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어제 대(對)국민담화를 내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강행은 획일적이며 전체주의적인 발상이자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국민불복종 운동’을 촉구했다. “박근혜 정권의 이념전쟁이 도를 넘어섰다”며 국회 일정을 보이콧한 그는 다른 정당과 정파, 학계 및 시민단체와 연대한 공동투쟁기구를 통해 국정화 반대 운동에 나설 뜻도 밝혔다. 결국 내년 총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얘기다.
문 대표는 담화 첫머리에서 “친일은 친일이고, 독재는 독재”라는 말로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국정 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것으로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아무리 국정화 확정고시를 강행한 정부라 해도 국민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교과서를 용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교과서 논란의 본질은 친일과 독재가 아니다. 본질은 대한민국 건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 인식과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역사 인식의 충돌이다.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한 세미나에서 점유율이 높은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서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장로교신학대 김철홍 교수는 “미래엔의 한국사 자습서를 읽고 1980년대 대학 시절 의식화학습에서 공부했던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한국 근현대사가 그대로 요약돼 있어 놀랐다”고 했다.
이를 고치는 유일한 방법이 ‘국정화’라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다수 국민이 이런 교과서로 우리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나라다. 그 성공의 배경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선택한 대한민국 건국이 있다. 쇠락한 북한을 보면 ‘건국 세력’의 판단이 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때만 해도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 참배를 거부해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2월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뒤 두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지만 진정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한 날, 문 대표는 김원봉 등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서훈해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문 대표가 “색안경을 벗고 교과서들을 직접 확인해 보라”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말한 것을 보면 현 검인정 교과서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문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을 포함한 현대사에 대한 본인의 인식부터 국민 앞에 밝히고 국정화를 비판해도 비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