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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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하면서 각계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다수의 반대 여론이 재차 확인됐지만 정부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여당과 소수 보수단체와 힘을 합쳐 국정화를 강행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차후 음악, 문학 등 다른 과목 교과서도 국정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보수단체, 여당 관계자의 발언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사 교과서뿐 아니라 다른 과목 교과서들 역시 좌편향·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뿐 아니라 다른 교과서에도 국정화가 추진될까. '현재 역사학자들의 80~90%가 좌편향 상태'라는 정부의 이색적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리를 보면 무리한 추측만은 아니다. 현직 음악 교사들은 "이런 식이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곡한 노래들이 다시 (음악) 교과서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단체 "역사교과서 국정화, 완성이 아니라 시작"
▲ 10월 3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전국 대학생 행동 전체 집회가 열리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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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10월 12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중·고등학생이 쓰는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교과서를 집필하는 역사학자들의 반발을 시작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한 달의 행정예고 기간 동안 극심한 논란을 낳았다.
2일 <내일신문>에 따르면, 1일 이 신문과 여론조사 업체 '디오피니언'이 진행하는 정례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찬성은 응답자의 32.3%, 반대는 59.0%였다.
지역별로는 강원·제주를 제외하면, 수도권을 비롯한 다른 지역은 모두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았다. 특히,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서도 반대 여론이 앞섰다. 대구·경북에서는 국정화 반대가 50.7%, 찬성이 39.6%였다(전국 19세 이상 남녀 800명 대상, 응답률은 25.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그러나 정부는 지난 2일, "5일 확정 고시할 예정이던 일정이 하루이틀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반대 여론이 더 높지만 당초 일정을 앞당기면서까지 일방적으로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이다. 결국 정부는 3일 확정 고시와 함께 교과서 집필 기준 및 계획 등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다른 교과목에서 재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해온 자유경제원의 전희경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28일 새누리당이 주최한 '역사 바로 세우기' 포럼에서 "저는 이것(역사교과서 국정화)이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경제 교과서, 문학 교과서, 윤리 교과서 사회 교과서 모두에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기적의 힘은 사라지고 불평과 남탓과 패배감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사무총장은 내가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하는데 밤잠 자지 말고 전국 돌아다니면서 이 강의를 좀 하고 다니시길 부탁한다"고 답했다.
<아침이슬> 나오는 음악교과서... "새누리 입장에서는 좌편향의 극치"
일부 누리꾼들은 역사 교과서 다음으로 음악 교과서가 정부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는 2007년 이후로 심리적 음악교육론에서 생활 중심 교육으로 바뀐 상태다. 절대 영역의 음악뿐 아니라 음악의 배경, 역사, 대중음악, 영화음악,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를 함께 가르친다.
이렇다 보니 음악사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들이 현행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나 김민기 작곡의 <아침이슬>이 대표적이다.
신중현은 청와대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내라는 요구를 거절한 직후 내는 곡마다 금지곡 처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음악인이다. <아름다운 강산>의 경우 조국의 산천이 아름답다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태양이 묘지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가사가 불순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가사 중 '붉은 태양'이 김일성의 공산주의 혁명을 연상시킨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
교과서에서 이 노래들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와 긴급조치 9호 등의 현 정권에 불편한 역사적 사실을 함께 교육할 수밖에 없다. 노동착취를 다룬 노찾사의 '사계', 1987년 민주화투쟁 때 애창되던 안치환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등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과거들과 엮여있는 노래들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참여형 백과사전인 '나무위키'의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논쟁' 항목을 보면 "1950년대 안익태 이후 한국의 음악사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좌편향의 극치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부와 여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논리로 음악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작곡한 '새마을 노래' 교과서에 실릴 수도"
▲ 지난 2011년 8월 27일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해 이날 제막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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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홍진표 교사는 이런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좌편향을 이유로 음악교과서를 국정화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긴 하지만 사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진행되는 걸 보면 그렇게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가령 <아침이슬>을 가르칠 때, 국민들이 언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도 의미를 선생님들이 설명해 주거든요. 교육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교과서가 옛날에 비해 진보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입니다. 친일파 음악가들이 지금은 교과서에 거의 없어요. 그런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몇십 년 전에나 볼 수 있던 이색적인 노래들이 교과서에 다시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현직 중학교 교사인 김한명(가명)씨는 "1970년대 음악 교과서에는 <새마을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라면서 "지금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음악' 같은 단원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작곡한 <조국 찬가>나 <새마을 노래>가 다시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체육 교과서에는 이들 노래에 맞춰 율동하는 동작도 실렸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1970년대 박 전 대통령의 성취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관심은 상당한 수준이다. 정부는 최근 세출 대비 넉넉치 않은 세입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년 새마을 운동 관련 국비사업 예산을 올해에 비해 26.9% 올린 765억6100만 원으로 책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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