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갈등·분노·증오 사회…아담 스미스에 `정의`를 묻다

자유경제원 / 2016-06-03 / 조회: 8,830       미디어펜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시장이 경쟁적이고, 수급에 대한 정보가 원활히 공유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정부 역할이 커지고 사회주의 노동개념에 기반한 법률들이 구축됨에 따라 시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경쟁이 사라지고, 수급 또한 자생적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아담 스미스가 일찍이 말했듯,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따른 사익이 원동력이 되고 사익과 공익이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2일 다시금 아담 스미스를 읽어보는 자리를 통해 경제적 자유주의의 가치를 일깨우고 그가 이 시대 한국에 주는 의미를 짚어보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리버티홀에서 열린 ‘다시 아담 스미스를 읽는다: 이 시대 한국에 주는 의미’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질서는 아담 스미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아담 스미스보다 칼 마르크스의 영향이 점점 커져서 계급갈등과 증오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커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체제가 시장경제와 구분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체제로 호도되며 아담 스미스의 사상이 무절제한 자유방임주의적인 것으로 곡해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 “이러한 잘못된 오해와 편견들로 인해 생산의 주체인 자유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경쟁의 긍정적인 면을 망각한 채 중상주의 시대의 규제 만능주의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강자와 약자를 나누어 무조건적인 약자 보호를 내세우는 대신, 경쟁 낙오자가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최근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약자보호와 경제정의,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각종 포퓰리즘 정책과 기업규제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래 글은 김승욱 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다시 애덤 스미스를 읽는다: 

이 시대 한국에 주는 의미


1. 탄생 293주년. 왜 아직 애덤 스미스인가?


애덤 스미스는 1723년 6월 5일에 태어났으므로, 올해가 293주년 되는 해이다. 아직도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영국 은행(Bank of England)은 2007년에 새로운 파운드화를 발행하면서 20파운드 지폐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옆모습이 담긴 석고 두상 사진을 넣었다. 그 옆에 <국부론>에 등장하는 핀공장 그림과 스미스의 분업과 전문화에 대한 주장이 요약되어 적혀있다. 잉글랜드 은행(the Bank of England)의 킹(Mervyn King) 총재는 애덤 스미스가 “사회와 사회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세웠으며, 인간 본성과 사회 조직, 분업과 전문화의 이점 등에 관한 스미스의 통찰은 아직도 경제학의 핵심을 이룬다.”고 지폐에 애덤 스미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애덤 스미스가 계속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덤 스미스 이후에 경제학이 탄생하고,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의 기본 질서가 형성되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반발로 인해서 한때 냉전체제 하에서 지구의 절반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그의 사상이 경제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세계는 그의 혜안을 받아들여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경제를 움직이는 질서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표현이 풍미하면서 마치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어떤 새로운 자유주의 경제학이 등장한 것같지만, 사실 근본적인 사상은 애덤 스미스 이후에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때 아닌 사상논쟁에 뒤를 이어 현행 자본주의 체제가 반시대적인 것처럼 호도하고, 자본주의체제를 시장경제와 구분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체제로 호도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특히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무절제한 자유를 옹호하는 것처럼 인식한다든지, 정부의 기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자유방임주의자들로 매도하는 경향도 있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한 적도 없고, 오늘날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기능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오해와 혼란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애덤 스미스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애덤 스미스 탄생일을 맞이해서 다시 짚어본다. 


   
▲ 아담 스미스는 200년 전, 중상주의라는 유럽의 관치경제에 대해 오늘날 한국사회가 걸었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규제, 보호무역, 비대한 정부지출, 수요없는 공공사업 등 아담 스미스는 그러한 국가주도의 경제가 국부를 감소시킨다고 설명한다.


2. 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게 되었는가?


애덤 스미스가 처음부터 경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사회 질서를 형성할 것인가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애덤 스미스가 글레스고대학에서 가르친 과목은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글레스고 대학(University of Glasgow)에서 버클루공작과 여행을 떠나기 전인 1764년까지 12년간 강의했다. 도덕철학이란 분야는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자연신학, 윤리학, 법학 및 경제학 전반을 망라하는 학문으로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학문분야였다. 


계몽주의 시대의 시대적 과제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는 계몽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 이전에는 유럽사회도 미신과 무지가 지배적이었다. 르네상스 이후에 자연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등의 비이성적인 무지가 유럽에도 가득했다. 15세기에 신대륙이 발견되고,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의 물리학 등이 발전되면서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작업들이 시도되었다. 자연계를 실험과 관찰을 통해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사회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출판물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인간 이성을 중시하고, 과학 지식의 진보와 보급을 통해 사람들을 무지한 상태에서 해방시키려는 ‘계몽(enlightenment)’ 운동이 확산되었다. 


기독교가 지배하는 유럽에서 중세적 세계관은 신이 부여한 각자의 신분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자기를 부정하고, 신의 의지에 순종하는 것이 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중세 시대에 유럽은 약 천여 개의 정치단위로 세분화 되어 있었다. 평생을 봉건영주가 다스리는 작은 장원에서 태어나 그 안의 사람들과 살아야 하므로 스스로 알아서 질서에 순응했다. 그런데 각종 왕위계승전쟁과 종교전쟁 등으로 봉건영주의 힘이 약해지고, 국왕의 힘이 강해지면서 유럽은 약 10여개의 국민국가 단위로 재편됨에 따라서 과거에 비해서 정치단위의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이러한 확대된 사회에서 어떻게 질서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근대시대 사상가들의 화두였다. 


1)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강의는 4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부분은 자연신학이다. 자연신학은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근거 그리고 종교가 기초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에 대한 자연신학의 원리들을 고찰”하는 것이다.1)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의 철학은 기독교 신학에 기초한다. 자연신학이란 계시신학의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이성이나 경험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탐구하려는 신학이다. 자연신학의 선구자는 일반적으로 플라톤으로 보며, 중세의 대표적인 스콜라철학자인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가 대표적이다. 반면에 계시신학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계시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한 계몽을 강조했는데, 이들은 자연신학을 수용하였다. 특히 계몽주의자들의 자연신학은 이신론(理神論, deism)이었다. 이신론은 유신론에서 무신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신관이다. 이신론은 창조사상은 수용하고, 섭리사상은 수용하지 않는다. 즉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기는 했지만, 다스리는 것은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통해서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기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리학의 세계에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존재하듯이 인간 사회에도 비슷한 법칙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중요하게 인식했다. 


이와 같이 인류 사회의 존속을 가능하게 하고 번영을 촉진하는 보편적이며 완전한 법인  자연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을 자연법사상이라고 하며, 이러한 흐름을 이어 받은 도덕철학자가 애덤 스미스의 글레스고우 대학 스승이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중심인물인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1694 ∼ 1746) 교수였다.


애덤 스미스가 자연신학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2) 다만 그가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은 신의 섭리를 대신하는 자연 법칙과 유사하기 때문에 애덤 스미스를 이신론자로 파악한다. 이러한 측면을 잘 나타내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언급이다. 네덜란드의 경제사학자 하우즈바르트(Goudzwaard)는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신론적 해석이라고 파악했다.3)

 

   
▲ 지금 한국 사회는 아담 스미스보다 칼 마르크스의 영향이 점점 커져서 계급갈등과 증오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커져가고 있다./자료사진=연합뉴스


2) 윤리학


이러한 신학적 배경 하에서 질서를 가져오는 요인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한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강의의 두 번째 부분은 윤리학이었다.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17세기의 잉글랜드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1588~1679)는 정부의 강제를 강조했다. 홉스는 자연상태 즉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연상태에서 각 개인들은 신이 주신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 뜻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 즉 자연권Right of Nature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권을 양도해 사회계약에 의해서 국가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State를 리바이어던Leviathan(한국어 성경에는 ‘리워야단’)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홉스의 사회계약론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나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홉스와는 달리, 잉글랜드의 존 로크는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통해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을 더 발전시켰다. 그는 홉스와 달리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인간들의 자연상태가 평화롭고 서로 돕는 사회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평화로운 사회에서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회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는 공동의 선을 위해서 시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존재하기 때문에, 시민의 동의 없이 개인의 재산을 침해할 수 없다고 보고, 세금도 역시 시민의 동의하에서 필요하다는 주권재민 사상을 확립시켰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명예혁명(1688) 후에 성립된 영국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고, 미국 독립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홉스와 로크의 자유주의 사상은 장자크 루소에게 영향을 주어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1754)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은 불평등이 없었는데, 산업과 인간정신의 발전으로 불평등이 커졌으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으로 인해서 불평등이 합법적인 것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1762)에서 인민주권설을 제창하였으며, 이는 급진적인 혁명사상으로 연결되어 후에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자유주의적 국가관이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확립되면서, 영국을 선두로 시민계급이 왕권을 제한하고, 사회의 중요한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애덤 스미스 시대의 지성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이 세상이 질서를 확립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인간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가져와서 발전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정부의 힘에서 찾지 않고, 인간내부의 힘에서 찾는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 17세기 후반 영국에서는 두 가지 학파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이성에서 찾으려는 캠브리지(Cambridge)의 플라톤(Platon)학파이고 두 번째는 도덕감각에서 찾으려는 스코틀랜드(Scotland)학파이다. 스코틀랜드학파는 인간 내부에는 이성적 판단을 하기 이전에 직감적으로 선을 감지할 수 있는 도덕감(道德感:모랄 센스)이 본성에 내포되어 있으며, 이것이 인간이 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초이며 따라서 사회질서의 토대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인간 본성에 도덕감정이 내재되어 있다는 인식은 애덤 스미스의 스승인 프랜시스 허치슨에게 계승되었으며, 애덤 스미스도 이러한 사상을 계승했다.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힘이 정부의 힘이나 인간의 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도덕심에서 나온다는 사상은 이러한 스코틀랜드학파의 견해를 계승한 것이다. 


그런데 스승인 허치슨은 사회의 질서가 가능한 것은 인간에게 인애심(benevolence)과 같은 미덕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파악한 반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동감(sympathy)능력에서 사회질서유지의 근거를 찾았다. 인간이 비록 이기적 존재이지만, 인간에게는 남에게 동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 태어났으며, 동감을 통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도덕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기심을 누르고 더 높은 도덕적 차원의 판단을 할 수 있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을 설명한 것이 바로 <도덕감정론>이다.


3) 법학


그렇다고 해서 애덤 스미스가 이러한 도덕감정의 힘만으로 사회 질서의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진 이타심이 확대되고, 이기심이 억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허치슨이 강조했던 인애의 덕은 이타심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되고, 인간이 가진 이기심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정의의 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인애심은 사회를 보다 아름답게 하는 것으로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아름다운 장식물과 같은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강제될 수 없기 때문에 인애심 만으로는 이타심을 증폭시켜서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런데 정의라는 것은 사회 존립의 기초로써 건축물에 비유하면 기둥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자칫 잘못하면 쉽게 과도하게 되어 사회 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의의 수호는 예외 없이 엄격하게 강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사회 정의의 유지를 위해서 정의를 자발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정의의 덕virtue’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의의 법law’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많은 경우에 애덤 스미스가 자유방임주의자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오해이다. 그는 인간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정의의 수호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는 추후 별도의 논문에서 법률과 정부의 일반원칙들 및 사회의 상이한 연대와 상이한 시기에 이 일반원칙들이 겪어온 다양한 변혁들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때 가서 나는 소위 정의의 문제뿐만 아니라 치안, 세입, 국방 및 법률과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여기에서 법학의 역사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660)”라는 글로 맺고 있다. 이것을 보면 인류 사회의 질서와 번영을 가져오는 일반원리를 위한 법학을 집필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미스는 후에 <국부론>을 통해서 위에 언급된 “치안, 세입, 국방” 등에 관한 후반부를 다루었다. 그러나 <법학강의>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정의Jurisprudence’ 부분은 출판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웠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을 출판한 이후에 글래스고 대학에서 마지막 두 해에 강의한 법학에 대한 강의내용을 기록한 학생들의 강의노트가 두 권 발견되어 애덤 스미스가 가졌던 질서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두 번째 측면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법이 대상으로 하는 4가지를 정의, 행정, 세입 그리고 군비로 나누었는데, 그 이유는 먼저,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정의의 유지이기 때문이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이 타인의 재산을 침탈하거나 자신의 재산이 아닌 것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다(상, 89)”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번째 행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재정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세 번째로 세입을 다루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소용없기 때문에, 군비 문제를 다루고, 이와 관련해서 서로 독립국가 간에 지켜야 할 규정으로 국제법을 다루었다. <법학개론(상)>의 여섯 개의 필사본 중의 5권이 바로 이 제1부 ‘정의’를 다루고 있다. <법학개론(하)>의 경우도 절반 이상이 제1부 ‘정의’에 대한 부분이다. 


스미스는 정의의 목적(the end of justice)을 “침해로부터의 보호(to secure from injury)”로 파악했다. 침해는 개인으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으로 보고, 공법(제1편), 가족법(제2편), 사법(제3편)의 순서로 설명했다. 


스미스의 법학에서 정의의 기초는 법조문이나 효율성이 아니라, <도덕감정론>에서 설명한 동감이다. 공정한 방관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피해자의 분개(resentment)라는 감정이 정의롭지 못함의 기초라는 것이다. 이는 정의의 근거를 동감에서 찾았으므로, 동감정의론이라고 볼 수 있으며, 정의의 근거를 효용(utility)에 두는 효용정의론과 다르다. 정의를 효용에 기초할 경우 국가가 각종 규제를 남발하는 중상주의적인 정책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4)


   
▲ 정부는 강자와 약자를 나누어 무조건적인 약자 보호를 내세우는 대신, 경쟁 낙오자가 스스로 재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계급갈등과 증오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사진은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


4) 정치경제학


그런데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법이 잘 규정되어 있으면 저절로 사회의 질서가 잡힐 것인가? 스미스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법이 잘 되어 있어야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성장해서 자립적인 사람들이 많아야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했다. <법학강의>의 제2부 행정(police)의 첫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많은 행정과 이에 대한 규정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해서 언제나 제일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파리의 경우에는 치안과 관련된 규정들이 몇 권의 책으로는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런던에는 두세 가지의 간단한 규정밖에 없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거의 매일 밤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데에 반해 훨씬 큰 도시인 런던에서는 살인사건이 일 년에 서너 건밖에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을 보고 경찰이 많을수록 치안은 더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범죄를 막는 방법은 치안이 아니라 가능한 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여 먹고사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립은 사람을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는 반면 의존은 사람을 매우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자립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교역과 제조업을 일으키는 일이야말로 범죄를 막는 최선의 방책이다.”5)


애덤 스미스 시대의 런던은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200여년에 걸친 모직물 산업의 발달로 인해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 있었다. 반면에 프랑스 파리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1789) 직전으로 구체제 하에서 많은 평민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파리의 범죄율이 런던보다 더 높은 이유는 법 규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애덤 스미스는 인식했다. 그래서 질서를 세우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므로, 어떻게 국부(wealth of nation)를 증개시킬 것인가를 설명한 것이 <법학강의>의 후반부이며 이것이 발전되어 후에 <국부론>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행정(police)이란 단어의 의미를 <법학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행정이라는 명칭은 프랑스어이며 원래는 시민정부의 정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행정이 정치의 하급 부문들, 즉 청결, 치안 및 저렴이나 풍부에 관한 규정을 의미할 뿐이다.”6) 오늘날에는 폴리스police를 ‘경찰’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하는데, 이미 애덤 스미스 시대에도 그런 의미로 사용한 모양이다. 그런데 스미스는 이를 ‘시민정부의 정책’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한국어 번역본에는 ‘행정’이라고 번역되고 있다. 국민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한 정책이므로 정치경제학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후에 <국부론>에서는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탐구 The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 of the Wealth of Nation>로 제목이 바뀌었다. 


3. 애덤 스미스의 행복관


질서 유지를 위해서 개인이 잘 살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해서 <국부론>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애덤 스미스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인간 사회가 질서를 이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다. 한 나라가 잘 살게될 때 범죄가 줄어들고, 사회 질서가 이룩된다고 본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기본적인 생계의 문제가 해결될 때 체면도 생각하고, 남에게 베풀 수도 있는 것이고, 사회의 법을 자발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개발시대부터 성장이 먼저인가, 분배가 먼저인가 논란을 해왔다. 특히 1987년 이후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성장의 과실을 나누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는데, 21세기가 열리면서 비정규직과 양극화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특히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래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친기업적인 정책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약자보호와 경제정의,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기업규제정책이 크게 확산되었다. 특히 정부의 중요한 기능이 동반성장, 상생협력, 골목상권 보호 등이라고 인식해 정치가들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포플리즘적인 정책개발에 몰두했다. 


학교 선생님의 관심사가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공부 그만하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이듯이, 정부의 관심은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재기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한 경쟁할 수 없는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이전적인 지출을 통해서 지원해야 하지만, 가능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인간이 상대적인 격차에도 불행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한 불행은 정부가 결코 막을 수 없다. 인간 사회는 원래 불균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 불평등이 인간의 행복을 저해하는 일이 없게 하려면, 행복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극복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행복관을 살펴보자.


인간의 행복이 재물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행복관’을 통해 그의 사상이 나온 뿌리를 살펴보자.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멸시당한다고 생각되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어렵다. 완전히 무감각한 사람이 되거나, 사회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는 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인간에게 이만큼 쓰리고 비참한 상태는 없을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행복론을 요약하자면,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는 “최저 수준이상의 수입을 가지고 건강하고, 빚이 없고,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재산을 추가하는 것은 행복을 크게 증진시키지 못한다고 애덤 스미스는 생각했다. 이것을 그래프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림1. 부와 행복의 관계


이 그림은 부와 행복의 관계를 간략하게 표시하고 있다. 세로축은 행복의 정도를 나타내고, 가로축은 소유한 부의 정도를 나타낸다. 선분 OCE는 행복의 정도가 소유한 부의 크기에 정비례한다, 즉 부유할수록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래프에서 선분 SCD는 스토아 현자의 행복선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인간의 행복이 부의 크기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수평선인 SCD는 부가 최소 수준에서 우측으로 증가해도 행복의 정도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소득이 최저수준인 B점 이하밖에 없을 경우 행복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행복이 소득과 재산의 정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행복곡선은 OBCD가 된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이나 남의 평가를 중요시하는 연약한 사람들은 행복선은 OBCE 의 모습을 지닌다. 왜냐하면 연약한 사람들은 행복이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정도와 비례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CD와 CE의 차이는 연약한 사람의 환상이다.7)


경제발전과 행복


개인이 빈곤을 피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근면이나 절약 등 개인의 노력에만 딜린 것이 아니라 우연한 사건에도 영향을 받는다. 그 우연한 사건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제가 발전하는지, 아니면 정체하거나 쇠퇴하는지 등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북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가난한 이유가 북한사람들이 남한사람들에 비해서 노력을 덜하거나 열등해서가 아니라 북한이 남한에 비해서 경제성장을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되면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앞의 그래프에서 선분 OB의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야심과 경제발전


<국부론>에서 국부를 증진시키는 방법으로 교환과 자본축적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도덕감정론>에서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인은 ‘연약한 사람’ 또는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 때문이라고 했다. ‘연약한 사람’은 먹고 살기에 부족하지 않은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어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부를 벌면 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돈을 벌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그 결과로 경제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결국 ‘연약한 사람’은 속은 셈이지만, 그 결과로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의 문명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했다.


“문명이 진보하고 인류가 물질적으로 풍부해지는 것은 부에 대한 인간의 야심이 있기 때문이다. 허영심을 가지게 됨으로써 인간은 근면히 일하고, 기능을 연마하며, 수입을 절약한다. 그 결과로 토지가 개간되고, 해양이 개척되며, 도시가 건설된다. 보다 많은 생활필수품이 생산되어, 보다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은 문명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자 하는 공공심에 근거하여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부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이다[도덕감정론 제4부 제1장].” 


불평등 문제


오늘날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부를 독식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장의 과실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결국은 평등하게 분배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례로 어리석은 지주의 예를 든다.


“거만하고 냉혹한 지주가… 그의 동포형제들의 궁핍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고 수확물 전부를 자기 혼자 소비하겠다고 상상하는 것을 헛일이다… 그 잉여부분을 …농민들에게, 하인들에게, …나눠주지 않을 수 없다. 토지의 생산물은 언제나 그것이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의 주민을 유지할 뿐이다. 부자는 단지 생산물위 집적 중에서 가장 값나가고 좋은 것을 선택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토지가 모든 주민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졌을 경우에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생활필수품의 분배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무의식중에, 부지불각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번식의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도덕 감정론  4부, 1장, 345-346].”


물론 사치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은 부유한 지주뿐이다. 그 밖의 가난한 사람들은 사치품을 소비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분명히 불평등이 있다. 그러나 생활필수품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보면, 지주와 그 밖의 사람들 간에 차이가 없다. 애덤 스미스의 행복론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인간은 최저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그 이상 돈이 많아진다고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경제성장으로 인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 돌아간다는 것은 행복이 평등하게 분배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지주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행복이 사람들 사이에 평등하게 분배된다. 이런 역할을 설명하면서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았다고 했다. 물론 사회가 문명화 되면서 사치품의 생산도 증가되지만, 생활필수품도 역시 더 많이 생산한다. 그런데 부자라고 해서 생활필수품을 훨씬 더 소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다른 사람들의 몫도 증가하게 되고, 그 결과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줄일 수 있게 된다. 


거만하고 냉혹한 지주는 더 많은 사치품을 손에 넣어 더 행복해지려 하지만, 그의 야심은 환상이고 기만에 속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연약한 사람’의 야심에 의해 경제는 발전하고, 빈곤은 감소하며, 사회는 번영하는 것이다.


결국 스미스는 인간의 어리석어 보이는 이기심이 바로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이 행동하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도덕감정론> 전체에서 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는 비록 이곳에서 한 번 밖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부론>에서도 한 번 밖에 언급되지 않지만, 그의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생계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부를 확보하면 그 이상 부가 더 많아진다고 해서 행복이 부와 비례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부나 소득의 불평등이 있다고 해도 행복마저 불평등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행복관을 가지면 빈부격차 문제에 배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와 사회가 관심을 가질 것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정도의 극빈곤층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회와 정부가 도움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부를 추구하는 자들의 야심을 놔둬도 결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질서는 아담 스미스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자료사진=미디어펜


4. 자연적 자유의 체제


요즈음 다시 애덤 스미스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중상주의 시절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길게 보면 중상주의 시대 이후에 자유주의가 등장했지만, 끊임없이 중상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먼저 1873년 이후 유럽에 닥친 장기 대불황으로 인해서 각국은 1860년대 소위 자유주의제국시대에 형성된 쌍무협정에서 이탈해서 보호주의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20세기 초에는 가장 자유주의적이었던 미국에서조차 진보의 시기(the era of the progressive)라고 불릴 정도로 정부의 규제가 심해졌다. 결국 20세기 중반까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급속히 팽창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중시여기고 보호무역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중상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결국 1980년대 이후 공산권이 붕괴하고 소위 신자유주의 조류가 확산되면서 다시 자유주의가 힘을 얻었다. 그러나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다시 정부의 간섭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애덤 스미스는 모든 나라들이 식민지를 경영하는 것이 국익에 이익이 된다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던 시절에 이미 식민지 경영보다 자유로운 무역이 경제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발전을 위해서 산업정책적 간섭과 규제를 해야된다고 생각하던 시절에 자연적 자유의 체계를 주장했다. 


“그러므로 특혜를 주거나 제한을 가하는 모든 제도가 완전히 철폐되면, 분명하고 단순한 자연적 자유의 제도가 스스로 확립된다. 이 제도 하에서 모든 사람은 정의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 완전히 자유롭게 자기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으며, 자신의 근면·자본을 바탕으로 다른 누구와도 [다른 어느 계급과도] 완전히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국부론(하)』, 제4편, 9장, 김수행역(1992), 184).


이렇게 애덤 스미스가 자연적 자유의 제도를 강조했다고 해서 애덤 스미스가 자유방임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보는 홉스적 인간관을 거부하고, 인간이 태생적으로 도덕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이기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본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감정론』은 다음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principles에는 분명히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가 존재한다. 이 천성으로 인해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이 이런 종류의 천성에 속한다. 이것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우리가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보고 흔히 슬픔을 느끼는 것은, 굳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예를 들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런 감정은 인간의 본성 중의 기타 모든 원시적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도덕적이고 인자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도덕감정론> 제1부 제1편 제1장, p. 3].


또한 인간 사회는 인애의 덕만으로는 질서가 잡힐 수 없고, 정의의 법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나아가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질서가 잡힌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는 애덤 스미스보다 칼 마르크스의 영향이 점점 더 커져가서, 계급갈등과 증오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는 오해가 커져간다. 생산의 주체인 자유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을 망각하고, 다시 중상주의 시대의 규제 만능주의로 회귀하려고 한다. 자유주의라는 것이 자유방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잘못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지 30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의 통찰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1) Meek, Raphael and Stein ed., 1978, 8.


2) Meek, Raphael and Stein ed., 1978, 10.


3) Goudzwaard, 1978, 64.


4) 박세일, 2009,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체계,” <도덕 감정론> 개정판, 부록 I, 661-699, 681.


5) <법학강의(하), 185-186.


6) <법학강의(하)>, 185.


7) 도메 다쿠오.

[김승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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