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권력·포퓰리즘의 국회…`민의`를 어떻게 왜곡시키나

자유경제원 / 2016-05-06 / 조회: 6,234       미디어펜

하이에크의 정치불신과 한국에 주는 교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 ‘민의(民意)’ 해석의 불편함과 입법권력에 대한 견제장치의 필요성   


I. 권혁철 소장님은 발제에서 한국 정치가 정치인과 유권자간에 포퓰리즘 선심 정책을 표(vote)와 바꾸는 선거를 통해 ‘흥정 민주주의’(bargaining democracy)가 되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이렇게 뽑힌 국회의원들이 시장의 경제적 자유와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헌법을 무시하는 ‘법’(法)을 남발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입법권력 의회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 대한 정확한 문제점 지적과 올바른 대안 제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하이에크의 정치불신과 헌법 사상에 근거한 한국 민주주의 정치 분석은 매우 적절하고 유용하다.



II. 본 토론자는 먼저 입법권력 의회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입법권력 의회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대통령제 권력구조(power structure) 차원에서 이미 존재한다. 대통령제에서는 어떠한 권력이든 권력의 독점(monopoly)을 막기 위하여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분리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게 권력들 간의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통해 권력독점을 방지하는 방식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이 유럽 절대주의 하에서의 왕권의 피해를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자 만들어낸 방식이었다. 나아가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에 의한 대통령 결정 투표 제도를 도입하여 대중적 인기를 가진 포퓰리즘적 인물이 투표에 의하여 대통령이 되는 길까지 차단하였다. 


의회의 입법권 역시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과 사법부의 위헌 심사권, 즉 의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 경우 취소하는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의회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완성한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과 사법적 판단에 의한 헌법 수호라는 제도적 장치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 공히 마련되어 있다. 반대로 사법부에 대한 견제 역시 존재한다. 


사법부의 대법관을 대통령이 지명하여 의회의 승인을 거쳐 임명하게 함으로써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 권력의 ‘상호 견제와 균형’이다. 이러한 의회 권력을 포함한 3권에 대한 제도적 견제 장치는 이미 우리 헌법에 명확히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제대로, 엄밀하게 운용되지 않을 뿐이다. 


   
▲ 민의가 '국민의 명령'인 것은 부인하지 않으나 언론들이 '민의'를 자신의 정파적 입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종교적 숭앙(崇仰)의 대상으로까지 만들고 있는 것은 문제다. 사진은 2015년 11월 1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차 민중총궐기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예를 들어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국회의 포퓰리즘적 입법에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행정부가 임의로 만든 ‘신행정수도 건설추진위원회’ 등도 ‘법률적 행위’를 중단하게 됨으로써 행정부의 자의적 행정행위에 대하여 견제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대법원과 동시에 헌법제판소라는 이중의 의회의 입법과 행정부의 행정행위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헌법을 수호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제도의 존재 여부보다 운용과 적용을 어떻게 더 엄밀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국회가 가진 독점권 가운데 또 다른 커다란 부작용을 만들어 내는 권한은 예산심의 및 확정권으로 그 동안 국회가 ‘로그 롤링’(log rolling)이나 나눠먹기 예산 책정으로 비효율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다. 즉, 헌법 제54조 ⓵항은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한다.” ⓶항은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야당은 정부 예산안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극심한 포퓰리즘적 혹은 나눠먹기 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또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의 통과를 함께 요구하였다. 그러나 소위 ‘국회선진화법’의 통과로 – 국회선진화법의 유일한 긍정적 측면이다 - ‘예산안 자동부의’에 의해 이제 입법권력 의회는 더 이상 예산 심의 및 확정권을 남용하여 예산 통과 기일을 지키지 않으면서 ‘무리한’ 나눠 먹기 예산을 요구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예산안 자동부의’에 관하여 국회법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제85조의3(예산안등 본회의 자동부의 등) ① 위원회는 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이하 "예산안등"이라 한다)과 제4항에 따라 지정된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의 심사를 매년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한다.

② 위원회가 예산안등과 제4항에 따라 지정된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체계·자구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을 포함한다)에 대하여 제1항에 따른 기한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다음 날에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의회의 예산심의 및 확정권에 대한 제한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입법권력 의회를 일정하게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더 엄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 국민의 변화를 돕기 위하여 지식의 부족에 의한 유권자의 잘못된 판단 혹은 잘못된 민의의 표출을 극복할 제도의 마련은 대단히 중요하다./자료사진=연합뉴스


국회의 빈번한 입법교착으로 행정부가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은 주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오찬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체제가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대통령 역할 한계론’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만들어진 ‘식물국회화’는 선진화법을 찬성하여 법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부분 책임이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통치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명명한 ‘대통령중심제’가 아니라 수식어 없는 ‘대통령제’다. 권력구조 또는 통치구조에 ‘대통령중심제’는 없고 잘못된 용어 사용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치 방식은 대통령제(Presidential system)와 내각제(Parliamentary system)로만 나누기 때문에 엄밀하게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중심제’라는 용어의 사용은 우리나라 언론·방송의 잘못된 용법에 기인한 것이다. 혹자는 ‘이원집정제’(또는 이원정부제 dual executive system)를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중간에 위치한 형태(intermediate category)의 제도로 또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종합한(synthesis) 제도로 이해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사용이다. ‘이원집정제’라고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선거 결과에 따라 대통령제로 또는 내각제로 운용되며, 기껏해야 내각제 하에서 대통령의 외교 관련 권한이 커지는 제도이기 때문에 별도의 권력구조로 분류하여 취급할 필요는 없다. 


두 번째 차원의 입법권력 의회 제한은 대의 민주주의가 깨어 있는 시민(citizen)에 의해서만 작동 가능하다는 주장들에서 나타난다. 국회의 복지 포퓰리즘 입법은 대다수 국민이 좋아하고 국민이 원해서 가능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사회 운영의 시스템이 사회주의가 주도하는 이유 역시 사회에서 공(公)이 사(私)를 대체해가는 것을 국민이 투표를 통해 용인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사회주의로의 길’이 ‘복지’라는 가면을 쓰고 한국 정치를 배회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이 역시 국민이 선거에서 표로 ‘복지공약’을 내건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국민만이 바른 정치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이 선거에서 자유주의 철학을 가진 국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 즉 자유주의에 입각한 ‘입법권력 의회’를 만드는 힘은 국민에게 있고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을 만드는 국회를 견제하는 힘 역시 건전한 자유 시민성(citizenhood)에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사회적경제법안을 통해서도 보듯이 정부의 간섭주의가 사회적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의 극복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등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데 이러한 선거 구도를 깰 수 있는 것은 깨어 있는 ‘자유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시민과 시민의식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 '민의'를 '사회적 정의'로 만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환상'(mirage)이 되어버린다./자료사진=연합뉴스


III. 마지막으로 권혁철 소장님이 발제에서 지적하듯이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의’(民意)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고 적절하다. ‘민의’가 ‘국민의 명령’인 것은 부인하지 않으나 언론들이 ‘민의’를 자신의 정파적 입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종교적 ‘숭앙’(崇仰)의 대상으로까지 만들고 있는 것은 문제다. 나아가 민의에 대한 해석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이고 상당히 비논리적이어서 불편한 느낌까지 든다. 


특히 언론이 ‘민의’를 ‘사회적 정의’의 표현인양 과장할 때 하이에크(F. Hayek)가 『법·입법 그리고 자유 II』(Law, Legislation and Liberty II)에서 “내가 인식했던 요지는 오로지 제왕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 즉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는 표현은 전혀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사실뿐이었다...내가 ‘사회적 정의’라는 개념에 어떤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와해되어 버렸다.”는 언질은 의미심장하다.1) 즉 ‘민의’를 ‘사회적 정의’로 만들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환상'(mirage)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 4·13 선거의 ‘민의’라고 한다면 2012년 12월 ‘박근혜’라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아 5년간 임기를 보장하고 정부 행정을 맡긴 것도 ‘민의’였다.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도 민의였고, 히틀러를 받아들인 것도 바이마르 헌법을 만든 독일 국민의 민의였다. 이렇게 민의는 불변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바뀌는 등 변덕스럽고 또 다의(多義)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의’는 매우 조심스러운 해석이 필요한데 정치인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그리고 언론과 방송의 정파성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흥정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민의의 문제점과 ‘무제한적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하이에크의 혜안은 놀랍다. 결국 민주주의는 가난한 대중의 지배를 어떻게 ‘공익’(公益)으로 – 물론 공익이 존재한다는 것도 의심이고 공익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는 것도 의심이지만 - 바르게 인도하고 견제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이렇게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 제도 민주주의를 서구에서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깨어 있는 시민만이 유지 가능한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이미 ‘빈곤한 계급이 통치하는 국가’ 민주정(민주주의)에서는, 즉 “최선의 시민들이 통치하지 않고 빈곤한 계급이 통치하는 국가에, 법에 의한 지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정치학』(Politics) 1293a)고 설파하였듯이 (다수의 빈곤한 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민주정에서는 ‘법치’가 불가능하지만 ‘최선의 시민’(aristoi)들이 통치하는 체제에서는 법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아테네 시절부터 민주주의의 한계는 빈곤한 계급에 의한 법치의 훼손이었고 이의 극복을 최선의 시민에서 찾았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논의도 앞서 언급한 건전한 자유 시민성을 갖춘 시민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에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국민이 자유주의로 바뀌어야 한다. 


   
▲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패배한 책임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 20대 총선의 민의라고 한다면 2012년 12월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 5년간 임기를 보장하고 정부 행정을 맡긴 것도 '민의'였다./자료사진=미디어펜(좌),문재인 전 대표 페이스북 페이지(우)


IV. 국민의 변화를 돕기 위하여 지식의 부족에 의한 유권자의 잘못된 판단 혹은 잘못된 ‘민의’의 표출을 극복할 제도의 마련은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통해 부당한 불평등을 만들어 내거나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정책들에 유권자들이 찬성 투표를 한다면 위의 정책들을 추진한 결과들에 대한 책임은 (찬성한 다수의) 유권자, 즉 ‘민의’에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그러한 결과가 발생할지 모르고 투표한 정보에 대한 ‘무지(無知)’가 문제이다. 


이러할 때 하이에크 사상의 핵심적인 기여는 ‘카탈락시’(catallaxy)라는 ‘경제’를 ‘교환질서’로 대체하고자 했던 지식경제에 대한 깊은 통찰에 있다. 즉 “국가가 쓸 데 없이 참견(개입)해서 재화의 분배를 왜곡시키지 않는다면 개인들의 두뇌에 흩어져 존재하는 정보와 지혜를 유용한 지식으로 전환시켜주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본 것이다.2) 그러나 유권자가 “흩어져 존재하는 정보와 지혜를 전환”시키지 못하고 단기적으로 판단 실수를 할 가능성, 그리고 ‘자생적 질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실패의 극복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해답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장의 자생적 질서로 해결이 될 것임을 시민에게 확신시켜주는 하이에크 사상은 한국 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또 크게 확산될 필요가 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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