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분노·양심의 시인? `김수영` 신화 만들기

자유경제원 / 2016-04-18 / 조회: 7,129       미디어펜
예로부터 한 시대의 문제를 꼬집고 비판하는 문학작품은 대중의 환영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 일제시대에 태어나 소시민적 슬픔이 담긴 시를 썼던 김수영은 1960년 본격적으로 사회참여시를 쓰기 시작하며 평단에 이름을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 김수영 시인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일찍 등졌지만 그의 작품은 문단의 지지를 받으며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김수영의 사회참여시는 대중의 분노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자유경제원은 ‘김수영 가짜 신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문단권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자리를 14일 마련했다.


발제자로 나선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은 “한국문학계는 모국어를 볼모로 잡는 문학특수주의와 지독한 좌편향이 강력하다”며 “좌파는 100여 년 근현대문학사를 자기네들의 뜻대로 전면 재구성을 해놓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조 주필은 “김수영은 문단을 넘어 지식사회 전반에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등극했다”며 “김수영이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하게 된 이유는 미당 서정주를 누르고 김수영을 띄운 백낙청-염무웅 콤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 주필은 “백낙청 민중문학의 뿌리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들어왔던 프롤레타리아문학이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짝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 주필은 “작가로서 김수영은 세 개의 얼굴을 가졌다”며 “백낙청 일파가 만들어낸 김수영의 가짜 신화가 저널리즘을 통해 무제한 증폭되고, 대학생 등 지식대중을 선동하여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결국 대한민국을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래 글은 조우석 주필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우석 주필
분노·양심의 시인 ‘김수영’ 신화 만들기


- 백낙청 연출의 좌편향문학사의 꽃…결국 대한민국을 망친다


문학의 죽음 혹은 문학의 슬럼화는 30년 가까운 이르는 현상이다. 문화예술 장르의 맏형으로 통하던 건 옛날 얘기다. 지금 누구도 진지하게 문학작품을 읽지 않지 않으며 일상의 화제로 올리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창조적 파괴의 실험은 고사하고, 경쟁조차 배제된 자폐적 구조 탓인데, 그래서 한국문학은 갈라파고스 섬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대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 그 외딴 섬을 그럭저럭 유지하는 힘, 즉 변화를 거부하는 요소가 아주 없진 않은데, 그건 두 가지다.


문학특수주의가 강력하다. 다른 문화상품이나 공산품과 달리 문학은 모국어(母國語)를 지키는 장르라는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문학장르에 경쟁 등 시장경제 원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저들은 완강하게 저항한다. 사실 각급학교 국어교육을 다른 걸로 대체할 수도 없지 않던가? 모국어를 볼모로 잡고 있는 한국문학이 망가지는 또 다른 이유는 지독한 좌편향이다. 소설가 이문열이 미래한국 인터뷰 ‘홍위병의 시대는 갔는가?’(2016년 1월16일자)에서 지적한 것처럼 “문인의 열에 아홉, 아니면 열이면 열 명 모두가 좌파다.”


월북시인-참여문학 위주의 새 시문학사 족보


문학의 생산-유통과정이 몽땅 오염된 이런 구조 속에서 드디어 좌파는 100여 년 근현대문학사를 자기네들의 뜻대로 전면 재구성을 해놓기에 이르렀다. 가난뱅이가 부자 되면 족보부터 장만한다더니 그 격이다. 다 쓰러져가는 문학장르이지만, 그걸 권력이랍시고 쥔 채 집안내력을 전면 재구성한 것이다. 이에 따른 피해는 실로 막심하다. 초중고 학교교실에서 이뤄지는 문학교육의 왜곡시키고, 끝내 한국문화 전체에 커다란 우환덩어리로 남아있지 않던가?


이게 ‘문학의 옷을 입은 정치투쟁’으로 변질되면서 끝내 한국사회를 황폐화시키는 재앙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다루는 김수영 가짜 신화 에서 드러나듯 좌파, 좌편향문학은 그를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처지를 괴로워했던 민중시인”으로 둔갑시킨 뒤 그런 김수영을 본 따 대한민국을 향해 분노하고 욕을 하라고 자꾸만 부추긴다.(‘정치의 수단으로서의 문학’이란 슬로건은 김정한-채광석 등 1980년대 민중문학이론가들이 내세웠으며, 지금도 그런 멘탈리티가 여전하다.) 


좌파문학 족보 만들기의 방식은 간단하다. 저들이 선호하는 작가를 전진배치해 문학사의 주류로 끌어올리고, 선호하지 않은 작가를 뒤로 밀쳐내는 작업이다. 1970년대 만들어진 조세희의 연작장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류를 한국문학의 정전(正典) 반열에 올려놓은 작업을 포함해 소설문학 쪽도 예외일 리 없지만 시문학의 경우가 보다 뚜렷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월북시인을 시단의 주류로 대거 편입시킨 점이다. 우선 월북 시인 끌어안기는 오래 전부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정지용, 김기림, 백석, 이용악, 오장환, 임화 등이 그들인데 그들은 한때 정×용, 김×림 등으로 표기되며 쉬쉬해오던 무리였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해금(解禁)조치 이후 되살아난 그들을 시문학사 큰 흐름의 하나로 부각시키는 작업이 이미 오래 전에 완성됐다. 그 결과 월북작가들을 김소월, 한용운, 이상, 서정주, 유치환, 이육사, 윤동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김춘수 등 자유주의 문학진영(문단에서는 순수문학으로 불린다)의 주류 시인들과 거의 같은 반열에서 거론하기 시작했다. 


   
▲ 김수영이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하게 된 이유는 미당 서정주를 누르고 김수영을 띄운 백낙청-염무웅 콤비 때문이다.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그런 해방 이전의 월북 작가만으론 좀 무언가가 부족하고 구색이 맞지 않자, 민족문학-민중문학 진영의 간판스타 옹립 차원에서 뽑았던 득의(得意)의 빅 카드가 시인 김수영과 신동엽 두 명이다. 월북 시인의 시문학사 편입작업과, 이른바 민중시인 두 사람의 ‘징발’의 두 갈래 작업인데, 결과로 우리 한국문학이 풍요로와졌던가? 일정 부분 그건 사실이겠지만, 좀 께름한 것도 사실이다. 문학적 다양성이 잠시 보완된 측면은 있지만, 결과는 재앙에 가깝다.


해방 이후 문단의 주류이자 정통이던 자유주의문학이 칙칙한 보수문단으로 낙인 찍혀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게 끝내 문학적 상상력을 죽이고, ‘패거리문학’의 볼모가 된 한국문학의 죽음을 재촉했다. 그런  흐름이 고착돼 대중화 단계에 이른 건 이미 30여년이다. 현단계 한국문학의 멘탈리티가 몽땅 그러하지만, 문인이나 대중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나 시집을 뽑는 각종 설문조사에서부터 그런 현상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일테면 문예지 계간 <시인세계> 2005년 여름 호 특집 ‘현대시 100년사 5권의 시집’이 그런 경우다. 


이들은 현역시인 156명을 대상으로 “지난 100년간 간행된 시집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 한 권을 뽑아 달라”고 했다. 이 설문이 크게 대표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변화된 문단 분위기를 전하는 정보임에는 틀림없다. 설문조사 결과 참여문학파 시인과 월북 시인들이 나란히 1,2,3위에 랭크됐다. 백석(1912~1995)의 ‘사슴’(1936년)과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1974년),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1935년)이 각각 1~3위에 뽑힌 것이다. 


중장년층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 틀림없다. 그럼 시인 중의 시인, 천품을 타고난 사람인 미당 서정주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5권의 시집의 맨 뒤에 턱걸이로 뽑혔다. 현역시인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가 4위에 랭크된 데 이어 서정주의 ‘화사집’(1941)이 겨우 5위에 올랐다. (시집을 기준으로 한 설문이 그렇고, 현대시사 100년에서 좋아하는 시인을 선정한 결과 정지용, 서정주가 공동 1위를 했다.)


한국시인협회가 2007년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시인 10명을 뽑았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다. 대표시인으로는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정지용, 백석, 김수영, 김춘수, 이상, 윤동주, 박목월 등이 뽑혔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의 바로 뒤를 이어  정지용, 백석, 김수영이 버티고 있는 구조를 잘 살펴보라. 문단만 그런 게 아니라 한국사회 일반이 같은 분위기다. KBS가 교수신문과 함께 광복 60주년을 맞은 2005년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가 상징적이다.


당시 함석헌(사상가), 김수영(시인), 김지하(시인)가 ‘광복 이후 한국 지성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1~3위로 각각 뽑혔다. 교수 등 제도권 지식인이 제외되고 시인 등 문인 등이 둘이나 뽑힌 것은 여전히 대중적 파급력을 갖는 문학의 힘을 새삼 보여주는 결과다. 쉽게 승복하기 힘든 설문조사이지만, 시인 김수영 초강세 현상에 새삼 주목을 해야 한다. 김수영은 문단을 넘어 지식사회 전반에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등극했다는 뜻이다.


랭킹이 문제가 아니다. 미당 서정주, 정지용, 백석 등이 주로 심미적 영역에서, 즉 문학취향이 있는 제한된 독자층에서 영향력을 갖는다면, 상당한 양의 산문도 남긴 김수영은 지식인 사회일반과 대중에까지 막강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 가히 김수영 신화가 맞다. 당신이 잘 모르는 새 김수영 현상은 꽤 오래 전 만들어졌고, 강력한 기득권마저 형성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평론가 5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을 때도 김수영은 ‘해방 이후 대표시인 50명’ 중 1위로 뽑혔다.


김수영을 다룬 석-박사 학위논문만 수백 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위력도 상상 이상이라서 ‘떠받들어지는 시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으로 각인됐다. 요즘의 작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은 김수영을 그렇게 즐기고 소비하고 있는 중이다. 문예지가 현역시인들에게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선정을 의뢰했을 때 1위에 랭크된 것도 김수영 이었는데, 왜 그에게 끌리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왜 김수영이 매력적인가를 물었을 때 “시인에게 정작 두려운 건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임을 김수영은 일러 준다”고 한 응답자는 거침없이 썼다. 그건 거의 자동반응에 가깝다. ‘만들어진 신화’ 김수영에 대한 의구심은 한 자락도 없다. 그건 문학이 아니라 차라리 종교 교리문답의 수준이다. 무조건 ‘김수영=자유’이고 ‘김수영=양심’으로 통한다. 또 다른 응답자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김수영은 폭력적 질서에 갇혀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일깨운다.”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한다.


   
▲ 김수영을 다룬 석-박사 학위논문만 수백 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위력도 상상 이상이라서 ‘떠받들어지는 시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으로 각인됐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미당을 죽이고, 김수영 띄운 백낙청-염무웅 콤비


그럼 누가 이런 황당한 질서를 만들었을까? 민중문학 패거리의 솜씨다. 1970년대 이후 문단 헤게모니를 쥐어온 게 민족문학(민중문학과 동의어) 진영이니까. 구체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한 평론가는 누구일까? 저들의 의도와 복선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이걸 섬세하게 규명해야 하는데, 김수영 신화 만들기를 쌍끌이했던 장본인이 한국문학의 오너 격인 백낙청과, 그의 옛 파트너 문학평론가 염무웅이다. 둘의 협력은 마르크시즘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조 관계를 연상하면 된다. 


이른바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에서 나란히 보조를 맞췄고, 이후 대부분의 평론가들을 이들의 움직임을 따랐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백낙청-염무웅의 평론은 거의 도그마로 작용한다. 일테면 자유주의 문학진영의 간판이자, 근현대시사의 큰 봉우리인 미당 서정주를 표적 살해했던 것도 바로 그들이다. 둘은 역할분담을 했는데, 염무웅은 미당을 살해했고, 그 와중에 백낙청은 김수영을 띄웠다. 지금은 형편없이 몰락했지만, 한때 미당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을까?


“서정주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 한국 최대의 시인이다.…살아생전에 이처럼 파격적인 대접을 받은 시인은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극히 드물 것이다.…그는 어떤 추종자의 칭송처럼 한국시의 제왕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시의 영토에서 가장 넓은 봉토를 거느릴 영주임에는 틀림없다.”


놀랍게도 그 표현은 1979년 염무웅이 펴낸 <민중시대의 문학>(창비)에 나오는 ‘서정주 소론(小論)’이 한 대목이다.  미당을 때리면서도  ‘살아있는 전설’ 앞에서 이렇게 예우 아닌 예우를 하는 척 해야 했던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 미당 죽이기의 신호탄이던 그 비평이 등장한 뒤  민중문학 진영 평론가들은 미당 저주 대열에 합류했다. 한 번 봇물이 터지자 현대시사의 최고봉 미당 신화는 삽시간에 붕괴되는 기현상이 연출됐다. 


그럼 당시 염무웅이 뭐라고 미당을 때렸을까? 그의 경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미당의 대표작 ‘무등을 보며’가 6·25 전후의 작품임을 상기시키면서 “정치적 암흑과 사회적 부조리를 묵시적으로 승인하는 현실타협”의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참여문학인 민중문학 진영의 공식에 따라 미당을 공격한 것인데, 이후 그런 정치적 공격이 미당 비판의 문학적 잣대로 둔갑했다. 1960년대 이후 미당의 시세계가 신화와 관념세계를 찾아간 것도 미당의 실패이자, 한국현대시 전체의 실패라며 좌파 문학진영은 가혹하고 끈질지게 총공격을 감행했다. 


보수문단의 답답함에 염증이 없지 않았던 당시에는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그게 얼마나 논리비약인지를 당시 사람들은 잘 몰랐다. 그게 어떤 파괴적 결과를 빚을지도 채 가늠이 안됐는데,  이후 강산이 서너 번이나 바뀌는 사이 소수파 민중문학패가 다수파로 올라서는 이변이 연출됐다. 민중문학이 승리의 깃발을 꽂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당 평가는 이후 천편일률이다. 문학적 평가와 상관없이 친일문학의 흔적을 가졌다느니, 독재정권과 친했다느니 하는 식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좌파문학 진영은 자유주의 문단의 거장 미당을 끌어내린 자리에 누군가를 올려놓아 자기들의 문학이념을 대변할까를 고심했다. 그 간택 대상이 김수영이다. 지난 30여년 김수영 신화는 미당의 동상을 끌어내린 자리에 새 우상을 세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저들의 복합적 노림수가 있었다. 그걸 노리는 민중문학 진영에게 김수영은 충분한 전술-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당초에 그때의 민중문학은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을 함께 띄웠다. 


요즘 말로 ‘우리민족끼리’ 정서를 대변하는 민족시인이 바로 그였으니까. 즉 ‘민족적 순수와 반외세’의 카드인 신동엽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먹혀들었던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이 그이기 때문이다.(‘민족적 순수와 반외세’는 엄청 팔렸던 신경림의 책 ‘시인의 찾아서’에서 신동엽을 찬양하며 했던 말을 그대로 빌려왔다.) <시인의 찾아서>가 좌편향이 전사회적으로 번졌던 김대중-노무현 좌파정부의 한복판인 2002년 MBC ‘!느낌표’ 선정도서로 뽑힌 것도 우연이 아니며, 직후 수십만 권이 팔려나갔다. 


사족이지만, ‘!느낌표’ 선정도서의 상당수가 <백범일지> 등 좌편향도서로 채워졌는데, 그 예능프로그램을 뒤에서 움직인 인사가 대표적인 좌파였다. 그러나 신동엽은 좀 진부했다. 선동성이 떨어졌고,  대표성도 문제가 됐다. 그러자 모더니스트에서 출발했으나 열렬한 현실참여파로 분류되던 김수영을 끌어안았는데, 그건 신의 한 수였다. 저들이 원하는 건 좌파문학의 맹장을 내세우는 게 아니었다. 좌파 냄새를 별로 풍기지 않는 인물을 내세워 한국문학 전체를 먹는 작업이었다. 


생각해보라. 김수영 카드를 뽑아드니 고통정리가 절로 됐다. 저들은 해방 이전의 좌파의 간판인 오장환, 이용악, 임화 등을 리스크를 감내하며 굳이 옹호할 필요가 없었다. 1950~7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던 민중시 진영의 고은, 민영, 문병란, 이성부, 조태일, 김광규, 이동순 등 고만고만한 ‘난쟁이 그룹’에 비해 김수영은 상대적으로 거물이다. 그리고 김수영에게는 1980년대 이른바 노동해방문학을 했던 시인그룹인 김남주, 백무산, 박노해 같은 붉은 색깔도 없으니 대중성도 높았다. 


그게 포인트다. 한마디로 김수영은 래디컬 리버럴리스트 문학인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민중문학 진영의 간판스타로 포장해 ‘입양’하는 것이 다목적으로 훌륭했다. 김수영은 프롤레타리아 시인이 아니고 쁘띠 부르주와 시인으로 분류되니 그 점도 괜찮았다. 그걸 ‘시민적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치켜세울 경우 해방 이후 보수화된 문학 수요층에게 지적-정서적 자극을 주기에 썩 훌륭한 카드라고 저들은 판단했다. 


그런 걸 새로운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포장하기에도 유리했는데, 결과적으로 1970~80년대 사회분위기에서 그런 전략이 훌륭하게 먹혔다. 김수영-신동엽 류를 함께 내세울 경우 진보적이면서도 제법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 전략 아래서 미당이란 이름은 시적 천품을 타고난 노회한 제왕이 아니라 때 묻은 시인으로 밀어냈다.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라는 이미지도 붙여줬다. 


대신 모더니스트이자 현실참여파인 김수영은 정직한 양심의 상징이자, 도덕적 순결성 그리고 과격한 우상파괴자로서 비교할 수 없이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줄줄이 갖다 붙였다. 미당의 정반대 쪽에 세우는 셈인데, 그런 김수영 신화를 완성한 주인공이 지금도 막강 영향력을 행세하는 평론가 백낙청이다. 염무웅의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이 나오기 한 해 전에 등장했던 백낙청의 처녀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창비 펴냄)에서부터 그는 김수영 신화의 깃발을 들었다.


그 평론집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작가도 김수영이다. 백낙청 평론의 색깔을 드러낸 대표적인 평문인 ‘시민문학론’을 필두로 ‘한국문학과 시민의식’, ‘문학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 ,‘역사적 인간과 시적 인간’ 등 무려 5편의 평문에 김수영을 등장시켰다. 평론집에 실린 김수영 시작품 분석에 바쳐진 별도의 글 ‘김수영의 시세계’를 제외하고도 그러하니 김수영은 결코 약방의 감초가 아니었다. 


자기 논지를 개진할 때 결정적인 문학 텍스트로 김수영의 시론(詩論) 과 ‘풀’, ‘거대한 뿌리’등 김수영의 시작품을 인용하고 후광을 덧붙이는 방식이었는데, 김수영 신화 만들기에 올인하는 느낌마저 준다. 그는 김수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풀’, ‘거대한 뿌리’ 인용과 평론은 물론 그의 대표적인 지론인 반시론(反詩論)까지 빠짐없이 재평가했다.  백낙청의 평문은 지금 읽어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다. 특유의 복문(複文)에 현학적인 글의 스타일은 제법 내용이 있는 듯 보이고, 실제로 엄청난 영향력을 문단 안팎에 미쳤지만, 그게 착시현상에 다름 아니었다.


그건 ‘문학적 번쇄’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이 자리에서 굳이 상세하게 재론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데, 놀랍게도 한국사회가 그의 문학적 사기행위에 몽땅 속아 넘어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후 등장했던 김수영 문학을 다룬 수 백편 석-박사학위 논문 논의를 일찌감치 틀을 지웠다는 점이다. 단언할 수 있지만 백낙청의 문학세계란, 그가 내세웠던 민족문학-민중문학이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짝퉁에 불과했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의 공식 문학이론을 충실하게 복제하되 그걸 우아하게 포장하는데 성공했을 뿐이다.


   
▲ 만들어진 신화, 김수영에 대한 의구심은 한 자락도 없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많은 증거가 있지만, 백낙청 민중문학의 뿌리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들어왔던 프롤레타리아문학일 점에서도 드러나다. 즉 그들이 썼던 또 다른 용어가 바로 민중문학이다. 당시엔 주로 경향문학 내지 무산자문학 등으로 불렸지만, 민중문학이란 말도 벌써 쓰였다. 1950년대 2차대전 뒤 사르트르가 활동하던 프랑스 등에서는 그걸 앙가주망(현실참여문학운동)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정치개입문학에 다름 아니었다. (오세영 평론집 <우상의 눈물>에 수록된 ‘80년대 한국의 민중시’) 


실제로 백낙청 민중문학은 ‘닥치고 리얼리즘’이다. 문학 고유의 상상력을 죽이는 살균제가 리얼리즘인데, 그게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 훌륭하게 들여 먹혔다. 하버드대 박사이며, 서울대 교수라는 이력이 막강하게 통했고, 그 결과 그가 내세우는 리얼리즘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짝퉁이라는 걸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계간 ‘창작과비평’을 중심으로 한 매체의 힘도 컸다. 정의와 양심을 대변하는 새로운 민중문학이 존재하고, 체제에 야합하는 보수적인 어용문학이 있다는 엉터리 이분법이 이내 만들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민중문학의 지적-도덕적 권위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백낙청의 문단 장악은 1973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유신과 싸운다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자유실천문인협회(자실,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개명한 뒤 지금은 ‘작가회의’로 다시 개칭함)가 당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민중 어쩌구가 문학을 넘어 미술(지금도 민중미술이 강세다), 영화(지금 좌편향 영화판의 뿌리다) 그리고 신학(민중신학 혹은 해방신학을 낳았다)까지로 쭉쭉 뻗어나갔다.


실로 믿기 힘든 대성공이었다.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의 전분야에 걸친 민중문화운동이자 정치투쟁(백낙청은 그런 식의 위험한 말을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단지 1980년대 김정한-채광석 같은 아류 문학이론가들은 “민중문학=정치 수단으로서의 문학”이라고 공언했을 뿐인데, 그건 백낙청의 본심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다.)으로 마구 가지를 쳐나간 것은 20세기 한국문화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건 좌파 패러다임이 한국문화를 온통 접수해버린 대사건이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지식인과 대중 모두를 기성사회에 대한 분노로 사로잡히게 만들고 저항하는 걸 양심의 발로이자 사회적 책임인양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그건 문학 이상의 문학적 성공이 아닐 수 없는데, 배경에는 백낙청이 영향을 받았던 1960년대 영국에 등장했던 신좌파 문화이론인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있다. 백낙청이 초기 평론에서 줄곳 들먹이던 평론가 레이몬드 윌리엄스인데, 그가 문화연구의 포문을 열었다. 간단한 얘기다.


문화란 고상한 예술만이 아니고 일상 삶에 영향을 미치는 총체적인 그 무엇이라는 게 문화연구의 입장이다.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이란  명제 아래 대중문화비판, 미학과 정치, 광고 산업과 광고 분석, 문화산업론으로 마구 뻗어나가는 특징이 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오리엔탈리즘, 퀴어(동성애)운동 등 거의 전 분야가 망라된다. 그렇게 신좌파 성향의 문화연구는 잘 조직할 경우 기성체제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우상파괴운동으로 전개된다.


그게 의외로 강력하고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먹힌 것이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좌파운동이다. 그리고 백낙청이 물꼬를 텄다는 것도 분명한데, 이런 맥락에서 시인 김수영은 실로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붙잡은 백낙청의 선택이란 실로 악마적 성공에 가깝다. 김수영이 가졌던 불같은 저항과 분노, 자신의 양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강박증을 모두 활용할 경우 활용도는 메가톤급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게 먹혀든 결과 한국문화동네에서 밥을 먹는 작가랍시고 하는 위인들은 ‘리틀 백낙청’이기 십상이다. 


대부분이 그러한데, 데뷔 초기 참신한 이미지를 가졌던 작가 장정일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에게 일정한 영향력을 가진 그가 좌파 아닌 좌파로 이런 발언을 무시로 하고 다닌다. 다음 인용문은 그가 최근 펴낸 <장정일의 악서(樂書)총람>(책세상,2016년)에 실은 ‘펑크록, 레게, 힙합은 어떻게 저항하는가’에 실린 글이다. 참고로 그 글은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양효실 지음, 시대의창) 이란 책에 대한 서평 형식인데, 문화좌파 냄새가 물씬한 책이지만, 장정일의 글은 한술 더 뜬다.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문화는 지배 계급의 이념과 지배의 정당성을 전파하고 지키기 위한 진지였다. 지배 계급이 보편이라고 강요하는 문화는 보편이 아니라 자기 예찬이고 선전이면서, 피지배 계급에게서 자발적인 숭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대중의 기호 혹은 시장의 선택이 문화의 향방을 자연스럽게 주도한다는 오늘과 같은 대중문화 시대에도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엘리트로 이루어진 여론 주도층이 여전히 문화의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 양효실의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시대의 창, 2015)는 권력의 관리와 감독에 저항한 다양한 문화 운동을 예찬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진지론을 연상시킨다. 이 짧은 인용문에 저항, 문화운동, 권력에 맞서기, 지배계급의 이념, 피지배계급, 소수자들의 기성질서 거부 같은 용어가 줄줄이 등장하며, 그걸 모두 뒤집어버리자는 충동에 가득 차 있다. 이 모두가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열심히 읽은 결과이고, 백낙청 식 김수영 해석에 공감한 탓에 벌어지는 웃픈(웃음이 나오지만 슬픈) 상황에 다름 아니다. 멀쩡한 이들의 발상과 상상력 모두가 이런 식으로 변질됐으니‘문화적 재앙’에 다름 아니다.


   
▲ 김수영은 자유와 양심으로 통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김수영의 진짜 얼굴과 부풀려진 모습 사이

 

그럼 백낙청과 그 아류가 변질시키기 이전 김수영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가 대표작 ‘풀’로 상징되는 이른바 민중시인이 아니라면 어떤 게 진면목일까? 현대시사에서 무시못할 시인의 한 명으로, 그 못지않게 빼어난 산문을 줄기차게 썼던 김수영은 과연 누구이며, 인간 김수영은 과연 어땠을까? 작가로서 김수영은 세 개의 얼굴을 가졌다. 우선 기본적으로 김수영은 귀에 쏙 들어오는 시를 쓴 사람이 아닌 꽤 난해한 모더니스트로 분류돼야 옳다. 즉 민중시인에서는 꽤 멀리 떨어진 사람이 맞다.


염무웅의 경우 “4.19 직후에 발표된 서너 편을 제외하면 언제나 선명한 발언과 거리가 멀다”는 투덜댔을 정도인데, 그게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런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해독하기 힘들 정도도 전위적인 측면이 있지만, 되풀이 읽으면 무언가 새로운 의미로 읽히는 매력도 들어있다. 그래서 그는 진짜이고, 고급이다. 재래식의 음풍농월에 서정시를 들먹이는 작가들에 비해 훨씬 참신하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진다.(신좌파 문화연구에 딱 들어맞는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두 번째 얼굴은 병적인 집착에 가까운 청교도적 자기비판과 도덕적 순결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권력 앞에 반항하지 못하는, 옹졸한 자기를 질책하는 대표시의 하나인‘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는 원만한 스타일이나 중용적 이미지와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인데, 사람으로서의 김수영은 매우 까칠한 성격이다. 그게 제법 잘된 책인 <김수영 평전>(최하림 지음)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런 인간적 모습 또한 요즘 젊은 층에게 쉽게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만들고,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겨주는 요인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야경꾼에게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일부.


김수영이 가진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세 번째 얼굴인 강렬한 정치개입과 우상파괴의 에너지다. 사람들은 여기에 매료되며, 누군가 ‘분노 마케팅’을 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진다. 실은 이것 때문에 그는 문학적으로는 이른바 반시론자(反詩論者)이며, 문학 외적으로는 무한대의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양심의 아웃사이더로 남아있다. 즉 한국문학의 체 게바라답게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쳤던 위인이다. 그건  죽던 해에 쓴 뛰어난 산문의 제목이기도 한데, 기성 시와 기성 문화질서 모두를 깡그리 무시하자는 폭력적 거부를 주도했다. 시 작품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의 경우가 그러하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그 지긋지긋한 놈의/대한민국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기념탑을 세우자//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인/지긋지긋한 그놈의 미소하는 사진을(하략)” 


김수영이 볼 때 선거부정의 몸통인 이승만에 대한 극대치의 증오와 분노를 터트린 문제의 작품이다. 본인의 고백대로 대통령의 하야 성명을 듣자마자 환호작약하며 삽시간에 완성했다는 이 작품은 자유당 시절과 우남 이승만에 대한 가장 지독하고 격렬한 정치적 공격이다. 참담한 인격살인 그리고 파괴-저주의 미학이 춤을 춘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측면도 있어서 현대문학의 잣대만으론 성공한 작품이란 걸 부인할 순 없다. 


문제는 균형 잡힌 역사적 평가에 앞서 사람들의 성난 마음에 불을 지르는 부작용이다. 그게 너무도 커서 골치덩이다. 건국 대통령은 “협잡과 아부와 무수한 악독의 상징”이며, 그의 주도로 이뤄진 1948년 건국이란 것도 결별해야 할“썩어진 어제”일뿐이라는 일면적 인식을 이 작품은 양보하지 않고 강요를 한다. 김수영의 이 시 등장 이후 대통령의 사진을 화장실 용도나 개굴창에 내다 버리고, 동상을 허물어버리는 행위야말로 되찾은 시민적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하는 인증이 되어버렸다. 곤혹스럽다. 


더 곤혹스러운 게 1960년 김수영 시인이 쓴 詩 ‘김일성 만세’다. 너무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의 사후 40년 만에 공개됐던 문제의 그 시는 지난해 2015년말 이른바 민중총궐기 사태 이후 대학가를 달구기도 했으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고려대와 경희대에서 한 학생이 이 시를 대자보로 만들어 올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정치사회적 불만을 터뜨리자 이걸 훼손하는 반대그룹도 등장하고 끝내 학교 당국이 철거를 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놀라운 건 당시 언론이었다. 


   
▲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거듭되는 좌편향 언론의 김수영 신화 뻥튀기


일테면 통신사 ‘뉴스1’와 또 다른 언론사 ‘포커스 뉴스’측은 자체적으로 제작한 카드뉴스를 통해 “김수영 시인에게 ‘김일성 만세’라는 말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달’을 가리키기 위한 ‘손가락’에 불과했다.”고 단정했다. 이들은 문제의 이 시를 대자보로 만든 대학생의 발언도 은근히 지지했다. “최근 박근혜 정부의 복면금지법 추진에 분노다가 이 시가 문득 떠올랐다.” 안타깝다.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옷을 걸친 정치투쟁을 언론이 나서서 부추기는 꼴이자, 극단적 시적 자유를 외쳤던 김수영을 좌편향된 사회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 김수영 시인의 미발표 시 ‘김일성 만세’ 전문


결론이다. 김수영은 범용한, 고만고만한 시인의 하나가 아니다. 그는 일급 시인이 맞다. 근현대시사는 물론 한시(漢詩)로 된 근대 이전의 시적 전통을 포함해 그는 전혀 매우 새로운 존재의 등장을 알린다. 삶과 문학 사이를 가깝게 만든 위대함이 없지 않고, 우리문학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다. 그점에서 그는 근현대시사 빅10의 한 명에 너끈히 낄 순 있다. 그걸 기꺼이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현대시사를 대표하는 지존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더 분명한 건 김수영이 민중시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하다.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하지만 김수영의 그런 발언을 마구 증폭시켜 반사회적 일탈을 문학의 본령으로 만든 것이 민중문학의 농간이다. 그런 김수영을 현대시사의 지존 반열에 올려놓은 건 좌파문학 진영의 ‘족보 만들기’일 뿐이다. 문제는 그 농간이 너무도 거대한 승리를 거두는 바람에 벌어졌다. 백낙청 그룹에 일패도시(一敗塗地)한 채 변방에 몰린 자유문학 진영의 분발이 기대되는데 그건 진영 싸움이 아니고 문학의 갱신을 위한 필수다. 모두가 김수영을 따라할 필요는 없으며, 누구처럼 그를 마구 부풀려 ‘문학의 옷을 걸친 투쟁’에 나설 것을 독촉할 경우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그 생생한 사례가 거대 지상파 방송인 SBS가 만든 김수영을 주제로한 카드뉴스다.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기사가 지상파 뉴스에 버젓이 올라올 수 있었을까?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코너명이 붙은 이 기사는 방송에는 나가지 않는 온라인용 기사다. 따라서 이중삼중으로 데스킹을 거치는 일반적인 방송 기사와는 송출 과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마부작침’은 SBS 보도본부 내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 생산하는 새로운 형식의 데이터뉴스를 일컫는다.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사내 프로젝트팀인데, ‘스브스뉴스’를 생산하는 뉴미디어실과 마찬가지로 SBS에서도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포맷의 기사를 양산한다. 형식 파괴를 표면에 내세운 탓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관점에서 게이트 키핑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나는 왜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가’는 그런 그들이 만들어낸 카드뉴스의 하나인데, 백낙청 일파가 만들어낸 김수영 가짜 신화가 요즘 저널리즘을 통해 어떻게 무제한 증폭되고, 대학생 등 지식대중을 선동하고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결국 대한민국을 위험사회로 만드는가를 잘 보여준다. /조우석 주필


   
▲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 김수영은 문단을 넘어 지식사회 전반에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등극했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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