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배급체제가 무너지고 수 백 만명의 아사자를 내면서, 북한주민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
매달렸던 장마당이 생겨난 지도 벌써 20년을 훌쩍 넘어서다. 그동안 북한의 장마당이 어떤 역할을 해왔고, 장마당을 통해 일어난 북한의 변화는
무엇이며, 향후 북한의 장마당은 북한이 현재의 혼란 상태를 극복하고 자유시장경제체로의 이행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또한 서독의 자유
시장경제에 의해 흡수통일 된 독일의 통일과, 장마당이라는 유사 시장장치를 통해 변화된 북한이 올바른 자유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하고 한국의
자유시장경제체제와 협력하여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자유경제원과 자유통일문화원은 이러한 토론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통일을 추구해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정치적, 사회문화적, 경제적 통일 준비에 기여하고자 했다. 자유경제원과 자유통일문화원이 지난 11일 공동주최한 ‘북한의 장마당 어떻게 볼
것인가’ 통일정책토론회는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열렸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가
발표했다. 이어 패널로는 박상봉 독일통일정보연구소 소장, 이애란 자유통일문화원 원장,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참석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아래 글은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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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
시장화진전과 북한경제체제의 변화
1. 시장의 발달과 시장화에로의 진전
시장의 형성과 발달
북한에서 시장의 형성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기간에 국가배급제가 붕괴된 것이
주요 계기로 작용했다. 1990년대 자연재해와 식량난 등으로 기존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되자 주민들이 자구책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국가의 배급만 바라지 말고 자체로 살아가는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적 방법”을 차용한 것이 바로 시장이다.
북한의 공설시장의 외형적 변화를 중심으로 농민시장, 공설시장, 종합시장, 상점형의 순서로 발전하면서 제도화되어 가고 있으며 20년의 경험이
축적되어 갔다. 1990년대 초 농민시장형태의 장마당이 교통요충지와 도심으로 폭발적으로 양적 팽창으로 하는 형태에서 2007년 대형 상점화
형태로 외형적으로 변화했다.
장마당으로부터 시장으로 발전해가면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통제, 억제와 완화 정책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개입효과는 점점 한정되고 형식화되어갔고 반면에 주민들의 시장통제에 대한 면역이 높아지고 가격을 비롯한 시장결정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일반주민의 생존과 경제적 삶을 영위하려는 본능, 간부관료의 개인축재 욕구, 그리고 새로 등장한 계층으로 부를 축재한 상인 사이에
평화로운 경제생활의 영위, 치안과 질서를 지향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서서히 형성되어 갔다. 시장 공간은 북한 당국의 세수(세금),
간부관료의 부정축재의 원동력, 부를 축적한 상인들의 활동공간, 그리고 일반주민의 생존과 자력갱생의 무대로 되어 갔다. 주민들은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 고 배심을 가지고 시장을 영위하고 있다.
시장발달에 대한 정권의 대응
김정일은 종합시장을 스스로 허용하고도 일관되고 집요하게 통제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한 사회의 시장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종합시장은 각 지역 인민위원회 상업부서 산하 ‘시장관리소’가 관리 책임을 맡았다. 매대를
분양하고, 매대 상인에게 자릿세를 걷고, 거래질서를 단속할 책임과 권한을 시장관리소가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시장 역시 반체제 요소가
발생하는 무대라는 점에서 공안 기관이 개입했다. 매대 분양을 받지 못한 사람이 종합시장 주변에서 노점상을 할 경우 우리의 경찰에 해당하는
인민보안부가 단속을 벌였다. 종합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이 거래될 경우 체제수호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가 나서기도 한다.
김정일이 종합시장을 승인한 것을 두고 당시에는 “개혁개방의 신호”라는 기대감부터 “국가가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하니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도록 했다”는 결과론적 해석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다수의 북한
연구자들은 1990년대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한 경제 로드맵의 일환으로 평가한다. 김정일이 종합시장 결정자에서 통제자로 바뀐 과정과 배경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황색 자본주의’를 경계했던 김정일은 종합시장이 세워진 지 1년도 되지 않아서부터 여러 가지 통제를 이어갔다. 종합시장을
사회주의 국가공급체제의 한계와 약점을 보완하는 ‘옵션’ 정도로 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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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SBS뉴스 영상캡처 |
김정일 시대 시장통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노점상이나 골목상권을 꾸준히 단속하여 국가가 통제 가능한 범위인 종합시장에서만
‘상행위’가 벌어지도록 했다. 2006년부터는 종합시장을 제외한 골목시장이나 도시 상권에서의 노점상에 대한 단속이 이어졌다. 팔려는 사람이나
사려는 사람은 모두 종합시장으로 모이도록 도시정비가 진행된 것이다. 참여자들을 특정지역에 몰아 놓게 되면 상행위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편리해진다. 모내기 전투나 건설 사업 등과 같은 주민 동원이 필요할 때는 종합시장만 폐쇄하면 간단하게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는 이치다.
둘째, 국가의 인적 동원 영역(국방과 생산)에서 제외되어 있는 유휴인력, 즉 전업주부와
고령 여성만 종합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북한의 전통적인 인적통제 구조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2005년부터 협동농장이나
공장기업소에서 이탈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2008년부터는 종합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자격을 ‘만 40세 이상 여성’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발표됐다.
셋째, 식량거래를 금지하거나 식량판매 가격 상한제를 유지하여 국가가 식량을 매개로
주민들을 통제하는 구조를 유지하려 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끊임없이 ‘국가배급제 복원 시도가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시기가 2005년 가을과
2009년 겨울이다. 국가에서 다시 식량배급을 줄 테니 식량을 사고파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물론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주민들의 항의와
불만이 커졌고 하급간부들의 집행 포기가 속출했다. 하급 간부들 역시 종합시장에서 식량을 사먹어야 하는 처지였다.
넷째, 외화거래를 제한하여 사유재산 축적과 은폐, 지하경제 확대를 차단하려 했다. 북한의
현행법에서는 여전히 일반 주민들의 사적 외화소유 및 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단속은 유야무야 되었다. 특히 2009년 4차
화폐개혁 직후 북한 당국은 외화사용에 대해 강경한 단속의지를 천명했지만, 화폐개혁 그 자체가 북한 원화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말았다.
다섯째, 외부정보가 주민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봉쇄하려 했다. 종합시장에서 주요 단속품목은
한국산 제품이다. 외국 잡지나 정보 전달 기기들 역시 전통적인 거래금지 품목이다. 상품이 담고 있는 외부사회 정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결국 김정일이 의도했던 종합시장은 ‘자유로운 교환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주도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제한된 시장’이었다. ‘통제 가능한 시장’이라는 논리적 모순은 현실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식량 배급을 주지 않으면서 식량거래를
금지시키고, 세대주 남성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 여성들의 장사를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의 시장통제 정책은 주민들의 저항과 하급간부들의
포기, 대안 부재 등을 이유로 번번이 좌절을 맛봐야 했다. 지난 10년간 종합시장 통제 실패는 이제 북한이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최근 시장화의 진전실태
시장화: 시장화(marketization)는 계획화(planning)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시장 메커니즘 도입, 시장확대, 시장요소로 불리는 제도적 특징들의 연결체제로 규정된다. 즉 생산자와 소비자가 각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
경쟁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풍요로운 삶 제공된다는 정부와 주민들의 이해가 맞추어나가는 과정이다.
시장화의 진전: 김정은정권에 들어 ‘시장화’는 양과 질 모두에서 확산되고 있다. 김정은
스스로 시장통제를 철회하고 시장 활성화의 요인을 유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2012년부터 종합시장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종합시장의 원형(原形)이 유지되면서도, 김정일 시대에 추진되던 통제들은 대부분 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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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이 보도했다. 사진은 탄두가 개량된 KN-08./사진=연합뉴스 |
첫째, 모내기 전투나 국가 건설사업, 수령우상화 및 내부결속을 위한 국가적 행사동원 등을
명분으로 하는 시장폐쇄가 현저하게 줄었다. 둘째, 일부 시장관리소에서는 종합시장 울타리 밖에서 노점상을 하던 상인들에게도 장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함으로써 전체적인 상인의 숫자가 증가했다. 셋째, 여성의 연령제한 등 종합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는 자격 적용을 중단함에 따라 다양한 연령과
다양한 층의 여성들이 종합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남자는 매대에서 장사할 수 없다’는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넷째, 외국
출판물·영상물, 한국산 제품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상품·외화·노동력 등이 시장 가격에 따라 거래되고 있다. 다섯째, 시장 참여자들이 중하급
간부들에게 바치는 뇌물이 마치 시장 활동의 ‘고정비용’처럼 여겨질 정도로 광범위한 관행으로 굳어졌다. 종합시장이 활성화는 집권초기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이 수면 아래로 잡복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된다. 상대적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있는 주민들이 목숨 걸고 정권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 정권에서 시장화의 특징: 한마디로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의 발달은 ▲전민시장화
▲전국시장화 ▲전품시장화 ▲전당시장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 북한 전역에서 행정 단위에 따라 종합시장이 뿌리를 내리게 되어 종합시장이 갖는
효용이 전국차원에서 균질해졌다. 지역 간 가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2009년 이전까지 남부지역은 곡물가격이 저렴하고,
북부지역은 공산품 가격이 저렴한 특징을 보였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 이런 특징이 크게 감소했다.
둘째,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종합시장을 무대로 생존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에는 6개
종합시장에 총 매 대수가 3만여 개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매대 상인이 각 세대(3~4인)를 부양한다고 가정할 경우 청진시내 인구(62만)의
약 20%가 종합시장을 기반으로 생존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서 북한의 농업인구와 군인가족을 제외하고, 종합시장을 매개로 물류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민들과 종합시장에 관여하는 하급 간부들까지 포함하면 종합시장을 무대로 생존하는 주민들의 비율을 훨씬 더 높아 질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10여년 전 종합시장 출발 당시에는 북한에서 정치사회적인 지위가 가장 열악한 무직
전업주부들이 장사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간부들이 시장화 흐름에 기생하고 있다. 일단 국영부문에서 생산 책임을
담당하는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 봉사 분야, 행정 분야 등의 중간급 간부들은 북한당국이 지시한 과업 완수를 위해 시장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국가배급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중하급 간부들이 사적으로 챙기는 뇌물의 주요 원천은 시장참여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군대마저
주둔지에서 필요한 생필품들을 종합시장에서 조달한다.
넷째, 팔리는 것은 모두 다 거래되는 시대가 되었다. 상품뿐 아니라 노동력, 자본,
서비스, 권력 등이 종합시장을 무대로 어우러져 이윤추구라는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돈주’는 북한의 시장화가 낳은
독특한 집단이다.
다섯째, 김정은 시대 북한의 시장화에서 발견되는 명암은 분명하다. 일단 전체 주민들의
식량난 및 극심한 빈곤상태가 상대적으로 호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정지역에서 특정계층에게서 드러나는 대량아사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의식에서도 긍정적인 요소가 발견된다. 등가교환 의식이 발전하고 자립심이 강해졌으며 자기 삶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의지가
높아졌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더불어 도덕의식이나 준법의식도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북한 내부에서 나온다.
여섯째, 북한 시장화와 관련해 가장 극적인 장면은 ‘장마당 세대’의 등장이다. 특정
세대는 비슷한 생애주기에 따라 출생 코호트(cohort) 효과를 가지는데, 이로 인해 정치사회 변화의 새로운 세대로 주목받는다. 1980년대에
태어난 북한의 20~30대들은 1차 성장기에 김일성과 사회주의 잔재를 경험했고, 2차 성장기에 식량난과 김정일을 겪었다.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북한사회가 시장화 파도에 휩쓸리더니, 마침내 자신들과 비슷한 연배인 김정은이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면서 시장화가 정점을 찍고 있다. 이들은
10대 시절에 받아야 할 것(국가 배급)을 못 받아 죽어간 가족들을 목격했고, 20대 시절에 국가로부터 쌈짓돈을 빼앗겨(화폐개혁)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른들을 지켜봤다. 북한 내부에서 이들을 ‘장마당 세대’로 통칭하는 ‘호명(呼名)’ 작업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세대적 특성이
향후 북한사회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을 끌고 있다.
2. 시장화 진전이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
북한내부협조자들의 평가
정부관리들과 주민 양쪽 모두 시장의 존재는 더 이상 왈가왈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 북한은 1990년대 경제위기 이후 시장에 대한 통제와 허용 정책을 반복했다. 7.1조치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했으나 2007년부터
시장억제정책으로 회귀했고, 2009년에는 ‘화폐개혁’을 전격 실시, 계획경제를 복원했다. 그러나 화폐개혁 이후 물가폭등과 공급위축 등으로 시장
억제정책이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2010년 ‘5.26 지시’를 통해 이를 철회, 시장은 다시 합법적 지위를 회복한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시장 통제는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시장이 계획화경제부분과 경쟁하는 새로운 사경제 형성발전을 추동한다. 생산은 없고 소비만
있던 구조로부터 생한적 토대를 갖추고 중국상품에 당당히 경쟁하면서 생존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북한주민들의 장인기술, 지혜와 근면성이 사적
이해관계의 자극으로 촉발되어 상품을 북한의 실정에 맞게 잘 만들어 냄으로써 인제는 중국업체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상품개발과 생산을 목표로 한 수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품질향상에도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어 악세사리 등은 중국보다 이젠 더 잘
만든다. 동대문시장에서 만든 의류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질이 높게 만든다. 중국의류업체들도 북한의 미싱기술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오히려 북한을 불량상품시장으로 여기면서 “중국산이라면 헌 고무신도 북한시장에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하던 중국상인들의
신화가 더는 신화가 아니다.
시장의 불안정이 가셔지고 생산자본과 유통자본, 금융자본이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
초창기 장마당의 허울을 완전히 벗고 완전한 구조와 메커니즘을 갖춘 시장으로서 거듭나고 있다. 개인들이 공장기업소 설비들을 돈을 주고 빌려 써서
식용유 생산기계, 인조고기 생산기계 등 기계설비들들 까지 생산하여 공급함으로써 사경제와 계획화경제부분의 영역을 허물고 그 내부로 확장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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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연합뉴스 |
이제 시장은 과거와 달리 상품과 재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까지 공급하고 있다. 최근
북한 내에서 운송업발전 서비스 차량이 늘어나고 평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송노선들이 증설되어 전국 각지 버스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었다. 결과
열차에만 의존하던 교통체증이 크게 해소되었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면 전국 어디에도 갈 수 있으므로 주민이동통제구조가 무너졌고 여행증발급제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돈이 될 만한 각종 신생 서비스들이 오픈되고 있는데, 특히 안마사, 방문의료, 방문요리, 가정교사 등 맞춤형
가사도우미, 심부름집, 콜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백번 물음에 백번 웃으며
대답하자’고 구호를 내걸고 개인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배꼽인사훈련과 스마일표정훈련을 시키고 있다. 특히 이발을 세 개정도
드러내고 웃는 연습을 시키고 있어 서비스의 질이 엄청 높아진 것에 대해 모두가 좋아하고 변화를 칭찬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장사꾼들도 과거
아무렇게나 입고 매대에서 물건을 팔았지만 이제는 다들 옷차림에 엄청 신경을 쓴다. 왜냐하면 화장과 패션, 인상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지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시장화의 진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금융문제도 사금융으로 해결해가고 있다. 과거 수령이
독점하던 금융자원이 점점 주민들의 수중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을 비롯한 수령이 장악하고 있는 은행들은 공장, 기업소들과만
거래를 하고 있지만, “돈데꼬”, “돈주”, “돈거간집”들은 주민들에게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어 고리대금업을 하여 돈을 불리고, 휴대폰통신이
발달하면서 주요도시의 동종업계들과 연계망이 맺어지면서 돈의 이체와 전달, 운반까지 맡아서 장사를 편하고 안전하게 영위한다. 당국과 은행들이
발행권과 모든 유통권한을 가지고 있는 북한 화폐는 거의 쓰지 않고 있는데, 시장에서 잔금도 중국인민폐를 포함한 외화로 치르다 보니, 북한 화폐는
그야말로 “그림종이”로, 휴지라는 의미의 “펄라리”로 치부되고 있다.
동종업계뿐만 아니라, 타업계 사이에서 협력생산체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선
수공업생산가계에서는 단독으로 상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여럿이 모여 협동생산을 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예를 들어 의류를 생산하는 데
1명이 모든 가공공정을 걸쳐 하루에 한 벌 생산하였다면 인제는 전문화된 공정에 한 명씩 배치되어 협력으로 의류를 가공하다보니 지금은 6명서
하루에 20벌 생산 즉 3배 노동생산능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공설비, 기계, 기술, 운송수단들을 서로
빌려주거나 임차하면서 개인들이 구상하는 상품들을 생산하고 있어 민수경제, 군수경제, 당경제,와 함께 당당한 4섹터인 사경제를 형성하고 그 영역을
급속도로 넓혀나가고 있다.
사적 노동시장이 생겨나 급속히 커져가고 있다. 평성, 평양 등에는 노동시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일당을 구하거나 일일 동원 대타를 구하는 수요자와 개인, 혹은 노력거간꾼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여기 시작에서 공급되는 인부들은
계획경제체내의 공장, 기업소가 아니라, 사경제 쪽의 수공업가계나, 개인주택건설, 개인집 개보수, 일용직, 파출부, 노력동원 대타에 돈을 받고
노동력을 팔게 되는데, 특별히 장사를 할 게 없거나, 몸은 건강하지만 기술이 없거나, 돈이 필요하지만 사용자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장소에 삼삼오오 모여서 노동력 수요와 공급이 만나게 된다. 이 시장은 일반 시장하고 전혀 다른 개념이고, 계획경제체제의 노동자들이 이중적인
노동시장에 중첩하여 참여하는 것으로써 단속되거나 고발되면 엄한 처벌을 받았지만 워낙 사경제 분야에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데 그 중요한 원인이 사적 노동시장을 통해 알선도 일자리에서 하루 받는 일당은 계획경제체체 내 공장기업소에서 1년 이상 받는 고액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장에 대한 인식이 간부건 주민이건 일제히 달라졌다. ‘목숨을 가진 사람은 다
시장으로’라는 구호가 공감을 받는다.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지만 수요-공급이 맞춰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집단이 성분에 의해서,
계급에 의해서, 분류되었으나 지금은 돈과 사회적 인맥, 판매망, 정보, 권력접근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해외친척들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제일 잘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체로 시장서 돈을 번 사람들이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집 쓰고 살며, 충분한 서비스를
받는다. 다름 사람들이 못 쓰는 화장품, 기호품을 쓰고, 식모와 가정교사까지 두고, 중국이나 남한 드라마를 보면서 그럴 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시장화에 대한 언론과 학계의 주요 쟁점
○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상호관계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서로 배척하는가? 아니면 서로 보완하는가? 아니면 영역시키기로서
충돌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한의 언론과 학계의 주요 관심사다. 주요 논쟁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그 물적 토대의 상당 부분을 계획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계획경제 내에 존재하는 각종 설비, 원자재, 부품, 전력 등을 유출, 절취하는 형태로 자신의 생산 기반을 확보한다. 아울러
시장경제는 계획경제가 제공하지 못하는 각종 식량,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대신 제공함으로써 기능적으로 계획경제를 보완한다. 반면 계획경제는
시장경제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잉여를 조세, 준조세의 형태로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재정적 기반을 보충한다. 하지만 시장경제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창출한 경제적 잉여의 상당부분을 계획경제에 수탈당함으로써 스스로를 확대할 여력을 상실하게 된다.
내부 축적이 용이하지 않은 구조로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계획경제이다. 즉, 각종
자원의 유출, 절취로 인해 계획경제의 물적 토대가 침식된다는 점이다. 스스로는 시장경제에 대해 아무런 자원도 제공하지 않고 경제적 잉여를
수탈하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은 자신의 토대 침식으로 ‘상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장경제로부터 제공받은 잉여는
계획경제 내에 재투자되어 생산적 활동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소비적 활동에 더 많이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잉여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유출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계획경제는 ‘손해 보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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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사망 21주기인 지난 8월 8일 0시 인민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오른쪽부터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리영길 총참모장, 조남진 중장, 렴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순으로, 왼쪽부터는 박영식 대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노광철 부총참모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순으로
도열했다./사진=연합뉴스 |
게다가 시장화의 진전에 따른 부정부패의 확산은 계획경제시스템에 대한 파괴적 효과가 있다.
전반적인 국가의 명령 하달·이행 체계의 작동을 저해하고, 나아가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을 강화함으로써 우회적으로 계획경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한편 양자의 보완적 측면이 더 큰지, 대립적 측면이 더 큰지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아울러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부터
수취하는 효과가 더 큰지, 침식당하는 효과가 더 큰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순수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측면까지 고려하면 양자는 대립적 요소가
더 크고, 또한 계획경제가 잠식당하는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변화에 주목한다면 정경유착형 부익부 빈익빈
구조는 정치사회적 불안 요소를 확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부패의 확산, 나아가 범죄의 증가는 국가 시스템의 기능 저하를 촉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속도의 문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는 관점이다.
○ 북한 시장화의 추동력, 특성
북한에서 시장화의 추동력은 무엇인가? 이는 북한 시장화의 성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언론과 학계의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하나의 견해는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론 혹은 자생적 시장화론이다. 또 하나의 견해는 시장세력론 혹은
시장의 위계적 구조론이다. 이 주장과는 다소 상이한 접근을 취하고 있는 이른바 시장세력론도 있다. 북한에서 시장화를 추동하는 주된 힘은 중앙당
38, 39호실과 주요 부서들, 제2경제, 그리고 중앙당의 특수부서들, 호위사령부, 인민무력부의 국단위 조직들,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 등
‘특수단위’들에 의한 외화벌이사업의 전방위적 전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에서 좀 더 유의미한 시장 활성화의 주체는 생계유지를 위해 시장에 참가하는
대다수 중하층 가구들보다는 특권적 국가기관들의 외화벌이에 연루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보면 북한의 시장 전개 주역은 권력의 비호와
특혜를 배경으로 시장 확대과정에서 지배자적 지위를 누렸던 정권 기관 및 정권과 결탁한 개인 상인들이라는 것이다. 시장세력론은 시장의 위계적
구조론과 맥을 같이한다. 시장의 상품유통 피라미드를 보면 맨 꼭대기에는 국가기관의 외화벌이 관련 부서들이 있고, 그 밑에는 큰 돈주들이 있고,
그 아래 몇 단계를 거쳐 맨 밑바닥에 소매상인(장사)과 수출원천 생산자들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중간단계에 도당, 시군당, 보안서 등 지역
권력기관과 현장 일꾼도 추가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 북한시장화의 포괄범위
북한의 시장화 연구에 있어서 핵심 쟁점의 하나는 북한의 시장과 계획경제와의 구획 또는
포괄범위에 관한 논쟁이다. 물론 이 문제를 놓고 연구자들 사이에 논쟁을 벌인 적은 없다. 하지만 북한의 시장화에 관한 정성적 및 정량적 연구에
있어서 연구자들 사이에 상당한 견해차가 발견되는 것은 시장화를 어떻게 개념 정의할 것인가, 따라서 어디까지를 시장화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해
연구자들 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엄밀히 보면 견해차라기보다는 접근방법의 차이, 강조점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컨대
김석진(2010b)에서는 북한의 비공식경제를 ‘장사’라고 부르는 영세 자영업, 즉 개인들에 의한 소매업, 개인서비스업, 운수업, 개인수공업,
그리고 소토지(텃밭과 뙈기밭)를 이용한 사적 농산물 생산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서는 북한에서의 비공식경제활동은 ① 텃밭 등 식량 관련 비공식경제활동,
② 시장에서의 장사 등 유통활동, ③시장을 대상으로 한 생산활동으로 진화해 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활동 또는 비공식경제활동을 이보다
훨씬 더 넓게 보는 견해도 있다. 개념적으로는 생산재시장, 소비재시장, 자본금융시장, 노동시장 등 4대 시장을 포함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수산물, 광산물의 채취, 매집을 비롯해 대외무역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경제활동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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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승희 석좌교수는 오늘날 통일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 지배층을 배제하려는 통일보다는 김정은 정권이 북한
경제체제의 변화를 자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선택지를 제안한다. 좌승희 석좌교수는 진정한 통일대박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철저히 경제발전
원리-경제적 차별화-에 충실할 것을 주문한다. |
○ 시장에 대한 북한정부의 딜레마
시장화에 대한 북한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개념이 이른바 딜레마론80)이었다.
경제에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시장을 활용치 않을 수 없지만 시장의 확대는 체제불안요인의 증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정부가 지향하는
것은 이른바 ‘관리 가능한 시장화’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가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시장화 연구에 있어서 국가와 정권을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명시적인 형태로 등장했다. 이 주장은 아울러 시장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과 정치학적 접근을 구분하면서 시장확대와
정권안보가 반드시 갈등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론 시장확대는 정권에게 어려운 도전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시장확대를
정권안보에 기여하는 차원에서 활용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정부의 딜레마론은 지금도 유효한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이른바 시장세력의 존재,
특히 현재 북한 시장화의 최대 수혜자는 권력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시장화의 장기화(또는 정착)는 시장에 대한
북한정부의 태도, 나아가 북한의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 “붉은 자본가 등장”주장
북한에서도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 달러의 재산가인 '권력형 자본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돼 끼니를 걱정하는 빈민들이 늘어나는
반대편에서는 벤츠 등 고급 외제 승용차를 굴리고 호화 주택에 살면서 자본주의 대기업가 못지않은 부유한 생활을 향유하는 계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붉은 자본가' 세력은 무역업계를 장악한 고위층 자제들이 대부분이다.
고위층 자제들의 무역업계 진출은 1980년대 외화바람 때가 시작이었다. 이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돈이 최고', '돈이 있으면 권력도 가질 수 있다'는 배금주의가 확산되자 너도 나도 당간부 같은 자리를
서슴없이 내놓고 무역업계로 뛰어들었다. 시장이 생겨나고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권력 체계가 존속하는 현실에서 돈을 벌려면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이 시장에서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이들은 '김정일 서기실', 38호실, 39호실과
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관련 부서나 전문 무역기관, 주요 기관의 무역분야에 종사하면서 사실상 북한의 돈줄을 장악했다. 또 소속기관
이름으로 벤츠를 사들여 자가용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가구와 가전제품은 말할 것도 없고 생수를 포함한 식료품도 외국산을 애용하고 가정부까지 두는 등
귀족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전문이다.
향후 김정은 정권은 ‘시장’을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가운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이미 당, 군, 내각 등 여러 부문의 시장의존도가 높고, 주민들이 시장의존 생계를 꾸려갈 뿐만 아니라 ‘경제강국을 통한
강성대국 실현’이라는 선대 유업을 관철해야 하는 입장 등에 비추어 시장화 확대는 거의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현 단계 북한사회의 급격한
변화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시장화 확산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주목을 요한다. 시장화에 따른 가치관 변화와 비사회주의적 요소 확산의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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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사진=연합뉴스 |
○ “시장 불패론” 주장
사회주의 체제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시장’이야말로 변화의 핵심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최근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읽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시장은 그 차제가 인간의 본성적 요구를 자연스럽게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한번 작동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코 돌이킬 수 있는 것이 못된다. 북한의 경우도 거의 20년간 북한주민들을 먹여 살렸고 북한당국을
경제침체로 인한 국가붕괴를 막아준 일등공신임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의지나 거부에 관계없이 시장은 북한경제와 사회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갈 것이며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공식 채택할 날은 시간문제이다.
시장화에 대한 논쟁에서 유의할 점
○ “시장불패론”은 조급한 주관적 판단
시장이 급속한 발달은 이제 북한을 시장화에로 본격적으로 밀어가고 있지만 그 전망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의 시장의 life-scycle에 맞추어 도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은 재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시장의 존재와 발전, 종말은 시장참여자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시장의 운명은 북한당국 즉 김정은이 결정한다.
시장참여자들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진다고 할지라도 김정은이 권력유지에 위험이 되거나 상충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시장을 축소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반대로 김정은이 북한주민들을 먹여살리고 국가를 유지하는 방법이 시장화의 진전밖에 없다고 판단하거나, 시장이 권력유지에 오히려 일조하거나
그 영향의 정반관계상 도움이 되는 부분이 크다면 북한 경제 전체를 시장프레임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 “붉은 자본가” 등장은 시기상조
시장화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가운데서 단골 메뉴는 바로 “붉은 자본가”의
등장설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장사거래기능력, 자금력, 권력과의 깊은 유착 등을 토대로 북한시장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반주민들 보다는 노동당의 간부나 그 자식들, 해외무역, 궁정경제를 주무르는 당간부들이 바로 ‘붉은 자본가’라는 설이다. 물론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몇 건 있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정보가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착되는 순간에 바로 “살찐
돼지”신세가 된다. 북한은 “돼지는 살을 찌워 잡아먹는다”는 원칙아래 장사나 대외무역을 하는 모든 대상들에 대하여 면밀히 정보공작을 하다가 일정
수준이상으로 개인비축을 하거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흥청거리거나, 권력과의 유착이 도를 넘거나 하게 되면 바로 “생활총화” 면목으로
보위부나 군보위사령부에 잡아가두고 뚜두려패서 모든 것을 실토하게 한 다음 작물을 정리하여 김정은의 재가를 받아 극형에 처하거나 제거해버린다.
때문에 아직은 북한의 시장적 현상에서 “붉은 자본가의 등장”은 시기상조다.
○ 자유시장경제논리에 인위적으로 맞추는 것은 금물
북한의 시장화가 진행됨에 따라 드러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분석과 예상을 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시장 내지는 자유시장경제의 이론을 참고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고 근거가 충분하다. 하지만 북한의 시장화를 자본주의시장경제이론에
기계적으로 맞추어 분석하고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시장은 그 본질상 자유시장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며,
자본주의시장경제이론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시장의 조건들을 두루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시장결정권이 시장참여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있으며 더 나아가 김정은에게 쥐어져 있다. 그리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즉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이윤의 동기기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판단과 개입’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이밖에도 생산, 물류, 금융,
마케팅, 시장정보 등 자유시장에서 중요한 메커니즘들이 매우 미미한데, 그것이 제도적 제약 때문에 본태대로 시장에 도입되기 어려운 상황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북한시장을 고찰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시장경제이론을 참고로 하되, 북한의 속박된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변형된 연구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 기초하여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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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과 자유통일문화원이 지난 11일 공동주최한 ‘북한의 장마당 어떻게 볼 것인가’ 통일정책토론회의 전경.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사진=자유경제원 |
3. 시장화의 진전에 따른 북한경제체제의 변화 전망
□ 김정은과 북한지도부의 시장화에 대한 인식과 평가
그동안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은 갈 지(之)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암시장이 급속도로 커져 갈 때, 당국은 통제와 묵인을 반복했으나 큰 흐름은 묵인에 가까웠다.
2000년대 들어 7.1 조치를 계기로 시장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억제에서 촉진·활용으로 선회했다. 그래서 합법적인 소비재시장과 생산재 시장이
나타났다.
북한은 2002년 7.1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공식제도 내부에
수용하면서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경제개혁의 추진에 따른 기존질서의 동요와 개인주의 확산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2007년부터 시장에 대한 억제정책으로 전환하였으며,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전격적으로 실시하여 시장통제를 통한 계획경제의 복원을
시도했다.
그런데 시장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2005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였고, 특히
2007년부터는 시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통제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반(反) 시장화 정책은 2009년 정점에 달했는데, 당국은 종합시장의
직접적인 폐쇄 조치를 시도하고 화폐개혁을 통해 시장의 재정적 기반에 타격을 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생계적 기반을 시장에 두고 있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었고,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공식경제의 타격도 만만치 않음을 발견한 북한 당국은 결국 2010년 2월초부터 종합시장에 대한 단속의 고삐를 늦추고, 나아가 5월에는 시장에
대한 억제 정책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종합시장은 다시 합법적인 존재로서의 지위를 회복했고, 시장에 대한 유화적인 정책기조는 현재까지 4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더욱이 시장에 대한 관용적인 기조는 김정일의 사망, 김정은의 취임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격변기에도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되어
외부세계의 관찰자들을 놀라게 했다.
또한 종합시장 이외의 다른 시장에 대한 김정일 정권 말기 및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의
정책은 시장 전반에 대한 북한 당국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예컨대 당국은 시장경제 방식으로
운영되는 대형 백화점과 같은 현대적 유통망을 대도시에 설립하고, 직접적인 통제 하에 둠으로써 소비재 시장을 공식 부문으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울러 휴대전화 시장은 북한 당국이 새롭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함께 사실상의 독점적 해외수입 및 국내공급자로 등장하면서 수입가격과 국내판매가격의 엄청난 차이로 발생하는 독점 이윤을
수취하고 시장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성장하고 있는 신규주택 건설의 부동산 시장에 최근 북한 당국이 본격적으로
가세했다. ‘살림집 건설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워 민간자본의 유입을 묵인하고, 부동산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김정은 시대에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책기조가 허용보다는 좀 더 높은 수준일 수
있음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2012년부터 시범운영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6.28방침으로 알려진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다. 이는
현실과 공식 제도의 괴리를 어느 정도 메워주는 것이 그 기본 방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조선신보의 표현대로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농민의 일욕심을 돋구는 것”으로서 생산단위의 자율성 및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신보가
“국가지표 이외의 생산”, “국가계획을 벗어난 생산”에 대해서는 기업에 거의 모든 자율성을 부여하는 ‘독자 경영체제’가 도입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는 7.1 조치 때 기업에 대해 시장활동을 일부 용인한 ‘계획 외 생산·유통’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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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과 자유통일문화원이 지난 11일 공동주최한 ‘북한의 장마당 어떻게 볼 것인가’ 통일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김 대표는 “북한의 시장화 상황을 자유시장경제논리에 인위적으로 맞추는 것을 금물”이라며 “북한의 속박된 시장의
특성을 반영한 변형된 연구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 기초하여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사진=자유경제원 |
결국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내용적으로는 농장 및 공장 운영에 있어서 시장과 관련된
제반 불법적 또는 반(半)합법적 활동의 상당 부분을 합법화하고, 이를 통해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면,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은 7·1 조치와 마찬가지로 이미 어쩔 수 없게 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승인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012년 6월부터 2년 넘게 시범운영되고 있다면 이 또한 ‘시장 친화적’
상황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시범운영의 성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장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같은 반(反) 시장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시범운영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고,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의 ‘연구완성’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시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시장화는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원래 북한 당국은 시장에 대해 근본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를 위해서는 시장을
제도 내에 편입시켜 활성화해야 하지만, 시장이 활성화되면 정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시장에 대한 억제와 허용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2010년 5월부터 지금까지 4년 넘게 시장의 허용이라는 길을 택했다. 새로운 정권으로서는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면이 강하다. 또한 새로운 정권의 조기 안착을 위해서는 권력층의 지지도 중요하고, 따라서 이들의 금전적 욕구 충족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사실 북한에서 시장이 없으면 주민들의 생존이 불가능하지만 권력층의 생활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다.
다른 측면도 있다. 이제 와서 시장을 없애려고 한들 과연 없앨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시장을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위기도 장기화되고 있지만 시장화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시장 없는 북한 경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인식 또는 정책에 다소 변화가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전에는 시장을 없애느냐 살리느냐가 최대 고민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시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나아가 시장을
적극 활용하면서 그 대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지향하는 것이 관리 가능한 시장화라면 관리 가능 수준을 조금 더
높여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은 당분간 시장 친화적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장에 대한 정책이 통제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 그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정권 출범이후 북한의 경제 변화는 1980년대 중국의 경제개혁 당시의 경제변화
양상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음. 김정은시대(2012~현재)의 북한은 경제정책의 제도적 변화의 수준은 1980년대 중국과 유사하며, 국가
기간산업 부문에서는 계획이 지배하지만 이외의 부문에서는 시장이 현저히 확대되는 과정으로 평가될 수 있음5)- 중국은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가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수립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한데 반해, 북한은 이미 시장과 공생하고 있으나 중국에 비해 시장에 대한 공개적 적극성과
정치적 의지가 부족함- 아울러 소비 부문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화가 북한 내부에서 생산의 확대와 이에 따른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점,
대외관계의 미개선 등의 한계를 지님
□ 김정은정권의 시장화정책 전개 전망
북한은 2016년 5월, 36년만에 조선조동당 제7차대회를 개최한다. 원래 당규약상
5년마다 최소한 한 번은 열려야 하는 당대회를 지난 36년간 개최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경제발전의 부진이다. 왜냐하면 당대회의 주요한
의제중 하나가 새로운 회기년도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채택하는 것인데, 북한은 지금까지 국가계획이 완전히 파탄나서 어데서부터 계획을 세워보아야
무용지물이고 오히려 경제혼란을 더 가중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아예 당대회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인제는 당대회를 개최하여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채택할 수 있을 정도로
북한경제가 호전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일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방증할 수 있는 어떤 근거나 정보도 전무한 상태다. 다만 김정은시대에
들어 시장화의 진전이 북한주민들을 기아와 아사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하였지만 북한경제의 핵심인 계획경제 구획은 여전히 침체상태이고 그 늪에서 언제
헤어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김정은이 종합시장에 대해 앞으로 ‘상당수준의 자유화’를 허용할 지에 대에서는 아직 확언이
어렵다. 다만 북한 내부의 시장 참여자들은 ‘김정은 식 종합시장’이 ‘김정일식 종합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뇌물 구조의 확산으로 북한 시장화를 설명하는 시각도 있으나,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일관되게 종합시장을 통제하려 했다면
현재와 같은 수준의 시장 안정성은 달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종합시장은 내부 경제개혁 조치와 상호보완 작용을 거치며 발달하고 있다.
2014년 발표된 <5.30조치>는 협동농장 및 공장기업소 등 생산단위의 자율성을 대폭 보장하겠다는 정책이다. 원료 확보, 생산품
판매가격, 생산량 조절, 임금과 인센티브, 채용과 해고, 계좌관리와 해외투자 유치까지 개별 생산 단위가 국가 승인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농업에서는 기존의 작업 분조(分組)를 가족단위 자율경영제로 전환했다. 농업 생산량의 분배원칙은 국가납부를 40%로 하향 조정하고,
개인이 60%를 갖도록 높였다. 이러한 조치는 북한의 농업생산량 증가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북한이 각종 자연재해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합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큰 변동이 없다.
김정은 정권은 ‘시장’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부분적으로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가운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개인뿐 아니라 당, 군, 내각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져있는 상황인 바, 계획부문과 시장부문이 공존하는 가운데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를 점진적으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을 통해 상당수 주민들이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에 대한 과도한 통제는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불만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공식 경제에도 충격을 준다는 사실은 2009년 화폐개혁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경제강국을 통한 강성대국 달성’이라는 유업을 관철해야
하는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은 시장화 허용 및 활용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시장화에 따른 북한사회 구조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시장화 확산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북한사회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이번 당제7차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시장화를 활용하는 다음과 같은
경제정책들을 새롭게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첫째. 5낸 좌우의 새로운 국가경제발전계획을 제시(계획화시스템의 유지), 왜냐하면 정부와
주민 양쪽이 공휴할 수 있는 구체적 경제발전목표가 있어서 주민들의 자발적 동원기재를 장력하고 시장과 주민들에 대한 통제의 명분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장과 관련도 새로운 경제관리조직들의 공식출범(계획과 시장의 공존). 북한이
시장을 허용한 중요한 이유가 배급제도, 노세금과 같은 반 시장적인 경제구조 하에서는 정권유지는 물론, 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고, 시장화의 20년 동안에 다시는 배급제를 부활하여 국가의 목을 조이는 일만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북한당국의
판단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은 자본주의로 가는 급행표라고 확신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시장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시장을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하여 시장이라는 열차를 타고 현 지점에서부터 권력의 장기적 안정화, 사회주의체제의
유지, 주민들의 지지획득이 실현된 유토피아로 가려고 한다. 이번 7차당대회에서는 그 열차를 공식화하고 그 열차에 대한 전매특허를 가지는 일련의
실제적 조치들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장관리성 내지는 협동관리성을 새로 조직하여 시장의 장점을 계획화체계와 연동시키려 꾀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중국의 사회주의 초급단계에서 행하였던 경제개혁조치들을 본격적으로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토지문제, 자영업문제, 인센티브, 노동, 재화, 금융 등 시장경제의 핵심요소들을 받아들이는 큰 폭의 정책전환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정책전환에는 자영업, 부동산, 노동, 금융, 뮬류, 광고, 등 시장경제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공식화과정들을 거치게 될 것이다. 물론 소유권과 여행자유화 조치 등은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앞으로 최소한 시장경제운영의 핵심적인 경제범주들은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반드시 도입하려 할 것이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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