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역사 교과서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역사권력' 간 대립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교과서 주도권을 놓고 그동안 대세를 점해왔던 민중 사학에 맞서 반(反) 민중 사학도 결집 조짐을 보이면서 피할 수 없는 결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보수 진영 내에선 민중 사학의 '교과서 패권'을 더 이상 방치했다간 후대 세대가 우리 역사에 대해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 일찌감치 교과서에 관심 둔 민중 사학…집필진 적극 참여
1970년대 국사 교과서의 고대사 서술을 두고 역사학계가 맞부딪힌 적이 있긴 하지만, 그 이후 역사학계는 교과서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중진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것을 일종의 '외도'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던 역사학계가 교과서에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민중사학'이 출현하면서다.
현실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실천성을 강조하는 민중사학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그 실천의 장으로 역사 교과서를 겨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저서 '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근현대사'에서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역사학이 사실을 밝혀내는 것에만 중점을 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사람들의 역사의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매개체로 주목을 받은 것이 국사 교과서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민중사학은 젊은 연구자들, 특히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연구소(전 구로역사연구소) 등 현재도 명맥을 이어가는 학회들이 속속 출범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민중사학자들은 국사 교과서가 지배층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바람에 민중을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예컨대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서술은 서구식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개화파를 역사의 주류로 그린 반면 민중은 보조적 존재에 그쳤다는 식이다. 계급 투쟁적 관점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투영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현대사 서술의 경우 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 구도 속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옹호하거나 정부의 정책·성과를 홍보하는데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를 냈고, 친일파를 두둔하거나 미화하는 서술도 적지 않다는 입장에 섰다.
당시 역사학계는 민중사학자나 민중사학을 표방하는 학회가 주도하고 있었던 만큼 이들의 주장은 실제로 교과서에 어느 정도 반영됐으며, 검정제 도입 이후 자연스럽게 집필진으로도 다수 참여하게 됐다.
◇ '집필 권력' 논란 속 교과서 파동…헤게모니 싸움으로
이 같은 논리로 무장한 민중사학 진영은 교과서 검정제 도입 이후 교과서 출판권한이 정부에서 민간 출판사로 넘어간 것을 계기로 조직적으로 결속, 교과서에 더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게 학계 설명이다.
정경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가 책 '한국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공개한 2010년판 검정 한국사 집필자 명단을 보면 A출판사의 경우 집필진 8명 중 6명이 민중사학회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성향 단체 소속이었다.
당시 검정에 통과한 출판사는 모두 6종이었는데 A출판사를 비롯해 4곳에서 진보 성향의 집필진이 과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최근까지도 이어진다.
새누리당 서용교 의원은 올해 국감자료를 통해 "현행 한국사 교과서(2013년 검정 기준) 집필진 59명 중 진보 성향이 확인된 사람만 36명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B출판사는 집필진 9명 중 6명, C출판사는 7명 중 6명이 진보 성향 학회나 단체에 가입해 있었다.
이처럼 민중사학을 기반으로 한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교과서 집필을 주도하는 구도에 균열이 간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권철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2004년 국감에서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가 북한과 민족해방(NL)계열 시각에서 저술된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교과서 '좌편향' 논란에 불이 붙게 된다.
이른바 '집필 권력'·'진보 카르텔'이란 용어까지 등장했고, 좌편향 교과서에 대응하기 위해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교학사 교과서를 출간하게 된다.
학계에선 이번 교과서 개편을 놓고 그 폭발력이 더하는 것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보수·진보 진영 간 '교과서 대결'이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과서 헤게모니를 둘러싼 양 진영의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라는 인식인 셈이다.
전교조가 최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3천여개 학교, 약 2만여명의 교사가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유신 회귀를 꾀하는 '역사쿠데타'"라며 시국선언을 한 것도 본격적인 실력행사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보수 진영도 이에 맞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7차례에 걸쳐 '국사 교과서 실패 연속세미나'를 개최하며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고 나서는 등 세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교학사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새누리당 국가경쟁력강화포럼 세미나에서 "'한국사 카르텔'을 형성하는 민중사관 성향의 역사 단체들을 일관하는 이념은 다름 아닌 '인민민주주의 사관'"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e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5/11/01 07:01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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