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은 3일 서울 마포 자유경제원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를 주제로 '예술인이 본 시장경제 시리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1부 '예술가들은 왜 자본을 미워할까', 2부 '예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한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 송지연 우송대 교양학부 교수,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이근미 소설가가 참여했다.
2부에서는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최공재 영화감독,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이용남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이 자유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자들은 이날 "예술은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존재할 수 없다"는 점과 "예술가들도 이제는 무상예술의 늪에서 벗어나 경쟁과 성장의 길로 나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토론 사회를 맡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은 "자본주의 체제에 사는 국민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예술가들이 자본을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1부 토론자들은 예술가들이 자본을 미워하는 이유로 노력이 아닌 '재능'을 인정받아야 하는 예술 시장의 특성을 꼽았다.
자본은 예술을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예술계에 있으면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며 자본이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철저히 '재능 중심'인 예술시장이 갖는 특성을 재차 강조하며 "재능없고 열등한 예술가들만 자본을 미워한다"고 주장했다.
협소한 예술 시장에서 소위 '밥그릇'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능이 열등한 것을 '평등' '평화' '자유' '복지' '소수자 권리' 등과 같은 방패 아래 숨기려 한다는 것이 남정욱 교수의 진단이었다.
남정욱 교수는 "(예술가들은) 자본을 싫어하면 엣지(최첨단의 멋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예술가 사이에서 자본을 미워해야만 개념 있는 예술가로 불리기 때문에 자본을 미워한다"고 지적했다.
남정욱 교수는 이어 예술가들이 자본을 미워하는 이유가 "(예술시장에서)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저렴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라며 "시작부터 잘못된 논리"라고 비판했다.
남정욱 교수는 "예술가는 고용이 아닌 시장의 평가를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며 "예술은 잔인하고 치열하게 재능끼리 부딪치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예술가들이 자본주의에 갖는 반감은 예술의 메커니즘과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신중섭 교수는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예술과 시장경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중섭 교수는 오히려 예술가들이 중요시하는 예술 활동의 자유는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보장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신중섭 교수는 "예술가들은 과거 오랜 역사 동안 종교·정치 권력의 하수인으로 살았다"며 "자본주의를 통해 자신들이 평가받고 자유롭게 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실제로 예술가들이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게 된 것은 스스로 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팔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된 이후"라며 "예술가들이 자본주의를 미워하지만, 자본주의의 은혜를 입은 예술가들이 자본을 비난하는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특정 예술을 금하지 않는다"며 "순수 예술을 지향하지만 시장이 없다고 하면 예술도, 언론의 자유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근미 소설가는 "예술가들이 뛰어난 작품과 시장이 결합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제됐다고 '내 예술을 몰라준다',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근미 소설가는 "재능 있는 작가가 작품을 쓰고, 능력 있는 출판사가 글로벌 시장으로 운반하는 탄탄한 자본 시스템이 만나 예술을 발전시킨다"며 "예술가들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전에 스스로 삶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근미 소설가는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불리는 몇몇 작가들을 예로 들며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전방위로 원망만 쏟아내면서 '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허위의식은 더 이상 예술가의 특권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근미 소설가는 "예술도 엄연히 자본주의 상태에서 움직인다"며 "예술가 포화 상태에서 시장은 냉정하고 변수는 많다"고 했다.
이근미 소설가는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에 나온 구절을 인용하며 발표를 마쳤다.
"작가이건 화가이건 자기의 작품에만 생활비를 의지하고 있는 예술가를 나는 진정으로
불쌍하게 생각하네. 돈을 멸시하는 인간을 나는 경멸하네.
그런 녀석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일세. 돈이란 육감과도 같은 것이야.
그것이 없으면 다른 오감도 충분히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
송지연 우송대 교양학부 교수는 예술가들이 대중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는 '결핍된 존재'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예술가에게 사랑과 인정의 증표가 되는데 (예술가들은) 사랑과 애정을 만족스럽게 가질 수 없게 되자 자본에 대한 미움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송지연 교수는 "(예술시장은) 보편타당한 사회적 룰이나 모두가 만족할 만한 공정한 경쟁의 보상이라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예술의 특성 자체가 '공정한 경쟁과 보상'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송지연 교수는 "자본 덕분에 대중들도 예술을 누릴 수 게 됐다"며 자본이 예술에 기여하는 순기능을 설명했다.
송지연 교수는 "자본이 우리의 삶과 예술을 윤택하게 한다"며 "자본으로 인해 재능이 없는 많은 사람들도 일상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작은 예술가로 살 수 있다면 자신들의 억압을 풀어낼 수 있다"며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자본'이 도와준다"고 밝혔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예술이 자본 없이 가능할까? 예술이 자본과 함께 성장한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2부 토론회의 막을 열었다.
2부 발제를 맡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독립영화'에 대한 정의를 고찰하는 한편 '자본'을 배척하는 한국 독립 영화의 모순을 지적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독립영화의 진짜 정의는 기존 상업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으로 현재의 자본과 배급망을 벗어나면 모두 독립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예술적 가치가 있는 영화만을 정의하는 단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문원 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조지 루카스 영화감독이 은행 대출과 자신의 돈으로 제작한 '스타워즈' 2·3편이야말로 진짜 독립영화라는 것이다.
이문원 평론가는 한국의 독특한 독립영화의 정의가 "예술가들이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방패로 삼아 공적 자본 지원을 받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이문원 평론가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지원하는 비용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현실을 꼬집으며 "시장을 기피하고 경쟁에 따른 책임을 무서워하는 반(反)시장적, 반(反)자본적 흐름을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세금으로 영화 만들 돈을 주고, 배급도 잡아주고, 극장도 지어준 뒤, 흥행 실패에 따른 '페널티'조차 주지 않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의 독립영화는 공적자금이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세금의 노예'가 된 것"이라면서 "공적 자본에 종속된 영화, 공적 자본에 기생하는 영화"라고 비판했다.
최공재 감독은 "자본도 없고, 노력도 의지도 없이 말로만 예술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공재 감독은 유명 영화제에 가서 영화를 홍보하고 적극적으로 다른 작품을 봐야 할 영화인들이 사실은 매일 '술 파티'를 벌이며 '자본의 문제점'만 비판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최공재 감독은 북미에서 자신의 영화 '도살자'가 할로윈 데이 특별판 DVD로 출시되는 등 같은 기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박쥐'보다 흥행에 더 성공했던 경험담을 풀었다.
그는 "(나는) 자본을 욕하기보다 영화로 돈을 벌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한 결과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밝혔다.
최공재 감독은 "(세상이) 자기 재능을 몰라준다고 멍하니 앉아 자본이 와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고 꼬집었다.
최 감독은 "자본과 예술의 목적은 같다고 생각한다"며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는 목적이 같다"고 하기도 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술작품이든 영화든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으면 투자자는 투자금을 잃게 된다"며 "이런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자는 가장 위험도가 낮은 사업을 골라 투자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자본가들이 영화 제작자들도 투자를 받기 위해 경쟁에 참여하고 투자자들이 성공을 위해 간섭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남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는 "예술은 자본을 갈망할 수밖에 없다"면서 "예술과 자본은 공생의 관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용남 교수는 한국 영화가 관객 수 1,000만을 동원하고 매해 2억 명이 넘는 관객 수를 보유하게 된 성장의 원동력은 '자본'이라고 밝혔다.
이용남 교수는 "문화 소비자들에 의해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본을 욕한다"며 "문화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을 자본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이용남 교수는 "가끔 독립영화계가 균등하게 스크린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적인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영화인들이 먼저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용남 교수는 "예술가들은 무상예술의 늪에서 빠져나와 경쟁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성장이고 발전이며 한국영화와 영화 시장을 발전시키는 다양성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패널들의 발표가 마무리된 뒤 "자본은 예술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을 제공한다"며 "예술가들은 자본을 통해 자유롭게 예술 세계를 넓혀 갈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다양한 장르가 만들어진다"고 풀이했다.
최승노 부원장은 "자본을 통해 한층 심도있고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며 "자본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예술의 친구이자 후원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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