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이다. 얼마 전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 온라인판에 실린 경제평론가 나카하라 게이스케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나카하라는 ‘정치가 여러분, 경제를 더 공부하세요’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관계와 산업계가 협력해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본을 보면서 불안한 것은 가장 생산성이 낮은 분야가 정치가 아닌가라고 느껴지는 점이다. 저(低)생산성 정치야말로 크게 바꿔야 한다.”
생산성 최악의 19대 국회
그래도 일본 정치권의 수준과 생산성은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경제 활성화 정책이 의회에서 발목을 잡혀 타이밍을 놓친 적은 없다. 폭력으로 국가의 기본 체제를 뒤집으려 했던 극단주의자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도, 설명도 없이 ‘민주투사 출신 의원’으로 행세하거나 막말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4년 전 출범한 한국의 19대 국회는 과거 어떤 국회와 비교해도 세비만 축낸 한심한 국회였다. 발의된 법안의 가결률은 40.2%로 역대 최저인 반면 1개 법안당 평균 처리기간은 517일로 가장 길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법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결된 법안의 내용은 또 어떤가. 자유경제원이 사유재산권과 규제 완화 등 시장경제 원리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 및 기업 관련 법률 650건 중 66%가 반(反)시장적 법안이었다. 의원들의 경제 분야 투표 행태로 본 정당별 이념성향은 새누리당이 좌파에 가까운 중도좌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좌파로 분류됐다. 나는 ‘시장 만능’도 ‘정부 만능’도 믿지 않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에 관한 한 제대로 된 우파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도 유능해야 하지만 국회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파급효과가 큰 정책치고 입법을 거치지 않고 정부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나. 주요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경제 활성화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전례 없이 서명운동에 나선 것을 기업 이기주의나 엄살로 치부한다면 현장에서 느끼는 절박감과 위기감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장기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베이징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21년이 지난 지금 경쟁력을 다시 점검하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업 본연의 경쟁력은 1.5류 정도로 높아졌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일부 기업인의 구태와 갑질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2류로 평가한다. 행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2.5류 수준은 된다고 본다. 정치는 다섯 등급을 기준으로 하면 4류가 아니라 명백히 최하위인 5류로 추락했다.
소득-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과 소속 정당은 모두 자신들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쏟아내는 말잔치에 크게 무게를 두진 않지만 한 가지는 명백하다. 소득 증가든, 일자리 창출이든 실제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이라는 점이다. 이번 총선을 거쳐 구성될 20대 국회에서도 5류 정치가 경제와 기업을 짓눌러 사회의 전반적인 활력을 갉아먹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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