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女전사’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지난 10월 15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역사교과서 특강. 보수진영은 ‘전국구 여전사(戰士)’ 한 명을 배출한다. 강연 요지는 이렇다. “새 교과서에 좌우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은 현행 교과서의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정책에 박수 친 국민들을 실망하게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선택한
나라로 이념 중립국이 아니며 좌파들이 우리를 꽁꽁 묶은 기계적 중립론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 부정 세력은 크게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데 역사와
교육으로, 이들은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정해 미래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육 역시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미래 전사들을 길러낼 수 있는 교두보라고 판단한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전희경(41)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그의 ‘일갈’에 환호성이 터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강연을 듣고 “전 총장은 영웅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전 총장은 밤잠 자지 말고 전국을 다니면서 오늘 발표 내용을 국민들 앞에서 강연하시라”고 극찬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에 자리한 자유경제원에서 만난 전 총장은 정작 이런 상황이 다소 부담스럽다고 했다. 자신 역시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데 세간의 기대와 주목을 조심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매체를 통해 비친 것과는 다소 다른
이미지도 줬다.
하지만 “지금은 용감해질 때다”라고 강조하거나 “오래도록 좌파가 선점해온 ‘민주’, ‘인권’, ‘통일’, ‘평화’와 같은 분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무조건 ‘반민주·반인권’ 세력으로 낙인찍는 ‘강요된 억압’에는 당당히 맞서려 용기를 낸다”는 말에서는 ‘결기’도 감지됐다. 이런 말을 할 때 스쳐 가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녀의 가슴속에 내재해 있는 신념만큼이나 강렬해 보였다.
역사교과서 논쟁에서 그녀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그는 반짝 이슈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 문제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좌파가 ‘교육’을 자신들의 헤게모니로 삼으려는 노력만큼 이를 막으려는 우파진영의 움직임도 그만큼 치열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까.
전 총장은 “교과서를 통해 반시장적 교육이나 패배감을 심어주는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약육강식의 장으로 가르치며, 경제의 주축인 기업과 기업가들을 부정부패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저는 물론 자유진영의 한결같은 외침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전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예요. 해방, 건국, 전쟁의 와중에 의무 교육부터 시행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공산화의 물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해 번영을 이루었죠. 이 두 체제는 우리의 ‘뿌리’이자 매일 자유롭게 호흡해야 하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뿌리’가 잘못된 교육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리고, 대한민국의 사회구조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수의 특권층만 성공하는 구조라고 가르치는 교육 현실을 만든 이들이 바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이런 신념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그는 사람을 관찰하기 좋아하던 대학 시절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가치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돌이켰다. ‘천성(天性)’이라는 표현도 썼다.
“전공이 행정학인데, 어릴 때부터 사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학생회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학생회가 주최하는 행사에 정말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적개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학생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죠. 학생들 앞에 서는 역할을 맡은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런데 여러 행사를 통해 지켜본 학생회 간부들은 그들이 말하는 ‘학우’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외부 조직과의 ‘연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거기에서 하달되는 임무나 명령들에 매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미 90년대 학번 학생들은 세계와 문화, 직업 영역의 발전 등에서 급속히 깨어가고 있는데, 학생회는 여전히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대표되는 ‘80년대’ 과거의 향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전 총장은 이화여대 졸업후 1999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직접 체험해 보고 싶어 학부 학생회 간부들과 중요 투쟁이슈 선정과 투쟁방향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 여러 대학교의 학생회와 교류할 기회가 많았는데, 학생회의 ‘속살’을 봤다고 했다.
그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고, 특권을 무너뜨려 일반인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열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아마추어리즘과 세상을 향한 적개심이 그를 ‘자각’하게 한 셈이다.
“노 대통령이 선택한 사람들은 변화와 개혁을 외쳤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쌓아올린 정당한 권위도 적대시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사학법 개정, 국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종합부동산세(종부세)도 신설했죠. 우리의 교육구조는 사학의 비중이 80%나 되는데, 비리가 있다면 비리를 잡는 선에 그쳐야지 사학이 갖고 있던 자율성이나 학풍까지 없애는 게 과연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보안법도 분단국, 휴전국의 특수성이 있는데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정권의 사고방식이 매우 위험해 보였습니다. 또 내 집 갖고 사는 사람들을 ‘잘사니까 죄인’이라는 식으로 일거에 적대시한 종부세의 접근법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회의를 가중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이때 ‘이건 아니다. 막연히 잘못됐다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잘못을 얘기할 수 있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한국의 정당한 권위가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 건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과연 ‘침묵하는 다수’는 누가 대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전 총장은 일각에서 자신을 ‘극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극우는 극단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 전체주의를 뜻하는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민족주의의 함정을 경계합니다”라며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좇는 사람들을 ‘극우’라고 표현하는 것은 ‘용어를 통한 마타도어(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하는 흑색선전)’”라고 비판했다. 또 “대한민국은 이념에 가치 중립적인 나라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의 기본 프레임으로 선택한 나라”라며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에 모두 가치 중립적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되며 좋은 사상과 나쁜 사상을 분명히 구별해 우리의 체제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가르쳐 줘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좌파·진보주의자들에게 명확한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좌파 세력은 스스로 ‘진보’라고 칭하면서 가장 ‘수구’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번 서울 광화문의 폭력집회를 보세요. 이는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의 불법쯤은 문제 될 것 없다는 위험한 생각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입니다. 법치 위에 그들식의 민주가 있다는 잘못된 사고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저는 이념의 시대가 갔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용감해질 각오가 돼 있습니다.”
인터뷰 = 임대환 차장 (경제산업부) hwan9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