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체 게바라`같은 김수영? "당대의 패션좌파"

▲ 자유경제원은 13일 '시인 김수영 바로보기-누가 김수영을 이용하나'를 주제로 자유경제원 리버티 홀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 뉴데일리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1960년대부터 소시민들의 슬픔을 담는 사회참여적 시를 쓴 것으로 알려진 김수영은 당대의 대표 시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회참여적인 시가 언제부터인가 대중의 분노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돼 버렸다고 한다.

자유경제원은 13일 '시인 김수영 바로보기: 누가 김수영을 이용하나'를 주제로 리버티 홀에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는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의 사회로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조우석 문화평론가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김수영의 가짜 신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문단 권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 뉴데일리

발제를 맡은 남정욱 숭실대 교수는 "김수영의 시는 난해하다. 모더니즘 시들이 그렇듯 지독한 자의식의 발산이다. (문단은) 이런 시를 쓰던 사람을 저항시인, 민중시인으로 만들었다"면서 "김수영을 자유와 저항의 관점에서 떠받드는 사람치고 그의 작품을 다섯 개 이상 아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몇 구절만 죽어라 외워 댄다. 시인은 그들의 손에 죽었다"고 말했다.

푸른 하늘을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

남정욱 교수는"김수영은 이용당했으며 현재도 활용되고 있다"면서 "김수영의 시를 제자리에 놓고 해괴한 묘비를 세운 자들을 응징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남정욱 교수는 "오늘날 김수영에 대한 평가는 평론가 집단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 계획적이고도 장기적으로 그를 우상화시킨 결과"라면서 "우상화의 핵심은 김수영의 시는 대표적인 참여시라는 것, 참여시는 어떤 시보다 훌륭한 것이라는 논리다. 결론적으로 이 양자를 결합한 김수영의 시는 '훌륭하다' 라는 논리로 요약된다"라며 현재 문학계에 퍼진 '김수영 신화'의 허구성을 꼬집었다. 

▲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 뉴데일리

토론자로 나선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우리는 사물을 스스로 보기 전에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본다. 그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이번 토론을 통해 나는 그동안 김수영의 시를 내 눈으로 읽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신중섭 교수는 "자유, 양심과 같은 가치를 자신의 문학적 가치로 삼은 김수영을 좌파 시인이나 민족주의, 민중주의 시인으로 분류하여 배제하는 것은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유산을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중섭 교수는 김수영의 대표작인 '풀'을 예로 들며 "김수영의 '풀'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음에도 (평론가들은) 풀과 바람을 '민중과 '억압세력'으로 해석했다. 이는 민중주의자들의 우의적(寓意的)인 해석이지만 이 해석이 통상적으로 널리 퍼졌다"고 말했다.

신중섭 교수는 "김수영이 '풀'을 쓴 1960년대 후반 한국 정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시 해석에서 그 사람이 살았던 당시의 상황이 아니라 오늘의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해석할 필요도 있다"면서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풀과 바람의 관계가 역전될 수도 있다. '풀’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으며, '풀’을 민중 문학의 관점에서만 해석할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 이문원 대중문화 평론가 ⓒ 뉴데일리

이문원 문화 평론가는 "김수영은 참여시를 표현의 제약이 없던 시대에 잠시 '트렌드'로서 손댔던 작가에 불과하다"면서 "시의 내용도 유치하고 그저 표피적으로만 여러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놓고 사라진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저 대중이 멋지고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방향, 정확히는 시라는 장르를 소비하는 특정 소비층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문원 평론가는 김수영을 '가장 초기 단계의 패션좌파 모델을 선보인 예술가'로 규정했다.

이문원 평론가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 젊은 층에 어떤 '이미지'로 비칠지 계산해 행동하지만 별다른 경향성과 지식, 의지가 없는 예술가들이 패션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문원 평론가는 "김수영이 왜 다시 2016년 한복판에 나타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면서 "지금은 '패션 좌파의 전성기'이기 때문이다. 애초 이데올로기적인 지식이나 일관성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자유’, '혁명’과 같은 '겉모양’만이 패션처럼 소비하며 시장경제를 '악'으로서 압박하는 것이 그렇다"고 말했다.

▲ 조우석 문화평론가 ⓒ 뉴데일리

조우석 문화평론가는 "김수영의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 종교 교리문답 수준"이라며 "무조건 김수영은 자유, 김수영은 양심으로 통한다.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우석 평론가는 "이러한 황당한 질서는 민중문학 패거리의 솜씨다. 구체적으로는 한국 문학계의 오너 격인 백낙청과 그의 옛 파트너 문학평론가 염무웅이다. 당시 민중문학 진영에게 김수영은 충분한 전술, 전략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후 대부분의 평론가는 이들의 움직임을 따랐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백낙청-염무웅의 평론은 진리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조우석 평론가는 "좌파문학 진영은 누군가를 올려놓아 자기들의 문학이념을 대변할까를 고심했다. 그 간택 대상이 김수영"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김수영은 요즘 젊은 층과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체 게바라'는 아니라는 점이다. 김수영 신화가 허물어진 지금 그게 새로운 진실"이라고 지적했다.