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이 주는 교훈

자유경제원 / 2016-05-25 / 조회: 7,924       미디어펜

'문화대혁명'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


1966년에 시작해서 1976년 마오쩌둥(이하 ‘마오’로 약칭)이 사망함으로써 막을 내린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으로 표기)은 가히 생지옥이라 할만 했다. 왜냐하면 마오의 극좌노선을 반대했던 공산당 관료들, 지식인들, 토착 자본가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이 대륙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제자가 스승을 살해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식인들이나 고위층의 자제들은 산골의 오지로 쫓겨 가 토굴에서 생활하는, 소위 하방(下放)을 했다. 많은 유물들이 훼손되었다. 예를 들어, 공자의 비석은 두 동강나서 버려졌다(나중에 비석은 적당히 봉합되었지만 훼손 자국은 남았다). 전국의 중·고교와 대학교는 폐쇄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이 때 사망자 수는 210만 명, 부상자 수는 1,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집계일 뿐이다. 


마오는 왜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혁을 시작했는가? 마오는 대약진 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1962년 국가주석에 물러났다. 마오가 국가주석에서 물러나면서 권력에서 사실상 밀려날 위기에 처했다. 소위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했던 류사오치(劉少奇), 덩샤오핑(鄧小平) 등이 인민의 인기를 업고 크게 부상했기 때문이다. 마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홍위병을 동원하여 문혁을 감행함으로써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요컨대, 문혁은 마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문혁을 이렇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다. 현대 중국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될 만한 사건이었던 문혁을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교훈을 얻을 것이 별로 없다.


문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오가 주창하고 실행했던 대약진 운동을 이해해야만 한다. 1958년 5월 2차 5개년 계획에서 마오는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총노선이란 사회주의 건설을 국가 건설의 기본 방침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대약진이란 공업, 특히 중화학공업 건설의 속도를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중화학공업 중에서도 철강의 생산을 2배로 늘리고 15년 이내에 영국을 따라잡는 것이다. 인민공사란 토지를 국유화하여 농민의 집단농장 생활을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늘린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오의 대약진 운동은 농업의 완전한 공산화와 공업에 대한 과다한 국가 개입을 의미했고, 전체적으로는 1958년 이전보다 경제를 더 한 층 ‘사회주의화’하겠다는 것이었다.


   
▲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독재국가이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으나 이는 독재국가이자 단기에서는 옳다. 독재국가라도 장기에서는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


대약진 운동은,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참담한 실패를 초래했다. 거의 대부분의 농민을 집단농장에 거주하게 만들었던 인민공사 제도는 곡물 생산의 대대적인 감소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집단농장 제도는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배급을 주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 이 때 자연재해도 가세했다. 그러면 농업 생산이 얼마나 부진했는가. 1958년 이후 약 2천만-4천만 명이 굶어죽었다. 이 때 사망자의 평균 연령은 1959년에 17.6세, 1963년에 9.7세였다. 


중국 정부는 철강 생산을 위하여 100만 개의 소형제철소를 각 지역에 짓도록 지시했다. 제철소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할 뿐 아니라 그 단위도 크기 때문에 소형제철소에 의한 철강의 생산은 너무 생산성이 낮았다. 게다가, 철강의 품질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생산량을 할당받은 제철소들의 책임자들은 문책이 두려워 허위 보고서를 썼다. 더욱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많은 노동자들은 생필품의 부족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한 마디로, 인민공사제도로 농업과 경공업은 크게 후퇴했고 대약진 운동은 중화학공업의 생산을 증가시켰지만 서류상으로만 그랬다. 마오가 제창한 대약진 운동은 처참한 실패가 분명했다. 대약진 운동을 추진하고 2년만인 1960년에 실용주의자인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이 인민공사 정책을 수정하고 중화학공업의 목표를 하향 조정하도록 했다.


대약진 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다. 그 일로 그들은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마오도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국가주석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했듯이, 마오는 사임 후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일생일대의 난국을 돌파하기 위하여 문혁이라는 비수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 중국 위안화에는 마오쩌둥이 그려져 있다. 마오쩌둥은 완전한 공산화를 꿈꾸며 대약진 운동을 벌였지만 처참히 실패했다./사진=연합뉴스


대약진 운동과 문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사회주의와 간섭주의는 경제를 나쁘게 만들거나 심지어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얼마나 나쁘게 할 것인가는 사회주의와 간섭주의가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있다. 둘째, 경제가 잘못되면 정치투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그에 비례하여 커진다. 왜냐하면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독재국가이기 때문이다. 셋째, 마오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적어도 독재국가이자 단기에서는 옳다. 그러나 독재국가라도 장기에서는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 덩샤오핑이 1978년에, 그렇게 빨리, 권력을 잡고 개혁과 개방을 지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인민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첫째와 셋째 교훈은 한국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웃나라인 중국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한국 경제도 잘 돌아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 경제는 그 어느 나라보다 개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재의 소득 수준으로 보건대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를 직시함으로써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전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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