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포퓰리즘을 심판하자
4.13 총선, 시대정신의 심판대
김종인 씨는 더민주 대표가 된 후 가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가 2017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하면 영원히 못한다”고 하였으며, 과거의 경제정책은 “대기업 중심‘이었으니 이를 ”그간 소외시켰던 사람들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 당에선 새로 영입된 강봉균 선대위원장이 친기업적 정책을 제시하고, 선심성 복지사업공약 수정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총선
공약부터 만들겠다"고 말했다. 향후 이 선언들이 지켜진다면, 이번 20대 총선은 보수여당과 좌파야당이 실로 오래간만에 자신의 깃발을 세우고
국민의 표심을 구하는 이념과 정책대결의 승부장이 될 수 있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 사람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정신자세나 태도로 정의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지칭하는 시대정신이란
국민/공동체의 생존과 발전에 요구되는 대중의 정신적 태도나 가치를 의미할 것이다.
한국의 야당은 과거에 보편적 복지, 경제민주화 등을 시대정신이라 주장하여왔다. 그러나 여당은 국민이 진실로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적
가치가 무엇인가 ,즉 자신의 지지자들의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 가 고민한 바 없이 그저 야당과 복지 포퓰리즘 경쟁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바로 지금의 김종인 씨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해 경제민주화와 온갖 보편적 복지공약을 내세웠다.
이번 선거에도 새누리 당은 '국민은 경제성장보다 복지국가와 사회격차 해소를 더 선호한다'는 '2016 총선 시대정신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여의도연구원은 ‘국민은 경제성장보다는 복지국가와 사회격차 해소를 더 중요하게 꼽고 있다’는 내용의 ‘2016 총선 시대정신 조사
보고서’를 지난 8일 발표했다. 여의도연구원은 ‘국민이 다 함께 행복한 선진 복지국가’를 총선의 전략 기반으로 제안했고 행복한 선진복지국가'를
총선의 전략으로 제안한바 있다.
그러다 늦게나마 보수정당이 자신의 본분을 자각한 것은 국가·국민·민주주의 정치에 커다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보수·진보 양당정치를
하는 나라라면, 양당이 똑같은 복지 퍼주기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총선에서 국민에게 경제민주화·보편적 복지주의인가—기업친화·선별적
복지주의인가, 선택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공천 잡음으로 정책이슈가 희석되지 않았다면 여야 건곡일척의
시대정신의 대결장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여당이 압승한다면-실제로 가장 좋은 기회였다- 4.13선거가 새로운 한국의 시대정신과
미래발전코스를 설정하는데 큰 동력을 공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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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은 원래 '기업 성장 자율책임'
같은 건전한 가치에 존립기반을 둬야할 대한만국의 보수정당이다. 이번 4.13 총선은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선거에 임한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는 적어도 새로운 시대정신의 희망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사진=미디어펜 |
포퓰리즘은 망국(亡國)의 병
지난 수차례 우리나라 선거는 복지 포퓰리즘 공약 경쟁이 나선형처럼 상승(相乘)확산하는 모양새였다. 이 추세가 지방자치단체장들까지
전염되어 박원순 서울시장은 저소득가정 미취업자에게 ‘청년수당’을, 성남시장 이재명은 19세-24세의 청년 모두에게 ‘청년배당금’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그후 대전시 대덕구는 ‘장수축하금’, 고양시는 ‘효(孝)수당’을 준다는 등 덩달아 전국에 퍼지는 형세였다. 이리해서 4월 총선에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 3야당이 모두 미취업 청년들에게 월 50만~60만원씩을 지급하는 청년수당 공약을 제시하는 사태를 맞았다.
이렇게 국고를 자기주머니로 여겨 국민에게 인심 쓰는 행태는 사실상 유권자 매수행위이기 때문에 포퓰리즘 수법 중 가장 저열(低劣)한
것이다. 청년들에게는 자립의지를 죽이고 장래 거지로 키우는 미끼가 된다. 이번에 야당은 세금으로도 모자라 국민연금기금까지 복지공급에 쓰겠다는
공약까지 동원했다.
포퓰리즘은 ‘망국(亡國)의 병’이다. 이 병에 한번 걸리면 무엇보다 국민이 타락하기 때문에 다시 회복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로마,
아르헨티나 등 역사적으로 이 병이 창궐했던 나라들은 다 쇠망했다.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얼마나 빨리 나라를 거덜 낼 수 있는지는 그리스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다.
1981년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5%, 재정적자 3%, 실업률 2~3%의
유럽의 경제 우등국이었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범그리스 사회주의운동당이 집권하면서부터 운명은 반전(反轉)했다.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기도 했던 그가 총리 취임 후 처음 한 말은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라”였다.
이후 노동자임금, 최저임금이 끝없이 인상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전 계층으로 확대됐다. 국민의 퇴직금은 최고연봉의 95%에 이르러
근로 의욕과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졌다. 기업들은 임금상승, 해고제한, 각종 조세부담의 증가로 투자·고용을 회피해 사라져 갔고, 지금은 그리스
GDP의 90% 이상을 관광과 해운업에 의존하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임금은 40%, 연금은 45%, GDP는 25%가 삭감됐다. 올 1월 그리스의 실업률은 25.7%.
청년실업률은 50.1%에 이르렀다. 그래서 국가기관은 섬을 판다고 하고, 고급 직업여성들은 매춘에 뛰어들고, 시민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나라가 이렇게 거덜 나도 국민은 사회당 정권에 열광해 2009년에는 안드레아스의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를 집권시켰다. 포퓰리즘이란 얼마나
무서운 병인가.
포퓰리즘은 정치가의 권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혹(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심판하지 못하는 국민은
그들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주의는 오늘의 시대정신인가?
세계의 복지자본주의 시대는 유럽에서 유럽 사회적 모델(European Social Model)이 정착함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이 모델은 2차 대전 후 유럽의 거대한 경기상승시대 유럽 정치가들이 경쟁적이고 개인적인 ‘미국식 삶’ 대신 모든 시민에게 고용안정과
생활보호를 보장하는 ‘통합된 사회’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한 것이다. 당시 유럽의 산업경쟁력은 세계최고 수준이었고, 베이비붐 세대가 쏟아져 나오고
은퇴자는 60세 전후에 죽어 복지기금고갈의 걱정이 없었다. 이렇게 여유 있을 때 필요한 자에게 제공하는 자본주의의 복지는 의문을 담을 수 없는
한 시대의 정신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복지국가제도는 점점 거대한 희생을 국민에게 요구하는 제도로 변천하고 있다. ‘복지정치 제1의 철칙(鐵則)’을 말한다면
‘정치가들의 약속은 어디에서나 늘어나고 이는 다시 국민의 기대를 키움으로서 국가예산을 눈덩이 굴리듯 증대시킨다’는 것이다. 1998년의 미국
상원(上院) 합동경제위원회(JEC; Joint Economic Committee) 조사에 의하면 OECD 23개국의 평균 GD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은 1960-69년 평균 27%에서 1996년 48%로 급격히 증가했다. 독일의 정부지출/GDP는 32%에서 56%로, 스웨덴은 31%에서
66%로. 그리스는 17%에서 49%, 스페인은 14%에서 45%로 증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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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경제민주화가 2017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하면 영원히 못한다"고도
언급했다./사진=연합뉴스 |
이렇게 정부가 거대한 몫을 차지하면 민간기업의 경제활동능력은 그만큼 봉쇄될 수밖에 없다. JEC 조사에서는 정부지출/GDP의 비율이
25% 미만인 나라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6.6%였지만, 30~40%일 경우 3.8%, 60% 이상은 1.6%로, 정부규모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일관적으로 낮아짐이 밝혀졌다. JEC는 또한 이들 정부지출이 늘어난 것은 거의 복지지출 때문이며, 결국 과도한 복지지출이 민간기업의 투자와
고용역량을 파괴시키고, 그 결과 경제성장률 하락을 초래했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미국, 유럽, 일본 등 정부규모가 커진 복지 선진국가에서는 어디서나 성장능력 고갈과 경제성장률 침체가 일어났고,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경제를 침체시키는 궁극적으로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수많은 국가가 부도위협에 처하고 경제활동 부진과 고용능력의 축소가 따르고,
쌓여지는 국가부채의 부담을 후대에 넘기는 파렴치가 행해졌다. 따라서 오늘날 모든 복지선진국은 그들이 빠진 적자재정·과잉복지 체제의 늪에서
탈출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나라들의 시대정신은 ‘과잉복지로부터 탈출’, ‘일자리 창출’이지 결코 복지증대가 아니다.
복지정치 제2의 철칙은 ‘국가사회의 품질을 퇴락시킨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정치가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형 집단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이들은 시끄러운 복지 요구자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결과, 국가사회의 주도세력이 생산적 집단에서 의타적
집단으로 이전하게 된다. 대기업, 전문직 등 능력과 성실성을 갖춘 자는 더 높은 담세로 징벌 받거나 사회적 격차의 원인자로서 공격받아 사회변화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즉 공동체의 건강과 발전에 기여하는 집단이 퇴화하는 정치·사회적 변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복지주의의 정치적 메카니즘은
우리가 미래 복지체제의 설계를 정치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됨을 시사한다.
새누리당은 원래 ‘기업 성장 자율책임’같은 건전한 가치에 존립기반을 둬야할 대한만국의 보수정당이다. 이번 4.13 총선은 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선거에 임한다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는 적어도 새로운 시대정신의 희망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