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용 / 논설위원
한 전직 장관이 들려준 5년 전 백두산 관광 경험담은 시장경제 국가인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그는 입구에서 천지까지 올라가는 데 3차례나 요금을 받는 중국 상술에 혀를 찼단다. 입장료 100위안에 정상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소까지 가는 셔틀버스 요금 50위안을 더 낸다. 여기에 천지행 버스 요금 100위안이 더해진다. 1인당 총 250위안(약 4만5000원)을 챙긴다는 얘기다. “너무 비싸다”고 불평했더니 돌아온 건 핀잔뿐이었단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는 게 시장경제 원리 아니냐.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이 이를 이해 못 해서야 되겠는가.”
시장경제란 참여자들이 푼돈 모아 밑천을 만들어 더 큰돈을 벌 수 있게 자유로운 여건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이 원칙 아래 돈 버는 일에 열을 올리는 판국이다.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다는 우리는 어떤가. 돈 벌 거리를 아예 봉쇄하거나, 있던 돈벌이마저도 없애는 반(反)시장적 행태가 다반사다.
한 전직 시중 은행장의 전언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국내 한 인수·합병(M&A) 전문가가 중국과 국내 금융사 매각 협상을 벌였단다. 중국 담당자가 한국의 강성 노조를 우려하길래 “당신네 사회주의 국가가 뭐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너희가 더 사회주의적 아니냐”고 받아치더란다.
양국 상황을 봐도 이들의 돌직구성 발언이 전혀 생뚱맞지 않게 들린다. 중국부터 보자. 친시장 개혁으로 수천만 명의 기업가가 배출됐다. 중산층도 두꺼워졌다. 독립적인 중산층은 공산당에 맞서 정치적 자유와 대표자 선출도 가열하게 요구한다. 반면 한국은 갈수록 ‘간섭·반시장·사회’주의 성향이 짙어지는 나라가 돼 가고 있다. 반시장의 수괴(首魁)는 ‘무불간섭(無不干涉)’ 국회다. 자유경제원에 따르면 19대 국회의 시장친화지수는 34.3이다. 이 지수가 50이면 친시장적·반시장적 성향이 같은 비율로 공존한다는 의미다. 정당별로도 새누리당이 36.6, 더불어민주당 31.6, 정의당 25.3이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정당이 시장 적대적이다.
포퓰리즘 법안은 반시장법의 ‘간판’이다. 19대 국회의 산물인 면세점 정책은 한국 반시장사(史)에 남을 완결판이다. 재벌 알레르기가 있는 한 야당 의원의 포퓰리즘 입법과 무능한 관료의 얼뜨기 행정이 합작한 정책 참사의 전형이다. 정부는 면세점 특허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되돌리려 하지만 이미 난 상처는 깊고도 넓다. 두 대기업의 영업권이 박탈당하면서 멀쩡했던 2000여 명의 직원이 실직 위기에 놓였다. 투자 감소액 등 예상 손실도 1조5000억 원에 이른단다.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초악성 포퓰리즘법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5%에 해당하는 22조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니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묻고 싶다. 이러고도 경제 성장을 바라는 건 상산구어(上山求魚) 같은 일이다.
9월 말 시행될 ‘김영란법’도 문제다. 물론 부정부패 사슬을 끊는다는 차원에서 그 방향은 옳다.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직군인 국회의원이 적용 대상에서 빠진 자가당착은 차치하자. 그렇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과잉 입법으로 선의의 피해자들이 양산된다는 면에서 반시장적이다. 농수축산·유통·요식·레저 업계 등이 이 법의 철회 또는 보완을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수에 시한폭탄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선거는 포퓰리즘의 ‘화수분’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도 사탕발림 공약이 쏟아진다. 지각 공천에 깜깜이 선거라 ‘악마의 속삭임’은 더 강렬하다. 저성장·고령화 시대 희생자인 노년·청년층이 주 대상이다. ‘노후 안전판’ 국민연금에 손대겠다는 공약이 그런 유다. 경제 민주화발 ‘무상 공약 더미’도 판을 친다. 정부도 청년 구직수당 신설 식의 정책으로 맞장구치려 한다. 공공부문 부채가 1000조 원을 넘보는데도 말이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상인 기질을 지닌 중국이 사회주의를, 평등주의가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를 택한 건 불가사의다.” 한국은 ‘반시장 나무’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이라는 얘기다. 포퓰리즘은 유권자 매수 행위다. 나라는 망해도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나쁜 ‘포퓰리스트’는 단죄돼야 마땅하다. “거짓이 횡행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건 혁명적인 행위다.” 이번 총선 투표장에 들어설 때는 조지 오웰의 명언을 주술처럼 암송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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