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스타워즈를 독립영화라 부르지 못하는 괴이한 현실

자유경제원 / 2016-06-06 / 조회: 6,917       미디어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자본', '자본주의'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있다. 자본을 착취, 약탈, 소외, 부익부 빈익빈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합시켜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술 분야에서의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인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본'을 미워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처럼 숱한 오해를 받고 있는 자본은 정말로 나쁜 것일까. 자유경제원은 '자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징 격 존재인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작품 거의 대부분이 독립영화로 분류될 수 있으나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한국에서의 독립영화는 독립영화의 본래 의미와 배치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이 편집장은 “독립영화란 기존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 편집장은 “감독 겸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독립제작사 루카스필름을 통해 직접 은행권으로부터 융자받아 제작비를 댔던 스타워즈 2편과 3편, 루카스 본인의 자산으로 제작비 전체를 댔던 (1999년부터 시작된)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이야말로 독립영화의 기본이자 표본인 셈”이라고 밝혔다.


이 편집장은 “그러나 아무도 '스타워즈'를 가리켜 독립영화라 말하지 않는다”면서 “저예산 및 일반 상업영화의 정반대편에 서있는 독립영화의 이미지 때문에 '스타워즈'를 독립영화라 부르지 못하는 괴이한 현실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편집장은 “한국에서 독립영화란, 공적개념이 영화 만들 돈을 주고 배급도 잡아주며 극장도 지어준 뒤 흥행 실패에 따른 페널티조차 주지 않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라며 “여기에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편집장은 “이와 같은 ‘공짜’ 심리, ‘거지’ 근성, ‘종속’ 욕구로 점철된 ‘한국형’ 독립영화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되지도 않는 예술영화 이미지 덧씌우기가 성행한다”고 비판했다. 아래 글은 이문원 편집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문화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


산업화된 형태의 문화예술, 시장에서 거래되는 문화예술 상품들은 당연히 그 제작과정에서 자본과 만나게 돼있다. 그러나 이 같은 자본과의 접점에 대해 유난히 불편해하며 이를 ‘종속’이라 부르는 집단도 존재한다. 이들의 목표는 자연스럽게 ‘종속’의 정반대, ‘해방’이자 ‘독립’이 된다.


쉽게, 지난 십여 년 간 문화계 관련 뉴스들 중 사회 섹션으로 분류되는 이슈들을 살펴보다 보면 거의 대부분이 한 가지 화두로 점철돼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란 이슈다. 이 같은 이슈가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장르는, 역시 가장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는 장르, 영화다.


예를 들어보자.


“흔히 독립영화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정의한다. 다르게 말하면 ‘자본에 고용되지 않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에 고용되지 않은 독립영화는 ‘고용노동’만이 아니라 ‘협동노동’, ‘협동형 자기 고용노동’ 등 다른 노동 형태와 제작자가 지적재산권을 독점하지 않는 소유와 분배구조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자본 중심으로 양극화된 환경에서 이런 상상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자본에 고용되는 노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노동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이는 ‘자본에 고용되지 않는’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본을 고용하는’ 영화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와 노동이 가능할 것이다.” - 씨네21 2015년 12월7일자 기사 ‘‘자본을 고용하는’ 영화를 꿈꾸며’ 중


“2015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 <스틸플라워>에 심사위원상을 결정한 심사위원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는 <스틸플라워>를 이렇게 평했다.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가 필요한 이유다.” - 시사저널 2016년 4월14일자 기사 ‘주류의 구태의연함을 깨부수는 비주류 무비 파워’ 중


뭔가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먼저,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라고 규정돼있으면서 동시에 ‘자본을 고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또 무엇인지 의아해진다. 결국 독립영화 자체가 거대자본이 돼야 한다는 얘긴데, 그냥 단순하게 “남 눈치 보지 않고 영화 만들 수 있는 환경” 정도 의미라고 봐야한다.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징 격 존재인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거의 대부분이 독립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진=루카스필름 홈페이지 캡처


그런데 지금도 거대자본을 배경으로 한 영화제작자/감독들 중 저렇게 “남 눈치 보지 않고 영화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받는 이들은 많다. 거의 대부분 그간 커리어를 통해 투자자에게 명확한 상업적 안정감과 확신을 주거나 해외에서의 높은 평판 등으로 해외마켓 진출율이 높은 제작자/감독들이 그런 특권을 누린다. 그럼 그냥 열심히 노력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둬 그런 권리를 얻어낼 생각을 하면 되는 것이지, 왜 그런 개인적 노력과 관계없이 그런 ‘시스템’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하는 것인가.


시사저널 기사는 더 알 수가 없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어느 영화에 대해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다.”라고 평가한 게 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가 필요한 이유”가 되나. 자본이 있으면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긴가. 아니, 이미 거대영화사 작품들 중에도 충분히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영화들이 나오고 있는데, 왜 여기서 이런 얘길 하고 있는 걸까.


독립영화의 본래 개념은 ‘기존 자본’이 아니라는 것


일단 독립영화의 정의부터 다시 살펴보자. 여기서 말하는 ‘독립영화’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독립영화 [independent film , 獨立映畵] : 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 일명 ‘인디영화’라고도 한다. 이윤 확보를 1차 목표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우선시되는 영화로, 주제와 형식, 제작방식 면에서 차별화된다. 따라서 여기서의 ‘독립’이란 자본과 배급망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 - 두산백과사전


뭔가 와 닿는 게 별로 없을 듯하다. 그저 ‘기존 상업자본’이 아니기만 해도, 그리고 ‘창작자의 의도’가 중요시 된다고만 하면 다 독립영화란 것이다. 그냥 신뢰감을 쌓은 영화제작자에게 ‘새로운 자본’이 접근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주면 그 순간 독립영화가 돼버린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더 흥미로운 건 ‘독립영화’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조차 이 같은 규정에 따르면 애초 성립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일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징 격 존재인 '스타워즈' 프랜차이즈 거의 대부분이 독립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편은 메이저 스튜디오 20세기 폭스 자본으로 제작됐지만, 2편과 3편은 감독 겸 제작자 조지 루카스가 자신의 독립제작사 루카스필름을 통해 직접 은행권으로부터 융자받아 제작비를 댔다. 20세기 폭스는 배급만 맡았다. 1999년부터 시작된 '스타워즈' 프리퀄 3부작은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지도 않았다. 아예 루카스 본인의 자산으로 제작비 전체를 댔다.


구조적으로만 보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야말로 독립영화의 기본이자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도 '스타워즈'를 가리켜 독립영화라 말하진 않는다. 독립영화란 단어가 지닌 '이미지'와 맞질 않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는 궁극적으로 '저예산'이란 규모측면 문제뿐만 아니라, 다수 관객층을 대상으로 만드는 일반상업영화의 정반대편에 서있기도 하다. 그러니 자기 자산이건 뭐건 그렇게 부르지 않고, 나아가 그렇게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스타워즈'를 독립영화라 부르지 못하는 괴이한 현실이다.


   
▲ 한국에서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으로터의 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공적개념 차원의 자본에 온전히 종속되기를 바란다. 스타워즈가 독립자본으로서 만들어져 영화시장의 승리자로 올라선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사진=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포스터


독립영화 본래 의미와 배치되는 ‘한국형’ 독립영화 개념


그럼 저 ‘독립영화’를 추구한다는 사람들의 지향점은 과연 어디일까. 여기서부터 애초 independent film이란 개념을 정립시킨 미국 등지와 한국이 크게 갈라진다. 미국에서 독립영화는 시장 자체가 다른 영화다. 블록버스터처럼 일반대중을 상대로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구조를 띤 이벤트적 상품이 아니라, 적은 제작비로 소수 취향의 상품들을 내놓아 시장의 다양한 빈틈들을 메우자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그러니 독립영화에 딱히 예술영화란 인상은 없다고 봐야한다. 불과 3000달러로 만들었다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액션영화 <엘 마리아치>도 독립영화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예술영화 <희생>도 독립영화다. 이런 개념 하에서 저명한 B급 졸속영화 제작자 로저 코먼은 폭력과 섹스가 넘실대는 싸구려 졸속영화들을 제작/배급하면서, 동시에 잉그마르 베리만이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예술영화 배급도 함께 맡은 바 있다.


그냥 ‘주류시장’에서 기능하지 않는 영화, 그러니 ‘주류자본’이 굳이 자본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 영화, 그렇게 제한된 시장 내에서 제한된 관객들을 상대로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을 투자해 수익을 얻어내는 구조가 바로 독립영화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같은 ‘당연한’ 독립영화 개념이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입장들 때문이다.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워낭소리>도 실제로 영진위가 운영했던 2008년 하반기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의 개봉지원작으로 선정돼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이 개봉지원 제도의 마지막 수혜를 입은 작품이 됐다. 올해 들어 이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중략)


문정현 감독은 "내 영화는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다루고 있고 그만큼 현재 여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장면도 들어가 있다. 이런 영화도 제작과 배급을 국가가 일부 지원해줄 수 있는 수준의 사회가 성숙한 사회"라고 전제한 뒤, 현재 영진위가 독립영화의 '독립'이라는 말조차 떼려 한다고 말했다. 이는 영진위가 작년까지 운영하던 '독립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단편, 중편,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으로 명칭을 바꿔버린 것을 꼬집는 것이다. 그간 독립영화를 만들어온 사람들 전체를 부정이라도 하듯 '독립영화'라는 말 자체를 영진위가 지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 (중략)


또한 다음 주에 공식 발표될 2009년 영진위의 진흥사업 개요는 독립영화계를 한층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이미 작년 말 한독협이 성명서를 통해 영진위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지만,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 계획이 백지화된 것은 물론 기존 서울아트시네마와 인디스페이스, 미디액트 등을 위탁의 형태로 운영하던 것을 공모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전술했듯 아트플러스네트워크 개봉지원 제도가 폐지됐으며 '독립영화' 자체가 존재가 지워진 채 지원 규모는 줄어들어 버렸다. (중략)


이제 이 제도가 폐지된 뒤에 독립영화가 개봉하려면 제3의 투자자를 찾아 일반 영화와 똑같은 조건으로 수익을 나누고 배급비용을 극장과 시장의 요구에 따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대형 할인마트와 시골동네의 작은 구멍가게가 같은 조건으로 동시에 완전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 프레시안 2009년 2월12일자 기사 ‘독립영화 발목 붙드는 건 극장과 영진위?’ 중


   
▲ 구조적으로만 보면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야말로 독립영화의 기본이자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도 '스타워즈'를 가리켜 독립영화라 말하진 않는다./자료사진=루카스필름 로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공적자본에의 종속’을 원하는 한국형 독립영화


이제 저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 말하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공적개념에 흡수돼 공적개념이 영화 만들 돈을 주고, 배급도 잡아주고, 극장도 지어준 뒤, 흥행 실패에 따른 페널티조차 주지 않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기다 ‘경쟁’조차 완벽하게 부정한다. 


결국 이와 같은 ‘공짜’ 심리, ‘거지’ 근성, ‘종속’ 욕구로 점철된 ‘한국형’ 독립영화의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되지도 않는 예술영화 이미지를 덧씌우고, '스타워즈' 같은, 뭐라 딱히 말하기 힘든 사례들이 하나둘 속출해도, 뭐 여전히 독립영화계나 비평계는 모르는 척 무시하며 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단순하다.


저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자본으로터의 독립’을 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공적개념 차원의 자본에 온전히 종속되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시장을 기피하고 경쟁을 두려워하며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에 기생해 살아가길 원하는 반시장적, 반자본주의적 흐름을 기대하는 부류라는 얘기다. 간단히 말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곧 ‘공적개념에의 종속’ 요구다.

 

민간자본이 상징하는 시장에서의 자유가 아닌, 공적자본에의 종속을 통한 경쟁 회피. 그런 점에서 이 지극히 사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종속 지향의 반자유적 집단이 추구하는 ‘독립영화’ 개념은, 엄밀히 말해, ‘종속영화’ 또는 ‘기생영화’라 불려야 마땅한 일이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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