. 분단 책임이 남측에 있는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이 밖에 우리 정부 수립 과정에도 부정적 묘사가 있었다. '1947년 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제주도민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가혹한 탄압을 받아….'(천재교육 309쪽) '좌익은 단독 정부 수립 저지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구와 김규식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통일 문제를 협의할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두산동아 270쪽) 등이다.
◆ 북한은 긍정, 한국은 부정
북한은 긍정하고 한국은 부정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대목도 있다. 두산동아(273쪽)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승인하였다'며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 측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사진을 채택하면서 '많은 유권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막대기의 개수로 기호를 표시하였다'고 서술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 없이 레닌 사진을 들고 시가를 행진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수립 경축 대회' 모습을 실었다.
농지개혁 항목도 도마에 올랐다. 두산동아(276쪽)는 '광복 당시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땅을 소유하는 원칙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서술한 뒤 '1946년 3월 북한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 방식으로 토지 개혁을 단행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교과서는 '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였다'면서 '미군정도 더 이상 토지개혁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1949년 제헌 국회는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는 농지개혁법을 공포하였다'고 적었다.
6·25전쟁을 남북 공동 책임으로 묘사한 대목도 있었다. 천재교육(312쪽)은 '남과 북에 수립된 양측 정부는 각기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지역을 토대로 나머지 지역을 통합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면서 '38도선 일대에서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천재교육은 '소련은 중국과 함께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침 계획에도 동의하였다'며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며…'라고 기술했다.
'무상 원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제목 아래 미국 원조의 부정적 부분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미래엔 교과서(321쪽)는 '미국의 원조 농산물은 국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들어온 농산물은 우리의 농촌 경제에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며 '보리와 밀, 면화 등이 가격 경쟁에 밀려 우리 농촌에서 점차 사라져갔다'고 기술했다.
◆ 탐욕과 탈세의 온상 기업인
산업화 과정 주역인 기업인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료 묘사한 대목이 지적됐다.
미래엔(340쪽)은 '한강의 기적, 그 원동력을 찾아서'라는 코너에서 '기업인들은 우리 기업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여건 속에서 새로운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면서도 '하지만 대표 기업인들은 각종 혜택을 악용해 횡령과 비자금 조성을 일삼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수출 대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 대부분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특별 사면됐다'고 적었다. 또 천재교육(333쪽)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해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중화학 공업의 특성상 재벌에 각종 특혜가 주어졌다'면서 '이로 인해 정경 유착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농민 등이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저항했다'고 서술했다.
[이상덕 기자 / 우제윤 기자 / 김수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유경제원은 19일 서울 마포 사무실에서 '학자들이 뽑은 한국사 왜곡 사례' 15선을 공개했다. 분석에는 강규형 명지대 기록전문대학원 교수,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정경희 영산대 역사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주체사상을 액면 그대로 기술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 교과서도 있었다"면서 "교과서의 근본을 훼손해 놓고 검정을 피하려고 교묘하게 '한 줄 물타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과도한 주체사상 소개
일부 교과서는 북한이 선전하는 내용을 과도하게 서술해 마치 사실인 듯 오해를 부를 위험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금성출판사 검정본(407쪽)은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로 천명되면서 반대파를 숙청하는 구실 및 북한 주민을 통제하고 동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서술하면서도 '북한은 1950년대 후반부터 중국과 소련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주노선을 표방하였다. 자주노선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하였다'고 적시했다. 천재교육 검정본(329쪽)은 '자료 읽기' 코너에 '우리당은 현대 수정주의와 교조주의 및 종파주의를 반대하며 맑스-레닌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투쟁할 것이다'라는 북한 노동신문 사설을 그대로 실었다. 이어 도움글에 '북한은 위의 논설을 계기로 소련의 수정주의와 중국의 교조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자주노선을 지향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노선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대내 통합을 위한 체제 유지 전략이었다'고 명시했다. 두산동아(273쪽)는 '북한은 남한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자 곧바로 정부 수립에 나섰다. 8월 25일에는 남북 인구 비례에 따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뽑는 선거를 실시하였다'며 '북한과 남한에서 선거로 뽑힌 대의원들은 1948년 9월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만들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선출하였다'고 서술했다. 북한이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열어 사실상 정부를 수립한 것은 서술하지 않고, 한국에 뒤이어 정부를 수립한 것처럼 묘사했다. 분단 책임이 남측에 있는 것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이 밖에 우리 정부 수립 과정에도 부정적 묘사가 있었다. '1947년 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제주도민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가혹한 탄압을 받아….'(천재교육 309쪽) '좌익은 단독 정부 수립 저지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구와 김규식은 북한의 김일성에게 통일 문제를 협의할 남북 협상을 제의하였다.'(두산동아 270쪽) 등이다.
◆ 북한은 긍정, 한국은 부정
북한은 긍정하고 한국은 부정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대목도 있다. 두산동아(273쪽)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을) 승인하였다'며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도 눈길을 끌었다. 우리 측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사진을 채택하면서 '많은 유권자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막대기의 개수로 기호를 표시하였다'고 서술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 없이 레닌 사진을 들고 시가를 행진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수립 경축 대회' 모습을 실었다.
농지개혁 항목도 도마에 올랐다. 두산동아(276쪽)는 '광복 당시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땅을 소유하는 원칙이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서술한 뒤 '1946년 3월 북한은 무상 몰수, 무상 분배 방식으로 토지 개혁을 단행하였다'고 적었다. 이어 교과서는 '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였다'면서 '미군정도 더 이상 토지개혁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1949년 제헌 국회는 경자유전을 원칙으로 하는 농지개혁법을 공포하였다'고 적었다.
6·25전쟁을 남북 공동 책임으로 묘사한 대목도 있었다. 천재교육(312쪽)은 '남과 북에 수립된 양측 정부는 각기 자신이 권력을 장악한 지역을 토대로 나머지 지역을 통합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였다'면서 '38도선 일대에서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천재교육은 '소련은 중국과 함께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침 계획에도 동의하였다'며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은 국제전으로 확대되었으며…'라고 기술했다.
'무상 원조,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제목 아래 미국 원조의 부정적 부분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미래엔 교과서(321쪽)는 '미국의 원조 농산물은 국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들어온 농산물은 우리의 농촌 경제에 위협이 되기도 하였다'며 '보리와 밀, 면화 등이 가격 경쟁에 밀려 우리 농촌에서 점차 사라져갔다'고 기술했다.
◆ 탐욕과 탈세의 온상 기업인
산업화 과정 주역인 기업인을 과도하게 부정적으료 묘사한 대목이 지적됐다.
미래엔(340쪽)은 '한강의 기적, 그 원동력을 찾아서'라는 코너에서 '기업인들은 우리 기업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여건 속에서 새로운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면서도 '하지만 대표 기업인들은 각종 혜택을 악용해 횡령과 비자금 조성을 일삼고, 세금을 포탈하거나 수출 대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기업인 대부분은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명분으로 특별 사면됐다'고 적었다. 또 천재교육(333쪽)은 중화학 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에 대해 '정부 주도의 성장 정책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중화학 공업의 특성상 재벌에 각종 특혜가 주어졌다'면서 '이로 인해 정경 유착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경제 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농민 등이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저항했다'고 서술했다.
[이상덕 기자 / 우제윤 기자 / 김수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