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예술가들은 왜 자본주의를 미워할까

자유경제원 / 2016-06-05 / 조회: 7,210       미디어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자본', '자본주의'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있다. 자본을 착취, 약탈, 소외, 부익부 빈익빈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합시켜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술 분야에서의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인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본'을 미워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처럼 숱한 오해를 받고 있는 자본은 정말로 나쁜 것일까. 자유경제원은 '자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는 “예술가들은 자본을 미워한다”며 그 이유로 “예술가들은 자기가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저렴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논리”라며 “예술가들은 시장에서의 평가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 교수는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는가에 대한 평가가 예술가들의 자기 증명이자 돌아오는 보상”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예술은 고고하지 않다”며 “오히려 돈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은 태어나고 발전한다”고 언급했다. 15세기 피렌체, 19세기 파리, 20세기 뉴욕 그리고 2016년 현재의 베이징을 예로 들면서 남 교수는 “왕의 예술, 교회의 예술 및 부르주아들의 예술에 이어 이제 예술은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보편의 재화로 우리 곁에 있다”고 설명했다. 남 교수는 “돈은 예술을 부르고 그렇게 돈이 모인 곳에 모여든 예술은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한다”며 “예술과 돈이 긍정의 순환작용을 통해 서로를 만족시키는 예술의 세계에서 낙수 효과가 뚜렷하다”고 말했다. 아래 글은 남정욱 숭실대 겸임교수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왜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을 미워할까 


1. 


예술은 고고하지 않다. 오히려 돈이 모이는 곳에서 예술은 태어나고 발전한다. 15세기의 피렌체, 19세기의 파리, 20세기의 뉴욕 그리고 2016년 현재의 베이징이 그렇다. 미술품 펀드를 다루는 파인 아트 펀드The Fine Art Fund의 CEO인 필립 호프먼은 돈과 예술의 상관관계 그리고 부자들의 미술품 투자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일단 집 다섯 채, 자동차 세대, 보트 두 척이 생기고 나면 돈 쓸 데라고는 예술 밖에 남지 않는다.”


빼고 더할 것 없는 깔끔한 진단이다. 돈은 예술을 부르고 그렇게 돈이 모인 곳에 모여든 예술은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혁신한다. 예술의 반대말은 비非예술이 아니라 식상이다. 새로운 것이 계속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예술과 돈은 이렇게 긍정의 순환작용을 통해 서로를 만족시킨다. 예술의 세계에서 이른바 낙수 효과는 뚜렷하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면 사회에서 예술은 상류계층의 것을 그 아래가 모방하면서(혹은 반발하면서) 수용하고 발전시킨다. 그래서 왕의 예술, 교회의 예술 그리고 부르주아들의 예술에 이어 이제 예술은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보편의 재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예술가들은 자본(주의)을 (뚜렷한 이유도 없이)미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술가들은 자기가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저렴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막연하게)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정당한 보상에서 제외되었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부터 잘못된 논리다. 예술가들은 고용에 의해 자기 가치를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평가를 통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켰는가에 대한 평가가 예술가들의 자기 증명이자 돌아오는 보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이 유난히 까다롭고 야박한 곳이 바로 예술시장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불만이 슬그머니 사회 시스템과 연결된다. 예술 시장 역시 다른 노동 시장과 마찬가지로 숙련된(예술의 경우 재능 + 노력의 산물) 사람이 더 많은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일반적인 노동 시장에서의 격차와는 달리 예술 시장에서의 각 개인들의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고 깊고 크다. 일반적인 노동 시장에서는 노력이 숙련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 노력은 별 의미가 없다(열등한 재능에 있어 그렇다는 얘기다). 모차르트는 노력해서 모차르트가 된 게 아니다. 


예술은 공부와 비슷하다. 노력해서 잘하게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잘하니까 노력하게 된다. 반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싫어한다. 당연하다. 못하니까 싫은 것이다. 잘하면 싫을 리가 없다. 우등생들은 잘하니까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삽화가 랠프 스테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천재란 노력할 수 있는 재능이다.” 좀 잔인하게 말하자면 재능이 없을 경우 노력 같은 건 제발 하지 말라는 얘기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라는 얘기다. 해서 재능 없는 사람이 노력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딱한 일도 없다. 소설가가 너무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재능이 없었다(본인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소설 쓰기의 두 가지 핵심인 내러티브 짜기와 스타일 대신에 안 쓰는 우리말을 발굴해 무한정 투입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사전을 찾아가면서까지 소설을 읽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다. 내러티브와 캐릭터 구축에서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비극이다. 주변에서 말렸어야 한다.   


   
▲ 미술품 펀드를 다루는 파인 아트 펀드The Fine Art Fund의 CEO인 필립 호프먼은 "일단 집 다섯 채, 자동차 세대, 보트 두 척이 생기고 나면 돈 쓸 데라고는 예술 밖에 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진은 '2016 파리도서전'에 참가한 네이버 그라폴리오 전경./자료사진=네이버 제공


재능도 없는 사람들이 대거 예술에 진출하게 된 것은 근대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중세에서 근대까지의 예술가는 독학, 가학(홈스쿨링, 집에서 배운다는 말이다) 그리고 도제 수업으로 기량을 닦았다. 당연히 정말로 재능 있는 경우가 아니면 시작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소수였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이 대량으로 배출되기 시작한다. 취미로 즐길 수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학교에서 이른바 예술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얻어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도제 수업이라면 학생이 많아야 둘에서 셋이다. 그러나 학교는 그렇게 운영할 수 없다. 스물에서 서른의 입학생을 받아야 학교가 돌아간다. 당연히 이들 모두에게 돌아갈 일자리는 없다. 그래서 자리를 찾지 못한, 밥그릇을 얻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무능 대신 원인을 세상에 돌린다. 미워하고 증오한다. 그게 편하고 자존심 유지에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자기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진짜 모른다(이게 사는 데는 오히려 편하다). 대부분은 자신에게는 재능이 콩나물 대가리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비난에 열을 올린다. 성공한 예술가들도 자본주의를 미워한다. 그러나 미워하는 척 할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안다. 어떤 액션이 사람들을 열광시키는지 안다. 그래서 미워하는 척 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비인간화로 치닫게 한다며 선동에 동참한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재능과 현재의 성공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안다. 


2.


그렇다면 대체 어느 정도부터 재능일까.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내 피아노 실력은 체르니 30번 수준이다. 그러나 악보를 못 본다. 듣고 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재능일까? 아니다. 그저 잔재주일 뿐이다. 이런 재주는 세상에 널렸다. 이런 재주, 그러니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칭찬을 진짜로 믿고 자신의 재능을 확신한 경우 대부분 결말은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시장 진입 실패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그 출발에 대해 물으면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서, 라는 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주변이라면 대체 누구? 클래식 음악가라고 하면 베토벤 밖에 모르는 시골에 사는 할머니, 레오나드라고 하면 다 빈치가 아닌 디카프리오를 먼저 떠올리는 이모, 베이컨의 이름을 대면 철학자가 그림도 그렸어요? 되묻는 삼촌 그리고 최종적으로 타인의 인생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책임도 없는 주변의 친구들이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말하고 슬쩍 퇴장해서 자기들의 말이 저지른 참극을 무표정하게 감상한다. 실패의 이유를 물으려면 거기서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신성우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던 이근상은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신)대철이하고 기타 세션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연습만으로는 얻어질 수 없는 프레이즈(악절)이 나온다. 그건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이근상은 고교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기타리스트다. 소리를 구분하고 미세한 음을 잡아내는 그의 재능은 탁월 그 자체다. 그런 이근상에게도 신대철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능력을 되돌아보게 하는 스트레스인 것이다. 예술가들이 시장에서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은 대략 이 재능에 비례한다. 지지를 많이 얻든 적게 얻든 그것을 불평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노력이 아닌 주어진 것에 대해 프로들은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그 아래로 재능이 빠지는 얼뜨기들이 이들을 시기, 질투한다. 이들은 재능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미워한다. 음악을 예로 들었지만 문학이든 미술이든 경향은 다 비슷하다. 


재능은 희귀하다. 게다가 이 재능이 발휘되고 평가받는 시장은 원칙적으로 내수용이 없다. 글로벌 자체가 이들에게 시장이다. 고시考試는 자국인들 사이의 경쟁이다. 입시도 자국인들 사이의 경쟁이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는 자국인, 타국인의 구별이 없다. 이것이 예술에서의 수요 획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수요 획득의 어려움은 얼치기들의 불평을 더 많이 불러온다. 그러나 애초에 시장에 들어오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불평은 스스로에 대한 엄정하지 못한 진단에 돌려야 맞다.       


   
▲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은 지난 칸 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했다./사진=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컷


3.


보통 생산요소로 토지. 노동, 자본을 꼽는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존재 그 자체가 자본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는 생산요소가 재능 하나뿐이다(실은 운이 제일 중요하지만 비과학적으로 들려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토지와 노동과 자본이 재능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토지에서는 지대가 발생한다. 재능에서는 저작권에 따른 보상과 인세가 발생한다. 이 저작권에는 이름값도 들어간다. 바꿔 말하면 열등한 재능에게는 아무런 생산요소가 없다(말한 대로 노력은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아무 것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운명인데 보상을 바라는 어이없는 일은 이래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시장 진입 욕구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성공이 더욱 빛난다. 5%의 영광을 위해 95%가 시장에 들어오는 셈이고 이들은 사후 불평분자로 전락한다. 이들이 숨을 방패는 많다. 이들은 자신의 열등을 자주, 평등, 평화, 자유, 복지, 생태, 인권, 소수자 권리, 연대 같은 방패 아래 숨긴다. 그리고 또 이런 것들을 좋아해주는 역시 얼치기 애호가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들은 이념 때문에 민중집회에 나가는가. 아니다. TV에 나갈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돈으로 연결되는 재능이 부와 인기를 마다하고 현장으로 달려갈 신념의 경우는 한 세기에 한 명도 희귀하다(대표적이고 거의 유일한 경우가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다. 이번 칸 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그는 생활과 예술이 일치하는 거의 유일한 경우다). 재능 없고 열등한 예술가들만 자본을 미워한다. 그러나 이건 미워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남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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