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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좌지우지되는 입법 활동으로는 ‘도약하는 2016년’ 기대할 수 없어
새해 벽두부터 한국경제에 위기의 적신호가 울리고 있다.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 해’를 기대와 설렘으로 맞기보다 뭔가 위기의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불안함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
수출 전망이 밝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반면 우리 경제에 대한 투자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2015년을 돌이켜 보면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한 해였다. 안에서는 내수 위축을 불러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밖에서는 그리스 발(發) 악재·G2리스크·유가(油價) 급락 등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국제 현안이 끊이지 않았던 1년이었다.
이러한 충격 요인이 경제를 어렵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국내 정치와 정부의 실패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정치실패가 위기를 풀어나가지 못하고 구조적 문제점을 심화시키고 있다. 즉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는 외부 요인보다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낮은 경제성장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2015년 한국경제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2.8% 성장에 그친 2013년 이후 또 다시 2%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잠재성장률도 3%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은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일각에서는 빨대족(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하는 자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화석선배(취업 실패로 졸업을 미루고 있는 고학번 선배) 등 자조 섞인 취업 신조어가 난무한다. 심지어 헬조선이라는 극악스러운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경직적 구조 유연화 해야
통계청에서 조사한 청년(15~29세) 실업률은 10월 말 기준으로 7.4%다. 체감 실업률은 22.4%로 더 높다. 현실에서 청년들이 피부로 느끼는 취업의 고통이 크다는 의미다.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청년고용정책이 약 300개에 달한다는 집계는 역설적이다. 2014년에 183개였던 청년고용정책이 1년 사이에 2배나 증가한 것이다. 정부 정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도 청년들의 취업난이 고착화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경제구조의 경직성 때문이다. 특히 노동시장의 경직성에 원인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동시장이 직면한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실효성 없는 정책만 남발하고 있다. 청년 고용 창출을 위한 본질적인 처방은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아야 한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만 살펴봐도 그렇다. 한국판 로제타 플랜(Rosetta Plan)인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은 공공기관 및 지방 공기업 정원의 3%를 청년 취업자로 고용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수를 늘려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어리석을 뿐 아니라, 가능한 일도 아니다.
해외에서 노동개혁의 성공 사례가 있다. ‘하르츠 개혁’을 단행한 독일이다. 급작스러운 통일을 맞이한 독일은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조롱을 들을 정도로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에 신음했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하르츠 Ⅰ~Ⅳ’을 제정해 2003년부터 노동시장 유연화에 박차를 가했다.
우선 파견·기간제 등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근로자 파견 기한의 상한을 폐지한 것이다. 해고 규제도 줄여나갔다. 1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은 기존 해고 규제 대상에서 예외가 인정되도록 했다.
‘미니 잡’이라 불리는 시간제 근무도 대폭 늘렸다. 과감한 개혁은 2008년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도 70%가 넘는 고용률의 결실을 맺었다. 늘어난 일자리는 민간소비 증대, 기업 매출 증가, 그리고 임금 상승이라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고질적이다.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노동 경직성 수준은 178개국 중 135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또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소위 ‘귀족노조’가 기업의 경영권까지 ‘감 놔라 배 놔라’ 침해할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앞으로도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과보호 및 정년 연장 강제와 같은 규제가 계속된다면 청년실업 문제 해소는 요원하다는 얘기다.
생산성을 높여야
정부의 2016년도 예산안을 보면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 소모성 경상경비를 늘리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복지 분야는 계속 확대한 반면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는 계속 줄이고 있다. 이미 그 비중이 지나치게 커진 복지 관련 분야는 6.2%로 증가율이 높은 반면, SOC 예산 증가율은 -6.0%로 위축되고 있다.
사실 SOC가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당하다.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각종 사건사고 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인다. 이로 인한 경제적 기여가 크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는 경제의 기초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특히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때에는 경제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정도다. 그럼에도 2016년 예산에서 사회적 투자를 줄이면서 인기영합적인 소모성 경비를 대폭 늘리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서비스산업은 우리 경제의 성장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분야다.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창출 효과가 큰 데다 서비스업 자체가 신성장동력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2000년대 이후 서비스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문제의식에 발맞추지 못했다. 규모와 생산성 모두 OECD 주요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9.4%로 2005년 이후 정체한 상태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가의 서비스산업 비중은 80%에 육박한다. 우리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의 낙후성은 더욱 심각하다. 서비스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미국·일본의 50~70% 수준이다. 서비스산업이 낮은 생산성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니 성장을 하지 못하면서 그 규모가 커지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낙후된 것은 규제 때문이다.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개선해야 경쟁의 효과를 살리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생산성 제고는 궁극적으로 서비스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를 개혁해야
현재 우리 법과 규제 관련 운영이 정부의 자의적 해석에 의존해야 하는 전(前)근대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또 명시된 사항만 허용되는 포지티브 방식에 따라 벤처 비즈니스를 하기에 불리한 제도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미래 먹거리 선점이라는 치열한 경쟁에서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핀테크(FIN-Tech), 자율주행차, 드론 등의 미래산업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되고 있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즉 우리 경제에서 새로운 신산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도 경쟁력이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제방식이 사전규제이거나 포지티브 방식에 머물러 있다 보니 경제 활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규제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원칙허용 예외금지)으로 개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파이 키우기’에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오랜 기간 정부는 규제 개혁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투자를 늘릴 정도로 규제를 줄이거나 개혁하는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기업 관련 규제의 45%를 네거티브, 혹은 네거티브 수준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핵심 규제를 그대로 두고 의미 없는 규제만을 손대는 식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기업 투자환경 개선해야
일본은 법인세를 낮추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법인세를 올리자는 정치권의 요구가 횡행하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사정이 다르다.
법인세 인하는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다.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기업의 법인세 부담은 크다. 1위인 노르웨이(8.5%)에 이어 6위(3.4%)다. 총 조세 대비 법인세수 비중 순위는 더 높은 실정이다.
32개 조사 대상 회원국 가운데 3위(14%)를 차지했다. 우리와 실질적 경쟁관계에 있는 경쟁국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과 비교해도 법인세 부담이 큰 편이다. 홍콩(16.5%)·대만(17.5%)·싱가포르(18%) 모두 법인세율을 10%대로 유지하고 있다.
자본에게 세금은 반드시 따져봐야 할 필수적 요인이다. 어느 기업이나 투자할 곳을 정하거나 옮기고자 할 때 장기적 세금감면을 계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금이 투자수익률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나라들이 낮은 법인세 세율로 투자를 유치하려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 된다.
많은 선진 국가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시작했다. 투자환경 개선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법인세 실효세율을 내리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실천에 옮겼다. 북유럽 국가들도 경쟁에 가세했다. 핀란드는 1.5%p, 스웨덴은 4.3%p, 덴마크는 1.5%p를 인하한 바 있다.
이미 한국의 절반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는 아일랜드(12.5%)는 법인세를 한 차례 더 인하할 예정이다. 아일랜드의 최저 법인세라는 ‘무기’는 전 세계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구글, 애플,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IT 기업들의 유럽 본사가 아일랜드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다.
법인세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은 ‘준조세 망령’에도 신음하고 있다. 최근 한중 FTA 비준안 가결의 대가로 여야가 합의한 1조 원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대표적인 준조세다. 기업들로부터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의 기부금을 걷는다는 내용이다. 기업들은 한중 FTA가 가져올 실질적 이익 증가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기금을 강요당하는 셈이다.
국회가 정상화되어야
2016년 경제성장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선 국회 기능의 정상화가 첫 단추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반(反)시장 입법 하에선 민간의 어떠한 노력도 공염불이 될 것이다. 시장경제는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할 때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좌지우지되는 입법 활동으로는 ‘도약하는 2016년’을 기대할 수 없다. 더 이상 법안의 개별적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치인이 막판에 ‘주고받기’식으로 흥정해버리는 구태(舊態)가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2016년에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살릴 수 있는 입법 활동에 충실한 국회의 정상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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