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김수영·강신주 붐과 패션좌파의 `지적사기` 전성기

자유경제원 / 2016-05-14 / 조회: 6,850       미디어펜

김수영, 그리고 패션좌파의 본질에 대해

 

필자는 자유경제원의 시인 김수영 관련 1차 토론회에서 김수영이라는 작가가 2016년 지금 과연 어떤 식으로 좌익정치세력에 의해 일종의 선동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는 지 토론한 바 있다. 이번 2차 토론회 발제에선 김수영이 단순한 모더니스트로서 ‘종잡을 수 없는 난해한 작가’에 불과했다는 기존 견해에 일견 다른 각도로 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다음 일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7년에서 68년 사이에 김수영과 이어령 간 펼쳐진 ‘불온시’ 논쟁이란 게 있었다. 약 3개월여 동안 각각 사상계와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벌어진 논쟁인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은 많이 거론되지 않고 사실상 잊혀졌다. 그러나 이 논쟁은 김수영이란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힌트를 주는 일화다.


이어령이 조선일보 1967년 12월28일자로 실은 칼럼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에 대해 김수영이 사상계 1968년 1월호에 ‘지식인의 사회참여’란 글을 실어 반박하면서 벌어진 이 논쟁은 김수영이 먼저 ‘불온시’ 문제를 거론하며 논의가 시작됐다. 다음은 김수영의 글이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최근에 써놓기만 하고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을 생각하고 고무를 받고 있다. 또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응모 작품에 끼어 있던 ‘불온한’ 내용의 시도 생각난다. 나의 상식으로는 내 작품이나 ‘불온한’ 응모 작품이 아무 거리낌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현대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영광된 사회가 반드시 머지 않아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이어령의 비판은 매서웠다.


“만약에 불온한 시를 써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 시인의 사회참여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 참여론자는 ‘영광된 사회’가 와서 서랍속에 보류된 자신의 불온한 시를 해방시켜줄 것을 원하고 있는 예술이 아니라, 거꾸로 그 ‘불온한 시’가 ‘영광된 사회’를 이루도록 행사시키는 데서 그 의의를 발견하는 일종의 전사인 셈이다.”


이어령은 김수영처럼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길 기대하며 불온한 시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는’ 태도를 보이는 시인이 과연 참여파 시인이 맞느냐고 지적한 것이다. 사실상 김수영과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대부분 문인들의 핵심부를 공격한 셈이다. 이렇게 약점을 정통으로 맞은 김수영은 엉뚱한 대꾸로 논쟁을 얼버무리고 만다.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고,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정치적 의미에서의 불온성을 얘기하다 갑자기 정통으로 얻어맞으니 순식간에 ‘불온’의 의미를 확대시켜 버리고 도망가 버린 셈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상 김수영의 문학적 행보 그 자체를 암시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은 늘 그랬다. 사회참여파로 ‘보이고’ 싶어 했지만 실제론 그런 역할을 부담스러워 했고 이리저리 얼버무리며 피해나갔다.


   
▲ 김수영과 강신주 붐으로 대표되는 패션좌파의 전성기는 곧 지적 사기의 전성기이다.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의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김수영 시문학 자체가 “황당무계한 말장난”


그의 문학도 당연히 이 같은 작가적 태도에 수렴된다. 대표작 시 ‘풀’만 봐도 알 수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대표적 ‘민중시’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온 이 ‘풀’은 당연히 의아함을 남긴다. 분명 1연에선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며 권력에 의해 탄압당하는 민중을 묘사하는 듯하면서도, 2연에선 갑자기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며 권력의 탄압이 오지도 않았는데 지레 겁먹은 민중을 묘사, 오히려 반민중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 김수영을 다룬 석-박사 학위논문만 수백 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위력도 상상 이상이라서 ‘떠받들어지는 시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으로 각인됐다.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어딘가에선 갑자기 반문명적인 얘기를 꺼내다가도, 다시 “나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사람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면서 다시 자기 사변적인 얘기를 늘어놓다가, 어느 순간 김일성 만세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또 사라진다.


이 같은 김수영의 알 수 없는 문학세계에 대해 오세영 서울대 교수는 2005년 현대시 1월호와 2월호를 통해 김수영의 시를 크게 인생론적인 시와 소시민의 생활시로 분류하고, 생활시를 다시 인생론적인 시, 난해시, 메시지 전달 시, 울분 토로의 시, 이념 예찬시, 풍자 조소시로 분류했다. 이어 김수영의 시가 1960년대 대표적인 참여시라는 주장에 대해 의아스러운 점을 김수영의 여러 시편들을 예로 들어 지적했다. 또한 김수영의 시가 대표적인 참여시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당시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들과 문학의 정황들을 하나씩 짚어내고 있다. 오세영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평론가들의 우상화에 최면 되어 그 안에 마치 어떤, 무엇이 있으리라는 선입관이나 환상을 버리고―사실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황당무계한 말장난 그것인 것이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김수영 자신이 또 그렇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화에 최면된 일부 김수영 연구자들이―심지어는 대학의 석·박사 학위 논문에서 조차―이들 작품을 중요한 논의의 대상에 올려놓고 견강부회 해석을 시도하여 마치 무슨 심오한 내용이나 있는 듯 떠벌리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초기단계 패션좌파로 볼 수 있는 김수영


그러나 중요한 점은, 김수영은 늘 스탠스 그 자체는 좌익 방향으로 틀어 그 부류로서 이해되려 노력해왔다는 점이다. 실제 자신의 작품들이나 작가관 등을 따지고 보면 잘 해야 애매하거나 알 수 없는 정도, 이른바 혼란스러운 방향성이라 볼 수 있지만, 그가 ‘속한’ 집단은 언제나 좌익 계열이었다. 이에 대해 오세영 교수는 이렇게 진단하다.


“김수영 시의 또 다른 흐름인 참여시의 경우 4.19 이후 5.16 이전 표현의 제약이 거의 없던 시절에 쓰인 것이다. 시류를 탔던 것이며, ‘혁명을 잘 해보자’는 ‘어용시’를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시의 고발 내용조차 관념적 추상적이다. ‘자유’ ‘혁명’이란 시어를 자주 썼지만 포즈(pose:겉모양)로서 쓴 것 같다. 그는 심지어 5.16 쿠데타도 ‘혁명’이라고 썼다.”


이제 김수영의 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일종의 ‘트렌드’로서 참여시를, 그것도 표현의 제약에 없던 시대에 잠시 손댔던 작가에 불과하다. 그 내용도 유치하고 그저 표피적으로만 여러 얘기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고 사라진 작가다. 그저 ‘대중이 멋지고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방향’ 정확히 말하면 ‘시라는 장르를 소비하는 특정 소비층이 멋지고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뿐이라는 것이다.


   
▲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 김수영은 문단을 넘어 지식사회 전반에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등극했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패션좌파? 분명 그렇게 볼 수 있다. 좌익과 그 사상이 문화예술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층에 어떤 ‘이미지’로 비쳐질지 계산해 그런 스탠스를 취하고는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별다른 이데올로기적 경향성과 지식, 의지도 없는 예술가들이 바로 패션좌파의 중심에 서있는 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은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초기단계의 패션좌파 모델을 선보인 예술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경향은 사실 비단 김수영과 김수영이 활동하던 시대, 그리고 문학계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당장 지금도 영화, 음악 등 각종 문화예술계에서 똑같이 펼쳐지고 있다. 스탠스만 좌익 방향에 두고 있지, 실질적으론 별다른 사회참여를 하는 것도, 작품 속에서 일관된 이데올로기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예술가들 천지다.


서구 추종적 태도는 그 자체로 패션좌파들의 속성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추가해보자. 김수영으로부터 시작해 현재에 이르는 문화예술가 ‘패션좌파’들의 근원엔 묘하게도 서구에 대한 맹목적 사대주의 태도가 뚜렷이 엿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김수영만 해도 애초 생활수단 자체가 영어번역이었고, <미국 군대 내의 흑인>(軍事 다이제스트1954.9), <미국 역대 대통령 비화>(實話 1955. 5) 등 미국사회의 지극히 긍정적인 측면들(<미국 군대 내의 흑인>은 미국 군대 내에서 흑인과 백인 간 인종차별이 줄고 있다는 내용이다)을 얘기하고 싶어했다. 나아가 자신의 <시작노트>에서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이에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는 “김수영은 서구 추종의 모더니스트이고 또한 지식인의 자폐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시대가 달라지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문학은 결국 트렌드성이 지극히 민감한, 영원한 ‘서구문학 따라잡기’였던 것이다.


그와 대단히 비슷한 사례가 신작영화 <아가씨>가 막 개봉 예정에 있는 대표적인 영화감독, 21세기의 ‘패션좌파’ 예술가 박찬욱이다. 그 역시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면서 스탠스 상으로 명확한 좌익진영에 몸담고 있지만, 그의 영화들에 대해 같은 좌익계열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박 감독의 영화는 유럽 지성사와 끈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유럽에서 통할만한 영화”라며 “그의 영화 주제는 한마디로 서구, 근대, 남성 무의식적이기에 서구인의 입맛에 맞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 “박 감독의 영화에서는 한국 사회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지역성이 배제돼 있다”고도 비판한다.


그밖에도 많다. 음악가 신해철, 영화감독 봉준호, 소설가 공지영 등 끝도 없다. 대부분 고도성장의 과실을 따먹고 자라난 386세대란 점이 눈에 띈다. 그러다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청춘을 보내고, ‘자유’와 ‘혁명’을 일종의 트렌드로서 소비하던 세대란 점도 일치한다. 김수영의 참여시 시절과 딱히 다를 것도 없는 과정 속에서, 똑같은 서구 추종 모더니스트들이 똑같이 패션좌파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한다.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강신주와 김수영, 왜 둘이 엮여서 붐의 핵심에 섰나


끝으로, 이제 왜 김수영이 다시 2016년 한복판에 다시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지금이 바로 ‘패션좌파의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트렌드로서 소위 ‘사회참여파’들이 득세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애초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이나 그 일관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자유’ ‘혁명’과 같은 ‘겉모양’만이 패션처럼 소비되며 그에 대한 대척점으로 시장경제를 ‘악’으로서 압박하고 있는 시점이다.


이는 21세기 김수영 열풍(사실상 딱 10년 전인 2005~2006년경엔 김수영 비판 분위기가 문단에 돌았으니, 2010년대의 김수영 열풍이라 보는 것이 옳다.) 주역인 ‘철학자’ 강신주부터가 바로 이 같은 패션좌파의 행보에 동참하고 있다. 한 번 김수영의 시 <그 방을 생각하며>를 읽어보자.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슨 펜과 뼈와 광기 -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담뱃진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그리고 강신주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돌아보자.


“나도 내가 말하는 대로 철저하게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로라도 ‘이렇게 해 보자’고 열심히 떠드는 것이다.”


   
▲ 김수영의 시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는 영문과 출신이다. 이는 김수영의 엘리트적 자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이다. 사진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수영 시인의 카드뉴스./자료사진=SBS 스브스뉴스


이것이 사회참여인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패션좌파’의 본질이다. 능동적인 사회개혁 의지가 존재하지도 않는, 그냥 ‘말’로만 떠들며 어떤 추상적인 ‘자유’와 ‘혁명’의 이미지만을 쫓아다니는, 전형적인 ‘패션’으로서의 좌익 ‘스탠스’만 즐기고 있을 뿐이다. 다시 오세영 교수의 김수영 비판을 보자.


“시의 고발 내용조차 관념적 추상적이다. ‘자유’ ‘혁명’이란 시어를 자주 썼지만 포즈(pose:겉모양)로서 쓴 것 같다.”


강신주는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자로서 늘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생각한다.”


우리는 ‘겉모양’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대이기에 강신주가, 그리고 김수영이, 다시 대중 ‘퍼포먼스’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수영은 많은 의미에서 ‘가벼운 반골’의 상징이다. 취하는 태도가 부드럽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고의 깊이나 의지의 굳건함 차원에서 지극히 가볍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김수영이 좌익정치진영의 마스코트로서 활용되는 현실은 어떨까. 과연 그에게 좌익정치진영이 기대하는 ‘선동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명확히 답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그의 시에 경도되는 젊은 세대가 과연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모습이 돼갈 지에 대해선 다시 오세영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발제를 마친다.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왜 사변적으로 변했는지 압니까? 언어에 대한 인내심은커녕, 너무 사적인 이야기에 치우쳐 단 5행을 읽기 힘들어요. 그게 다 김수영의 영향이지요.


김수영이 누굽니까. 1970∼80년대 정치논리나 민주화 운동의 필요성에 따라 민족문학 진영에서 우상으로 만들어낸 존재가 아닙니까. 김수영의 내츄럴한 언어가 새롭게 보였을지는 몰라도 시의 본령은 아니예요.


<아메리카 타임지>나 <공자의 생활난> 같은 시는 수준미달이고, 일종의 시적 사기여서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요.”


김수영과 강신주 붐으로 대표되는 패션좌파의 전성기는 곧 지적 사기의 전성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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