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의 일상을 담고 싶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공산주의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며 "북한 역시 공산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한 소녀의 삶을 통해 조명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의 기획은 실행단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한 소녀의 삶을 통해 북한사회를 조명하려고 인물을 물색했고, 북한 당국은 5명의 아이를 후보로 제시했다. 비탈리 만스키의 선택은 8살 먹은 진미라는 소녀였다. 소녀의 이미지만 본 것은 아니다. 진미의 아버지는 기자,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낡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조무보까지 함께 지낸다는 조건까지 본 것이다. 그러나 촬영 당일 현장에 간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멘붕 상태에 빠진다. 인물은 그대로였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달라져 있었다.
조부모는 사라졌고 비좁은 집 대신에 주체사상탑이 보이는 평양의 최고급 아파트가 제공되었으며 진미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직업이 바뀌었다. 현장에는 요청하지도 않은 현지 조연출들까지 나와 있었다. 이들은 감독 대신 레디 액션을 외쳤고 수없이 많은 테이크를 반복했다.
당초 북한의 평범한 생활상, 인간이 사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그는 촬영 도중 북한이 어떻게 체제 선전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가 보여주는 쪽으로 제작방향을 바꿨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다큐에 개입하는 북한 당국의 모든 행동을 생략하지 않고 촬영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열 받은 감독이 방향을 선회해서 만든 '다큐에 관한 다큐'인 것이다.
- 남정욱 교수 발제문 '태양 아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중 -
북한 당국의 선전속에 가려진 사회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러시아 감독 비탈리 만스키의 '태양 아래'가 오늘 27일(수)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 가운데, 자유경제원은 '한편의 영화로 북한 공산체제를 배운다···『태양 아래』, 왜 봐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 사회를 맡고,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탈북시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 영화감독 최공재 씨가 참석해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를 놓고 심도있는 이야기들이 나눴다.
'태양 아래'는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1년 동안 8살짜리 평양 소녀 진미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촬영하면서 아이의 가족, 친구, 이웃을 포함한 평양 주민의 삶을 통제하려는 북한 당국의 실체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북한 지도원들이 "동무, 여기서는 이렇게 합시다"라며 지시하는 모습까지 모조리 찍어 공개한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는 그들의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이유로 북한과 러시아 간의 '외교문제'까지 일으켰던 영화다.
제21회 빌뉴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제40회 홍콩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상 등 6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은 토론회를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은 체제 경쟁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라면서 "대한민국의 시장경제체제가 우수하다는 것이 증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이 메세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진권 원장은 "이 영화는 90분 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강점과 공산 전체주의의 모순을 제대로 알릴수 있는 영화"라면서 "영화 개봉일에 맞춰 이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냐를 이야기 하기 위해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발제를 맡은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오랜만에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서 굉장히 기쁘다"면서 "명령과 획일성에 의해 무너져가는 8살 아이의 동심은 처절했고, 태양절 행사를 준비하는 진미를 통해 전체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질식시키는지 촘촘하게 담았다"고 평가했다.
남정욱 교수는 "전체주의가 말살한 개인의 모습은 섬뜩하게 참담하다"면서 "영화의 마지막은 태양절(김일성 생일) 날 광장에서 김 부자 동상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채워지는데, 동상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가족들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다"고 느낌을 밝혔다.
탈북시인인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그가 실제로 느꼈던, 북한 감성독재의 잔인함을 강조했다.
장진성 대표는 "북한은 물리적 독재를 통한 육체적 인권 유린을 하기 전에, 정신적 인권 유린을 한다"며 "이것이 바로 감성 독재"라고 말했다.
장진성 대표는 "어린 진미에게 '너 좋은 일이 뭐니'라니 물으면서 시라도 읊어보라고 했을 때 조선 소년단 입단 선서를 읊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감성 독재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다"며 "어린 아이의 동심에서조차 개인을 지워버리는 전체주의 시스템의 나라가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장진성 대표는 "북한 체제는 주민들에게 전체주의 정서를 주입하기 위해서 평온한 정서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에게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서 "내 것을 침해받고 내 인권이 유린된다는 것을 알아야 반발심이 생기는데 전체주의 정서로 세뇌돼 있다보니 감성 독재에 묶여 자기 존재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수령 주체를 위해 개인의 주체는 없는 정신적 노예"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최공재 감독은 "지금까지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반복적 인터뷰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준이 낮았다"면서 "태양 아래는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실상을 찍었기 때문에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의 확장성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최공재 감독은 "대부분의 관객들이 이 영화가 너무 잔잔한 영화라고 생각할 것 같다"면서 자신은 이 영화가 굉장히 강력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공재 감독은 "이 영화는 관객들 스스로 '북한 상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구나'라는 문제 의식을 갖게 만들 것"이라며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어린 진미와 연출을 통해 굉장히 잘 표현해 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는 한계 때문에 국내에서 흥행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도 했다.
최공재 감독은 "이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꼭 이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최공재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은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알고 있는 것보다 북한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해 못하는데 전 세계가 북한의 실상을 이해 할수 있겠냐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이 영화가 흥행 못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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