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교과서, 문제를 뒤집어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① 문학은 기록으로 구현된 언어이다. 현행 교육 과정에서 추구하는 문학 교육의 목표는 작품의 이해와 감상에 초점을 맞추고, 문학에 대한 지식을 익히며, 이를 통해 미적 감수성을 기르고, 인간의 삶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문학 교육은 국어와는 달리 언어적 현상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것을 얼마나 잘 감상하고 그 감상이 우리 삶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게 하는가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론적으로 제시되는 문학 작품을 보는 관점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가를 중심으로 접근해가는 표현론, 작품에 나타난 사회 현상에 집중하는 반영론, 그 작품을 읽고 독자가 어떤 감동을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는 효용론, 독자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보는 수용론, 다른 것은 다 빼고 오로지 작품만을 가지고 평가하는 구조론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접근 방법 중 문학 교과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효용론과 수용론적 방법이다. 문학 교과의 목표가 작품에서 감동을 받아 그것이 개인의 삶의 질 향상까지 이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문학 교과의 목표를 볼 때 문학 수업은 철저히 수용자인 학생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작품에 대해 그 학생이 받는, 각기 다른 감동에 집중하여 그 살아 있는 감동이 학생의 가치관이나 미래의 삶까지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런데 일부 교사들에 의해 문학 교과가 심각한 편향성을 띠는 교과가 되고 말았다. 그런 교사들은 학생들이 문학 작품을 통해 일생 동안 어떤 감동을 받고 인생을 얼마나 유익한 길로 이끌어가는가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다만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들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이 비뚤어지고 부정적인 사고를 심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교사들로부터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지켜내려면 교과서 내용에 편향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문학 교과서가 편향성을 버리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가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제껏 발견된 문제를 뒤집으면 바로 문학 교과서가 나아갈 방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늘 토론에서는 다른 어떤 분석보다는 문학 교과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껏 제기되었던 문제를 다시 한번 돌이켜 그 방향을 찾고자 한다.
현행 모든 교과서 문제는 어린 학생들에게 긍정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물론 시간에도 우리 민족은 못나고 역대 대통령은 다 도둑놈 아니면 독재자로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부터인가 식민사관보다 더 나쁜 자학사관이 우리 교육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렇게 부정과 자학만 강조하니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헬조선’ 등의 근거 없는 자조적 어휘가 생겨난 것이다. 긍정을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어린 학생들이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을 가르치는 것은 어느 정파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불행하게, 혹은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느냐에 관련한 문제이다.
비판 의식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충분히 기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절망을 가르치면 성인이 되어도 건전한 비판 의식을 기를 수 없다. 절망에
빠지면 비판을 하여 부조리를 바로잡을 의욕조차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극히 당연한 얘기이다. 이런 당연한 얘기조차 목청 높여 외쳐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정의, 인도, 동포애, 민족의 단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기회 균등, 안전과 자유와 행복 등을 담은 작품을 선택해야 한다.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내용은 버려야 할 것이다. 문학 교과서는 문학적 가치를 전달하고 가르치는 데 전념해야 한다. 어설프게 사회상을
가르치는 사회 교과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교과서에 실릴 문학 작품을 고를 때 굳이 논란이 되는 현대사를 담은 작품을 골라 사회상을
왜곡하거나 편파적으로 전달하는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친일 작가의 작품은 질색을 하면서 월북 작가의 작품은 아무런 코멘트 없이 수록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친일 작가의 작품이든 월북 작가의 작품이든 그가 민족에게, 대한민국에게 떤 일을 했고 그런 사람 작품이 어떤 가치를 지니기에 굳이
교과서에 싣는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 5. 계층 간의 차별과 반감을 강조하는 작품 우리 아버지가 낮은 직급이면 부끄럽고 친구 아버지가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라 하면 친구에게
반감을 가진다는 등의 내용은 싣지 말아야 한다. 반기업 정신을 어릴 때부터 심어주고 계층 차별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선입관을 가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은 작금의 헬조선 추세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방법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건전한 시민 정신의 실천에서 찾을 수 있다. 자살이나 살인이나 방화, 폭력 등을 미화하는 내용도 배제해야 한다. 도둑질을 미화하는 내용도 배제해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 윤리를 존중하는 내용을 실어야 한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덕분에 오늘의 풍요가 있다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무조건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경쟁을 비판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통한다. 오히려 건전한 경쟁을 통해 발전을 이뤄가는 내용을 실어야 할
것이다. 경쟁이 없는 세상에는 발전도 없다는 내용도 필요하다. 그런 내용을 배우고 자라야 세상에 공짜는 없고 열심히 노력한 자만 잘 살 수
있다는 당연한 논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전에는 북한이 더 살기 좋다고 선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얘기는
대중에 먹혀들지 않는다. 북한이 어떤 집단인지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남한도 북한만큼이나 못 살 곳이라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작품은 배제해야 한다. 남한은 게으름과 방탕한 자유가 있는 곳이라는 식으로 고귀한 자유에 대한 왜곡할 우려가 있는 작품들이다.
6.25 전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수업하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남한은 변함이 없고 남한이 북한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농업의 일방적 희생으로 고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내용, 그 이면에서 소외된 농촌이 더 피폐해졌고 유신 체제의 정치적 상황과 산업화 양상으로 농촌이 급속도로 황폐화되어 갔다는
등의 내용은 산업화와 경제 성장 시기를 왜곡할 수 있다. 유신 시대는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오히려 농촌이 잘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산업화 과정을 비판 왜곡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 즉 대기업이나 재벌 등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길러지고 법을 지키지 않고 떼를 써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소시민의 희망을 짓밟는 행위를 사회가 용인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이나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약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해도 된다는 느낌의 작품은 피해야 한다. 전형적인 언더도그마다. 범법자라도 친구니까 풀어주고 지금 당장 울고 있는 사람은 무조건 도와주고 숨겨줘야 한다는
식의 내용은 피해야 한다. 가까운 사람이 법을 어겼을 경우에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민주 시민으로서 자질을 키울 수 있다. 교과서는 공교육의 교육 자료이다. 공교육에 사용하는 교과서에까지 학교 교육이 불합리하다는
내용을 넣어 학교 스스로 모순이 가득한 사회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생들이 학교를 부정적인 장소로 받아들이도록 수업 시간에 가르친다면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또 대개 그런 내용은 그 불합리를 극복하는 스토리로 전개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규칙은 안
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국민의 자유와 여러 권리가 일부 제한되었던 상황을 들어, 안보 자체를
허구적 조작으로 치부하는 작품은 피한다. 그 작품들에서는 당시 권력자들이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교묘히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를 통제하려
했다고 가르친다. 우리 현대사에 독재 정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안보까지도 이렇게 허구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또 이런 논의에 자신의 작품이 거론된 작가들은 이를 불쾌하게만 여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 감시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작품이 원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혹은 앞뒤 맥락은 다 생략된 채 불순한 의도를 가진 편자나 교사들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학 교과에서 꼭 가르쳐야 하는 작품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사회와
대한민국의 가치에 대한 왜곡을 피하고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삶을 선사할 수 있는 내용을 문학 교과서에 얼마든지 담을 수 있다. 수많은 문학 작품
가운데 문학의 근본 가치에 충실한 아름다운 작품을 골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담은 작품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왜곡 가능성이 큰 문학 교과서 수록 작품들은 무수히 많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경쟁은 나쁜 것이기 때문에 계속 지고 있는 삼미 슈퍼스타즈 야구팀이 가장 아름다운 야구팀이라는 내용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덕분에 오늘의 풍요가 있다는 사실은 도외시하고 무조건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치부한다. 일제고사 등을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들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할 수 있다. # 최인훈의 <광장> : 창비 문학2 / 디딤돌 문학 상 / 천재(김) / 천재(정) / 지학(권) / 비상(박) / 비상(유) 가장 많은 출판사가 선택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많이 다뤄지는 부분은 주인공
이명훈이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는 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남한은 게으름과 방탕한 자유가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고귀한 자유에 대한
왜곡 우려가 있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남한은 변함이 없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가장 문제는 남한이 북한이나 다를 바 없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대립적으로 그려놓은 전형적인 소설이다. 난쟁이로 상징되는 약자가 가진 자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당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한 편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영수, 영호, 영희라는 세 명의 난장이 자식이 각각 1인칭 화자가 되어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데 모두 한결같이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직장에 다니는 성인인 세 자녀가 난장이인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은 그들 역시 난장이 아버지를 착취하는 가해자가 아닐까? 사지가 멀쩡한 세 성인 자녀는 장애인 아버지가 자살을 선택하지 않도록 뭔가를 했어야 했다. 1970년대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는 훨씬 큰 꿈을 꿀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1970년대를 부조리와 착취로 서민이 살 수 없는 시대로 그려놓았다. 한편 영희는, 성관계로 부동산업자를 유혹하여 이미 돈 받고 팔아버린 입주권을 훔쳐온다.
입주권을 파는 행위 자체도 불법이다. 입주권을 찾아오려면 받은 돈은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그냥 약을 먹여 재우고 훔쳐온다. 게다가 그의
금고에서 돈도 훔쳐온다. 이는 분명 불법이고 범죄 행위이다. 그러나 오히려 부동산업자가 나쁜 사람이도 영희가 투사로 여겨진다. 1970년대에는 1960년대의 산업화 정책에 따라 농업의 일방적 희생으로 고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자습서 해설이 있음. 고도 성장의 이면에서 소외된 농촌이 더 피폐해졌고 유신 체제의 정치적 상황과 산업화 양상으로 농촌이
급속도로 황폐화되어 갔고 그런 현상을 읊은 시라는 해설. 유신 시대는 새마을 운동 등을 통해 오히려 농촌이 잘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무조건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과정을 비판 왜곡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도시 이주민의 불행’이다. 작품의 배경은 1970년대 서울 변두리 동네이다. 노새로 연탄 배달하는 아버지와 아들. 어찌어찌해서 노새를 잃어버리자 아버지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스스로 노새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때 경찰에서 연락이 온다. 노새는 못 찾았는데 노새가 길거리에서 날뛰어 그에 따른 피해를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1970년대는 어떤 때인가? 박정희 대통령 주도로 경제 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소설을 통해 극도의 인간 소외 현상이 일어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시대로 그려지고 있다. 중수필 본문 중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다른 것 같지만 모두 다 배타적인 인간 중심
사상을 핵심에 깔고 있다는 면에서는 같다”라는 내용이 있다. 물론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글이지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같은 것으로 주장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자습서의 문제에 그와 비슷한 상황으로 “영수와 철수는 사는 동네가 달라서 집안 형편이나 성격이 다를 줄 알았는데
생활 습관이나 행동은 참 비슷하더라”라는 지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해의 여지가 충분히 있는 내용이다. 경제적 약자인 황거칠은 남의 산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가 법원의 판결에서 지게 된다. 판결에
불복하자 강제 철거가 진행되고 경찰에 연행되고 풀려난 후에도 폭력을 다짐하는 황거칠 일행이 선한 사람,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이런 작품을 통해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 즉 대기업이나 재벌 등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길러지고 법을 지키지 않고 떼를 써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소시민의 희망을 짓밟는 행위를 사회가 용인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사회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 있다. 낙동강 하류의 조마이 섬이 해방 후 유력자의 손에 넘어가 섬 주민들이 고통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후반부에 섬 주민인 갈밭새 영감이 섬을 지키려다가 살인을 하게 되고 그는 이를 당당하게 밝힌다. 그런데 교사인 관찰자는 갈밭새
영감의 편에서 소설을 서술해나간다. 물론 섬 전체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켰다고 하지만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자칫 약자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살인도 불사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중 한편이다. 뫼비우스의 띠란 안과 밖이 분명치 않은 띠를 말한다. 이 소설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국 범죄를 저지른 앉은뱅이와 꼽추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파트에 들어갈 돈이 없어 헐값에 부동산업자에게 입주권을 판 앉은뱅이와 꼽추는
부동산업자를 죽이고 돈을 빼앗은 후 자동차에 불까지 질렀다. 얼핏 보면 앉은뱅이와 꼽추가 가해자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들이 피해자라는 의미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한 행동은 엄연한 불법 행위이며 중대한 범죄 행위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그들에 대해 온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마치 억울한 약자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나’는 불법으로 토지를
불하받았으면서 그것에 대한 법적 처리 과정에서는 약자인 양 저항하고 있다. 이런 작품을 통해 내게 유리하면 말없이 받아들이고 내게 불리하면 떼를
쓰고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장성댐 수몰민으로서 보상을 받고 도시에 나간 농민의 이야기. 주인공은 아내와 재산을 다
잃고 낚시터로 변한 고향 언저리에 다시 돌아와 징을 친다. 고향 근처를 못 떠나고 매운탕집을 하고 있는 고향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주인공 칠복이. 그러나 작가는 연민의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칠복이의 불행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데도 마치 댐 건설 때문에, 수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 양, 또 다른 사람이 고통을 분담해야 되는 것인 양 그려져 있다. 6.25전쟁 때 부역을 했던 죽마고우를 호송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어릴 때를 생각하며
결국은 그를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그 친구가 빈농이라는 이유로 농민동맹 부위원장이 되었다는 사연도 실려 있다. 그러나 사사로운 감정과 개인의
임의적 판단으로 적에 협조한 사람을 풀어주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탈출한 다음 두 사람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도망간 친구는 결국 공산 진영으로 갈 것이다. 자유 진영으로 오면 다시 붙잡힐 것이니까. 풀어준 친구는 전시에 적을 풀어준 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대책 없이 친구를 풀어준 것이 잘한 짓일까? 사상 문제를 떠나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부추길 수 있다. # 홍진아 / 홍자람의 <우리는 지금 반란을 꿈꾼다> : 디딤돌 문학 상 학교에 운동화를 신고 오면 안된다는 규칙을 불합리하다고 저항하려다 벌을 받는 주인공
다인의 모습을 통해 학교 교육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공교육에 사용하는 교과서에까지 이렇게 학교 교육이 불합리하다는
내용을 넣어 학교 스스로 모순이 가득한 사회로 인정하고 있다. 다인은 수학 시간에 문제의 핵심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지만 교사는 그냥
공식을 넣어 풀라고 한다. 다인은 사회 시간에 상권이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하고 싶지만 교사는 상권 그림만 그리라고 한다. 이런 갈등 등을 통해
학교의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문제 삼고 있다. 또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규칙은 안 지켜도 된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이
시나리오를 가르칠 때 자신이 속한 공교육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는 교사의 모습이 궁금할 뿐이다. # 이강백의 <파수꾼> : 디딤돌 문학 상 이리 떼라는 가상 현실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촌장과 그에 기만 당해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다수의 민중, 이리 떼가 가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밝히려는 파수꾼이 등장한다. 1970년대 국가 안보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국민의 자유와 여러 권리를 박탈했던 상황을 우화로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 속 촌장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교묘히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를 통제하려는 당시 절대 권력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당시 독재 정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안보까지도 이렇게 허구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 창비 / 지학(최) 재미삼아 자전거 도둑질을 하는 여인과 남자의 대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자신들이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이른바 간접 살인이다. '나’는 '나’를 매맞게 만든 수도상회 주인 혹부리
영감을 시름시름 앓다 죽게 만든 '전과’가 있다. 자전거 도둑 미혜는 어린 시절 간질을 앓는 오빠를 굶어 죽음에 이르게 한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은 이 이야기를 서로 자랑처럼 늘어놓는다. 병든 아들을 다락에 가두고 제한된 음식만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엽기적이다. 이런 행동들이
비판 없이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일탈적 행동이 더욱 매력적으로 여겨질 우려도
있다. 아버지가 자살을 했는데 자신의 체면과 위신을 먼저 생각하는 딸의 모습이 현대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안경화의 사고가 자칫 그 시대의 모든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걸로 비칠 수 있다. 또 시련을 자살로 마감한 안초시의
문제 대응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가난 때문이라지만 아직 죽지 않은 아들을 묻기 위해 비오는 밤길을 헤매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길에서 자식이 죽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다. 너무도 획일화하고 점잖은 양옥집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늘 마시는 물에
흥분제를 탄다. 이런 행위가 '나’라는 주인공을 통해 마치 긍정적인 행동인 양 비치는 것은 있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안되는 일이다. 또
양옥집은 비인간적이고 빈민가는 인간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도 옳지 않다. “왜 그렇게 무서운 전쟁을 하는 거여요?” 이 작품의 주제는 '이념을 초월한 인간애’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분단 국가에서 이념이 다른 적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념을 초월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어떻게 나아가자는 얘기인가? 무조건적으로 민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남북이 합치는 통일을 하자는 얘기인가? 이 작품 속 인물인 덕재는 착한 공산주의자이다. 그런 착한 덕재를 핍박하는 남한의 공안담당 관리 성삼이 나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앞 부분의 죽인 사람 수를 놓고 얘기하는 대목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이나 남한 사람들이나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끝 부분에서 성삼은 죽마고우 덕재를 놓아준다. 그러면 성삼은 돌아가서 이 사실에
대해 상부에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적을 놓아준 성삼의 부적절한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많은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남한이나 북한이나 갈만한 곳인
못되어 중립국을 선택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무척 통쾌해한다. 하지만 중립국 인도로 가는 배 타고르 호에 탔던
그는 바다에 빠져 죽는 자살을 선택했다. 자살할 용기가 있다면 부딪혀 싸워보겠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허무한
결말이다. 중학교 입학해서 처음 배우는 문학 작품인 '해바라기 씨’는 정지용이라는 월북 작가의
작품이다. 이어서 같은 책,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 배우는 소설은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이다. 위키백과에는 현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단원의 길잡이에는 '갈등의 해결 모습을 담고 있다’라고 했는데 해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또 이 작품에는 '가진 자=막돼먹은 인간’ '못 가진 자=피해자’라는 편 가르기가 확연히 드러나 있다. 어찌 보면 현덕이라는 작가의
이력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인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작품에 작가의 사상적 성향이 드러나는데 월북 작가의 작품을 싣는 것은 문제로 삼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표 서정 시인인 서정주의 시를 그가 작고한 2000년 이후 국정 교과서에서 모두 빼버린 것과는 대조되는 현상이다.
물론 이 시는 1929년에 발표된 작품으로서 이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지금 북한의 공산주의자의 그것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조나 사용한 용어들은 다분히 시대를 초월할 수 있을 만큼 선동적이다. 이 시는 다루는 교사에 따라 그 자체가 현실 사회에 맞춘 선동적인 시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즉, “노동자가 얼마나 착취를 당하는지, 얼마나 핍박을 당하는지, 그 노동자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우리가 왜 싸워야 하는지,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우리가 왜 단결해야 하는지, 여자든 청소년이든 가리지 않고 정신 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으로 바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시를 여기에 거론하는 이유는, 문학 교과서에 실리는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왜 이 시가 그 소중한 자리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편자의 저의가 의심스러워서이다. 이 시가 1920년대 후반 잠시 인기를 끌었던 신경향파를
소개하기 위해 선정된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 교과서에는 이 시가 왜 선정되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확실하게 설명되지 않은 채 학생들에게
마구잡이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수철은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상사인 손상무를 만난다. 그리고 손상무가 친구 세인의 아버지임을 알고 수치심을 느낀다. 그리고 세인에 대해 반감을 가진다. 결국 세인이 어머니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반성하게 된다. 아버지가 낮은 직급이면 그것이 부끄러운가? 또 친구 아버지가 높은 사람이라고 친구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는가? 친구의 불행이 없다면 그 친구와는 화해할 수 없는가? 7세의 주인공이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결국 주인공이 옥상에서 민들레꽃을 발견하고 생각을 바꿔 그냥 내려온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는 일단 옥상에 올라가면 민들레꽃이 있다 해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옥상에 올라가는 내용 자체가 자극이 될 수 있다.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 두루마리역사교육연구소 대표 (이 글은 자유경제원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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